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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조 정 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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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이 멀지 않은 그 산마을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도 무감하게 언제나 한적한 마을이긴 했지만 거센 눈발의 난무 속에서 보니 마을은 그 자취마저 없어진 듯싶었다. 현우는 무심결에 또 눈발이 날리고 있는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눈송이들이 휩쓸리고 뒤엉키며 허공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 설편들이 무슨 생명있는 것들의 공격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저것들이 장인(丈人)을 데려갈지도 모른다. 아까 서울을 떠나면서 문득 스쳐갔던 불길한 예감을 시차(時差) 없이 다시 떠올렸다.
방향을 되돌려 잡은 택시가 다급한 엔진음을 남기며 눈발 속으로 사라져갔다. 현우는 그 불길한 생각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며, 눈은 길조야, 스스로에게 강조했다. 자신들이 결혼을 하던 날, 그 시간에 눈은 푸짐하게 내렸었다. 하객들은 자신들이 겪는 불편쯤 아랑곳하지 않고, 신랑 신부가 앞으로 부자로 잘살 징조라며 하나같이 입을 모았었다. 그 고마운 덕담이 장인의 마음에 어떤 위안을 준 것일까. 평소에는 그리도 말이 없던 분이 굳이 입을 열어, 하늘이 이렇게 보살피시니 너네들은 틀림없이 잘살 기야 하며 힘들게 느껴지는 웃음을 지어 보였었다. 장인이 그 미신적인 말을 믿었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 우연을 계기로 자신의 마음에 가득 담긴 소망을 확신으로 바꾸고 싶었을 것이다. 딸을 시집보내는 날 속울음 울지 않는 아버지가 없다지만 장인의 경우는 그 정도가 보통 이상으로 심했을 것이다. 이북의 고향을 버리고, 딸 하나만을 데리고 내려와 20년을 넘게 살아온 그 특이한 삶의 내력을 생각하면, 그분의 심중이 어떠할 것인가 헤아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의 그 맡 때문이었을까 아내 소엽은 불 켜진 전등처럼 이성적이던 그녀답지 않게 ‘결혼식 날의 눈의 의미’에 구속당해 있음을 현우는 뒤늦게 발견했다. 결혼 한 돌이 되던 날, “오늘도 눈이 오네요.” 소엽은 창 밖을 내다보며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가 하는 정도로 생각하며 현우는 아내 옆으로 걸어가 창 밖에 내리고 있는 눈을 함께 바라보았다. 결혼 두 돌이 되던 날, “어머, 오늘도 눈이 오네요.” 소엽의 평소보다 큰 음성에는 감격이 담겨 있었다. 신기한 우연이군 하는 정도로 생각하며 현우는 창가의 아내 옆에 서서 또 눈을 바라보았다. 결혼 세 돌이 되던 날, “여보, 봐요. 오늘도 눈이 또 오잖아요. 틀림없이 그럴 줄 알았어요.” 소엽은 손뼉까지 치며 눈을 반가워했다. 그러나 현우의 마음에는 걸리는 것이 있었다. 틀림없이 그럴 줄 알았다는 아내의 말이었다. 아내는 두 번 되풀이된 우연을 겪으면서 그 사실을 자신을 위한 필연이라고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내년의 결혼기념일에도 눈은 틀림없이 오리라는 위험스런 기대와 틀림없이 와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당위성을 마음속에 마련한 것이 분명했다. 현우는 그때서야 결혼식장에서 했던 장인의 말을 떠올렸다. 아내는 그 말의 주술성에 구속당해 있을지도 모른
다 싶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수명이나 운수의 길흉을 논하는 말의 주술성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었다. 더욱이 아내 소엽에게 작용하고 있는 아버지의 비중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현우는 창가의 아내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예년처럼 창 밖에 내리고 있는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여보, 금년에는 눈이 안 올 수도 있지 않았소.” “불길하게 그런 말 말아요.” 현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엽이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아내의 그런 당돌한 태도는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우는 아내의 태도를 개의하기보다는 아내의 얼굴에 서려 있는 두려운 빛에 더 마음을 썼다. 그건 참으로 어리석고 어이없는 도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그건 아내가 숨김없이 보여준 나약한 인간적인 일면이기도 했다. “여보, 당신답지 않게 왜 그래.” 현우는 아내 소엽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안았다. 그리고 가만가만히 속삭였다. “하늘의 축복은 한 번만으로도 황공한 거야. 그런데 작년까지 세 번을 받고도 금년에 또 기다리다니, 당신 생각보다 욕심쟁이군. 금년까지 네 번째, 하늘은 참 인심도 후하셔. 