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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라틴어는 이탈리아어파의 언어 중 하나이다. 라티움 지역(현재의 라치오)에서 쓰이던 언어로, 로마 공화국이 팽창함에 따라 이탈리아 반도의 주류 언어가 되었으며 나아가 로마 제국 전역, 특히 서로마 지역에 널리 퍼져 사용되었다.
고대 로마의 문화적인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고전 라틴어의 구어인 민중 라틴어로부터 분화된 로망스어군 또한 상당한 영역과 수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수를 자랑하며, 로망스어가 아닌 언어권에서도 라틴어에서 기원한 차용어를 다수 사용하는 등, 지금도 영향력이 막강한 고전 언어이다. 덕분에 오늘날 서·남유럽의 언어들은 직·간접적으로 라틴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이들 언어의 화자들은 서로의 언어를 상당히 쉽게 배우는 편이다.
라틴어에서 라틴어 스스로를 가리키는 명칭은 '링구아 라티나(lingua Latīna)'이다. 이름 그대로 라틴 민족의 언어라 하여 '라틴어'라고 불린다. '라틴어(Latin)'라는 명칭 자체는 '라틴의', '라틴어의'라는 형용사 'Latina'에서 어미 '-a'를 뺀 형태로, 후대 여러 유럽 언어에서는 라틴·그리스어계 어휘를 차용할 때 명사 어미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다. 한자로는 나전어(羅甸語)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나전어 명칭을 사용한 대표적인 교재로는 허창덕 신부의 《초급 라틴어》초판이 있다.
라틴어는 본디 이탈리아 반도의 라티움 지방(오늘날의 이탈리아 라치오)의 토착어에서 유래하였다. 그리스 문자가 에트루리아를 통해 로마로 넘어가 라틴어를 표기하는 라틴 문자가 완성되었다.
현재 발굴된 가장 오래된 라틴어 기록 중 하나는 'Carmen Saliare'라는 제가(祭歌)로, 로마 공화정 말기, 제정 시기의 작가들의 저서에서 전문이 전해지고 있다. 이 노래의 추정 작성 연도는 기원전 700년경으로, 아직까지 완벽하게 해석되지 않고 학자들마다 일부 문장에 대해 다른 번역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이미 키케로 등 공화정 말기 시절 로마인들마저도 이 노래를 전부 해독해 내지 못했다고 한다. 당대 로마인들 입장에서도, 기원전 700년과 공화정 말기 사이에는 약 600~700년 정도의 시대 차이로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또 초기의 라틴어는 당대 인근의 고대 언어들과 비슷하게 좌우교대서법을 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들에게도 익숙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방식이 정착했다.
로마 제국이 규모를 확장하면서 로마 제국의 영역에는 라틴어가 널리 퍼졌으며, 이것들은 이후 다양한 다른 언어로 발달하였고, 또 이것이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지는 아니하였으나 인접한 영역의 거주민들에게도 전해져서 또 변형되었고, 또 그것이 로마와 붙어있지 않은 제3의 지역으로까지 퍼져나가고 민중 라틴어로 변형되어 가는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의 로망스어군에 속한 언어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다만 로마 제국은 다민족 국가였던 만큼 제국에서 라틴어만을 쓰던 것은 아니었다. 공화정 시기부터 그리스를 비롯한 동부 지역에서는 그리스어(코이네 그리스어)가 훨씬 더 많이 쓰여 라틴어에 버금가는 국제어(링구아 프랑카)로서 기능했다. 로마 제국 시절 쓰인 신약성경만 해도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또한 로마의 상류층 인사 대부분은 교양 언어로서 그리스어를 할 줄 알았다. 그리스의 문화적 영향력이 상당하고, 그리스계 지역에 파견되기도 하기 때문. 베르킨게토릭스와의 알레시아 전투를 벌였을 당시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휘하 장교들에게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서찰이나 명령서를 보낸 바 있다. 물론 카이사르에게 반기를 든 갈리아 부족장 대부분이 라틴어는 알아도 그리스어는 몰랐기 때문에, 전달하는 부하들이 잡힐 경우에도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이랬던 것이다.
또한 다민족 국가답게 고대 로마 제국 시절에는 라틴어, 그리스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널리 쓰였다. 예를 들면 레반트의 아람어, 이집트의 콥트어 등. 지금도 그렇지만 라틴어는 당시 로마 제국의 속주민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그리스어권 지역 중심으로 기반을 잡았지만 중세 초반까지 라틴어 사용을 이어갔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수복한 이탈리아 반도, 달마티아, 카르타고 등의 서방 영토에서는 여전히 라틴어가 쓰였다. 또한 로마법 대전이라고 불리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라틴어로 편찬되었다. 10세기 초중반의 콘스탄티노스 7세 황제가 본인의 저서에서 "유감스럽게도 조상들이 그리스어에 의지하게 된 나머지, 선대의 로마어(라틴어)를 버리게 되었다"고 기록했다고도 한다. 11세기 후반의 사가 요안니스 스킬리치스(John Skylitzes)에 따르면 10세기에도 정치의 도구로서의 라틴어의 이념적 중요도는 여전했고, 기독교 세계 전체에 대한 종주권을(ecumenic claim) 주장하기 위한 라틴어 어휘 사용이 다시 나타났는데, 그 예로서 요안니스 1세가 키예프 루스의 스뱌토슬라브에게 승리하고 나서 발행한 기념 주화의 앞면에는 예수의 성화가, 뒷면에는 '왕중왕 예수 그리스도'라는 라틴어 글자가 새겨졌고 종전에는 없었던(그리스어를 주로 사용하던 가까운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동로마 시대의 인명으로 보면, 라틴어 느낌이 확 나는 '티베리우스'('테베레 강'에 접미사 '-ius'를 붙인 이름)라는 이름을 7세기 말~8세기 초 티베리우스 3세가 썼던 것도 보인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동로마에서는 라틴어 인명들의 사용 빈도가 줄다가, 결국은 전혀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안 쓰이게 되었다. 마케도니아 왕조 이후로는 콘스탄티누스(콘스탄티누스), 이사키오스(이사키우스), 알렉시오스(알렉시우스), 세오도로스(테오도루스), 미하일(미카엘), 마누일(마누엘), 안드로니코스(안드로니쿠스), 바실리오스(바실리우스), 니키포로스(니케포루스), 요안니스(요한네스), 로마노스(로마누스) 등 10개 남짓한 이름이 황제나 주요 남자 친족, 귀족 이름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데, 콘스탄티노스와 로마노스는 고대 로마에서 유래한 것은 맞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거의 안 쓰였고, 이사키오스(이삭), 미하일(미카엘), 마누일(임마누엘), 요안니스(요한) 등은 기독교(아람어)에서 왔다. 알렉시오스, 테오도로스, 안드로니코스, 바실리오스, 니키포로스는 원래 그리스어권에 있었던 이름이다(일단 ~오스가 그리스 인명의 어미다) 반면 상술했던 티베리우스, 그나이우스, 섹스투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마르쿠스, 루키우스 등의 고대 로마식 라틴어 인명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서유럽에서는 서로마 제국의 몰락 뒤 라틴어가 각 지방어로 분화, 발달하면서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이 되었지만, 서유럽에서 학술 언어 및 교회 언어로 근세까지도 로마 제국 당시에 쓰인 형태로 보전되었고 중세 유럽의 국제어이자 필수 외국어로도 가르치기도 했다.
