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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의 빛 마고한국=>환국.배달국.한국. 부여.고구려.대진.고려.조선.대한민국
신라 박제상이 편찬했다는 [부도지]에 기록된 마고는 1만년 해민족사의 우리 시왕모가 되고,마고성은 우리 해민족의 본향이 된다.
마고성이 문을 닫고 황궁씨는 마고에게 복본을 맹세하고 마고성 북쪽의 험준한 천산지역으로 들어가 도를 닦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고성은 천산 남쪽이 되는 셈이다.
천산은 인류 최고의 문명이라는 홍산문명이 일어나 요하지역에 있다. 그리고 홍산인들은 여신상을 만들고 여신전을 만들어 여신을 섬기고 제사를 지낸 것으로 밝혀 졌다. 여신상은 가부좌상을 하고 있다. 바로 도를 닦는 명상수련의 자세를 하고 있어 마고에게 복본(원시반본)을 맹세한 황궁씨가 남긴 유물이 틀림없다할 것이다. 홍산인들이 남긴 유물이 옥인데, 제주도에서 출토된 옥유물이 홍산지역보다 연대가 수천년 올라 간다. 이것은 바로 요하지역 천산 남쪽인 서남해 지역이 마고성 지역임을 분명히 증명해 주는 고고학적 증거다.
[부도지]기록은 황궁씨의 후손이 유인씨이고 유인씨 1천년 후에 환인씨가 출현한다. 홍산.내몽골지역에서 흑피조각상들이 수없이 발굴되고 있다. 바이칼호수 가운데 섬이름은 알혼섬이다. 알혼은 알+혼의 결합어다. 알은 둥근 해를 의미하고 혼은 정신을 의미한다. 바로 해(태양) 정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말 <해>는 고대 마고성 지역에 해당하는 서남해 해양세력을 의미하는 <왜>로도 발음되며, 환하게 빛나니 <환>이라 불리우고 일곱무지개빛 색의 뿌리가 하나이니 하나를 의미하는 <한>이라 불렀다. 바로 서남해 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인들이 사용한 순한국말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동방의 중심땅이 해땅 한반도인 것이다.
한반도인들이 만주를 거쳐 중국대륙이나 유라시아 초원으로 이주하면서 <환.한>은 <간.칸.안>으로 변음화된 것이다. 12환국연방의 대통령되는 <환인>은 해처럼 빛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니 널리 온누리를 이롭게 다스리는 통치자를 칭하는 말이다.
한국의 전국사찰 대웅전에서 모시고 있는 <환웅>도 해처럼 환한 사나이을 의미하는 말이니 통치자를 의미하며, 해에 반사시키면 환하게 비추는 청동거울을 목에 걸고 홍익광명정치를 다짐했던 <환검도 해임금을 의미하니 <해>는 우주만물의 근원이며 우주만물질서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상징으로써 고대부터 우리 선조들이 <신으로 삼은/환단고기>것이다.
그래서 3신 상제 하나님을 상징하는 대상이 해라면 해와 같은 통치자들은 해의 분신이라는 의미로 천자라 칭한 것이다. 3신 상제 하나님이 천제라면 자신들은 분신이니 천제지자, 곧 천자라 칭한 것이다. 그래서 후한의 채옹은 천자문화는 동방에서 나왔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지구땅을 기준으로 보면 중심땅이 한반도와 만주의 동방이니 만큼 지구상에서는 천상이 동방이 되기 때문에 한반도와 만주를 다스리는 한국의 임금들은 천제.천왕.천황이 되는 것이고, 천제의 자식들이 다스리는 제후국들은 천자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마고할머니를 성황당에서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남해 지역에서는 둥근 돌맹이들을 성황당에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며 신성시했다. 바로 알혼신앙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남해의 마고 알혼정신이 둥근 원형제단을 만들어 해에 제사를 지낸 황궁씨와 유인씨를 거쳐 바이칼호 지역까지 전해졌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유인씨의 후손 환인씨가 이주해 갔을 시베리아와 흑룡강지역의 샤먼신앙 역시 농경과 어로지역인 서남해 지역의 당골래 대동굿 문화을 이어 받은 것일 수 밖에 없다. 단지, 초원이 수렵지역이기 때문에 사냥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는 남성중심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환단고기]기록에 따르면 유인씨의 후손 환인씨는 천해 동쪽 파나루산아래 파나루산을 세우는데, 12환국을 거느린 중심국가다. 천해는 바이칼호수이고, 천해동쪽 파나루산은 대홍안령산이라고 해야 정확히 맞다. 그리고 파나루산 아래지역이라고 했으니 중국인들이 숙신으로 기록한 만주지역이 정확히 맞는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가 일어난 압록강 지역에서 <환인>이라는 지명이 이어져 내려 온 것이다.
