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팔에 얼굴을 파묻고는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수치야, 수치! 자신에게 무슨 일이 들이닥친 건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끔찍했다. 그녀는 그가 미웠고 그녀 자신도 미웠다. 황홀했었다. 아, 가증스러워라! 그녀는 그의 얼굴을 다시는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찰스는 너무나 옳았다. 무가치한 그녀와, 그가 결혼하지 않은 건 그로서는 당연했다. 그녀가 매춘부보다 나은 게 뭐란 말인가. 아니, 더 형편없지. 최소한 그 가여운 여자들은 빵을 위해서 자신을 내준다. 그것도 도로시가 그녀를 받아준 이 집에서! 슬픔과 비통함은 또 어쩌고! 그녀의 어깨가 흐느낌으로 흔들렸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장이다. 그녀는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했었고, 자신이 강하다고, 독립한 여성으로서 홍콩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었다. - 본문 76쪽에서
난 이런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이 한갓 환영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역겨움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인간이 이따금씩 혼돈 속에서 창조한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그린 그림, 그들이 지은 음악, 그들이 쓴 책, 그들이 엮은 삶. 이 모든 아름다움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것은 아름다운 삶이죠. 그건 완벽한 예술 작품입니다. 266
그것은 '길'과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걸어가는 영원한 길이지만, 어떤 존재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물과 무이지요.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들이 자라나고, 모든 것들이 그것을 따르며, 마침내 그것을 모든 것들이 돌아갑니다. 각이 없는 네모이고, 귀로 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형태 없는 상입니다. 그것은 거대한 그물이고, 그물코는 바다처럼 넓지만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의 피난처가 되는 성소입니다. 그것은 아무 곳도 아니지만 창문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망하지 않기를 소망하라고 그것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비천한 사람이 온전히 지속됩니다. 굽히는 사람이 똑바로 섭니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고 성공은 실패가 도사린 함정입니다. ...... 위대함은 스스로를 극복한 자의 것입니다. 267
"현실의 땅 위에 조용하고도 평화롭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부인과 내가 유일합니다. 수녀들은 하늘 위를 걷고 당신 남편은..... 암흑 속을 걷죠." 145
"죽음은 모든 걸 무서우리만치 시시하게 만들어 버려요."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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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이 작품은 내가 인물보다 이야기를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아 쓴 유일한 소설이다. 인물 간의 관계와 줄거리를 설명하기란 어렵다.
진공 상태의 인물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법이다. 일단 인물을 먼저 설정하고 나면 그가 어떤 상황 속에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등장인물과 그의 주된 행동만큼은 동시에 발휘된 상상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이야기에 맞게 등장인물들이 선택되었기 때문에 나는 점진적으로 캐릭터들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내가 오랫동안 각기 다른 상황에서 알고 지내 온 사람들을 재료 삼아 탄생했다.
서머싯 몸
나오미 와츠와 에드워드 노튼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아름다운 풍광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죽음들, 키티역을 맡은 나오미 와츠가 아이들을 돌보며 황량한 수녀원에서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느를 치는 장면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소설은 영화와 다르다. 결말도, 심리도. 이야기는 키티라는 여성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월터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온 키티의 성숙한 모습과 돌아오지 못한 월터 캐릭터는 이 소설이 통속적인 연애소설의 틀에서 벗어남을 보여준다.
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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