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교회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니 자연히 그 반대개념인 교파에 소속된 기성교회를 일컫는 말이 있어야 되는 데, 마땅히 부를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서 임시로 <교파교회>라고 불러 보겠습니다.
교파교회는 말씀드린 대로 <교파에 소속된 교회>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파교회에 아무런 문제점들이 없었다면 독립교회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생겨났다고 해도 오늘 날과 같이 그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교파교회의 문제점들은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교리적인 방면
교리는 신앙의 뼈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만큼 교리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교리가 순수하게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면 비할데 없이 귀하지만 그 뿌리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영혼을 속박하는 계율이 되고, 교회는 폐쇄주의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교회는 양심이 보호를 받아야 하고, 신앙이 존중되는 곳이어야 하는데, 잘못된 교리에 얽매이게 되면 어느 집단못지 않은 폐쇄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왕왕 교리로 인해 사람들을 옥죄는 사태들이 있었습니다.
중세기 카톨릭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을 자기들 교리에 맞지 않는다하여, 종교재판의 이슬로 사라지게한 전례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곳은 카톨릭 교리성성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이단으로 낙인 찍히면, 하루 아침에 형상의 이슬로 사라져 갔습니다.
누가 이러한 교리들을 만들었을까요?
성령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번쇄철학에 물들고, 그 철학적 사고에 물든 사람들에 의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엄격한 교리들을 만들었으며, 그 교리에 어긋나는 사람들을 마녀사냥하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란 불가불 교회를 떠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알고 보면 종교개혁자들도 그런 피해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최근에 한국교회에도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왜 일까요?
너무 교리와 의식이 사람들을 옥죄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사고와 양심이 결박되어 있는, 그래서 용신도 할 수없는 계율적 교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지식에 찌들어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호통을 치셨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을 향해서는 천국이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고 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론과 지식과 엄격한 율법적 생활이 천국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변주의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학당을 만드신 적이 없으시고, 아카데미를 창설하신 적도 없습니다. 그 분은 회당에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바위에 걸터 앉아서, 때로는 뱃머리에 앉아서, 때로는 길을 가시면서, 때로는 밭 모퉁이에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 분의 교재는 책이 아니라, 참새와 들꽃과 구름과 바람과 농부들의 농사짓는 이야기와 추수하는 일과 어부들의 고기잡이와 혼인집의 등불과 포도원 일꾼들의 투털거림과 주인과 하인들의 임금 계산하는 이야기와 어느 집 아들들의 이야기와 잔치집 이야기 등...모든 삶의 현장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통하여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밝혀 주셨으며, 고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안에는 교리적인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시급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해야 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세례가 맞는가? 침례가 맞는가?
성경은 개역한글(개역개정)이 옳은가? 킹제임스 성경 계통이 옳은가?
유아세례는 주어야 되는가 주지 말아야 되는가?
크리스 마스나 부활절은 지켜야 하는가? 지키지 말아야 하는가?
목사 까운은 입어야 하는가? 입지 말아야 하는가?
축도는 해야 되는가? 하지 말아야 되는가?
여자목사는 성경적인가? 비성경적인가?
십일조는 해야하는가? 하지 말아도 되는가?
주일성수는 해야 하는가? 안해도 되는가?
신앙고백만으로 구원을 받는가? 열매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가?
계시록을 문자로 풀어야 하는가? 상징으로 풀어야 되는가?
천년왕국이 맞는가? 무천년설이 맞는가?
환난전 휴거가 맞는가? 환난 후 휴거가 맞는가?
베리칩이 짐승표인가? 아닌가?
언약주의인가? 세대주의인가?
다원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배격해야 하는가?
방언등의 은사를 인정해야 하는가? 배척해야 하는가?
WCC와 협력해야 하는가? 배격해야 하는가?