황궁씨의 홍산인들은 모계.농경문화이고, 황궁씨에서 나온 유인.환인씨는 초원.수렵지역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부계.유목.수렵문화일 수 밖에 없다. 수렵생활은 사냥무기가 발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제철.전쟁문화가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수렵족인 환웅족이 농경족인 곰족을 정치적으로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그리고 환웅족과 곰족은 공통적으로 뿌리가 마고이기 때문에 명상수련을 통하여 신를 만나고 도에 달하는 신도문화가 발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주를 중심으로 유라시아를 홍익덕치로 다스렸던 환국의 <천부인>을 받고 12환국의 통치권을 이어받은 커발환(크게 빛나는 해) 환웅천왕이 동방의 삼신산이 되는 불함태백산(백두산)에서 나라를 열었다. 불함태백산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흑요석은 유라시아 석기문명을 변화시키는 금자탑이였다.
또한 불함태백산의 흑요석은 중국문헌에 <숙신>기록된 한인한웅한국민족의 장거리 활(맥궁)과 함께 최고 화살의 무기로 사용되어 우리 민족을 활의 민족으로 만들어 중국대륙과 유라시아 초원을 지배하게 만들었다.
배달(해땅=밝땅)국 시대가 1565년간 이어져 내려 오는 동안 환웅천왕은 그 지역의 원주민인 곰을 토템으로 하는 곰족과는 융화하고 통혼을 하였고, 범을 토템으로 하는 호랑이족은 무력으로 정복하기도 했다.
시기.질투.음해.비하.매도는 심리적으로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법이다. 일본왕실의 뿌리가 한반도에서 나온 일본의 제국주의가 역사적 열등감에서 곰의 자식으로 비하매도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사실 곰족과 호족을 지칭한 것이다.
신시는 피라미드의 도시라는 의미다. 배달국이 일어난 백두-압록강지역은 세계 피라미드의 시원지역으로 세계에서 적석총이 가장 많이 분포된 지역이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이주하여 대형 피라미드를 건설한 주역이 바로 백두산과 압록강중심의 우리 배달민족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피라미드문명과 아메리카 남미대륙의 인디언들의 피라미드 문명이 바로 고대 한반도의 압록강 지역 사람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건설한 한국문명이다.
신시 배달국의 마지막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황이 웅씨 단국의 왕녀와 결혼하여 신묘(辛卯)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아들을 출산하니, 그가 바로 단군한국을 개국하고 3한국으로 나누어 통치한 초대 단군임금인 해(한)왕검이시다. [환단고기]기록을 보면 웅족 중에서 단국이 가장 강성했다고 기수라고 있는데, 단국은 고고학적으로 비파청동검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는 지금의 요서지역이라고 본다. 비파청동검이 바로 단군왕검과 단군한국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단군왕검은 14살 때, 웅씨 단국의 비왕(裨王, 임금을 보좌하는 으뜸 가는 벼슬)으로 봉해 졌다가 38세 때 만주지역의 9환족을 다시 통일하여 도읍을 송화강 부근의 아사달(하얼빈)에 세우고 나라를 세웠다.
단군한국 개천 1565년(BC 2333년) 10월 3일, 초대 단군왕검은 삼신 상제 하나님께 천제를 올리고 나라이름을 ‘한국’이라 했다. '조선'이란 국호는 22대 색불루 단군임금때 변경한 나라이름이다. 이 때 중국에서는 배달족의 요임금이 즉위를 하였는데, 초대 단군왕검과 동시대를 이룬다.
단군왕검(檀君王儉,본래는 단군임검檀君壬儉인데 ‘임금’을 이두식으로 ‘왕검’이라 표기한 것이다)에서 ‘단군’은 소도제천을 주관하던 제사장으로 천군(天君)이라고도 하며, ‘왕검’은 통치자(임금)를 뜻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제정일치사회의 최고 제사장이자 최고의 통치자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강화도 마리산에 가면 참성단(塹城壇)이 있는데, 그것이 초대 단군왕검이 88세 되던 해에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고, 91세에 친히 하늘에 계신 상제하나님께 천제를 올렸던 곳이다.
