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군의 특산물 중에는 율무나 콩도 있지만 메밀도 있다. 미산면에는 메밀만 심었다 하여 ‘뫼물논’이라는 지명을 가진 논밭도 있을 정도니 생각보다 역사도 깊은 셈이다.
메밀이 나는 곳에 메밀국수가 따라 나서지 않는 곳은 없다. 특히나 국수대를 눌러 타박타박한 반죽을 내린 메밀 막국수는 강원도 뿐만 아니라 연천군에서도 꽤나 유명한 음식이기도 하다.
평화누리길 12코스를 걷다보면 거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만나게 되는 역이 신탄리역이다. 이 신탄리역에서 12코스의 최종 도착지인 역고드름까지는 약 4km 이내이다. 배를 채우고 가던가, 역고드름까지 왕복하고 돌아와 식사를 하던가 그야 걷는 이 마음이다. 다만 신탄리역에서 식사를 할 생각이라면 이 곳은 최상위 리스트에 꼽을 만 한 곳이다.
30년 전통, 건물은 거기에 10여 년은 더 되어 보인다.
김태일 GNSS 조사팀장에게 신망리역의 ‘유일 순대국’을 대접하고 나니 자연스레 연천 근처의 맛집에 대해 서로 신나게 이야기하며 걷게 되었다. 마침 둘 다 군 생활을 한 지역이 파주/연천이고 적잖이 최전방에서 시간을 보낸지라 어디에 무엇이 있다! 하면 바로 상상이 될 정도였다.
“혹시 신탄리역에 막국수 아십니까?”
“아, 예전에 한 곳에서 먹어 본 기억이 있어요.”
“거기 혹시 닭날개도 나오고 도로가에 있는 집 아닙니까?”
“음,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 제대로 막국수와 닭날개 맛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아는 곳이 아닌지라 김태일 팀장은 한 껏 의기양양이다. 나 역시 자전거 도로를 15km 가까이 걷는 12코스의 후반부, 그 뙤약볕과의 싸움에서 시원한 막국수를 마다할 리 없다. 생각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닭날개? 이것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닭날개라…백숙에서 닭날개만 뗀 것은 아닐 것이고… 근처에 군부대가 많고 미군부대가 있는 동두천도 가까운지라 최대한 생각을 해 본 것이 멕시칸 윙이었다.
사실 막국수와 멕시칸 윙의 만남이라는 것이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그 역시도 지역의 문화가 만들어 낸 또 다른 맛의 발견일 수 있겠다 싶었다.
가격이 매우 착실한 업소다.
’30년 전통 즉석 손반죽’이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을 만난다. 건물만 본다면야 거기에 10년은 훌쩍 되어 보인다. 우리의 시계를 이 신탄리역 주변에서 얼마나 더 뒤로 돌려야 할 지 모를 정도. 시간이 멈춘 듯 한 그 건물이 마음을 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실내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테이블도 있고 방도 있다. 벌써 인근 고대산을 다녀온 등산객들로 인해 테이블엔 자리가 없다. 가격이 참 착실하다.
“이모님, 여기 닭날개 한 접시랑 물막국수 두 개요!”
아는 이가 시켜야 정답이다. 기본적으로 막국수에 닭날개 하나 씩 나온다 한다. 여기에 5개 한 접시면 총 7개다. 닭날개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해 참을 수 없다. 슬쩍 물어보니 이 친구, 일단 맛 보라는 듯 애매하게 답을 한다.
“굉장히 쫀득쫀득합니다.”
당췌 감이 안 잡힌다.
이것이 그 ‘닭날개’다. 정말 닭날개네?
먼저 닭날개가 상에 오른다. 7개로 싸우지 말라는 듯 인심 좋게 하나 더 주셔서 8개다.
이것은 치킨도 아니고, 백숙도 아니다. 튀김도 아니고… 도대체 이것이 뭘까? 무언가 딱딱하고 마른 듯, 처음 접하는 모양새에 솔직히 당혹감마저 앞선다. 그래도 추천하는 데인 이유가 있다. 손에 하나를 들고 뜯어먹는다.