아냐, 당신이 착해서 하늘이 베푸신 걸 거야. 당신이 욕심을 더 부리면 하늘이 노할 테니까 이번으로 만족하도록 해. 당신의 이런 욕심을 알면 아버님도 싫어하실 거야.” 현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소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고 싶어요. 두 번째까지는 그냥 기뻤는데 세 번째가 되니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네 번째에도 꼭 눈이 와야만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됐어요. 만약 네 번째에 눈이 오지 않으면 집안에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에 쫓겼어요. 나도 모를 일이에요:” 아내의 고백이었다. 아내가 순순히 욕심을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2년을 더 같은 날 눈이 내렸다. 1월이 아무리 눈이 흔한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6년을 잇달아 같은 날 눈이 내렸다는 사실은 꼭 거짓말만 같았다. 그 거짓말 같은 사실은 그들의 삶을 고무해 주는 내밀한 험이 되어주었고, 언제 어느 때나 내리는 눈은 그들에게 각별한 친근감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 아내도 오늘만은 거세게 퍼봇는 눈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낀 것일까 종로 5가에서 의정부행 택시에 오르면서 “무슨 놈의 눈이 이렇게……” 했던 것이다. 눈은 길조야 하고 스스로에게 강조한 말이 가슴에서 공허하게 울리는 것을 현우는 느꼈다. 담배를 더 깊게 빨아들였다.
아내 소엽은 벌써 뒷모습이 희끗거릴 만큼 눈발 속에 멀어져 있었다. 아내의 모습이 먼데도 불구하고 그 걸음걸이가 몹시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건 길이 미끄러워서가 아니었다. 현우는 어지러운 눈발 속을 뛰기 시작했다.
현우는 아내의 왼팔을 부축했다. 아내의 몸이 떨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떨림의 파장은 현우의 가슴에 그대로 바늘 끝이 되어 꽂혀왔다. 아내가 겪고 있는 아픔이 어떠할 것인지를 현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여보, 여보…….”
현우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 잡으며 간곡하게 말했다. 그건 일상적인 호칭이 아니었다. 분명 말이었다. 아내와 장인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총체적으로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말이 그것이었다.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그 이상의 어떤 말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여보…….”
아내가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것도 아내 소엽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일 것이었다.
개울의 엉성한 나무다리를 건너면 이내 산마을이었다. 다리를 건너자 아내의 불안정한 걸음은 한층 빨라졌다. 장인이 기거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가라고 이름 붙여야 하는 볼품없는 집이 그나마 눈에 덮여 평소의 누추를 가리고 있었다. 한 달에 두 차례씩은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집이면서도 도무지 처가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처가 식구들이 아무도 없이 장인 혼자만 살기 때문이 아니었다. 집이 낡고 작기 때문은 더구나 아니었다. 이 마을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향민이듯 장인도 이곳에서 임시의 삶을 살기 때문이 었다.
아내는 집을 10여 미터 앞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여보, 아빠가·…….”
아내의 음성이 절박했다.
“여보, 아니야.”
현우는 아내를 보며 고개까지 저어 보였다. 아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고 있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고, 서른일곱 살인 아내 소엽은 ‘아빠’라는 호칭을 결코 바꾸지 않았다. 시집가는 것을 계기로 ‘아버지’나 ‘아버님'으로 바꾸면 아버지와 영영 타인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거리감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좀 듣기가 거북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소엽은 양해를 구해왔었다. 현우는 그들 부녀의 남다른 정까지를 아끼는 터여서 이해하고 말고가 없었다. 한민섭이라는 외롭기 그지없는 사람한테서 딸을 빼앗아버려 더욱 외롭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현우에게 아내의 그런 변함없는 태도는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다.
“절대 아니야, 어서 들어가자고.”