라틴어가 국제어(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위상을 잃은 것은 비교적 좁은 지역에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가진 중세 유럽에서 국제적 교류를 해야 하는 중세의 상인들이나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애석한 일이었다. 라틴어의 퇴조는 중세 사회의 지식을 독점하던 성직자들의 위상이 약해진 것도 있고 라틴어 교사들의 문제도 있었다. 라틴어가 국제어로서 널리 쓰이고 교회뿐 아니라 각국의 일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면 각국의 지방 언어에도 영향을 받고 또 변화하는 사회의 영향, 그리고 실용적 학문적 언어로 쓰다 보니 필요한 단어나 문법의 영향 등이 유입되어 점차 로마 세네카 시대의 고전 라틴어와 멀어졌다(언어의 사회성, 언어의 역사성).
그런데 라틴어를 가르치는 라틴어 교사들은 이런 언중들의 변화를 수용하기는커녕 세속 라틴어를 배격하고 고전 라틴어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라틴어 정화 운동"을 벌였다.그 라틴어도 로마 시대에 이미 변천을 거듭해 온 것을 그 결과 교사들이 가르치는 고전 라틴어와 실제로 쓰이는 세속 라틴어의 차이가 점차 커졌고 고전 라틴어는 점차 실용성을 상실해 단지 가르치고 배우기만 할 뿐 실용적으로 써먹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실용성을 잃은 라틴어는 점차 교회 등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죽은 말이 된 것이다. 어떤 언어도 사회와 세월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용성을 잃으면 끝이다.
3.4. 근세와 현대
근세 이후 유럽의 국가에서는 공식적인 문헌도 자국의 언어로 작성하는 경우가 늘어나 점차 라틴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러 면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언어다. 현대에도 바티칸에서는 공식 언어로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시내에는 라틴어로 된 ATM도 있다. 가톨릭 교회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사 때 라틴어만을 사용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라틴어와 자국어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나, 기준이 되는 것은 철저하게 라틴어 경문이며, 자국어 경문은 라틴어 원문을 엄격하게 번역한 것을 승인받아 사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성직자나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 성모송 등 기본적인 기도문은 라틴어로 암송할 줄 안다. 다만, 가톨릭교회에서도 2014년 이후로 종교 회의(시노드)에서의 공식 언어를 라틴어에서 이탈리아어로 변경하면서, 결국 라틴어는 종교 의례나 중요 공문서에만 쓰이게 되었다.
로망스어를 쓰지 않는 지역 출신 위인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라틴어가 얼마나 싫었는지를 참으로 열렬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이탈리아나 스페인, 프랑스 같은 곳에서의 라틴어는 자국어의 옛 형태에 해당하지만 영국, 독일 등의 게르만 같은 비로망스어 국가들에선 라틴어가 아무리 자국어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해도 그저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람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윈스턴 처칠로, 자서전에서 한 페이지 가까이를 소비하면서 라틴어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한다. 아인슈타인은 라틴어를 비롯한 어학 성적이 형편이 없어서 대학 시험에 낙방하였다. 실제로 시험에 낙방한 그를 학장이 직접 불러서 (수학 실력을 키워갈 수 있는) 스위스로 유학을 권해줬다고 한다. 처칠 같은 경우 선생에게 'o mensa(책상이여/호격)'가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다가("누가 책상한테 저렇게 부르나요") 본인도 잘 모르는 선생이 닥치고 외우면 된다고 화를 내서 더 싫어졌다고...
하지만 위인들 중에서는 라틴어에 매우 능했던 사람들도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서양 근세 철학자들(존 로크, 토머스 홉스, 장 앙리 파브르 등)은 라틴어에 능했고, 과학자 중에서도 아이작 뉴턴, 앙리 푸앵카레와 엔리코 페르미 등은 라틴어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만유인력을 최초로 설명한 뉴턴의 프린키피아도 라틴어로 쓰여졌다. 서양 중근세에 쓰인 유럽 각국의 서적을 보면, 라틴어 경구가 한국의 고사성어 쓰듯이 자주 튀어나옴을 알 수 있다. 간단하게 기타(나머지)라는 etc.도 et cetera의 줄임말이다.
2021년 7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라틴어로 진행되는 전통 미사 집전을 다시 제한하기로 했다.
지금은 사어지만 고대 그리스어와 함께 전 유럽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동아시아권의 한문 비슷한 위상을 가졌다.
서양 인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서구권, 특히 라틴어에서 분화된 로망스어 사용 국가들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라틴어를 가르친다. 프랑스를 기준으로 중등 교육 과정에서 주당 3시간의 라틴어와 라틴 문화 수업이 배정되어 있다. 주당 3시간이면 그렇게 많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스의 법정 주당 수업 시간은 26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한국의 중등 교육 과정으로 생각하면 주 5일 수업에서 하루에 1시간씩 매일 수업 듣는 것과 비슷한 비중이다. 대학에서도 라틴어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유럽의 이름 있는 대학의 인문-사회과학 학과에 입학하려면 라틴어는 필수였다. 최근 몇십 년 사이에는 영어의 국제화로 라틴어의 중요성이 떨어져서 이런 제한을 철폐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영국에서는 한때 옥스브리지급 대학을 가려면 라틴어 능력을 요구했던 적도 있다. 옥스브리지 이 두 학교의 라틴어와 그리스어 고전 통합 교육 과정은 Literae Humaniores(Lit. Hum.), 즉 인문학 과정으로 불리는데, 그냥 간편하게 The Greats, 즉 위대한 과목으로 불린다. 1~2학년 예비 과정에서는 라틴어 혹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남은 2년간은 그 언어로 된 고전 텍스트를 분석하고 연구한다. 최근에는 그에 따른 그리스-로마사와 철학, 예술, 현대적 이론과의 통섭 등까지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건 고전 텍스트다. 일반 학기 과정보다 약 1년 정도 더 소요되는데, 예로부터 옥스브리지에서 Greats 전공이면 당대 최고의 대영 제국 엘리트 중 하나로 꼽힌다. 심지어 지금조차도. 예를 들어 보리스 존슨 현 영국 총리가 옥스퍼드 고전학 전공이다.
미국에서도 AP 라틴어가 존재하며, 특히 동부에 널린 고급 사립 고등학교 등에서는 필수 과목으로 가르친다.
