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그것은 육체로 쓰는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시다. 탱고를 추기 시작한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내 꿈의 종착지였다. 이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의 춤이 존재한다. 살사, 스윙, 재즈댄스 등 국내에서도 많은 동호인들이 즐기고 있는 춤은 물론, 스포츠처럼 경쾌하게 즐기는 댄스 스포츠에는 라틴 댄스 5종목, 모던 댄스 5종목 등 10종목의 춤이 있다.
그러나 탱고는 이 모든 춤의 제왕이다. 일생동안 수많은 종류의 춤을 섭렵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이 탱고다. 그래서 탱고를 춤의 블랙홀, 춤의 종착지라고 부른다. 한 번 탱고의 매력에 빠지면 절대 다른 춤으로 건너가지 않는다. 탱고 속에는 삶의 열정과 애환이 응축되어 있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본능적인 에너지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탱고는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회오리 바람처럼 소용돌이치며 일어났다가 거대한 폭풍이 되어 전 영혼을 사로잡는다.
탱고는 원래 춤이 먼저 시작되었으며 춤을 즐기기 위한 음악이 만들어졌다. 19세기말, 아르헨티나는 풍부한 자원으로 세계 4대 부국 중의 하나였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유럽 대륙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건너온 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남자였으며 보카 항구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전세계 어느 항구나 그렇듯이 보카 항구 주변에도 유곽이 있었는데, 한 통계에 의하면 당시 남녀의 성비는 200:1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쩌다 여성이 나타나면 남자들은 휘파람을 불며 접근했지만, 그 여성과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다른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했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좀 더 멋진 남성적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탱고다. 탱고는 인류 역사상 남녀의 신체가 가장 밀착되게 추는 춤이며, 두 명의 남녀가 그림자처럼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지 않으면 출 수 없는 춤이기도 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원제 Cafe de Los Maestros)는 탱고 음악의 살아있는 거장 23명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른 극장에 모여서 합동공연을 했던 것을 토대로 구성된 다큐멘타리이다. 춤이 아닌 음악으로 탱고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는 점, 반도네온 피아노 보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십년동안 자신의 영역을 일궈온 노장 뮤지션들이 출연한다는 점 등이 아프로-쿠반 재즈의 진면목을 보여준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로 제작되기 이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Cafe de Los Maestros]는 2006년 아르헨티나에서 발매되어 그해 라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고의 탱고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역시 [Cafe de Los Maestros]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으며 다큐멘타리 영화로 제작되었다. 23명의 마에스트로들은 이후 파리, 베를린, 뉴욕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탱고 오케스트라 연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벤치 마킹한 흔적이 보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는 하지만 음악의 순수함 그 자체에 접근해 있다. 영화가 상영되는 92분동안 총 43곡의 탱고 음악이 연주된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탱고의 디바 버지니아 루케가 보컬을 맡은 [El Patio de La Morocha], 50년대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궁핍한 시절을 관통해왔던 젊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표현된 [Percal], 탱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노래한 애절한 곡 [le Cancion de Buenos Aires], 라그리마 리오스의 사랑에 대한 회상을 담은 비극적 선율의 [Un Cielo para Los Dos] 등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 영화의 중심곡인 [Al Maestro Con Nostalgia]에서는 탱고 오케스트라의 중후함이 느껴진다. 보통 3-5인조 밴드로 구성된 일반적인 탱고 악단 연주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버라이어티한 음색의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짧지만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곡 [Tanguera], 반도네온의 독특한 음색이 두드러지게 부각된 경쾌한 곡 [Al Galope]도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 만날 수 있다.
