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선인의 시비가 화장실 옆?
해운대에 올라
- 이안눌
구름 속에 치솟는 듯
아스라이 대는 높고
굽어보는 동녘 바다
티 없이 맑고 맑다
바다와 하늘빛은
가없이 푸르른데
훨훨 나는 갈매기
등 너머 타는 노을
이안눌(1571~1637)은 조선 후기에 충청도 순찰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08년(선조 41년)에 동래부사로 부임하여 2년간 근무하는 동안 ‘해운대에 올라’, ‘해운대’ 등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지난 1998년, 이안눌의 아름다운 시를 기억하기 위해 ‘해운대에 올라’ 시비가 해운대 바닷가 송림공원 주변에 설치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최근 이 시비가 해운대해수욕장 화장실 바로 옆으로 옮겨지면서 해운대의 문화유산이 홀대받고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해운대는 뛰어난 경관으로 무수한 시인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킨 역사적인 관광지이면서, 한편으로는 바다 일을 생업으로 살아온 민초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운대의 이러한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는 일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해운대를 찾는 이들에게 해운대를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가 될 것이다. ‘해운대에 올라’ 시비가 제자리를 찾기를 기대해 본다.
/ 신병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