현우는 아내의 어깨에 소복이 쌓인 눈을 털어내며 말했다. 소엽은 반쯤 열린 사립문을 들어서며 벌써 울음 덩어리를 쏟듯 아빠를 불렀다 덜컥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얼굴은 약산댁 이었다.
“어드케 이리 빨리들 오디.”
약산댁이 쪽마루로 나오며 그들을 맞았다. 그녀는 장인의 식사며 빨래 등을 맡고 있는 옆집의 노인이었다.
“아빠가 어떻게 위독하세요?”
소엽이 눈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쪽마루로 올라서며 다급하게 물었고, 약산댁이 막아서듯 하며 소엽의 손을 잡았다.
“의원이 벌써 다녀갔는데…… 임종이 가까웠다는 기야.”
“아빠!”
소엽이 약산댁의 손을 뿌리치며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약산댁이 노인답지 않은 빠른 동작으로 소엽의 팔을 붙들었다.
“동규 어마니도 자식을 키우는 어른이니 다 알갔지만, 부모가 편안히 눈감게 하려믄 임종 지키는 자식들이 의젓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기야. 그게 자식 된 도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효도니끼니.”
약산댁은 낮으면서도 힘이 들어가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우는 그런 노인의 모습에서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엄함을 느끼고 있었다.
“할머니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현우는 아내를 대신해서 말했다.
“기럼, 그래 야디.”
약산댁은 머리를 주억거리고는 현우의 손을 끌어다가 자기가 붙들고 있던 소엽의 팔을 넘겨주었다.
“밤 넘기기가 어려울 기구만. 한 많은 한평생 끝을 못 보구 결국 타향에서 죽누만, 불쌍한 녕감님…….”
약산댁은 거친 눈발을 멍하니 바라본 채 중얼거리듯 하고 있었는데, 주름살이 뒤덮인 메마른 얼굴에는 쓰디쓴 울음이 번지고 있었다.
“여보·…….”
현우는 아내의 어깨를 감싸 잡아 지그시 미는 것으로 방으로 들어가자는 말을 대신했다. 그런데 아내의 어깨는 현우의 팔에 거부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현우는 그때서야 마릇바닥으로 후둑후둑 떨어져내리고 있는 아내의 눈물을 보았다. 아내는 그 눈물을 추스를 여유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우는 슬프고 가엾은 아내의 모습에서 8년 전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자신은 철없는 한 마리의 새끼로 해체되는 아픔을 체험했었다. 어머니의 기구한 생애와 예상하지 못했던 죽음의 원인 같은 것들 때문에 그 아픔은 더했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경우가 결코 자신의 경우에 못지않다는 것을 현우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내는 앞서 방문을 열었다. 현우는 아내를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갔다.
작고 어둠침침한 방 아랫목에 장인은 반듯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이미 숨이 끊어져버린 시신처럼 느껴졌다. 아내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아빠…….”
무너지듯 무릎을 꿇은 아내가 이불 속을 더듬어 장인의 손을 찾아냈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뼈만 남은 앙상한 손을 아내는 보물을 다루듯 두 손으로 받쳐 감쌌다. 앙상한 손은 유난히도 희었고, 본래 긴 손가락들은 더욱 길어 보였다.
“아빠…….”
아내 소엽은 아버지의 손을 볼에 비벼대며 오열하고 있었디. 아내의 손의 냉기가 전해진 것인지 움푹 꺼진 장인의 눈이 더디게 뜨였다.
“소, 소엽이가…….”
장인의 목소리는 먼 메아리 같았다
“아빠…….”
아내의 음성이 격해지며 상체가 장인 쪽으로 쏠렸다.
“니, 니 혼자 왔네?”
“아버님, 저 여기 있습니다.”
현우는 장인이 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앉았다.
“강 서방도 왔어야디.”
목소리만큼 희미한 미소가 지어지는 듯 흐려졌다. 현우는 순간적으로 장인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느꼈다. 그분은 언제 한번 이런 말을 한 일이 없었다. 한 달에 두 번꼴로 찾아올 때마다, 뭐하러 왔느냐는 말을 지치지도 않고 했었다. 그건 사위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담은 인사였다.
