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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다섯 가지 복 시 25:12-14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시편 25편은 큰 환란을 당한 다윗의 기도입니다. 이 시에는 다윗이 큰 환란 중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이 많습니다. 16절에서 다윗은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라고 말했습니다. 17절에서는 ‘내 마음에 근심이 많사오니’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정확하게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극심한 고난 중에 지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하나님은 경외하는 자에게 이러이러한 복을 주실 것이고 나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믿음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본문을 여는 열쇠는 12절에 나오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구냐?”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기 위하여 강한 의문문을 사용한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한 후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받는 복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다윗이 말했던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 다섯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할 때 경외가 무슨 뜻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경외는 히브리어로 arey:(야레)인데 뜻은 ‘경외하는, 두려워하는’의 의미입니다. 이 말을 풀어서 해석하면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을 잘 표현한 말씀이 시편 2:11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경건한 두려움의 두 측면이 있습니다. 두려움과 즐거움입니다. 두려워서 떠는 데 즐겁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니다. 신비적 조화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무섭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데 떨며 즐거워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떤 복을 받을까요?
1. 하나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주시는 복입니다(12절).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했습니다. “모든 개미는 개밋둑을 쌓을 줄 알고, 모든 벌은 벌집을 만들 줄 안다. 그놈들은 우리 식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그것을 체득한다. 오직 인간만이 사는 법을 모른다.”
인간이 현명한 것 같지만 어리석은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인간은 자주, 아주 많은 경우에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재앙을 자초합니다.
지금 내 삶은 과거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지금 내 상황이 좋든 좋지 않든 그것은 과거의 나의 선택의 결과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된 미래를 만들려면 복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길을 잘 못 찾는 사람을 길치라고 합니다. 제 아내는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상당히 길치였습니다. 한 번은 올림픽대로를 건너 아산병원 옆을 지난 후에 제가 물었습니다. “여보! 여기가 어디지?” 제 아내 대답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수서요”
요즘은 길치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좋잖아요. 주소만 입력하면 “직진하세요. 좌회전하세요. 우회전하세요.”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잖아요. 문제는 인생의 길이 문제입니다.
김태환목사님께서 미국에 가신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입니다. 어디를 가시는데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아서 누구에게 길을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여긴 길이 복잡하니까 자기가 거기까지 함께 가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그 사람이 목적지까지 목사님을 데려다 주었습니다. 대단히 친절한 분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 친절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일생에 몇 번 없을 정도로 희귀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길입니다. 정말 인생길에서 그 사람처럼 친절한 안내자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감사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은 나의 인생길의 완벽한 안내자가 되어주십니다. 잠언 16:9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나는 어리석어서 어리석은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내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은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해주시는 분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친 어거스틴(Augustine)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어거스틴이 설교 부탁을 받고 낯선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모르는 그는 길을 잘 알고 있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내자는 어거스틴을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안내자가 어이가 없어서 한 말입니다. 그는 그 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다른 곳으로 온 것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그 날 설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목적했던 곳에 갔더라면 죽을 뻔했습니다. 어거스틴의 대적들이 숲속에 숨어 어거스틴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내자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그 길을 못 가게 하시고 어거스틴을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시편 23:1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나의 인도자라는 의미입니다. 목자가 양을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듯이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길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목자이신 주님께 자신의 인생길을 지도 받으려면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통해서 목자의 인도를 받습니다. 요즘 저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사역을 할 때 운전 중에 반드시 이어폰을 끼고 운전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소리 때문에 내비게이션에서 나는 소리를 잘 못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해 사역을 갔을 때는 내비게이션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해서 몇 km를 돌아서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는 기도를 더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갈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2. 평안의 복입니다(13).
영혼의 평안은 내면의 평안 혹은 마음의 안식을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에는 참 안식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이 진짜 행복한 것입니다.