대한민국의 대학에서도 일부 라틴어 과목을 개설한 경우가 있다. 특히 신학교에서는 라틴어를 중시한다. 가톨릭 신부를 양성하는 신학 대학에서는 라틴어를 필수로 가르친다. 예전 가톨릭대 의대 같은 몇몇 의대에서도 라틴어 강의를 했었다.
사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학계에서 더 잘 쓰기도 한다. 가톨릭교회가 전례 언어 등 종교 언어로 라틴어를 고수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사어이기 때문이다. 사어이므로 유행어나 언어의 변화 흐름이 전혀 없이 몇백 년이 지나도 원본 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유럽에서 라틴어가 학문 용어와 교회 용어로 쓰이던 전통도 한몫한다. 사어가 아닌 언어는 살아 있기 때문에 단어의 뜻이 바뀌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새로운 단어가 대체하기도 한다.
특히 법학에서는 근대법의 기원인 로마법과 교회법이 모두 라틴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신학에서의 라틴어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반면 개신교에서는 성경 원문이 적혀 있는 히브리어(구약)와 코이네 그리스어(신약)를 중시하며, 라틴어는 아예 안 배우는 정통 네임드 신학교(특히 반가톨릭이나 반에큐메니컬 계통)도 많다
과학계에서 사용하는 전공 용어 및 학명도 거의 대부분이 라틴어로 이루어진다. 서구권 국가의 언어들의 상당수가 라틴어 기반이거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특정 서구권 국가의 언어에 어느 정도 능숙하다면 처음 보는 용어나 학명이라도 어느 정도 의미를 유추해 낼 수 있어 기록적인 측면이나 연구자 간의 의사소통에 도움을 준다. 가령 카를 폰 린네가 명명한 인간의 학명인 Homō sapiens의 Homō는 사람을 뜻하는 Homō에서, Sapiens는 이성적인(Rational) 또는 분별 있는(dqiscreet)을 의미하는 sapiens에서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과학계뿐 아니라 법학계나 인문학계를 포함한 거의 모든 서양 학문에 해당하고, 또 학문을 벗어나서도 라틴어를 알고 있다면 다른 언어권의 단어도 의미 유추가 쉽다. 예를 들어 라틴어 homō와 이의 변화를 알고 있다면 '살인'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Homicide'에서 해당 단어의 Homi-가 사람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라틴어 sapiens를 알고 있다면 현명하다는 뜻의 영단어 'sapient'의 의미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의학용어도 몽땅 라틴어다. 대흉근은 pectoralis major, 측두골은 os temporale 정도까지는 좋은데, carvenous venosum, fossa ovalis 등등이 마구 쏟아지면... 의대 본과 1학년 수업량이 사실 본과 4년 중에 가장 적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꾸는 악몽은 거의 예외 없이 본과 1학년 시험 꿈인 이유도 바로 이런 라틴어 의학 용어 때문. 물론 요즘은 의학 용어의 영어화가 진행되어 pectoralis major 대신 major pectoral muscle, os temporale 대신 temporal bone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라틴어로 된 위키백과도 있다. 현재의 위키미디어 재단의 정책대로라면 라틴어 위키백과가 개설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에는 현대에 쓰이지 않는 고어로 된 위키백과의 개설을 허가했지만 현재는 허가하지 않는 쪽으로 규정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라틴어 위키백과의 경우 이 규정이 도입되기 전에 개설됐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라틴어 백괴사전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폐쇄된 상태.
스위스에선 공용어가 4가지(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나 되어서 특정 언어를 내세우기 곤란할 때 라틴어로 적는다. 그래서 대표로 내세우는 국명도 라틴어 표기인 Cōnfoederātiō Helvētica(헬베티아 연방)이고 ISO 국가 코드(ISO 3166-1)도 여기서 따온 CH와 CHE이다. 우리가 쓰는 '스위스'는 영어의 형용사 형태 Swiss나 프랑스어로 스위스를 가리키는 Suisse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데, Swiss의 유래가 Suisse여서 궁극적으로 프랑스어 유래라 할 수 있다.
라틴어와는 전혀 무관한 역사를 쌓아온 현대 한국의 대학교들도 라틴어를 표어로 삼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론 서울대학교의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
브랜드명 같은 것을 라틴어로 지은 예는 흔히 볼 수 있다. Natus Vincere도 라틴어로 지은 게임단 명칭이고, Invictus Gaming도 라틴어가 들어간 게임단 명칭이다. 이외에도 일본 서브컬처에서도 자주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뭔가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쓰이기 때문에 문법이 맞는 경우는 별로 없다.
라틴어는 인도유럽어족 로망스어군 언어들의 할아버지격인 언어다. 서양의 여러 언어는 직간접적으로 라틴어와 연관이 있거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로망스어군은 특히 민중 라틴어에 근본을 두고 있다.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로망슈어 등등의 언어가 대표적인 로망스어. 실제로 학교에서 모국어 → 라틴어, 라틴어 → 모국어, 라틴어 → 타국 언어로 바꾸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국가도 있다. 이 탓에 배우려고 하면 그 기회를 얻기는 쉬우며 대학에 따라서 영어과나 영문과는 의무적으로 배우는 곳도 있다고 한다. 로망스어 사용자들은 라틴어 낱말이면 몰라도 문법이 완전히 다른 라틴어 문장은 전혀 모른다.
영국은 노르만 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자국어인 영어가 라틴어의 방언 중 하나인 프랑스어에 강력한 영향을 받아서 웬만한 귀족층이나 신사들은 사립학교에서부터 배우는 경우가 많다. 아니 배우는 경우가 많은 정도를 넘어 아예 국가 시험인 13+에 학과목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리고 몇 곳의 공공 기관 등지에는 라틴어 구절들을 적거나 아니면 미 해병대나 미 해안경비대처럼 구호가 라틴어인 경우가 있다고 한다. 첨언하면 영어 어휘의 고급형은 거의 고대 프랑스어가 그 어원이다. 영영사전에서 ORIGIN이라고 어원을 설명한 파트를 자세히 읽어보면 고대 프랑스어가 대부분의 어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례로 dentist라는 치과의사라는 단어도 프랑스어 dentiste에서 온 것.
상고 라틴어(latina archaica)는 키케로 이전의 라틴어를 말한다.
이 때는 ae, oe 등의 표기가 ai, oi로 적혔으며 장음 표기도 해당 모음을 2번 적어 표기했다. 또 첫 번째 음절에 악센트가 왔다. C는 /k/, /g/ 음을 모두 가졌고, s가 교회 라틴어처럼 /s/와 /z/음이 났다. 현재는 사어에 속하지만, 계속 발음에 대한 연구나 대중화가 되면서 알려진 고전라틴어나 교회라틴어와 달리, 현대에 와서는 전혀 구사되지 않는 사어에 속한다.