그리고 초대 단군왕검 재위 시, 중국에서 큰 홍수가 일어 났다. 순임금이 단군왕검에게 치수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자, 이에 단군왕검은 네 아들 중 장자인 부루태자를 보내어 선진문물인 ‘5행치수법’을 전수시킴으로써 중국의 9년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단군한국(조선=대부여)은 BC 2333년 ~ BC 238년까지 2096년 동안 47대의 왕위가 이어 졌다. 고고학에서 한반도와 만주,요서지역의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BC 240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가 바로 단군한국의 개국시점인 것이다.
단군왕검은 전국을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통치했다. 아사달(하얼빈=>장춘=>심양)을 수도로 한 신한(辰韓)은 단군왕검이 직접 통치했고, 당산시를 중심으로 한 불한(番韓)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막한(馬韓)은 부단군을 두어 통치하게 했다. 이러한 통치제도를 3한관경제(三韓管境制)라 하는데 이는 애국지사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밝힌 바 있다.
단군한국시대는 3단계로 구분한다. 초대 단군왕검부터 21세 소태 단제까지(BC 2333~BC 1286) 1048년간을 ‘송화강 아사달 시대’라 부른다. 이후 국호를 조선으로 바꾼 22세 색불루 단제부터 43세 물리 단군까지(BC 1285~BC 426) 860년간을 ‘백악산 아사달(장춘)시대’, 국호를 대부여로 바꾼 44세 구물 단제부터 47세 고열가 단제까지(BC 425~BC 238)를 ‘장당경 아사달(심양) 시대’라 한다. 장당경 아사달은 훗날 고구려의 후예인 청나라가 일어난 곳이다.
이렇게 47대를 이어 온 단군한국이 말기에 이르러 통치기능을 상실하면서 고열가 단제의 혈족(종친)이 되는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군대를 일으켜 5가 공화정을 장악하고 대부여를 그대로 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만주을 직할영역으로 삼고 있던 진한의 3한국 통제가 어렵게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도 이 때 봉건제 국가인 주(周)나라가 통치력을 잃어 가면서 진시황의 진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춘추전국시대로 접어 들었는데, 한국사와 유사한 시대상을 보였다.
은나라에서 망명한 기자의 후손이 되는 기후가 연나라 침략을 물리치고 불한국 단군에 즉위한 기자조선를 망명한 위만집단이 강탈하면서 대부여는 서쪽 영토를 상실했고, 기자조선의 유민들이 대거 막한국의 한반도로 이주하여 유민국가들을 세우면서 막조선 역시 분할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공식국호/고리=고려)에 의해 평정될 때까지 <열국시대>라는 이름으로 동부여.읍루.최씨 낙랑국.옥저.동예.맥.남3한.왜 등 많은 제후국들이 각기 독립된 정치세력을 이루기 시작했다. 만주의 부여는 고구려가 평정하고, 남3한은 백제.가야.신라로, 열도는 수 많은 왜국들로 난립하다가 결국 가야와 백제가 중심지로 삼게 되는 오사카 지역의 야마토왜로 평정되었다.
<왜>를 이민족으로 생각하는 사학자들이 많은데, 이는 큰 착오이다. 왜는 고대에 영산강 지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해양을 개척하고 해양무역을 주도했던 단군한국의 해양세력으로 이해한다면 이민족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9환족이 [환단고기]기록에는 자주 등장하는데, 9환족은 12환국과 배달국의 중심부족으로 아홉겨레라고 부른다. 이 아홉겨레를 한자로 9려가 되고 우리말로 구리.고리가 된다.사마천의 <사기>에서 치우천왕을 구려의 천자라고 기록한 배경이기도 하다.
해모수와 고추모의 선조나라 이름이 고리국인데, 단군한국 시기에는 홍산문명이 일어난 요서지역에 있었다. 고구려의 성의 특징이 ㄷ자인데, 홍산문명의 유적지에 가면 전형적인 고구려 성터의 모양이다. 고구려의 기원이 고리국이 존재했던 요서지역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리족은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부여 침략시기에 몽골초원이나 만주로 이주하여 흑룡강지역에 고리국을 재건한 것이라 본다.
