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요, 직장(구직) 24-31, 구직활동 ⑧ 안동국시, 꾸미국수, 행복국수, 오두막집, 동아만두
안동국시
김성요 씨와 이력서를 들고 거창읍에 있는 국수집을 돌아본다.
평소 거창 시장 오가는 길에 자주 보았던 ‘안동국시’라는 곳에 먼저 들어간다.
가게 안에 손님이 없다.
점심시간 전후에 찾아가면 손님이 많아 사장님이 여력이 없으실 것 같아
일부러 식사 시간을 피해 늦은 오후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어서 오세요. 이리 앉으세요.”
당연히 가게 손님일 줄 알고 자리를 안내하는 사장님께 김성요 씨가 이력서를 내민다.
“이게 뭐예요?”
“국수집 일하고 싶어요.”
김성요 씨 말에 뒤이어 직원이 김성요 씨가 구직하고 있다는 뜻을 말씀드린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지금은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껏 자주 들어왔던 말이고, 예상했던 일이기에
당황하지 않고 혹시 다음에 일손이 필요하거나 주변에 이런 일자리가 있으면 소개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린다.
“아, 제가 거창 사람이 아니라서요.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소개해 주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 걸 알려 줄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뜻밖의 대답과 함께 이력서를 김성요 씨에게 돌려주신다.
이력서를 받아 놓아도 연락할 일이 없으니 되돌려 주신 거다.
이력서를 받아 주지 않는 곳은 처음이라 김성요 씨가 당황한다.
직원도 함께 당황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고 그러시냐고, 알겠다고 인사 드린다.
“성요 씨, 여기 사장님은 거창 사람이 아니어서 우리를 도와 주시기 어렵나 봐요. 다른 데 또 가 봐요.”
꾸미국수
병원들이 모여있는 곳 근처에 꾸미국수라는 가게가 있다.
식사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병원 근처라 그런지 손님들이 제법 많다.
김성요 씨가 사장님께 이력서를 내밀자, 손님들의 눈길이 김성요 씨에게로 향한다.
“이게 뭐예요?”
“국수집 일하고 싶어요.”
앞서 안동국시 사장님께 설명한 것처럼, 꾸미국수 사장님께도 김성요 씨가 이력서 전하는 뜻을 말씀드린다.
지금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나중에 직원이 필요하거나
주변에 멸치 손질할 만한 곳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부탁드린다.
그런데 김성요 씨와 직원이 전하는 말처럼, 꾸미국수 사장님의 답변도 안동국시 사장님 말씀과 똑같다.
사장님이 거창 사람이 아니어서 일자리를 소개해 주기 어렵다고,
이력서를 받기 힘들다며 김성요 씨에게 돌려주신다.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여러 손님의 눈길을 받으며 가게를 나선다.
행복국수
오늘은 행복국수까지 이력서를 내기로 했다.
이미 연이어 이력서를 받아 주지도 않는 거절을 당한 터라 김성요 씨는 한껏 풀이 죽어있다.
그래도 오늘 가기로 한 곳까지 가보기로 한다.
행복국수에 가니 연세 지긋한 할머님 몇 분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분위기가 정겹다.
일을 구하지는 못해도 이력서는 받아 줄 것이란 기대를 품고 가게에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아요. 식사하러 왔죠?”
“아, 식사하는 건 아니고요…”
김성요 씨가 이력서를 내밀자 할머님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비친다.
곧 가게 사장님이 지금 없어서 이력서를 받기 어렵겠다고 하신다. 세 번째 거절이다.
오두막집
김성요 씨가 오늘 너무 힘들다며 한숨을 내쉰다. 그런 김성요 씨를 보니 직원도 기운이 빠진다.
직원이 거절당한 건 아니지만, 차라리 내가 거절당했다면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구걸을 하는 것도 아닌데 부끄러울 이유가 없었다.
젊고 건강한 40대 여성이 일을 하고 싶다는데, 일을 해서 돈을 벌겠다는데 부끄러울 이유가 어디 있을까.