6.2. 고전 라틴어
오늘날 고유명사 표기 등에 사용되는 라틴어는 기본적으로 키케로 시대의 고전 라틴어(latina classica)를 전범으로 한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라틴어의 문법 체제가 정비되고 교양 있는 언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전 식자층은 라틴어보다는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라틴어'라고 하면 고전 라틴어를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고전 라틴어와 교회 라틴어, 그리고 19세기 이전 각 지역별 라틴어 발음(주로 독일식과 영어식)이 무절제하게 혼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고전 라틴어를 기준으로 라틴어의 관행적인 한글 음역법을 정했지만 몇 가지는 고전 라틴어 발음과 좀 괴리가 있다.
6.3. 교회 라틴어
라틴어는 로마 제국 말기에 지역에 따라 변형된 라틴어가 그대로 쓰였으나, 문어로서 후기 라틴어는 고전 시대 라틴어를 큰 틀에서는 유지했고, 부분적으로 민중 라틴어의 어휘 변화를 받아들였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것도 이러한 문어 후기 라틴어이다. 즉 고전 라틴어의 몸에 민중 라틴어의 옷을 결합시킨 것이 교회 라틴어다. 하지만 교회 라틴어에 사실상 표준 발음법을 정하여 읽음은 1912년 이후에 확립된 관행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유럽 각국에서는 교회의 전례용으로든 학술용으로든 간에 라틴어를 각 지역별 언어의 철자-발음 대응 규칙에 기반하여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고전 한문을 오늘날 동아시아의 각 언어나 각 방언의 독법에 따라 읽는 것처럼 제각각인 것과 같다.
중세 라틴어
중세 라틴어(Medieval Latin)는 중세 시대에 사용된 라틴어를 일컫는 말로, 교회 라틴어가 쓰이기 시작한 4세기 중반부를 그 시작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며, 후기 라틴어가 로망스어로 대체된 900년대 즈음을 시작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 시기에 대한 명확한 합의는 없다. 중세 라틴어는 교회 라틴어와 민중 라틴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고전 라틴어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는 중세 라틴어 문서 참조.
민중 라틴어
민중 라틴어(Sermo Vulgi) 혹은 속(俗)라틴어(Latina Vulgata)는 로마 제국의 팽창이 거의 끝나고 안정기에 접어든 후 다양한 민족들에게 폭넓게 사용되면서 변화된 것을 말한다. 로마 제국이 분열되며 제국 내의 문화적 통일성이 소멸된 뒤, 여기서부터 로망스어군이 분화되었고 하나의 실체로서의 "라틴어"는 죽은 언어가 되었다. 민중 라틴어 문서 참조.
현대의 라틴어
라틴어가 사어로 불리지만 완전히 사라진 언어는 아니다. 서로마 멸망 이후 라틴어를 쓰는 언중들은 옛 로마 제국의 강역 여기저기에서 여전히 살아갔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언어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로 발달하고 분화되었을 뿐 그냥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만일 라틴어가 이렇게 이탈리아반도 바깥으로 퍼져 여러 언어로 분화하지 못하고 계속 그 일대에서만 쓰였다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등의 언어는 등장하지 못하고, 라틴어도 별개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고대 이탈리아어, 중세 이탈리아어 같은 식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라틴어와 위에 언급된 언어들 간의 관계는 고대 중국어와 현대 중국어의 일부 방언과 비슷하다. 관화나 광동어, 객가어 등을 관행상 중국어의 '방언'이라고 하지만 언어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면 그냥 같은 어족에 속하는 개별 '언어'로 취급된다. 각각의 모어 화자끼리 만나서 구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대 로망스어군에 속하는 언어들을 중국어의 방언 분류 관행처럼 분류하면 현대 라틴어의 방언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이나 지중해 세계가 현대 중국처럼 통일 국가로서 정체성을 유지해 왔으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등이 개별 언어가 아닌 현대 라틴어(구어)의 여러 방언들로 취급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포르투갈인을 모아놓고 자국어로 대화해 보라고 하면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대충 상대방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
결국 라틴어가 죽은 언어라고 하는 건 여러 언어로 갈라져 독자 진화되었고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이들을 하나의 언어로 간주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라틴어의 정의(定義) 자체도 후계 언어들을 포괄하는 명칭이 아니라 더 이상 일상에서 구어로 쓰이지 않는 특정한 고대 언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똑같이 '사어'라고 부르더라도 아예 후계 언어를 남기지 못하고 소멸된 경우들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바티칸 등에서 공용어로 쓰기는 하지만, 공용어로 써도 정의에 따라 사어일 수는 있다. 현시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라틴어는 모국어 화자는 없고, 바티칸 및 가톨릭교회에서도 전례(典禮) 언어로 쓸 때 또는 교황청의 중요한 공문서를 발표할 때에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사제들이나 기타 인원들도 라틴어를 일상 언어로 쓰지 않으며, 공식 행사가 아닌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의사소통할 때 쓰지도 않는다. 바티칸에 갈 정도로 능력 있는 사제라면 영어는 기본으로 잘하므로, 영어를 쓰면 된다. 그리고 바티칸은 이탈리아 영토 내에 둘러싸여 있는 미니 국가이므로 웬만하면 그냥 이탈리아어를 쓰게 될 것이다.
구호기사단에서도 바티칸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다.
라틴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현대에도 많기에, 만일 라틴어에 매우 숙달된 남녀 둘이 만나서 라틴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자녀들이 유아기 때부터 라틴어를 노출시켜 자녀를 라틴어 원어민으로 만들 순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있더라도 워낙 극소수라 부활한 언어로까지 취급할 수 없다. 이렇게 라틴어 원어민으로 자라난 아이들도 평소에는 현지의 주요 언어를 써서 생활해야 할 것이다.
문자(로마자)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로마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서사 문자로서 그리스 계열의 알파벳을 차용하였는데, 이후 로마화된 알파벳은 로마자의 형식으로 고정되어, 로마 멸망 이후에도 유럽 여러 나라의 서사 체계로 자리잡았으며, 서구 문명의 전파에 따라 유럽 밖의 수많은 언어의 서사 체계에 사용되면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문자 중 가장 세력있는 문자다. 당시 쓰였던 라틴 문자는 현대의 라틴 문자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라틴어를 읽는 방식은 상고 시대의 발음도 있지만, 이것을 제외하고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흔히 ‘스콜라 발음’ 또는 ‘로마 발음’이라고 하여 오늘날 이탈리아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4, 5세기부터 시작하여 중세 시대를 지나 로마 가톨릭교회가 사용한 방식으로, 변화와 발전을 거쳐 현재 이탈리아의 중・고등학교에서 널리 읽히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교회 발음’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의 정식 명칭은 ‘학교 발음(pronuntiatio scholae)’ 또는 ‘스콜라 라틴어(Latinitas scholastica)’라고 합니다.