탱고 음악의 전성기는 1930년대이다. 탱고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까를로스 가르델이 국민가수로서 대단한 명성을 쌓았으며 그 영향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탱고 음악에 입문했었다. 까를로스 디 살리, 아니발 트롤리오, 푸글리에세, 다리안조 등 탱고음악사에 남는 거장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제자들인 레오폴도 페데리코(반도네온), 아틸리오 스탐포네(피아노), 까를로스 가르시아(편곡), 에밀리오 발카르제(바이올린), 버지니아 루케(피아노) 등 현존하는 탱고 최고의 마에스트로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정적,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탱고가 아니야]
까를로스 가르시아는 자신의 스승인 까를로스 디 살리와 함께 지냈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존경하는 스승에게 바치는 자신의 자작곡 [Al Maestro con Nostalgia]를 녹음한다. 그의 눈가에 깃들어 있는 추억과 애수는 스크린 밖에 있는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왜 우리가 그토록 탱고에 매혹되는지를 감동적으로 설명해준다.
[아니발 트로일로와 연주한다면 트로일로에게 영혼을 바쳐야 했어. 그 얘기는 즉, 오스왈도 푸글리에세나 까를로스 디 살리와의 경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였지. 지금은 도전정신이 없어. 그때는 지휘자들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선의의 경쟁이 있었지. 그들은 경쟁했지만 또 동시에 서로의 팬이기도 했거든.](작곡가이고 지휘자이며 편곡자인 까를로스 가르시아의 회고 중 일부. 그는 1970년대 세계 순회공연을 했던 [탱고 올 스타스]의 리더였다.)
[그 당시엔 밴드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어...내가 괜찮은 편곡자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지. 하지만 푸글리에세가 밴드 합류를 타진했을 때 나는 곧바로 하겠다고 했어. 그의 밴드를 매우 좋아했고 또 그들이 얼머나 함께 훌륭히 일하는지 들었거든. 내가 푸글리에세 밴드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이상 편곡할 수 없었어. 창조적인 에너지를 모두 거기에 쏟아야만 한다는 약속이라고 할 수 있지.](바이얼리니스이자 편곡자, 반도네온 연주자인 에밀리오 발카르체의 회고 중 일부. 그는 푸글리에세와 만난 후 20여년을 함께 일했다.)
1930년대 탱고 음악의 황금시절을 이끌었던 3두마차, 아니발 트로일로와 오스왈도 푸글리에세, 까를로스 디 살리 사이의 치열한 경쟁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까를로스 가르시아의 위와 같은 술회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증언이다.
[한 밴드에서 잠깐씩 연주할 때마다 그 밴드 지휘자는 같이 일하자고 제안하곤 했어요....덕분에 난 다양한 스타일의 뮤지션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잇었죠. 당시에는 하루종일 손에서 커다란 반도네온을 놓지 않았어요. 때로는 녹음을 거절하기도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였죠...굳이 일부러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 역시 다양한 스타일로 연주하기를 즐기지만 내 밴드의 음악이 그런 스타일들의 총 집합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각각의 뮤지션들이 밴드의 색깔에 영향을 주는거죠. 특별하게 편곡을 할 수는 잇지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솔로이스트죠.](반도네온 연주자 레오폴도 페데리코의 술회 중 일부. 40년대 전통적인 탱고와 50년대 아방가르드를 접목시킨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독특한 개성보다는 밴드 전체와의 조화를 중요시 한 그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의 모든 밴드들과 일해봤어. 거의 40여개의 밴드에서 연주했고 밴드에 새로 들어갈 때마다 테스트를 받았지. 그러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계발하게 되었어. 오랜 시간이 걸렸지. 내가 대단한 유행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드르이 연주를 들어보면 나한테서 훔쳐간게 있더군. 그래서 난 항상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냈어야만 했지.](피아니스트인 오스왈도 베른지에리의 회고 중 일부. 항상 창조적 정신으로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그를, 사람들은 탱고의 살인자라고까지 부르기도 했다.)