“강 서방, 이리, 이리 오라우”
장인은 이불 속에서 손을 꺼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동작마저 용이하지가 않았다. 소엽이 재빨리 이불 깃을 젖혔고, 현우는 발치께로 돌아 장인의 왼쪽에 가 앉았다. 장인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기를 원하고 있었다. 현우는 두 손으로 장인의 손을 감싸 잡았다. 자신의 손이 차가울 것인데도 불구하고 장인의 손에서는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장인은 손을 잡힌 것에 만족할 수 없는 듯 손가락들을 더듬거려 자신의 손을 잡고자 하고 있었다. 현우는 장인의 손에 자신의 한 손을 잡혀주었다.
양쪽 손에 딸과 사위의 손을 나눠 잡은 장인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때 소엽의 얼굴에 당혹감이 나타났다. 현우는 아내의 눈앞에 손짓을 해보였다. 아내의 어깨가 늘어뜨려지며 억제하는 안도의 숨결이 흐느낌처럼 굴곡을 이루는 소리를 현우는 듣고 있었다. 장인의 핏기 없이 깡마른 얼굴은 그런대로 평온해 보였다. 33년 동안의 기다림과 방황으로 지친 모습이 바로 그 얼굴이었다.
눈꺼풀이 파르르파르르 떨리더니 장인은 힘겹게 눈을 떴다.
“지금두 눈이 많이 오디? 그, 그때두 그때두, 1·4 후퇴, 그때두 꼭 금년테럼 춥구 눈이 많이 왔었디.”
장인은 마치 헛소리를 하듯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장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분은 또 흥남부두와 거기서 잃어버린 아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그분의 평생을 지배하고 매질해 온 기억일 것이었다
“아빠…….”
소엽은 흐느낌을 삼키며 아버지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장인의 양쪽 눈 꼬리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눈물이었다. 관자놀이께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엽이 닦아냈다. 현우도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냈다. 그러면서 현우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도 임종이 임박해서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몇 년을 감추어왔는지 모를 그 말을 남긴 것이다.
장인의 눈이 다시 스르르 감겼다. 현우는 머리 끝이 쭈뼛해지는 느낌과 함께 장인의 얼굴로 시선을 모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현우는 아내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아내는 입술을 깨문 채 옹케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은 연이어 볼을 타고 내렸다. 저 사람이 아버지를 잃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그 해답이라도 되는 듯 두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디. 현우는 그때서야 애들이 옆에 없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방학이니까 애들은 집에 있는 것이다. 아내는 경황 중에 애들을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일끼. 아니면 이렇게 갑작스런 임종을 맞게 될지는 모르고 떼어놓고 온 것일까 장인은 별로 말이 없는 가운데 두 외손자를 짙게 사랑했다. 아이들은 저희들이 먼저 그걸 아는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를 시샘하듯 따랐고, 다투어 외할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정이라는 것은 저절로 스미고 번지는 것이지 말로 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장인이 두 외손자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은, 그분이 다 늙은 몸을 추슬러가며 두 아이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그건 장인이 생계를 위해 그렸던 초상화 같은 것이 아니었다. 20호 정도 크기의 본격적인 유화였다. “아빠가 엄마를 그린 아홉 장의 그림 말고는 최초로 그리신 그림이에요.” 아내가 그림 앞에서 울먹일 정도였다. 두 아이가 손을 맞잡고 활짝 웃으며 뛰고 있었고, 반추상으로 처리된 화사한 색감의 배경은 꽃밭과 신록이 어우러진 표현이었다. 