‘스콜라 라틴어’, ‘스콜라 철학’에 담긴 의미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교재의 의미가 강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는 철학과 어학 교재는 표준 이론들을 담고 있고, 여기에는 정설이라고 생각되는 다수의 의견만이 반영되죠. 소수 의견이나 학계의 다양한 견해는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의 ‘스콜라 철학’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진리로서의 철학’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콜라 라틴어’도 그러한 의미로 이해한 것이고요.
둘째, ‘고전 발음’ 또는 ‘복원 발음’이라고 해서 고전 문헌을 토대로 르네상스 시대에 복원한 발음입니다. 이 발음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인 에라스무스가 저술한 『올바른 라틴어 및 그리스어 발음에 관한 문답』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고전 발음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고전 문헌의 초기 작가와 후기 작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고, 무엇보다도 모음 발음의 장단을 복원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물론 이 2가지 발음 방식 가운데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한동일 신부, "라틴어 수업"
현재 주로 사용되는 라틴어 발음 체계는 크게는 고전 라틴어와 교회 라틴어(latina scholastica)로 나뉘며, 이 둘은 발음법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 가톨릭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발음법은 교회식이며 일부 외국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드물게 고전 발음으로 가르치나 발음법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발음이 불분명할 경우에는 교회식을 섞어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학자들이 고전 라틴어 발음을 복원할 때에도 이탈리아 등 로망스계 국가의 언어 습관을 많이 참고한다.
한동일 신부의 책에 따르면 국제 학술 대회에서 라틴어 발음을 들어보면 영・미・독일계 학자들은 고전 발음을 고수하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학자들은 스콜라 발음을 쓰지만, 서로 다 알아듣고 달리 발음하는 배경엔 문화적 자존심이 깔려있다고 한다. 또한 같은 책에 의하면 라틴학계에선 고전 발음, 법학계에선 스콜라 발음이 지배적이라고.
이 사이트에서 라틴어를 입력하면 고전 라틴어 발음과 교회 라틴어 발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잘못 나오는 경우도 있는 거 같으니,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자.
고전 라틴어
현대 고전 라틴어의 발음은 언어학자들이 고전 시대(보통 키케로 시대로부터 5현제 시대까지)의 라틴어 발음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시대의 라틴어는 금석문, 문학 작품, 라틴어 교재, 편지나 일상 기록 등이 풍부하게 남아있으므로 19세기 말부터 언어학자들이 좀 더 실제에 가까운 고전 시대 라틴어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9.2. 교회 라틴어
교회 라틴어는 본래 정해진 발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가톨릭 교회의 라틴어 발음법은 유럽 각 지역어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달랐다. 1912년 7월 교황 비오 10세는 당시 프랑스 부르주(Bourges) 대교구의 교구장 루이-에르네스트 뒤부아(Louis-Ernest Dubois)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탈리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라틴어 발음을 추천하였다. 이 사실이 다른 가톨릭 교회에도 알려지면서 가톨릭 교회 내에서 통용되는 라틴어 발음법은 대체로 이탈리아식으로 모였다. 하지만 각국에서 쓰이던 예전의 라틴어 발음, 그리고 각국 모국어의 영향이 순식간에 無로 돌아갈 수는 없으므로 그 이후에도 이탈리아식 발음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이 밖에 다른 점은 장모음/단모음의 유무, 소문자의 유무 등이 있다. 교회 라틴어는 대개 실제 구어가 아니라 문어로 많이 쓰여서 구체적인 발음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틀은 있으되 세심한 부분에 대해서는 표준이 없다. 교황청에서 일부 발음에 대한 룰을 정한 적은 있으나 이 세심한 부분이라는 게 대개 라틴어 덕후, 혹은 언어학자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 그리고 사실상 교회 라틴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신학자들과 사제들 사이에서도 지역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유럽 내 각지에서 봉헌되는 라틴어 미사를 잘 들어보면 바티칸,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상당히 발음이 달라진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다 서로 알아먹을 수는 있다.
유럽 각 언어의 라틴어 발음
그 외에 19세기까지 유럽 각국이 사용한 지역별 라틴어 발음 등이 있다. 이러한 발음들은 해당 언어의 어휘로 포섭된 경우가 많다. 특히 학술 용어로, 예컨대 영어 화자는 Syllabus(교수요목, 실라부스), Calculus(미적분학, 칼쿨루스), Alumnus(졸업생, 동창회라는 뜻으로 복수형 Alumni를 주로 사용, 알룸누스), Curriculum(교과 요목, 쿠리쿨룸) 등을 고전 라틴어 발음이 아닌 영어식 발음으로(실러버스, 캘큘러스, 알럼너스/알럼나이, 커리큘럼) 읽는다. 다른 유럽 제어도 마찬가지다.
현지화된 라틴어의 발음은 크게 독일권과 이탈리아권으로 나뉜다. 독일권의 경우엔 c나 p가 크(kh), 프(ph) 유기음에 가까운 반면, 이탈리아권은 c가 끄, p가 쁘 무기음에 가깝게 발음되는 편이다. 또한 고전 라틴어에서는 r이 흔히 혀를 떠는 발음이라고 불리는 Trilled r이며 영미권 발음의 영향으로 흔히 f 발음으로 읽는 ph는 프흐-에 가깝게, 마찬가지로 th(번데기 발음)으로 읽는 th도 트흐-에 가깝다. 하지만, 역시 위에 말한대로 세심한 표준 발음은 없는 편.
강세
다른 고전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틴어에 있어 강세는 상당히 중요하다. 물론 그리스어처럼 단어마다 강세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정도까진 아니라 해도, 강세는 한 언어를 이루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 중 하나며 또 그 문법적 뜻을 명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령, 단어에 등위 접속 접미사인 -que나 직접 의문문을 만들 때 사용되는 접미사 -ne가 붙는 경우 강세는 접미사 바로 앞으로 간다. 성염 교수의 고급 라틴어 1과 p.18을 참조하면 라틴어의 강세는 3가지로 나뉘는데, 이는 각각 마지막 음절(Syllaba ultima), 끝에서 2번째 음절(Syllaba paenultima) 그리고 끝에서 3번째 음절(Ante-paenultima)이다. 여기서 마지막 혹은 끝이라 함은 단어의 끝에서부터 음절을 셈을 의미한다. 즉, 마지막 음절이라 함은 단어의 끝에서부터 센 마지막 음절, 곧 단어의 첫 음절을 말한다.
