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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49025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바닥이었다.
평범한 회색 타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노란 선.
지하철의 플랫폼이었다.
좌우로 길게 뻗은 넓은 승강장에,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그때, 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
내가 쓰던 핸드폰이었다.
화면을 켰다. 배터리는 충분했지만, 인터넷 신호는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에는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Web 발신]
[재난 안전 관리 센터]
당황하지 마십시오.
귀하의 현 위치는 '임시 폐쇄 구역'인 3구역 승강장입니다.
본 기관은 실시간 위치 추적을 통해 귀하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저희 측에서 귀하의 안전한 귀환을 도울 인원을 파견했습니다.
해당 위치에서 이동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기하십시오.
현재 귀하가 보고 있는 전광판의 '열차 진입' 메시지는 무시하십시오.
해당 선로로 정상적인 열차가 들어오는 일은 없습니다.
승강장 의자 위에 놓인 '검은 봉투'를 절대 열지 마십시오.
본 센터 외의 모든 연락은 귀하를 유인하기 위한 허위 정보입니다.
귀하가 저희 측의 지시사항을 준수한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안전히 귀환할 수 있습니다.
저희 측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귀하의 생환 가능성은 96.48% 입니다.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그 때, 곧바로 또 다른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번호표시제한]
야, 정신이 들어? 제발 정신 차려. 내 말 잘 들어.
지금 네 핸드폰에 뜨는 무슨 센터니 하는 거 있지? 그거 다 가짜야.
그거 사람이 보내는 거 아니라고. 나도 예전에 너처럼 그 이상한 승강장에 끌려간 적 있어.
걔네가 너 위치 추적한다고 겁주지? 신경쓰지 마. 어차피 걔네들이 시키는 대로만 안 하면 걔가 너한테 할 수 있는 건 없어.
걔네가 열차 진입 무시하라고 하지? 일단은 맞는 말이긴 해.
첫 번째 열차가 곧 들어올 거야. 근데 그건 네가 타야 할 차가 아니야.
전광판이 깜빡이는 건 '그것'들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야.
뒤지기 싫으면 일단 지금 당장 승강장 의자로 가.
거기 검은 봉투 있지? 그거 뒤집어쓰고 승강장 끝에 있는 직원실로 뛰어.
걔네가 열지 말라고 한 건, 그게 유일하게 '그것'들 눈을 피할 수 있는 물건이라서 그래.
조만간 다음 열차가 들어온다고 전광판이 깜빡일건데, 살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라.
못 믿겠으면 들어오는 열차 한번 타 보던가.
아, 그리고 혹시라도 저 새끼들이나 나한테 전화를 걸거나 문자로 뭐 물어볼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거야. 어차피 연결 안 될 거거든.
빨리 움직여.
심장이 요동쳤고,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핸드폰이 미끄러질 뻔 했다.
그냥 이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검은 봉투를 뒤집어쓰고 뛰라고?
어느 쪽도 믿기 힘들었다.
내 뒤에는 어느 승강장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벤치가 있었고, 그 위에는 정말로 검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봤다. 전광판에는 '전 역 출발, 3분 뒤 도착'이라는 멘트가 써 있었다.
재난 안전 관리 센터는 이를 무시하라고 했다. 그쪽은 확신에 찬 말투였다.
말만 보면, 공신력 있는 기관인 저쪽이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다시 쳐다봤다.
“그거 사람이 보내는 거 아니라고.”
이 짧은 문장이 내 판단을 흐리게 했다.
애초에 재난 안전 관리 센터라는 기관이 있었던가? 여긴 도대체 어디지? '그것'은 도대체 뭐지?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정말 많았다.
위치를 추적한다면서, 왜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지.
정말로 보호하려는 거라면, 왜 직접 사람을 보내지 않는지.
아, 이미 보냈다고 했지.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온다는거지?
나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 넓은 승강장에는 나를 제외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반면 다른 쪽 말은?
이건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려면 오히려 저렇게 쓰진 않을 것 같았다.
손이 벌벌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전광판이 한 번 더 깜빡였다.
'열차 진입. 2분 뒤 도착'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건 네가 타야 할 차가 아니야.”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내 본능을 조금 더 자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기관은 “열차는 오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쪽은 “오긴 오는데 타지 마라”고 했다.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혹은, 둘 다 틀렸을 수도 있다.