부여사에서는 그래서 해모수를 고리국 사람으로 기술하고 있고, 부여의 동명왕 고두막이 태어난 흑룡강 지역의 고리국을 원부여나 북부여라고 보고 있다. 분열된 몽골족을 통합하고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징기즈칸의 선조들도 고리국이 존재했던 흑룡강 지역에서 몽골 초원의 오논강으로 이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리족이나 부여인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여에서 나와 충청도에 세운 백제가 열도를 지배한 가야계를 제압하고 멸망 후에 일본이 되고, 남하하여 경상도에 세운 사로국이 부여족이고, 서진한 불가리아(부여+고리)가 부여고리족이다.
단군조선의 갈래인 흉노는 유라시아 초원과 중국 북부지역을 지배하며, 흉노전법으로 역공격을 했던 한나라의 정벌이후 분열되어 유럽에 헝가리 국가를 세워 기독교문명으로 동화되었으며, 5호 16국 시대에 중국대륙에 여러 나라들을 세웠으나 중국화되었으며, 흉노계 신나라가 망한 후에 한반도 경상도 지역으로 이주하여 신라.가야를 세운 흉노족은 토착한국화되었다.
신라가 망한 후에 신라부흥운동의 실패와 함께 한반도에서 만주로 이주한 신라 경순왕의 손자이자 마의태자의 아들인 김행의 후손은 여진족을 통합하여 아골타 시대에 김나라를 세우게 되고, 금을 계승한 누루하치의 청나라는 몽골의 원나라를 초원으로 몰아내고 중국대륙을 차지한 전남 해남출신의 고려인 주원장이 세웠던 명나라를 무너 뜨리고 중국대륙을 차지한다.
신라시대에 중국에서 한반도로 이주하여 신라의 벼슬을 했던 이씨가 세운 나라가 조선이다. 이씨는 탁발선비족인 북위(수)에서 나온 당나라 이세민의 혈족으로 보아야 한다. 이세민의 아버지는 백제와의 10년 전쟁에 북위 장군으로 출전한 선비족이였다. 따라서, 조선왕조를 세운 이씨족은 선비족이다. 명나라로부터 개국의 승인과 함께 <조선>이라는 국호까지 받은 이성계의 조선은 불한국으로 망명한 은나라의 성인 기자를 숭상하여 평양에 기자묘를 세워 제사를 지냈다. <조선>이라는 국호까지 지어준 명나라 주원장은 우리 민족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왕조는 명나라를 상국으로 삼고 500여년간을 소중화 국가로 나라를 유지했다. 일본 제국주의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사를 기록한 위대한 고서들을 전국적으로 수집하여 보지 못하게 금서들로 삼았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중국보다 더 위대하다는 내용을 백성들이 보지 못하도록 중국에 대해 알아서 엎드린 셈이다.
이러한 조선왕조의소중화주의는 300여년간 조선권력을 장악한 노론집단이 정조이후 부패한 노론권력에게 수탈당한 동학농민들의 민란이 일어나자, 청나라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고, 강화도 조약을 통하여 한바도침략을 위한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낸 일본이 군대를 파병하게 되는 명분을 주게 되고, 결국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노론집단은 알아서 을사늑약을 통하여 일본에 국권을 넘겼고, 일본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해산하며 조선을 식민지화했던 것이다.
일본은 민족사부터 말살하기 위하여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축소날조조작하게 되니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했던 친일부역자들이 현재 대한민국이 국립대로 삼고 있는 경성제국대(서울대)에 둥지를 틀고 대한민국 사학계를 장악했던 것이다. 일본은 민족혼과 우리말까지 없애기 위해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고, 전국에 신사를 만들어 일본(백제)천황에게 절하게 하였다.
아마도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미국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 일은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는 영구히 일본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명분으로 빼앗은 식민지 지도를 보니 고대 백제의 22담로지역하고 일치했다. 일본은 고대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동아시아 전쟁을 일으켰던 셈이다.
열도와 중국에 한류문화를 적극적으로 전파 정착시켜 군국주의를 약화시키고 홍익주의를 강화시켜 동아시아 평화공존을 대한민국이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선족과도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통하여 통일한국 후에 대한민국 영토를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고대 동부여 지역으로써 풍부한 농경지역이였던 연해주도 정부차원에서 기업차원의 농경정책을 통하여 통일한국 후에 우리의 영토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최소한 통일한국의 국경선은 요하까지여야 한다. 그래야 선조들을 뵈올 면목이 있게 된다.
그리고 동아시아와 세계의 민심을 사로 잡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무기는 핵무기도 아니요, 바로 홍익정신이 깃든 한류문화임을 잊지 말고 정부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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