[요즘엔 어떻게 음악이 만들어지나? 어떻게 이 노래와 저 노래를 구별할 수 잇나? 편곡하는 방식에서 결정되는 거야. 그게 바로 어떻게 각각의 개성이 규정되느냐는 거지.](피아니스트인 아틸리오 스탐포네의 술회 중 일부. 정치와 성을 결합한 뛰어난 소설 [거미 여인의 키스]의 영화 작업에서 음악을 맡았던 그는, 2000년 이후 아르헨티나 국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탱고의 숨 막히는 긴장감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급강하했다가 다시 상승하는 드라마틱한 연주 사이에 숨어 있는 짧은 휴지기에서 발생한다. 여성 보컬 바지니아 루케의 목소리에는 삶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그녀가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바에서 땅게로스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최고의 게스트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답다거나 그녀가 최고의 미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탱고는 삶의 비극적 순간을 노래한다. 어두운 심연의 밑바닥까지 체험한 사람만이 뽑아낼 수 있는 솟구치는 힘과 삶의 깊은 본질이 그녀의 목소리에는 담겨 있다.
[딱 한 번만 할테니, 일단 시작하면 모든 걸 쏟아 붓자]
탱고 음악의 고전이며 한국 밀롱가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La Cancion de Buenos Aires]를 녹음하면서 버지니아 루게는 오케스트라의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모든걸 마친다. 자신의 전존재를 던진 강렬하면서도 장엄한 피날레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는 탱고 음악의 간단한 역사도 통시적으로 서술되지 않았고, 탱고 밴드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음악적 요인도 설명이 배제된 점, 쿠바 혁명 이후 공산주의 정권에서 더 이상 재즈를 연주할 수 없었던 아티스트들의 쓸쓸한 삶이 전해지면서 깊은 감동을 주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 비해, 한 편의 다큐멘타리로서의 특징이 미약하고 밀집도가 약하다. 아티스트들 개인적인 캐릭터의 부각도 없다.
탱고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탱고 음악의 거장들을 회고하는 마에스트로들의 진술이 지루해질 수 있으며, 개개인의 음악적 역사가 파편적으로 흩어지기만 할 뿐 응집되는 연결고리도 약한 편이다. 그들의 개인적 체험이 탱고 역사속에 흡수되어 어떤 물줄기를 형성했는지가 객관적으로 파악될 수 있게 연출되었어야만 했다. 반도네온, 피아노, 보컬 등 탱고 악단의 각 파트를 대표하는 마에스트로들의 개인적 측면에 대한 접근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관객들이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통로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탱고 음악이 꼭 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탱고 춤이 너무 미미하게 등장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 세계 탱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누에보 탱고의 대표격인 치초 & 후아나의 춤이 잠깐 등장하기는 했지만 탱고 음악과 뗄 수 없는 춤이 너무 소홀하게 소개된 측면이 있다. 무대 공연에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통해 연주되는 탱고 음악뿐만 아니라, 밀롱가(탱고를 즐기는 일종의 탱고바)에서 탱고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설명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브라질 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렸던 [중앙역](1998년), 23살 의대생이었던 체 게바라가 혁명가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던 남미 여행기를 영화화 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년) 등을 만든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감독 월터 살레스가 기획했고 다큐멘타리와 음악 전문 감독인 미구엘 코헨이 감독한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는, 이 시대 살아있는 위대한 탱고음악의 거장들을 거의 대부분 만나볼 수 있다. 일렉트로닉스 탱고의 선두 주자인 고탄 프로젝트나, 올해 울산 월드뮤직페스티벌에도 참여했던 바호폰도 탱고 클럽 등이 제외된 것은 다큐멘타리의 집약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현대 탱고 음악의 아버지 아스토르 피아졸라나 그 이후의 현대 탱고 아티스트들이 철저하게 소외되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카페]를 보는 동안 우리는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들 수 있다. 탱고는 삶의 가장 비극적 순간까지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꿔놓는다. 정서적 긴장의 꼭지점까지 우리를 이끌고 가면서 굴곡 많은 삶의 애환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된 탱고 음악은, 우리의 남루한 영혼을 위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