검은 봉투를 다시 쳐다봤다.
기관은 “절대 열지 말라”고 했고, 다른 쪽은 “그걸 써야 산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동시에 맞을 수가 없다.
나는 천천히 봉투에 손을 뻗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서 있는 게 제일 위험할 수도 있다.
적어도, 저쪽은 “이걸 하면 산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관은 계속 “가만히 있어라”만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가볍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대로 봉투를 펼쳤다. 검은 비닐이 바스락거리며 펼쳐졌다.
봉투를 고개 위로 가져갔다.
그 순간, 핸드폰이 다시 한번 진동했다.
[Web 발신]
[재난 안전 관리 센터]
귀하의 현재 행동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귀하는 본 센터가 사전에 지정한 안전 절차를 명백히 위반하고 있습니다.
해당 물품은 구조 과정과 무관하며, 귀하를 특정 위험 요소에 노출시키는 장치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시 사용을 중단하고 물품을 바닥에 내려놓으십시오.
귀하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추적되고 있으며, 현재 접근 중인 구조 인원과의 안전한 합류를 위해서는 지침 준수가 필수적입니다.
저희 측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귀하의 생환 가능성은 66.22% 입니다.
나는 봉투를 든 채 굳어버렸다.
'즉시 중단하고 내려놓으십시오.' 기관의 지시는 단호했다.
마치 내가 금기라도 건드린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만약 저들이 진짜라면, 나는 지금 나를 구해줄 유일한 동아줄을 내 손으로 끊어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다시 진동이 울렸다.
[발신번호표시제한]
야, 걔네한테 문자 왔지? 봉투 만지면 문자 보내더라고.
속지 마.
지금 전광판 봐. '1분 뒤 도착'으로 바뀌었지?
기관 놈들이 열차 안 온다고 했지? 그럼 지금 저기서 들리는 소리는 뭔데?
들려? 열차 들어오는 소리 들리냐고?
직원실은 계단 올라가서 게이트 지나가면 바로 나와.
빨리 써 멍청아. 쓰고 뛰라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그대로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
비닐이 얼굴에 닿았지만, 딱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숨이 막히는 느낌도, 시야가 완전히 가려지는 것도 아니었다.
얇은 검은색 막이 시야 위에 덮인 것 뿐이었다. 바깥은 여전히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내 발소리가 텅 빈 승강장에 크게 울렸다.
봉투가 머리 위에서 바스락거리며 흔들렸고,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핸드폰이 손 안에서 미친 듯이 진동했다.
나는 핸드폰을 보지 않고 계속 뛰었다.
끊임없이 진동이 울렸기에, 이번에는 거의 반사적으로 화면을 힐끔 쳐다봤다.
[Web 발신]
[재난 안전 관리 센터]
멈추십...
딱 그 한 줄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 멈추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잠시 뒤 계단이 보였고, 나는 그대로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발을 헛디뎌 거의 넘어질 뻔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고 거의 기어가듯 계단을 올랐다.
게이트는 전원이 꺼진 것처럼 불이 들어와 있지는 않았지만, 밀자마자 아무 저항 없이 열렸다.
나는 그대로 몸을 부딪치듯 통과했고, 시야 끝에 보이던 직원실 문을 향해 거의 굴러가듯 뛰었다.
직원실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뒤돌아서서 문을 닫았다.
문이 닫히며 나는 그대로 등에 힘이 풀린 채 기대어 섰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쿵쿵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직원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직원실 안을 둘러봤다.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고, 작은 공간 안에는 낡은 책상 하나와 의자, 벽에 붙은 CCTV 모니터 몇 대가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반쯤 마신 종이컵과 펜, 서류더미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는데, 먼지가 거의 쌓여 있지 않았다.
마치 조금 전까지 누군가 여기 있었던 것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몇 걸음 안으로 들어가, 책상 뒤쪽과 문 옆 구석까지 확인했다.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지만,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결국 이 공간 안에는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나는 천천히 봉투를 머리에서 벗을까 하다가, 그대로 멈췄다.
'벗어도 되는 건가?'
이게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은 그냥 우스꽝스러운 짓일 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저 말이 사실이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결국 봉투를 쓴 채로, 책상 밑의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숨소리를 죽였다. 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혹시라도 바깥에서 뭔가 들어올까 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때였다.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발신번호표시제한]
야, 직원실 들어갔지? 일단 잘 했어.