강세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음절의 모라(혹은 음절의 장단). 라틴어에서 음절의 모라를 세는 기준은 일본어와 거의 일치하는데, 기본 골자가 되는 중성 다음에 무언가 붙을 경우 중음절(heavy syllable), 그렇지 않을 경우 경음절(light syllable)이라고 부른다. 즉 장모음, 이중모음, 혹은 종성이 있을 경우 중음절(예: mī, an, tae, strō, ōm), 그렇지 않을 경우가 경음절(예: ma, stra, te, ci)이다. 음절을 나누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전부 서술하는 것은 무리지만 간단한 팁을 주자면, 먼저 모음을 기준으로 음절을 나누고(이때 단어 제일 끝의 자음은 단어의 마지막 음절과 한 덩어리로 취급해야 한다.) 모음과 모음 사이에 자음이 2개 이상일 경우 앞 자음은 앞 음절에 붙인다. (단, 파열음, 즉 b·p·d·t·g·c·k 뒤에 유음 l·r이 오는 경우는 자음을 이동시키지 않는다.)
3가지 강세 중에서, 마지막 음절(Syllaba ultima)은 vīr, vīrī, m., dōnum, -ī, n.과 같이 단어의 길이가 짧아 단어를 이루는 음절이 2개 이하인 경우에 온다. 끝에서 2번째 음절(Syllaba paenultima)은 음절이 3개 이상인 단어에서 끝에서 2번째 음절이 중음절일 경우 강세를 갖는데, 예를 들어 Amīcus, -ī, m.는 끝에서 2번째 음절인 mī가 중음절이기 때문에 강세를 받는다. 또 magīster, magīstrī, m.의 예에도 끝에서 2번째 음절이 gīs로써 장모음에 자음이 붙는 중음절이기 때문에 강세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끝에서 3번째 음절(Ante-paenultima)은 마지막 음절과 끝에서 2번째 음절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에 해당한다.
주의할 점은 한 단어에 강세는 하나란 점이다. 또한, 강세는 단어의 곡용, 활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예시로 taurus, -ī, m.의 경우 단수 주격에선 강세가 마지막 음절에 붙지만 복수 속격인 taurōrum에선 강세가 끝에서 2번째 음절에 붙음을 알 수 있다.) 위에도 설명했듯 몇몇 접미사가 붙을 경우 음절이 무조건 접미사 앞으로 간다는 것이다.
문법
대표적인 굴절어로서, 명사, 형용사, 동사 등의 주요 품사들이 문장에서 사용될 때 성, 수, 격, 시제, 상 등에 따라 활용한다. 명사와 형용사가 격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어순이 자유로운 면이 있다. 하지만 품사의 변화 형태에 따라서 어떤 품사인지를 문맥을 통해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아주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아래의 문장인
Gladiātōrēs leōnēs necant.
'검투사들이 사자들을 죽인다'도 될 수 있고 '검투사들을 사자들이 죽인다'도 될 수 있다. 하필이면 주어로 쓰이는 복수 주격과 목적어로 쓰이는 복수 대격의 형태가 같기 때문에 생기는 일.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라틴어 화자들은 주어-목적어-동사, 즉 SOV 형태의 문장을 주로 사용하였다. 한국어의 어순과 같지만, 세계 언어의 절대 다수가 주-목-동, 혹은 주-동-목 어순을 주로 쓰니까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이 어순은 카이사르가 즐겨 쓴 문체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라틴어의 직계 후손들인 로망스어군(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게르만어파(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등)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SVO 어순을 갖는다. 이런 상이한 어순은 유럽어 사용자들의 학습 난이도를 올리는 데 일조하였다.
그래도 어순 설정하는 게 완전히 제멋대로는 아니라서, 교재에 나와 있는 예문 몇백 개쯤 읽어보면 나름대로 감이 잡힌다. 대충 맨 앞에 있는 단어가 가장 강조되고 맨 뒤에 있는 단어도 상당한 강도를 띤다는 듯.
기본적으로 사전에 등재된 동사의 형식은 현재형-1인칭-단수다. 영어의 동사원형(부정사)에 해당하는 형태는 -āre, -ēre, -ere, -īre의 4가지가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선 사전마다 다른 모양으로, 허창덕 저 '초급 라틴어'에선 동사의 경우 "현재진행 1인칭 단수 - 현재완료 1인칭 단수 - 목적분사 - 부정형" 순서로 한 단어에 으뜸꼴을 4개를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 사전이나 Oxford Latine Course의 경우에는 현재 1인칭 단수 - 부정형(infinitive) - 완료과거(현재완료) 1인칭 단수 - 목적분사(supine) 또는 과거분사의 순으로 제공하고 있다. 목적분사일 경우 -um 꼴이고, 과거분사일 경우는 -us 꼴이다. 과거분사의 중성 단수 주격형과 능동 목적분사는 형태가 같다. 사전마다 순서가 다르다 하더라도, 저 4개를 쓴다는 것은 같다. 단 자동사는 과거분사가 없다든지, 불비동사는 과거형이 없다든지, 탈형동사나 반탈형동사는 완료과거 1인칭 단수만 있고 과거분사는 (완료과거에 이미 나와 있으므로) 생략한다든지 해서 으뜸꼴이 꼭 4개가 안 나올 때도 있다.
동사 변화로 그 문장의 주어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1인칭/2인칭 대명사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로망스어군의 시초인지라 후대 로망스어(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루마니아어)에서 띠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키케로 시대엔 H가 묵음이 아니었다.
정관사와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
굴절어의 특성이 뚜렷하여 전치사의 사용과 종류가 적다.
10.1. 영어와 한국어 화자들을 위한 라틴어식 어순 예제
위에서 말했듯, 라틴어는 성, 수, 격의 일치로 단어 간의 관계를 명시하는 언어이며, 어순을 자유로이 바꾸면서 강조와 뉘앙스 차이를 살리는 언어다.러시아어...? 이는 단어의 순서로 단어 간의 관계를 명시하는 영어와는 매우 다른 특징이며, 조사로 단어 간의 관계를 명시하는 한국어는 그나마 라틴어의 이 같은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다.
뭐 한마디 조언만 하자면, 영어로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라틴어로 번역한 문장은 라틴어의 통사적 구조에서 볼 땐 어색한 문장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라틴어에서 영어로 문장을 직역할 경우 굉장히 고풍스럽거나 현학적인 말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르네상스 무렵부터 근대까지 여러 영어 문필가들이 라틴어의 정교한 격, 시제, 태 등의 문법을 참고해가며 영어 문법을 가다듬었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먼저 일반적인 라틴어 어순으로 쓴 글이다.
(원문) Scipio manūs complōsit.
(영/직역) Scipio clapped his hands.
(한/직역) 스키피오는 박수를 쳤다.
어순을 바꾸어서 동사를 앞에 쓰면 동사가 강조된다. 만약 이런 라틴어 문장을 어순을 지켜가면서 영어로 직역할 경우 위에서 나온 "무지하게 고풍스럽고 현학적인" 문체가 된다. 비교적 어순이 자유로운 한국어로도 직역해 놓았다.
(원문) complōsit Scipio manūs.
(영/직역) Clapped, Scipio did his hands.
