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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가 돌아왔다
우 승 순
“동해안에 명태가 나타났다!” 이솝우화 양치기소년에 나오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 명태가 나타났다는 지방뉴스를 접하면서 내 귀를 의심했다. 한때는 가장 흔했던 명태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 개체수가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2014년 이후엔 동해안 명태가 거의 씨가 말랐었는데 4년이 지난 2018년 12월 중순부터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하루에 적게는 2~300마리부터 많게는 7~8000마리까지 명태가 잡힌다는 뜻밖의 소식이었다. 국민생선하면 대개 고등어를 꼽지만 사실은 명태 소비량이 부동의 1위라고 한다. 게다가 명태는 다른 생선과 달리 비린내가 안 나고 버리는 부위가 없을 만큼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면서 진작부터 국민생선의 반열에 올랐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철 명태어획량이 늘어나면서 얼리고 말리는 등 저장방법을 달리하여 연중 명태를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명태를 연중 가깝게 접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 원양명태거나 수입명태다. 안타깝게도 갓 잡은 싱싱한 동해안 생태는 추억의 생선이 되었다. 명태는 분류상 입이 큰 대구(大口)과에 속한다. 모양새나 맛도 대구라는 생선과 닮았지만 크기나 값은 대구보다 저렴한 서민생선이다. 그래서인지 명태라는 이름에선 샐러리맨의 명예퇴직 준말인 ‘명퇴(名退)’가 자꾸 떠올라 더욱 친근감이 들기도 한다.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저장 상태나 잡는 방법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천태만상이다. 갓 잡혔을 때는 생태, 생태를 얼리면 동태, 바닷바람에 건조시키면 북어, 겨울덕장에서 눈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 건조되면 황태, 반쯤 건조시키면 코다리, 명태의 새끼를 노가리라 부른다. 여기까진 나도 알고 있지만 이밖에도 망태, 조태, 춘태, 추태, 찐태, 백태, 먹태 등 그 별칭이 2~30가지나 된다고 하니 가히 국민생선이라 할만하다. 명태가 더 특별한 것은 버리는 부위 없이 골고루 요리해 먹는 알뜰한 생선이라는 것이다. 몸통은 탕, 국, 찜, 구이, 조림 등 어떤 요리를 해도 일미고, 북어대가리로는 국물을 우려내고, 알은 명란이나 식혜로, 간, 곤이 같은 내장은 탕으로, 창자는 창란으로, 심지어 아가미까지 ‘서거리’라는 젓갈로 담가 먹는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 땅속의 김치 독에 박아 둔 북어대가리나 깍두기에서 곰삭아 살짝 얼은 서거리는 맛본 사람만 아는 겨울철 별미다. 명태는 문화적으로도 다양하게 이용된다. 알을 많이 배는 명태는 혼례상에서는 다산의 의미로, 제사상에서는 주과포(酒果脯)의 ‘포’로 재운을 나타낸다. 명태의 부릅뜬 핏기어린 눈알은 밤에도 악귀를 막아준다 하여 개업을 하거나 새로 이사를 가면 명주실에 감아서 문 위에 걸어 놓는 풍습도 있다. 명태하면 떠오르는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로 시작되는 시와 노래도 있잖은가. 이렇듯 백성과 함께해온 명태는 민족의 생선이다. 명태를 우리국민만큼 좋아하는 나라도 없으니 명태의 고향을 강원도 고성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명태가 고향인 동해안을 떠났다. 어찌된 사연일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명태 새끼인 노가리의 무분별한 남획이 주요 원인이라 한다. 결국 2015년 해양수산부, 강원도, 동해수산연구소가 애타는 마음으로 “집나간 명태를 찾습니다”라는 광고 문구까지 내걸고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공수정과 부화를 목적으로 살아있는 알밴 암컷 명태 한 마리에 최고 50만원의 보상금을 걸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 2016년 동해수산연구소에서 명태의 완전양식에 성공했고 치어를 방류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는 식탁에서 다시 동해안 생태를 맛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의 야심찬 목표다. 성공을 기원한다. 넓은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지만 조류에 따라 이동경로가 따로 있고 어느 곳을 찾을 땐 생태학적인 이유가 있다. 이번에 동해안을 찾은 명태가 자연산 명태든 복원사업으로 방류했던 명태든 돌아왔다는 사실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류한 명태가 돌아왔다면 복원사업이 성공한 것이고 자연산 명태가 찾아왔다면 고성부근의 동해바다가 명태서식지로 적합한 생태조건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다만 또 다시 무분별한 남획으로 명태의 씨를 말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다행히 오늘 뉴스에 해양수산부에서 어족자원보호를 위해 2019년 1년간은 모든 명태의 포획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황금돼지해 벽두부터 바람직한 소식이다. 더하여 앞으로는 명태의 귀한 자손인 노가리는 잡지도 먹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명태가 돌아왔다!” 동해안 주민들은 현수막이라도 내걸고 전국적으로 홍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잊었던 명태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겨울철이 제 맛이다. 명태귀환을 자축하며 얼큰한 동태탕과 코다리찜으로 막걸리 한 잔 해야겠다. 아직은 수입산 명태를 먹지만 두 눈 부릅뜬 희망이 보인다. |
첫댓글 말린명태 북어 그리고 쇠주!
시인의 싼 안주 였다지요.
그러나 지금은..ㅆ
명태의 다른 명칭이 서른 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가히 국민 생선 입니다. 칼칼한 찌게에 밥 한릇!
명태 별명 ㆍ얼었다고 동태 ㆍ코꿰어코다리ㆍ
엄동고초겪었다고 황태 ㆍ 잘읽었습니다 ㆍ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