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80/수선화水仙花]외로우니까 사람인가?
이웃동네 친구가 남원장(4, 9일)에서 사온 수선화 화분 하나를 선물했다. 네 촉이 나와 있는데, 하루 간격으로 꽃을 모두 피웠다(사진). 이만한 호사가 어디 있을까? 봄의 길목에서 기똥차게 고마운 꽃선물이다. 꽃이 이울 때쯤 마당의 꽃밭에 심으란다. 어제 처음으로 봄비가 내리니, 입춘과 우수가 지난 한참만인 이제야 봄다운 봄이 온 것같다. 최근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이 봤다면 ”봄의 원형은 바로 ‘보다’야“라고 한 말씀 하실 것같다.
수선화 꽃대가 제법 통통해지더니 수줍게, 예쁘게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리다니, 참말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엊그제는 막 캔 냉이를 깨끗이 씻어 된장국을 끓여먹으니 그 맛은 또 어떠하던고? 달달한 고로쇠 수액을 지리산을 가지 않고도 뒷산에서 받아먹을 줄을 어찌 알았을꼬? 시골생활이 나날이 재밌는 것은 순전히 자연自然 덕분인 것을. 이제 곧 쑥도 쑤우욱 쑤우욱 솟아나리라. 봄을 기다리는 여인, 대춘녀待春女이셨던 우리 어머니 생각이 더욱 간절해질 것같다.
지난해 16개 구근球根에서 고작 2개만 소담하게 꽃망울을 터뜨렸지만, 올해는 머지 않아 모두 ”살아 있다“며 자태를 뽐내겠지. 간절히 빈다. 비오는 날 산에서 옮겨 심은 키 큰 나리는 또 어떠한가? 팔랑개비같은 주홍색 나리꽃은 제법 오래 가질 않던가. 빈약한 나의 마당꽃밭에 빛나는 고매古梅와 설리화, 앵도나무도 망울이 잡혔다. 진달래가 질 무렵 진홍의 철쭉도 공작꼬리처럼 날개를 펼치리라. 꽃 중의 꽃 백합도, 해바라기도 언제 숨 죽이고 있었냐는 듯 꽃을 피우리라. 모두 모두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다.
나의 작은 방 뒷창문에 비치는 ‘손바닥 꽃밭’은 오로지 수선화 예닐곱 그루가 뒤안의 공백을 메워었는데(사진), 올해도 틀림없겠지? 지난해 사진을 감상한 후 실제 살펴보니 헛된 약속은 아닐 듯하다. 꽃들은 이렇게 때가 되면 되살아나건만, 한번 간 사람은 예수님 아니고는 왜 부활이 되지 않는 걸까? 알 수 없어라. 아지 못게라.
문득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의 정호승 시인의 시가 생각나 전문을 찾았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이 시의 첫 구절이야말로 이 시의 절대명제絶對命題일 것이다. 눈길이나 빗길을 걷든,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든, 하느님도 가끔 눈물을 흘리든말든, 산그림자가 마을에 내려오든, 이건 모두 부연설명이지 않은가.
수선화를 연상시킬만한 부분이 전혀 없는 듯한데, 제목이 왜 수선화일까? ‘나르시시즘narcissim이란 신화神話(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부당한 한 요정이 ’그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자 아프로디테가 들어주었다. 그 이후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는 벌을 받게 되었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가까이 가면 그 모습이 망가지고, 멀리 물러나면 모습은 사라진다. 그래서 자기 모습이 비친 물가를 떠나지 못하고 끝내 물에 빠져 숨을 거뒀다)와 연관이 있을까? 그래서 수선화를 영어로 narcissus라고 하는가. 언젠가 시인에게 그 까닭을 묻자 ”너무 외로워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수선화가 물가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水의 신선仙‘이라 할 수선화가 그리 외로웠을까? 문득 또다른 시인(정현종)의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던 2행시도 생각났다. 문제는 사람이나 꽃이나 모두 외롭다는 것이구나. 외로움? 고독? 그것이 문제로다! 요절한 범능스님이 무심하게 노래를 부른다. <바람이 오면/오는 대로 두었다가/가게 하세요/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두었다가 가게 하세요/아픔도 오겠지요/머물러 살겠지요/살다간 가겠지요/세월도 그렇게/왔다간 갈 거예요/가도록 그냥 두세요>. 외로움은 삼키고 고독은 씹으며 오는 봄, 가는 봄을 맞이하고 또 보낼 일이다.
첫댓글 벌써, 수선화 꽃이 피웠네.
나르시스라는 단어 모처럼 접하는구만.
냉천부락의 자연인, 우천님 덕분에 초봄 분위기 만끽하는구료.
매일매일 감성 충만한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