문 닫았지? 소리 크게 냈으면 좀 위험했을 수도 있는데, 들어가기만 했으면 아직 괜찮아.
지금 당장은 아무 소리 안 들릴 거야. 걔네가 바로 안 따라들어오는 이유가 있어.
절대 문 다시 열지 말고, 거기서 조용히 있어.
그리고 봉투, 절대 벗지 마.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해.
아마 조금 있으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릴 거야. 그때 무조건 닥치고 가만히 있어.
궁금하다고 쳐다보거나 문 쪽으로 다가가지 마.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거의 동시에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Web 발신]
[재난 안전 관리 센터]
귀하의 현재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귀하는 현재 비인가 구역 내부에 진입한 상태이며, 해당 구역은 본 센터의 안전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구조 인원의 직접적인 접근이 제한되고 있으며, 귀하의 안전을 즉시 보장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귀하의 위치 추적은 여전히 유효하며, 상황에 따른 원격 안내는 지속됩니다.
현재 귀하가 착용 중인 물품은 보호 장비가 아니며,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밀폐된 공간 내에서는 해당 물품이 시야를 제한하여, 귀하의 생존 가능성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점에 해당 물품을 제거하고, 문을 개방한 상태에서 외부 시야를 확보하십시오.
구조 인원은 귀하의 위치로 접근 가능한 경로를 재탐색 중입니다.
문을 폐쇄한 상태로 장시간 대기할 경우, 구조 신호의 식별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즉시 문을 개방하고, 외부와의 시각적 접촉을 유지하십시오.
저희 측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귀하의 생환 가능성은 46.96% 입니다.
나는 화면을 내려다본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문을 닫고 숨어 있으라는 쪽과, 문을 열고 시야를 확보하라는 쪽. 도대체 누굴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 문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문을 아주 가볍게 긁는 느낌이었다.
긁는 소리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천천히, 아래에서 위로 긁어올리는 소리.
나는 시선을 문 쪽에서 떼지 못했다. 혹시라도 손잡이가 돌아가거나, 문이 덜컹거릴까 봐.
그때,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발신번호표시제한]
들리지? 내가 말한 그게 시작된 거야.
지금은 아직 확인하는 단계라서 저 정도로 끝나는데, 조금 있으면 소리 커진다.
문 절대 열지 마. 문 열면 바로 들어온다.
잘 들어. 직원실 안에 뒷문 하나 있을 거야. 책상 뒤쪽이나 벽 쪽 잘 찾아봐.
거기서 다시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좁은 통로가 있어.
원래 직원들 비상 이동용 통로인데, 지금 당장은 거기까지 갈 필요 없고, 일단 계속 숨어 있어.
근데 조금 있으면 밖에서 쿵쿵거리기 시작할 거다.
문이 더이상 못 버틸 정도로 소리가 커지면 그때 바로 움직여.
뒷문으로 나가서 아래로 내려가. 그리고 그때 들어오는 열차, 그거 타야 한다.
아까 말했지, 처음 오는 건 타지 말라고.
그 다음 게 이거다. 타이밍 놓치면 진짜 끝이다.
그때, 또 한 번 진동이 울렸다.
[Web 발신]
[재난 안전 관리 센터]
귀하의 현재 상태가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귀하가 위치한 공간 외부에서 물리적 접촉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해당 현상은 구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비 작동에 따른 부수적 영향일 가능성이 있으며, 귀하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습니다.
구조 인원이 귀하의 위치로 거의 도달했으며, 최종 접근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안전한 구조를 위해 다음 지침을 즉시 수행하십시오.
현재 착용 중인 물품을 제거하고, 시야를 완전히 확보하십시오.
이후, 직원실 출입문을 개방하고 외부로 이동하십시오.
구조 인원은 귀하의 시야 내에서 식별 가능한 형태로 접근할 예정입니다.
문을 폐쇄한 상태에서는 구조 인원이 귀하를 인식할 수 없으며, 구조가 지연되거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반복 안내드립니다.
즉시 봉투를 제거하고, 문을 개방한 뒤 외부로 나오십시오.
저희 측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귀하의 생환 가능성은 32.13% 입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다본 채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커졌고, 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뒷문 쪽을 쳐다봤다. 확실히, 사람 한 명정도가 간신히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은 통로가 보였다.