WEA와 협력해야 하는가? 배격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교단들은 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행대로 해 오던 것들에 대하여 거부하거나 추종하지 아니하면 이단으로 정죄하든지 아니면 백안시하기가 일수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독자노선을 걷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심도있고 정확한 연구를 통하여 이런 문제들에 대해 정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며, 그러지 못할 바에는 각자 개인의 신앙과 양심을 가지고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할 것입니다.
2. 도덕적인 방면
교파교회의 도덕적 타락은 독립교회 출현의 또 다른 강력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 교회가 세워졌을 때만 해도 교회는 세인들로 부터 조상숭배를 안한다는 문제로 인해 욕을 먹은 것은 있었을지라도 도덕적인 문제로 비난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금주, 금연, 도박금지, 주색잡기 반대, 반상제도 반대, 남여차별금지, 문맹퇴치, 항일투쟁정신, 반공정신, 애족애민정신고취, 대민봉사 등의 선각자적 행동으로 인해 세인들로 부터 칭찬을 듣고, 목사는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인이라고 해서 자기들 보다 나은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없고, 목사라 해서 존경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은 것이 없다는 식의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탐욕을 부채질하는 곳, 성공의 법칙을 가르치는 곳, 자기의 성공을 자랑하는 곳, 좀더 세상을 누리는 곳이 되어 버렸으며, 엄격한 신분사회와 계급사회가 되었으며, 돈이 있는 사람이 대우 받는 곳, 돈이 없는 사람은 하찮게 여겨지는 곳, 힘있는 자는 부도덕이나 불륜도 용인되는 곳, 돈만 주면 받을 수 있는 박사학위 가지고 으시댈 수 있는 곳, 말만 민주요 한 사람의 독재가 가능한 곳, 말씀보다는 지도자의 권위가 더 크게 작용하는 곳, 하나님보다는 사람의 눈치를 더 보아야 하는 곳,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곳,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먹이면서 사람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곳, 아니 하나님 보다는 목사님이 더 무서운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감을 느끼며, 양심과 신앙이 보호를 받으며, 신자의 지위가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믿고 있는 순박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속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고, 역시 하나님의 집에서도 돈은 있어야 되고, 세상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어야 되는 구나 하고 쓴 웃음을 웃어야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유형교회, 지상교회의 한계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그런 순박한 꿈을 꾸는 자들은 당연히 그 현장에서 실족하여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존재할런지조차 의문스러운 이상적 교회를 추구하면서 터벅 터벅 발길을 향하는 곳이 독립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인 문제가 기성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이며, 노력하면 개혁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몇가지 개선해야할 문제들)
오늘 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변하지 않은 민족성, 외부로 부터 들어온 종교적 유산들, 또 현 시대에 외부에서 들어온 자본주의와 인본주의 사조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몇가지 만이라도 직시하면서 개혁해 나갈 의지를 가진다면 다소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신정국가 체제하의 율법을 오늘 날에 대입하여 신자의 육적 삶에서 억지로 구현해 내려하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는 말입니다.
2. 물량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참된 목회의 성공이 신도수가 많고, 교회당 건물이 웅장한 데 있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말입니다.
3. 기복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땅에서 잘 살고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마치 복을 받은 것 처럼, 생각하고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 처럼 생각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4. 무율법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해서 율법의 기본정신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살면서 율법의 기본정신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5.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는 계급과 신분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주어진 직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충실히 감당하는 데, 진력해야지 그것을 구실로 대우를 받고 특권을 누리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6. 의식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식속에 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임하시는 분이므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7. 세속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정욕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아닌 육체적인 욕구를 좇아 행하는 노래와 춤, 그리고 각종 행사들이 있다면 배격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인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란 자기 중심주의적인 옛사람이 죽고 새로 태어난 사람들로 구성된 곳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생각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9.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경에 많은 신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일 뿐이지 인간의 영광을 위해 추구할 대상은 아닌 것입니다.
10. 종말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종말은 있을 것이로되 그 날과 시를 살피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면서 빛과 소금이 되면서 살아야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