다만, 김성요 씨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오늘이 가기 전 딱 한 군데 만이라도 이력서를 받아 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김성요 씨를 설득해 시장 안, 오두막집이라는 국수집에 들른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오늘 재료가 다 떨어졌는데.”
김성요 씨와 식당 문을 열자,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이 가게에 앉아 재료 손질을 하고 계신다.
“저희가 식사하러 온 건 아니고요, 성요 씨 우리 왜 왔죠?”
“국수집 일하고 싶어요.”
김성요 씨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사장님께 이력서를 내밀고, 직원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사장님이 직언 설명을 듣더니 말씀하신다.
“아, 그래요? 그럼 저기 이력서 올려 두고 가요. 내가 지금 손이 이래서 직접 받을 수가 없네, 미안해요.”
다행히 이력서를 받아 주신다.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김성요 씨와 가게 문을 닫고 나온다.
다음에 꼭 여기에 밥이라도 먹으러 오자고, 김성요 씨와 이야기 나눈다.
동아만두
이제 늦은 오후가 되면 제법 찬바람이 분다.
오늘 고생한 김성요 씨와 시장 어묵이라도 먹으며 힘을 내보기로 한다.
“와, 맛있다.”
“그쵸? 그런데 성요 씨, 어묵 국물 낼 때도 멸치가 들어가지 않을까요? 여기는 멸치 손질할 사람 안 구하나?”
“그렇죠. 여기도 멸치 들어가겠는데.”
이야기 나온 김에 분식집 사장님께도 이력서를 내 보기로 한다.
어묵값 치르며 사장님께 이력서 보여드리고 김성요 씨가 멸치 손질하는 일 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
“아이고, 일을 많이 했네. 요새 시장 가게들 사정이 다 안 좋아요. 사람들이 시장에 잘 안 오니까.
그래서 아마 시장 안에 있는 가게들은 사람을 잘 안 구할 거야.
그리고 요새 웬만한 식당은 다 손질된 멸치 가져다 써요. 요즘은 멸치가 다 다듬어져서 나와.”
사장님이 안타까워하며 말씀하신다.
사장님 덕분에 멸치 손질하는 일은 구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김성요 씨가 할 수 있을 만한 다른 일을 더 찾아보면 좋겠다.
김성요 씨 구직을 도우며 찬바람 맞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았다.
실제로 날이 춥기도 했고, 만나는 사람들의 기운이 겨울 추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에서야 거절다운 거절을 당했다 싶다.
진짜 거절의 온도는 이런 거구나, 겨울 찬바람 같은.
김성요 씨에게 진짜 거절을 알려 주신 분들은 모두 월평빌라를 모르는 분들이었다.
거창 사람도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은, 지금껏 이력서라도 받아 주셨던 분들은 아마도 거창 사람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거창을 터전 삼아 오랜 세월 지냈던 분들은
김성요 씨가 어느 날 찾아와 일을 구하겠다고 하고,
일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 일이 그리 당황스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아마도 김성요 씨와 같은 약자를 많이 만나고, 약자를 대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서이겠지.
월평빌라 초창기, 숱한 거절을 당했을 동료들과 입주자분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맞았을 찬바람을 떠올린다.
그 바람을 거슬러 걷고 또 걸으며 거창 곳곳에 걸음걸음 온기를 흩뿌리고 다녔구나.
지금 그 따뜻함을 우리가 자연스레 느낄 만큼.
월평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난다.
2024년 11월 18일 월요일, 신은혜
김성요 씨와 신은혜 선생님. 두 분을 꼭 안아주고 싶네요. 신아름
김성요 씨와 신은혜 선생님 뒤를 따르며 카메라로 촬영하듯 글을 읽었습니다.
카메라 감독도 상황마다 안타까워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으며 말이죠.
불쑥 ‘거절의 온도’와 ‘월평의 과거와 현재’를 꺼내시니
이 기록이 사회사업가 신은혜 선생님에게 어떤 글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회상하고 추억하며, 또 앞날을 꿈꾸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응원합니다. 월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