두 아이의 모습도 얼굴 부분만 세필을 가해 닮게 그렸고, 나머지 부분은 개성적인 터치의 생략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인은 두 아이의 뛰고 있는 모습에서 아이들다운 발랄한 약동감을 표현하는 동시에 아이들한테서만 찾을 수 있는 유머스러운 순간을 포착하는 세심한 관찰력을 보이고 있었다. 둘째인 딸 경미의 짧은 치마가 걷혀진 아래로 팬티가 살짝 드러나 보였고, 첫째인 아들 동규는 허리띠가 풀어헤쳐진데다가 한쪽 발에는 운동화가 신겨져 있지 않았다. “할아버지, 난 몰라. 빨랑 할아버지가 물어내, 난 창피해 죽겠단 말야.” 여섯 살짜리 경미는 조막손으로 외할아버지의 등을 때리며 울상이었고. “우리 경미가 와 창피해. 창피하자믄 오빠가 더 창피하디. 핵교 댕기는 학생이레 혁대는 다 풀어디고 운동화 한 짝은 또 어디메다 팽가텄나. 혁대가 다 풀어뗐으니 곧 바지가 흘러내려 오빠두 빤쯔가 보이게 될 기야.” 장인은 아픈 시늉을 해가며 이렇게 변명하기에 바빴다. “흥, 할아버지 싫어. 오빠만 그렇게 그리구 난 예쁘게 그렸어야지 뭐. 나 할아버지하고 안 놀 거야” 경미는 토라져서 제 어머니한테 가서 안겼다. “저건 웃겨. 지가 팬티 보이게 뛰지 않았음 되잖아.” 아들 동규가 마땅찮다는 듯한 마디하며 동생쪽으로 눈을 흘겼다. 동규를 그런 식으로 그리지 않았더라면 장인은 경미의 말마따나 ‘물어내기’ 위해서 그 부분을 고쳐야 하는 곤욕을 치렀을지도 모른다. 현우가 우선 그림을 대하고 놀란 것은, 화폭 전체를 채우고 있는 그 밝고 빛나는 색감 때문이었다. 그건 전혀 의외였다. 항시 회색빛 우울과 스산한 적막으로 덮여 있는 장인의 얼굴에서 그런 색감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이 아빠의 마음속에 그런 색감을 채색해 드린 거예요.” 아내의 이 판단이 맞을 것이었다. 그분은 아이들과 어울릴 때 비로소 웃음을 지었고, 이야기도 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들을 집에 두고 온 것이다. 만약 찾으시면 어떡하나, 현우는 죄를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기억의 어느 구석에선지 간사스럽게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철이 덜 든 어린아이들에게는 노인의 임종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흉한 모습을 잘못 보이면 평생을 앓는 병을 얻게 된다는 말이었다.
부피감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장인의 몸이 갑자기 들먹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힘을 느낄 수 없었던 장인의 손에 힘이 미치고 있음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현우의 가슴이 찡 울려왔다. 어머니의 임종 직전과 흡사한 현상이었다. 현우는 빠르게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이미 두려운 눈으로 자신에게 눈길을 쏟고 있는 중이었다. 현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아내의 얼굴 전체가 금방 씰룩거리며 울음으로 뒤덮였다. 고통스럽게 일그러지고 구겨지는 그 얼굴을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어서 현우는 눈을 떨구었다
그때 장인의 눈 가장자리에 심한 경련이 일어나며 눈이 뜨였다. 헛것을 보듯 눈동자의 초점이 흐렸다.
‘쇼오, 소오, 소엽아·……˙.”
숨결이 한결 거북했고, 목소리가 잠겨들고 있었다.
“아빠 저 여겄어요.”
소엽은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은 통증에 떨며 아버지의 흐린 눈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자알, 자알 살아야디…….”
“아빠…….”
소엽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홈치고 또 훔쳤다.
“가앙 서바앙…….”
“네, 아버님, 저 여깄습니다.”
현우는 아내의 어깨를 밀어내고, 아내가 했던 것처럼 장인의 시야 안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가앙 서바앙…… 알디, 우리 소, 소여비…… 알디…….”
목소리가 완연히 풀려가고 있었다.
“네, 아버님. 네, 아버님.”
현우는 목멤을 삼켜가며 큰소리로 대답했다.
“저, 저, 어마니, 어마니…….”
어느새 현우와 소엽의 얼굴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어마니 그, 그림두…… 나하구…… 나하구…….”
장인의 고개가 무겁게 부려졌다. 마침내 장인은 눈을 감은 것이다.
“아바디!”
소엽이 부르짖었다.
그 짧은 세 음절이 가슴을 쳐오는 아픔을 현우는 어금니로 깨물었다. 아바디 ―그 부르짖음은 현우가 두 번째 듣는 것이었다. 그건 가장 절박한 순간에 아내가 토해내는 소리였다.
