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인데 좀 깁니다. 이해해 주시고 읽어 주세여
<서론>
" 60 ~ 70년대는 이란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80년대 중반부터
는 부활에는 성공하나 그때부터 급성장한 사우디에 의해 추월 당하고 이
젠 일본에게 마저 위협을 당하고 있다."
한국은 분명 지난 50년을 통틀어 아시아 최강의 축구 강국 이었다.
그러나 한국에게도 아시아 최강을 말하기엔 부끄러운 시대가 있었고 지
금은 급성장한 사우디와 일본의 맹렬한 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한
국은 2002 월드컵 4강을 통해 다시한번 아시아 최강국으로 받돋움 하나
근본적으로 축구의 강국이 되는데 필요한 근간 즉 인프라 투자에 인색한
-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내부 문제로 말미암아 항시 왕좌는 불안정 하다.
본문은 아시아 최강국 이라는 간판안에 숨겨져 왔던 진실과 불안한 현실
에 대해 조명 해보고 축구의 강국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축구의 나라가
되는것이 선결 조건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진실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
한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본론 1>
1.아시아 축구의 역사
아시아 축구 50년의 (1954년 ~ 2003) 역사는 크게 6개의 시대로 나뉜다.
제 1 기 54년 ~ 60년 한국 축구 최강의 시대
>>>> 이스라엘 2인자로 군림함
제 2 기 61년 ~ 67년 아시아 군웅 할거 시대
>>>> 북한이 66년 8강 신화 이룸
제 3 기 68년 ~ 78년 이란 축구 최강의 시대
제 4 기 79년 ~ 83년 쿠웨이트 축구 최강의 시대
제 5 기 84년 ~ 01년 사우디 축구 최강의 시대 (일본의 급성장)
제 6 기 02년 ~ 현재 한국 축구 도약 시대 혹은 신 군웅 할거 시대
한국은 54년 스위스 월드컵 진출, 56년 아시안 컵 우승등 50년대 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존의 축구 강국 이었으나 60년 아시안 컵 우승 이후로는
메드데카 컵 이나 킹스컵 같은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2류 대회에서의 선
전 외 주요 국제 대회 에서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아마도
4.19 혁명이나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 등 국내 혼란이 주요인인듯 싶다
암튼지 이후 한국은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지역 예선 에선 막강 전력을
지닌 북한이 두려워 아예 출전을 포기 했으며 68년 부터 눈부시게 활약
한 이란에게 가려 72년 아시안 컵 준우승을 빼면 기나 긴 긴 침묵의 시대
(61년 ~ 85년 까지 25년간) 에 접어 들게 된다. 이 시기에 한국 못지 않
게 강한 나라는 오늘날 유럽에 포함된 이스라엘인데 56년 부터 70년까지
대략 15년 동안 그들은 아시안 컵 결승에만 3차레나 오르고 70년 멕시코
월드컵에 나가는등 선전을 펼쳤다. 재미 있는 사실은 아시아 축구의 왕좌
가 한국에서 이란으로 바뀌는 과도기 시절인 제 2 기에 현재 한국의 스파
링 상대로 쳐다 보지도 않는 버마, 인도 등이 아시안 컵 에서 준우승을
을 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당시엔 한국은 지금과도 같은 전력과 명성을
가지지 못햇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한국 축구가 주춤 거리는
사이 새롭게 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등장한 나라는 지금도 강력한 라이
벌인 이란. 68년 ~ 78년 당시의 이란은 그야말로 아시아 최강국 이었는데
아시안 컵 우승을 연거푸 3번이나 거머쥐었고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도 진출 하는등 참으로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무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하던 이란 축구가 왕좌를 내주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내부
문제 즉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때문 이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입각
한 신정 국가가 들어 서면서 이란은 급속도로 전력이 약화 되는데 혁명에
의한 국내 혼란은 우리나 이란이나 축구 전력을 크게 악화 시키는 제일
원인이라는 점에서 시사해 주는바 크다.그런 이란의 뒤를 이은 나라는
오일 달러로 무장한 한국 킬러 쿠웨이트 였다. 쿠웨이트는 이미 이란이
아시아 최강국으로 군림하던 76년 부터 아시안 컵 준우승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나라인데 이슬람 혁명으로 약해진 이란을 밀어내고 80년 아시안
컵 대회에선 보란듯이 우승을 거머쥔다. 그리고 다시 일어 서고자 몸부림
치던 한국을 82년 스페인 월드컵 지역 예선서 물리치고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나가게 된다. 비록 본선에선 졸전을 펼쳤지만...
이후 이런 쿠웨이트의 굵지만 짧은 왕좌의 시대를 대신한 나라가 있었
니 그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름아닌 역시 오일 달러로 무장한 사
우디 였다. 사우디는 84년 아시안 컵 우승을 통해 아시아 신흥 강호의
첫 신호탄을 멋지게 쏘았는데 사우디의 이후 행적은 참으로 압권 그 자
체이다. 아래 같은 시기 부활한 우리 나라와 비교한 표를 한번 보자.
84년 사우디 아시안 컵 우승 - > 한국 아시안 컵 4강 진출 실패
86년 사우디 월드컵 진출 X < - 한국 월드컵 진출 O
88년 사우디 아시안 컵 우승 - > 한국 아시안 컵 준우승
90년 사우디 월드컵 진출 X < - 한국 월드컵 진출 O
92년 사우디 아시안 컵 준우승 - > 한국 본선 진출 실패
94년 사우디 월드컵 16강 - > 한국 월드컵 조별 리그 탈락
96년 사우디 아시안 컵 우승 - > 한국 8강에서 탈락
98년 사우디 월드컵 28위 기록 - > 한국 월드컵 30 기록
00년 사우디 아시안 컵 준우승 - > 한국 아시안 컵 3위
한마디로 80년대만 해도 주거니 받거니 호각지세 이던 것이 92년 부터
사우디의 우세로 완전히 기울어 지게 되었다. 놀라운 건 사우디가 아시
안 컵에만 무려 5번 연속 올라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햇다는 것. 물론
우리 역시 월드컵에 4번이나 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최고 성적! 사우디
는 94년 월드컵에 처녀 출전해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나 한국은
스페인과 독일등에 선전 했음에도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부활엔 성공하나 아시아 축구 1인자가 아닌 2인자 였던 셈이다.
이런 2인자의 설움을 극복하게 만든 대회는 바로 2002 월드컵 이었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일본의 도전에도 아랑곳 않고 아시아 축구 왕좌에
앉아 있었던 사우디가 전차 군단에게 0 대 8 로 대패하고 조 꼴찌로 탈락
을 확정 지을때 한국은 그토록 염원하던 16강에 올라 북한이 이겼던 전통
의 강호 이탈리아와 52년만에 4강 진출을 코앞에 둔 스페인을 물리치고
대신 4강에 오른다. 비록 사우디를 혼쭐낸 독일에게 져서 결승전 진출엔
실패하나 한국은 다시한번 아시아 축구의 왕좌에 등극하는 성과를 올린다
2부에서 이어 집니다.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아시아 최강이 된 한국. 그러나... (제 1 부 한국 축구의 어둡기도 했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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