(한/직역) 박수 쳤다, 스키피오는 그의 손으로.
(영/의역) Scipio suddenly clapped his hands.
(한/의역) 스키피오는 불현듯 박수를 쳤다.
반대로 목적어를 앞에 쓸 경우 목적어가 강조된다. 마찬가지로 이런 문장을 어순을 지키면서 영어로 직역하면 셰익스피어 연극에나 나올 법한 고색창연한 문장이 된다.
(원문) manūs Scipio complōsit.
(영/직역) His hands, Scipio clapped.
(한/직역) 그의 손으로 스키피오는 박수를 쳤다.
(영/의역) It was his hands that Scipio clapped.
(한/의역) 그의 손이야말로 스키피오가 박수를 친 것이다.
이처럼 문학 작품이나 역사서의 라틴어는 이래저래 배배 꼬인 어순도 많다. 한국어에서도 시적인 표현이나 구어체에서는 어순을 신경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하면 몇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문장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라틴어 문학 작품을 해석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또한 이런 예시들을 보면, 왜 영어영문학과의 최상위권이 되기 위해서는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라틴어 유래 단어들을 익히자는 취지도 있겠지만, 좀 배운 사람들이 남긴 것이 분명한 중세 영어의 문헌들은 종종 이런 식으로 라틴어 문법으로 쓴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난이도
유럽어, 특히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등의 로망스어는 라틴어의 직계 후손이기 때문에 이들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라면 조금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가 라틴어다. 그러나 수많은 유럽인들이 학창 시절 치를 떨었고, 오늘날의 학생들도 치를 떨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이 라틴어 교육이 쓸모없다면서 라틴어 수강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한자/한문 교육이 논란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인인 성 요한 23세 교황은 신학교 시절 틀린 라틴어 단어 수만큼 매를 맞았다고 했다. 지금도 가톨릭 신부를 양성하는 신학 대학에서는 라틴어를 필수적으로 가르치며, 라틴어 외에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도 가르친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보다는 라틴어가 축소된 편이다. 그리고 해외로 유학 가는 신학생들과 신부들은 추가로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도 공부한다.
유럽인들의 라틴어에 대한 애증이 느껴지는 개그 영상. 영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중 일부. 참고로 백인대장 역을 맡은 존 클리스(John Cleese)는 실제로 라틴어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위의 몬티 파이슨이 전형적인 예시고, 로알드 달, 조지 오웰을 비롯하여 수많은 영미권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의 자서전 등을 보면 어린 시절 깐깐한 라틴어 선생한테 개 패듯이 처맞으며 복잡한 동사 변화 외우던 기억에 부들부들 괴로워하는 게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물론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같이 영어보다 라틴어로 시를 쓰는 게 더 편하다는 전문가들도 간혹 존재한다. 심지어 토인비는 영어 같은 천박한 언어로는 일기를 쓸 수 없다며 라틴어로 일기를 썼다. 16세기 유명한 스코틀랜드 역사학자, 문필가, 종교 개혁가였던 조지 뷰캐넌 또한 적대하는 카톨릭 지식인들에게도 문장력 하나만큼은 인정받았을 만큼 당대의 유명한 영미권이 배출한 라틴어의 달인이었고, 그의 제자였던 제임스 6세 또한 유창한 라틴어 문장으로 유명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공부하기가 어렵다. 등산으로 따지자면 시작부터 절벽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을 이미 배운 사람이라면, 비슷한 개념이 많아서 이해 자체는 어렵지 않다. 암기가 문제지. 이는 한국어나 영어나 모두 굴절이나 문법적 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대다수 한국인들은 이 개념에 익숙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굴절도 여러 형태가 있고, 불규칙 굴절도 있기 때문에, 한 단어를 외울 때 그 단어의 굴절과 성을 같이 외워야 한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문법적 성(grammatical gender)이란 오래된 문법 용어로 고착화되어 계속 성이라고 불리는 것일 뿐 실제 성별과는 관계없으므로 명사의 성은 따로 익혀야 한다.
이 과정만 넘어가면 평지가 등장한다고 한다고는 하는데, 음운 접변 규칙이 한국어 수준이라 마냥 쉽지는 않다. 한국어나 영어와는 문법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경우 겁부터 먹게 되는 탓도 있다. 표로 동사 활용을 정리해서 입에 익혀보면 그 뒤는 쉽다. 동사의 활용과 명사의 곡용만 이해하면 그 뒤로는 문법상 고통스러울 일은 별로 없으니 겁먹지 말자. 견디면서 학습하다 보면 주변의 브랜드 상표 등 라틴어 차용 낱말들이 새롭게 보이는 쏠쏠한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한자를 알면 한중일 3국의 언어 습득이 수월해지는 만큼, "그렇다면 라틴어를 배우면 로망스어군 언어들을 배우기가 아주 쉬워질까?"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으나, 타 언어를 배우기 위한 목적으로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 보다는 그 언어부터 직접 배우는 게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언덕길이 버거워서 곡괭이 하나 잡고 절벽으로 올라보겠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당장 중국어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어도 한자 단어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지만, 정작 한문과 중국어, 한국어의 문법은 큰 공통점이 없다. 단어와 문장은 다르기 때문. 물론 반대로 이미 로망스어군 언어를 할줄 아는 한국인이 라틴어를 배우는 건 처음 이런 배경도 없이 시작하는것 보다 난이도가 훅 떨어진다.
상당수의 로망스어군은 어근과 어휘를 공유하기에 이를 익혀두면 단어를 외우기가 매우 쉬워지긴 하지만, 문법은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게다가 각국의 로망스어는 라틴어와 닮은 것보다는 서로 닮은 정도가 훨씬 더 크므로, 예를 들면 스페인어를 배울 때 라틴어보다는 이탈리아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로망스어의 형태론은 라틴어보다 약식화되어 있으므로 라틴어를 익혀두면 이들이 상대적으로 쉬운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영어는 게르만어군이긴 하지만, 로망스계열 단어가 많이 섞여 들어와 있기에 라틴어 어근은 영어를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조금만 수준 높은 영어 어휘를 공부하다 보면 그 어원으로 반드시 따라 나오는 것이 라틴어이며, 라틴어의 어미를 영어식으로 조금만 바꾼 것이 그대로 영어 단어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현재 사용하는 영단어의 29%가 라틴어에서 파생됐고, 다른 29%도 라틴어의 자손 격인 프랑스어에서 나온 것이니 존재하는 과반의 영단어가 라틴어의 영향을 받았다. 29퍼센트라는 숫자에 속으면 안 된다. 마치 한국어의 학술 어휘가 상당히 일본식 한자어와 공유되는 것처럼, 영어에서 학술 어휘는 라틴어의 위치가 그러하다. 형이상학만 보더라도, 눈치 좋은 사람은 라틴어 substantia(본질), essentia(앞과 동의어), natura(본성), forma(形相), figura(形像), speciebus(形狀)에 영어 substance, essence, nature, form, figure, species가 대응함을 알 수 있다. 기실 라틴어를 취미 삼아 배우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영어를 깊게 공부하다가 필요성이나 흥미를 느껴 시작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서양인이 한국어나 일본어를 공부하다가 한자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과 비슷하다.