아내는 장인의 베개 옆 방바닥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고 있었다. 아내의 어깨며 등줄기가 심하게 요동하고 있었고, 웅크려 엎드린 그 몸피가 유난히 작아 보였다. 아내는 이제 외톨이가 된 한 마리 새였다. 지금 이 순간 남편이나 자식의 존재가 아내에게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음을 현우는 알고 있었다. 아내에게 있어서 장인의 죽음은 단순한 혈연의 이별만이 아니 었다.
밖에서 지키고 있었던지 약산댁이 두 남자와 함께 들어왔다.
“녕감님, 한 많은 세상 편히 가시라요. 딸자식 때문에 가슴 아프갔디만 실한 남편, 착한 자식들 가셌으니 걱정 말고 편히 가시라요.”
약산댁이 합장을 한 채 생시에 대하듯 말하고 있었다. 소엽의 흐느낌 소리가 더 절박해졌다.
약산댁이 소엽을 품듯 해서 뒤로 물러나 앉게 했고, 두 남자가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현우는 두 남자를 돕는다고는 했지만 손길이 자꾸 헛짚이고 두서가 없었다. 손에 익지 않은 일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앙상하게 여위어 있는 장인의 시신을 대하면서 새로운 슬픔이 울컥울컥 솟았던 것이다. 장인의 여윈 몸 마디마디에서 그분이 생전에 지녔던 끝없는 회한의 아픔을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일 치를 채비는 거우 끝내놨으니 강 서방은 날래 애들을 데려와야 하갔구만.”
약산댁이 현우를 일깨우듯이 말했다. 그러잖아도 현우는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간소하게 장례를 치른다 해도 비용을 장만하려면 서울을 다녀와야 했다.
“여보, 나 금방 다녀올게. 택시를 이용하면 두 시간이면 될 거야. 애들도 데려오고 장례비도 마련해야지.”
“아니에요, 돈은…… 제가 가지고 왔어…….”
울음을 애써 추스르던 아내는 기어이 울고 말았다.
“아니, 여보……”
현우는 아내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집을 떠나면서 벌써 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했던 모양이었다.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을 때 아내의 음성은 다급하긴 했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예감하며 돈을 챙긴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현우는 떨리고 있는 아내의 몸을 더 꼭 안았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현우는 눈발이 휘날리는 무한 허공을 망연히 올려다보았다. 그 무수한 설편들이 장인이 53년 동안 품어왔던 회한의 조각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어머니가 저 세상에서 내쉬는 한스런 응고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현우의 의식 속에서는 장인과 어머니가 언제나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건 그분들의 기구한 삶의 동질성 때문일 것이었다.
큰길을 향해 발길을 서두르고 있는 현우의 의식 속에서는 ‘아바디’ 하는 아내의 부르짖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건 단순히 아버지의 사투리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한 호칭 같지도 않았다. 아주 오래고 긴 날에 걸쳐 아내의 피 속에 감추어져 있었거나, 체내 어느 깊은 곳에 숨겨져 왔던 아픔의 응어리가 바로 그 소리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아내와 장인 사이에서만 교감될 수 있는 영혼의 통로 같은 것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첫 번째 ‘아바디’를 부르짖은 사건이 발생한 작년 여름부터 벌써 장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서 여러 가지 6·25 특집 기획물 중의 하나로 준비한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산가족의 추상적인 숫자가 현실적인 숫자로 확인되는 것이 사건이었고, 상봉 불가능의 비현실이 날이 갈수록 상봉 실현의 현실로 늘어난 것이 사건이었고, 제 살기에 바빠 이웃의 아픔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서로서로가 비로소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공동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렸던 것이 사건이었다. 현우네가 그 사건에 휘말려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새로운 상처만 얻게 된 것이었다.
‘이산 가족 찾기’가 방영되기 시작한 이튿날부터 아내 소엽은 안절부절못했다. 소파 끝에 몸을 바싹 오그리고 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그 어떤 것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게 느껴졌다.