이전과는 다른 엄청나게 큰 소리가 울렸다.
쾅ㅡ
센터는 요원이 거의 도착했다고 했다. 하지만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저 힘은 절대로 누군가를 구조하려는 사람의 손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충격은 더 거세졌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나는 바닥을 기어 책상 뒤쪽으로 향했다. 먼지 쌓인 작은 철문이 보였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렸다.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몸을 비틀어 그 좁은 통로 안으로 뛰어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가파르고 어두운 계단이 아래로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봉투를 쓴 채로 미친 듯이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에서 내가 방금 빠져나온 직원실 문이 완전히 박살나며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무언가가 황급히 위쪽에서부터 나를 따라 내려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다시 승강장이 나타났다.
아까 내가 도망쳐 온 곳과는 반대편 끝자락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낡은 열차 한 대가 출입문을 개방한 채 멈춰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계단 위쪽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선로 너머로 몸을 날리듯 열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내가 열차의 바닥에 처박히는 것과 동시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출입문이 닫혔다.
쾅! 쾅! 쾅!
닫힌 문 너머로 나를 쫓아오던 무언가가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려대며 기괴한 소리를 질러댔다.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열차 안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했고, 비상등만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열차가 덜컹거리며 속도를 높이자 문 밖의 소음도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그제야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쥐었다.
[Web 발신]
[재난 안전 관리 센터]
귀하는 현재 본 센터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열차에 탑승 중입니다.
귀하는 지침을 반복적으로 위반하여 생존 확률이 극도로 낮아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본 센터는 마지막 인도적 차원에서 다음 역(4구역)에 임시 구조대를 급파했습니다.
해당 역에서 하차한 인원 중 일부가 안전하게 귀환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것이 귀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다음 역에서 반드시 하차하여 저희 쪽 인원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십시오.
이 기회를 놓칠 경우, 본 센터는 귀하에 대한 구조 포기 절차를 밟게 됩니다.
저희 측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귀하의 생환 가능성은 6.08% 입니다.
나는 화면을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다음 역, 마지막 기회.
그때, 거의 기다렸다는 듯 진동이 울렸다.
[발신번호표시제한]
지금 그거 봤지.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했을 거다. 절대 내리지 마라.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구간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
다음 역에 도착하면 문 열리고, 사람들 보일 거다.
구조대처럼 보이는 놈들도 있을 거고, 너 부르는 소리도 들릴 거다.
근데 그거 다 가짜다. 전부 다 흉내 내는 거다.
지금까지 봐왔던 거 생각해봐라. 여기서 정상적인 게 있었냐? 갑자기 구조대가 딱 맞춰서 나타난다? 그게 더 이상하지 않냐?
내리면 끝이다. 진짜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시간 좀 지나면 열차 안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모든 출입문이 한꺼번에 열릴거다.
그때가 진짜다. 그때 내리면 된다.
그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리지 마라. 제발.
어차피 네가 직접 내리지만 않으면, 걔들이 널 끄집어내지는 못한다.
그 순간, 열차가 천천히 감속하기 시작했다.
몸이 앞으로 쏠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옆 기둥을 붙잡았다.
그리고 곧이어, 또렷한 안내 방송이 울렸다.
“다음 역은 ■■■,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점점 플랫폼의 불빛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희미한 빛이 점점 선명해지면서, 무언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열차가 완전히 멈췄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슬쩍 고개를 들어 열린 문 너머를 바라봤다.
플랫폼 위에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괜찮으십니까? 지금 나오시면 됩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사람을 바라봤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빨리 나오세요! 더 늦으면 위험합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때였다. 아주 사소한 위화감이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 뒤쪽에서 빛이 비추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그림자가 이상했다.
그림자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몇 초가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밖에서 들리던 소리들이 점점 어긋나기 시작했다.
“지금— 내리—”
“빨리—”
그리고 어느 순간, 소리가 완전히 끊겼다.
문이 다시 닫혔다.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직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때,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발신번호표시제한]
잘했어. 여기까지 왔으면 거의 다 온 거야.
조금 있으면 열차 안이 밝아지기 시작할 거야. 빛이 점점 밝아지다가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해질거다.
그때 열차 멈추고, 문이 전부 열릴거야.
그때 내리면 된다. 그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란 피우지 마라.