12. 한국의 라틴어 교육
한국사에서 라틴어 학습의 역사는 천주교 및 서학의 전파와 그 궤를 같이한다. 처음에는 라틴어로부터 한역된 성경이나 서구 학술서를 청나라에서 들여와 읽거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선교사로부터 간접적으로 라틴어의 존재를 인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헌종 조부터는 극소수이지만 점차 라틴어를 직접 배워서 사용하는 조선인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처럼 외국으로 비밀리에 유학을 가 신부가 된 조선인들이 대표적인 예시다. 그러나 조선 조정의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학습자는 매우 적었다. 라틴어 학습이 그나마 활기를 띠게 된 것은 개항 및 천주교의 공인 이후였으며, 종교인 혹은 구미권 유학파 지식인을 중심으로 학습이 이루어졌다.
21세기 현재 라틴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일단 한국에는 드물다. 가톨릭 성직자는 일반인들보다야 꽤 잘하겠지만, 그나마 교황청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자국어 미사를 인정한 뒤부터는 라틴어를 할 줄 아는 가톨릭 성직자도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계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백민관 테오도로 신부
한국 가톨릭교회의 살아있는 전설로, 한국의 사실상 유일한 라틴어 교본 및 한국 가톨릭 대사전의 사실상 단독 저자.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전 학장. 백 신부의 라틴어 실력은 유학을 다녀온 대학인 솔로몬 대학에서 전설 같은 일화가 내려오는 수준이다. 외국인이라 이탈리아어를 제외한 외국어로 면접을 볼 수 있었는데, 라틴어로 면접을 신청했고, 면접관에게 면접관이 모르는 라틴어를 라틴어로 설명했을 정도였다. 지금도 솔로몬 대학에서 한국인임을 밝히면 백 신부를 아느냐고 할 정도의 전설. 2004년까지 현역으로 재직했고, 2013년까지 라틴어 강의를 하다가 현재는 원로 신부로 서울 대신학교(성신교정) 양업관에서 지내고 있다.
성염
서강대학교 교수였고, 바티칸 주재 대한민국 대사이기도 했다. 대사 시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고 아그레망을 받을 때 라틴어로 대화를 했고, 교황이 이를 듣고 놀라 반갑게 성염 대사를 맞이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바티칸에서 친척을 잃고 헤매던 중 한 흑인 신부를 만났는데, 이탈리아어가 통하지 않아서 라틴어를 적어서 보여주어 그 신부의 도움으로 그 친척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바티칸에서는 라틴어가 많이 쓰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알아듣거나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 라틴-한국어 사전을 제작했다. 라틴-한국어 사전은 퀄리티가 상당하다. 다만 가톨릭대 출판부에서 나온 라틴어 사전은 인력 부족으로 허창덕 신부 한 명이 몇십 년을 작업하다가 1992년 선종할 때까지 완결을 못 보았다. 현재 출판된 사전은 남은 유고를 바탕으로 조금 더 추가한 것이다. 그 외에 라틴어 입문서와 구문론 저서가 남아 있다.
한동일 사무엘 신부
동양인 중에서는 최초로 교황청 대법원(로타 로마나)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각국의 천주교회에서 교황청에 상소(上訴)하는 민·형사 사건을 처리하는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는 지난 700년 동안 930여 명밖에 없었다. 현재는 한국에 돌아와 서강대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초급·중급 라틴어'를 가르치다가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및 연세대학교 법학대학원으로 옮겨 '유럽법의 기원'을 가르치는 중이다. 한 신부가 지금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칠 때 쓰는 학습법은 교수와 학생이 서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는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이다. 몇 년간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서 2017년에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냈는데 서점가에서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5~6위에 오르고 2017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고, 이후로도 꾸준히 팔린다. 단, 이 책은 라틴어를 배우기 위한 교재가 아니라 라틴어를 소재로 하여 서양의 종교, 역사, 법률, 철학 등을 소개하고 인생의 선배로서 젊은 학생들에게 삶의 방식 등을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이라는 점에 주의할 것. 라틴어 학습이 목적이라면 한 신부가 저술한 라틴어 교재 《카르페 라틴어》를 참고하자.
로마법 사료가 라틴어로 되어 있고 옛날 서양 법학자들도 라틴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더욱이 현대의 동양 문헌에서도 한문 어구가 튀어나오듯이 현대의 서양 법서에서도 라틴어 어구가 종종 튀어나오기 때문에, 한국 법률가(특히 민법 교수) 중에 라틴어 문헌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이 더러 있다.
2014년 7월 15일에 한국 포털 사이트 최초로 네이버 라틴어 사전이 출시되었다. 그런데 단어의 의미만 표시되어 있지, 문법 사항에 대한 정보(동사 활용이나 명사변화에 관한 내용)는 완전히 누락되어 있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있는 센텀시티의 센텀(CENTUM)은 숫자 100을 뜻하는 라틴어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라틴어가 일반적인 지명으로 쓰이고 있는 유일한 사례다. 센텀중학교, 센텀고등학교, 부산센텀여자고등학교, 센텀병원, 센텀역,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등. 원래 고전 라틴어 발음으로는 /켄퉁/이라, 혹은 교회 라틴어 발음으로는 /첸툼/이라고 읽어야 하지만 이는 영어의 영향 때문이다. 영미권에서는 많은 라틴어구를 영어식으로 읽는다. 예를 들어 미 해병대 구호인 Semper fi는 /셈페르 피/에 가깝지만 미국에서 /셈퍼 파이/라고 읽고 말한다.
최근에는 미국 대학 입시에 라틴어를 배우면 유리하다는 소식에 라틴어 강좌를 여는 학원이 10곳이 넘는 등 라틴어를 배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간혹 라틴어로 브랜드명을 짓는 경우도 있는데, 현대 에쿠스, 기아 오피러스, 한국화이바 프리머스, 프리머스시네마 등이 그러하다. AD MARE라는 앨범명, 비데리 논 에쎄: 무한대로의 모험이라는 서명도 라틴어이다.
드라마 제4공화국, 제5공화국의 오프닝 타이틀 곡 역시 라틴어로 되어 있다.
국내에 라틴어 강좌를 개설한 학원은 아직 없다. 대학과 고등학교 몇 군데에서만 교양 과목으로 라틴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가톨릭 신부를 양성하는 신학 대학에서는 라틴어를 필수로 가르친다.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수원가톨릭대학교,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 대학, 대전가톨릭대학교, 광주가톨릭대학교,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