인생이 괴로운 것은 마음의 짐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주님은 우리마음의 짐을 대신 짊어져주시고 우리마음에 쉼을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11:28-30을 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가진 사람들은 주님에게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쉬게 해주십니다. 그러려면 주님과 함께 멍에를 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멍에를 매면 삶이 더 고단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온 세상 죄를 짊어지셨잖아요. 주님은 온 인류의 문제를 지셨잖아요. 그런데 내가 그 멍에를 주님과 함께 지면 나는 견디지 못할 것 같은데 주님은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은 가볍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괜찮겠지만 저와 여러분은 연약한 인간인데 주님의 짐을 함께 진다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함께 멍에를 매지만 감당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군대생활 할 때 부대 평균 키가 178cm였습니다. 제가 부대 평균 키보다 10cm가 작았습니다. 그러니 훈련을 받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유리한 것도 있더군요. 목봉체조입니다. 전봇대 같은 목봉을 가지고 체조를 하는데 제가 꾀를 부리지 않아서 그렇지 제가 꾀를 부렸으면 얼마든지 편하게 목봉체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목봉을 어깨 위에 올리면 다른 사람들은 어깨를 짓누르지만 저는 목봉이 공중에 떠서 어깨에 닿지 않았습니다. 목봉을 어깨에 올리면 제가 감당해야 할 무게들을 키 큰 병사들이 다 담당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주님은 우리의 인생의 짐꾼이 되십니다. 전문 등산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때, 그들을 곁에서 돕는 짐꾼들을 세르파라고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등산 전무가라도 세르파의 도움이 없이는 에베레스트 정복이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세르파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쉼을 얻고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인생의 짐을 주님에게 맡기는 사람입니다. 주님에게 마음의 짐을 맡기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7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맡겨야 평안을 누립니다.
제가 살면서 두 사람을 운전연수 시켜주려다가 포기했습니다. 한 명은 조카 중에 한 명입니다. 조카가 출근길에 직장까지 이틀 운전했는데, 제가 ‘이러다가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돈을 주고 전문가에게 받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판단을 하고 포기했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제 아내입니다. 20년 전에 제 아내가 면허증을 받고 바로 제가 운전 연습을 시켜주는데, 그때 저는 자동차가 말처럼 뛸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동차가 마치 성질이 난 말 같았습니다. 자동차가 로데오 게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아내지만 요즘, 제 아내는 아주 안전하게 자동차를 타고 다닙니다. 그 이유는 제가 운전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평생 기사 노릇해줄테니 운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고나서 홀아비 되는 것보다 그게 나을 것 같아서입니다.
운전대는 누가 잡느냐가 중요합니다. 인생의 운전대는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아주 위험합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으면 평안한 인생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자손이 잘 되는 복입니다(1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자손이 땅을 상속받습니다. 이 말은 이 땅에서 자손이 잘 된다는 말씀입니다. 조건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창세기 49:25을 보겠습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내용이며 동시에 요셉을 향한 예언입니다. 요셉은 이 축복대로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축복의 내용은 요셉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것이고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십니다. 조상의 신앙이 후손에게 복으로 상속된다는 말입니다.
십계명 중에 제2계명을 보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녀들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5-6입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사람의 죄를 갚는데,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면 결국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청교도로서, 미국 프린스톤 대학교의 총장이며, 유명한 문필가였던 조나단 에드워드와, 그 당시에 살았던 유명한 술주정뱅이의 후손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200년 동안 경건한 조나단 에드워드 가계에서는 부통령 2명, 선교사와 목사 70명, 상. 하 의원이 30명, 그 외에도 저명한 학자, 의사, 교수 등 뛰어난 인물들을 무수히 배출해서, 국가와 사회에 크게 기여를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술주정뱅이의 후손 가운데는 깡패, 매춘부, 마약 중독자, 살인, 강도, 절도 등의 범죄자가 90% 이상이나 나타나,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쳤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조상의 삶과 신앙이 자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조사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십시다. 그것이 자녀들에게 축복의 유산을 물려주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복주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막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은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북은 이스라엘이었고 남은 유다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였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했습니다. 남유다의 멸망이 북이스라엘이 멸망보다 136년 늦었습니다. 그 이유가 열왕기하 8:19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을 생각하셔서 유다의 멸망을 지연시켜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이라는 조상 한 사람 때문에 남유다의 멸망은 북이스라엘보다 136년 지연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때문에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후손들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생각하셔서 후손들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손이 잘 됩니다.
4. 하나님과 친밀한 복입니다(14절).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십니다. 여기서 친밀함은 히브리어로 d/s(소드)입니다. 의미는 “의논, 협의, 조언, 집회”라는 뜻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 주석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털어놓으신다.’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적인 신앙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삶의 율법을 주시고 그대로 살게 하시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면 하나님은 엄하게 벌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Sound of Music]이라는 영화 보셨나요? 그 영화는 마리아라는 견습 수녀가 수녀원의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자녀가 일곱 명인 폰트랩대령의 집에 가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음악으로 가정을 변화시킨 이야기입니다. 폰트랩대령은 자녀들을 군대식으로 교육합니다. 호각을 부니 아이들이 방에서 뛰어나와서 방 앞에 정렬합니다. 그리고 다시 호각을 부니 아이들이 발을 맞춰서 계단을 내려옵니다. 마치 군대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루시는 무서운 아버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친구처럼 친밀하게 대해주십니다.