소리 들려도 무시하고, 뭐 보여도 무시하고, 그냥 가만히 있어.
잘 가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열차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석에 쪼그려 앉아 조용히 기도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열차 안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천장 쪽에서, 희미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꺼져 있던 형광등이 하나둘씩 깜빡이며 켜졌다.
빛이 점점 강해지며 눈이 따가워질 정도로 밝아졌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주변을 둘러봤다. 열차 안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때,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드립니다. 곧 종착역에 도착합니다.”
열차가 천천히 감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런 경고도 없이 모든 문이 동시에 열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Web 발신]
내려
첫댓글 내가 첫 댓글이라니..내려서...산거 맞지..?무서워요 무서워요 ㅠ
샤갈 내려서 살았다고 해죠요
걍 나 갖고논거임..? 시발.. ㅜㅜ
내려도되나?ㅜ
재난 센터에서는 웹발신으로오고 발표제한은 암것도 없엇는데 왜갑자기 웹발신으로 내리래
나를 가지고 노네ㅠ 살려조요
마지막에 웹발신으로 온 거 보면 사실은 둘 다 괴이인 거고 주인공 걍 갖고 논 것 같은데...
시핥 ㅠㅠㅠㅠ
헉 ㅜㅜㅜㅜ 그렇네..
뭐냐고
둘다 나쁜놈이면 첫기차를 탔어야했네...
못믿겠으면 첫열차 타보라하는거 나엿음 타봣을거같은데
탓으면 뭐가 보였을지 궁금하네
산거야? ㅜㅜ
나같으면 센터 믿을거같애 ㅠ 누군지도 모르는 애가 내 번호 어케 알고 문자하는거임..ㅠㅠㅠㅠ
샤갈 살았다고해줘요ㅜ
발신번호웅앵이가 갑자기 웹발신으로.. 진짜 이미 끝났나봄...
싯,,팔ㅠ 봉다리 뒤집어쓴거보고 재밋엇냐ㅠ
둘다 괴이같어 샹
만약에 둘 다 괴이가 맞으면 나는 첫번째 열차만이 살길이었던 걸까? ㅠㅠ 왜 저를 갖고 노시나요
와 오랜만에 몰입해서 읽엇내
시할 나같아도 봉다리썼다........어케된건데ㅠㅠㅠㅠ
개소름...나도 갔다....
발신제한이 어디서 보고 있는 것처럼 타이밍 딱딱 맞게 오는 게 수상해서 나는 못 믿었을 듯... 내가 이 행동하고 웹발신에서 문자 오자마자 발신제한이 메시지를 보내..? 존나 이상해.. 근데 마지막에서 어..? 함
뭐야 어캐된겨ㅠ
ㄷㄷㄷ 개무섭다 난 첨에 걍 이런 기관도있구나하고 가만히 서서기다렸을듯 샤갈
뭐야 난 당연히 반말인 애가 구해준거라고 생각했응데 댓글 보니 혼란스럽군 재밌다
아 헐 웹발신...
재밌고 어렵다
꺄아아악 무서워
웹발신 뭐냐고요 뭐야우머야뭐ㅑㅇ
뭘믿어야하냐고요ㅠㅠㅠ
반말하는 애는 나를 어디서 지켜보고 있길래~ 내 행동, 위치를 족족 알고있는거야..
나는 센터 믿었을듯.
마지막에 내려 보고 뭐야 시시하네 하고 댓글 내려왔다가 웹발신이라는거 보고 놀라서 다시 올라가서 봄 소름이다
말을 안들어서 내리라고하면 안내릴거라는 기대로 보낸 문자인걸까.....?
웹발신 뭐야 니들 봉다리 쓴 나보고 비웃고잇지ㅠ
웹발신 첨에 봉다리 가만 두라했던 괴이가 발신제한 쟤인척 보낸거 아냐?
난 그냥 web발신도 주인공 죽이려고 하다가 끝까지 살아남으니까 마지막에 단념하고 내리라고 한 걸로 생각했어
미친...과연 누가 맞았던 걸까 몰입해서 봤는데 이 새기들이ㅠ
둘이 한통속이고 공통되게 첫열차 타지 마라고 한거보니가 첫번째 열차만이 답이었네ㅠ;;
쌰갈 이미 죽었어요
근데 문 다 열리면 내리라매?
십알 내 눈물의 검은 봉다리 쑈가 재밌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