정말로 쫀득쫀득하면서 닭이 가진 고소한 맛이 응축되어 입 안에 퍼진다. 씹고 뜯는 맛이 제대로다. 세상에, 이게 뭐지? 싶다. 정신없이 뜯다보니 ‘계란이 닭의 알이 맞구나.’ 하고 바보처럼 끄덕이게 된다. 계란이 가진 고소함, 특히 노른자의 그 고소함(사실 흰자가 닭이 되고 노른자는 영양덩어리, 난황일 뿐이다.)이 닭날개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다.
테이블을 정리하는 사장님에게 도대체 어떻게 만든 것이냐고 물어본다.
“닭날개를 기름을 쫙 빼면서 찌고요, 그리고 그것을 잘 건조시켜요.”
아하…그러니 삶는 것과는 다른 식감에 마치 콜라겐처럼 변한 닭껍질의 탄성이 살아나는구나. 단 번에 이해가 되었다.
시원한 물막국수가 나왔다.
걷고 난 후 이 정도는 먹어야 제대로 마무리가 된 셈 아닐까?
드디어 갈증을 해소할 물막국수가 나온다. 뽀얀 국물에 메밀면이 자태를 드러낸다. 깔끔한 꾸미가 오히려 더 식욕을 갖춘다. 색상의 대비가 참으로 아름답다.
추가로 더 넉넉히 넣어 먹으라는 듯 면이 두 덩이가 더 나온다. 감사할 따름이다. 먼저 국물을 먹어보니 생각외로 새콤하다. 그리고 이 구수함과 진득함.
“사장님, 여기 닭 육수 내서 쓰시죠?”
맞다고 한다. 닭을 삶은 육수와 물김치의 국물을 적절히 섞은 것이다. 거기에 물김치가 푹 익은지라 새콤함이 배가 되었다. 내 기준으로는 비치된 식초는 전혀 넣지 않아도 될 정도. 땀을 흘리고 걸은 이에겐 이 만한 충전은 없을 것이다.
약간의 겨자를 첨가하여 면을 풀어 넘긴다. 톡 쏘는 맛에 새콤함이 어우러져 뱃 속이 ‘쩡~’하고 울린다. 이 때 닭날개를 뜯어주니 어느새 내가 걸어온 길도, 더위도 잊혀진다. 허겁지겁 면을 넘기는 내게 김태일 팀장이 한 마디 거든다.
“닭 한마리 시키면 이 닭날개 만든 것처럼 그렇게 쫀쫀한 닭이 한 마리 나옵니다.”
다음 평화누리길 걷기행사 이후 도착지에서의 진행자 회식은 그 닭 한마리가 좋을 듯 하다. 1인 1닭, 1인 1 물막국수의 위업을 이루기로 약속한다.
이 맛을 위해서 더위도 참을 수 있다.
순박한 음식이다. 그 순박함 속에 걷는 이의 피로를 완벽하게 풀 청량감과 시원함, 그리고 영양분이 모두 들어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막국수보다 오히려 초계국수와 조금은 더 닮은 듯 하다. 그 초계국수 또한 더위를 이기는 맛이니 응당히 친척으로 삼을 만 하다.
순박한 맛에 곁들여지는 닭날개의 조화는 맛의 풍족함을 넘어 우리가 가진 다양한 선입견와 고정된 지식을 깨는 즐거움을 준다. 그 자체로도 이 집은 꽤나 의미가 있는 맛집이다. 어디에서 이 만큼의 새로운 경험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길의 마무리가 정말 맛있고 그 곳 외에는 다른 곳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장식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여정이라 할 만 하다. 그런 면에서 평화누리길 12코스는 든든한 보물을 가진 셈이다.
가끔은 맛있게 먹기 위해 그 길을 걷는 것도 용인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탐식자의 궁색한 변명일까?
평양메밀막국수 : 경기 연천군 신서면 연신로 1604 / 031-834-7782
메뉴 : 물막국수 6,000원, 비빔막국수 7,000원, 닭날개 5개 5,000원, 닭 한마리 15,000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