출애굽기 33:11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하나님과 모세는 아주 친밀했습니다. 하나님은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세와 대화를 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15을 봅시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깊은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구인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말씀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종에게는 그렇게 안합니다. 친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1:8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비밀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롯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소돔성이 멸망할 때에 롯과 롯의 가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성의 멸망 때문에 기도한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친구로 여기시고 그의 기도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롯을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의 멸망을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성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그 성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서 의인 50명을 찾으면 그 지역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의인 50명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인 45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실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의인 40명, 의인 30명, 의인 20명, 의인 10명까지 내려가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성에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돔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유황불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의 구출을 위하여 기도했지만 그 기도에서 롯을 언급도 하지 않았고 의인 10명까지 기도했지만 소돔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주 친밀한 친구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마음에 있었던 롯을 구원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니 하나님과 친밀했고, 하나님과 친밀하니 기도의 내용이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아브라함이 원하는 부분에 응답해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과 친밀함의 복을 누린 것입니다.
5. 언약을 깨닫는 복입니다(14절).
언약(Covenant)이란 두 당사자가 서로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하기로 합의하여 이루어진 협약입니다. 성경에 많은 언약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언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입니다. 우리가 옛 언약이라고 할 때는 시내산 언약으로 모세가 백성들에게 양의 피를 뿌리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말합니다.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면 그들은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언약입니다. 누가복음 22:20에 나옵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우리가 새 언약에 믿음으로 반응하면 우리는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성전 삼으시고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는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으려면 언약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언약을 알게 됩니다. 그게 14절에서 그의 언약을 보이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 ,그 언약 때문에 괴롭고 외롭고 근심이 많은 상황을 만나도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1661년에 스코틀랜드의 개혁자 Hugh Mackail이 순교했습니다. 멕케일이 ‘나흘 뒤에 교수형에 처한다.’는 판결을 받고 죄수를 수송하는 달구지에 실려 갈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았습니다. 그 군중들 속에서 친구 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한 멕케일은 기쁜 낯으로 크게 외쳤다고 합니다. “여보게, 기쁜 소식이네, 참으로 기쁜 소식이네. 내게 나흘만 있으면 예수님 곁으로 갈 수 있는 판결이 떨어졌네.” 휴 멕케일은 자신의 죽음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새 언약을 확실하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외롭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니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 때문에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해주십니다. 저는 계시의 점진성 차원에서 볼 때, 그 언약은 다윗이 젊은 시절부터 다윗 안에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어주시다가 사무엘하 7장에서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맺으신 언약은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➀다윗 자신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집과 다윗의 나라가 영원히 보전되고, 다윗의 위가 영원히 견고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다윗은 수한이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자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➁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이스라엘 나라가 옮김을 당하거나 해함을 당하지 않고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➂다윗의 후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몸에서 날 자식을 세워 그 나라의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2-13을 보겠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다윗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네 씨’입니다. 여기 씨는 일차적으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가리키며, 구속사적으로 훗날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봉헌함으로써 일차적으로 성취되었고, 궁극적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은 외롭고 괴롭고 근심이 많은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윗은 그 언약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2004년 8월에 초등학교 4학년인 정희재라는 어린이가 지리산에서 사흘간 조난당했다가 살아나왔습니다. 아빠와 아빠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 때부터 사흘간 이 아이는 홀로 깊은 지리산에서 헤매며 다녔습니다. 그 때 이 아이를 인도한 것은 평소에 아빠가 늘 하던 말씀이었습니다. 밤이 되어 무서울 때 “우리나라 산에는 맹수가 살지 않는다.”는 아빠의 말씀을 기억하며 무서움을 견뎠습니다. 비가 내리자 “산에서 비를 맞고 잠들면 체온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는 아빠의 말씀이 생각나 침낭을 뒤집어 쓴 채 밤을 지새웠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어도 물소리 나는 쪽으로 가면 산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면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있다.”는 아빠의 말씀대로 물길을 따라서 산 아래로 내려가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지리산에서 길을 잃었고, 이틀 밤을 혼자 산속에서 보내야 했지만 아빠의 말씀을 생각하고 아빠의 말씀대로 실천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가 살아난 과정에서 아빠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행했던 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나오는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언약을 붙잡은 사람만 구원 받습니다.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깨닫고 언약을 붙잡고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다섯 가지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어떤 복을 받습니까? 1. 하나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주시는 복입니다. 2. 평안의 복입니다. 3. 자손이 잘 되는 복입니다. 4. 하나님과 친밀한 복입니다. 5. 언약을 깨닫는 복입니다.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으로 살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즐거워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갈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자손이 잘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친구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언약을 깨닫게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