화면에서는 신문지 반 장 정도 크기의 게시판을 턱밑까지 바짝 올려든 사람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상태에서 잠깐씩 머물다가 차례로 바뀌고 있었다. 그 머무는 시간은, 방송국에서 통일시킨 형식에 준해서 제각기 적은 내용을 아나운서가 속독으로 읽는 그동안이었다. 접수 번호·찾는 사람 이름·옛날 주소·헤어진 장소나 상황·찾고 있는 사람 이름의 순서로 된 내용을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미처 1분도 되지 않았다. 30년이 넘게 핏줄을 찾아 헤매고 기다려온 세월과 1분이 미처 못 되는 시간과……. 30년에 비해 찰나일 수밖에 없는 시간 속에서 마치도 죄인이 번호판을 들고 찍힌 사진처럼 턱밑까지 게시판을 올려 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깊은 수심과 적막감이 응고된 얼굴들이었다. 그 얼굴들은 기다림에 지치고, 외로움에 지치고, 그리움에 지치고, 세월에 지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얼굴에서 현우는 장인을 보고 있었다. 딸을 결혼시키자마자 누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임진강 가까운 산마을로 부랴부랴 거처를 옮기기 직전까지 22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혜매며 장인이 오로지 한 일이 바로 ‘이산가족 찾기’였다는 것이다.
내일 다시 계속하겠다는 안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면은 조금 전까지의 축축한 슬픔과 끈끈한 비감의 표정을 돌변시켜 호들갑스러운 광고를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굳어진 듯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내의 잔상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그대로의 화면을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우는 얼마 동안 아내를 그대로 놔두고 싶었다.
현우는 담배를 피워 물며 장인의 문제를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해서였다. 어쩌면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먼저 그 캠페인에 접수를 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 것을 따지기 전에 응당 접수를 시키는 것이 마땅한 일일 터인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망설임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만약 상면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장인이 받게될 심적 충격이나 타격 같은 것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장인이 이미 텔레비전을 보고 어떤 행동을 결정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빈한한 산마을이지만 컬러는 아니더라도 흑백 텔레비전은 상당수 갖추고 있을 것이었다. 외로움과 무료를 덜어드리기 위해 컬러 텔레비전을 사드리려고 했지만 장인은 한사코 거절했었다. 공상을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살고 있는데 외롭고 무료하고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러 텔레비라는 것을 보아도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고 했다. 장인의 그 말은 결코 거절을 하기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닌 듯싶었다. 거의가 실향민으로 이루어진 그 마을과 가족 찾기와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일 것이기 때문에 소문도 그만큼 빨리 퍼지게 될 것이었다.
현우는 담배를 끄고 아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소파에 등을 기댄 아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현우는 천천히 일어나 아내 곁으로 갔다.
“여보, 아버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을 좀 해봐야지.”
현우는 나직하게 말하며 아내 옆에 앉았다. 아내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눈자위가 발갛게 눈물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당신 생각은 어떡하면 좋겠어요?”
“글쎄, 내일이라도 찾아가 뵙는 게 어떨까 싶은데.”
“허지만…….”
말을 중단한 아내는 검지손가락 끝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현우는 아내가 중단한 말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에, 만약에 엄마를 못 찾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내는 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말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찾을 때까지는 찾아봐야 되잖겠어.”
현우는 이렇게 말을 해놓고는 자신의 맥 빠지는 말에 그만 짜증이 일어났다
“두려워요.”
아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도 당신과 똑같은 생각을 했어. 그렇지만 이번 방법은 아버님이 지난 20년 동안 하셨던 방법보다 더 효과적일지도 모르거든.”
“어쩜…… 엄마는 이 남쪽 땅에 없는지도 몰라요.”
아내는 흐느끼듯이 말했다. 그 말이 야릇한 슬픔으로 현우의 가슴을 찡 울려왔다. 그리고 뇌리에는 그림으로 본 장모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내 소엽과 거의 흡사하게 생긴 장모는 나이마저도 결혼을 앞둔 소엽과 엇비슷하게 보일 정도로 젊은 모습이었다. 죽은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장인이야말루 2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애타게 찾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헤어진 당시의 나이로 그려서 협소한 초상화 가게의 쇼윈도 위에다 내걸어놓은 것이었다. 그 어머니가 남쪽 땅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적인 아내의 말은 결혼 10년 동안에 처음 듣는 것이었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그런 체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아버지를 걱정하다 보니 즉흥적으로 한 말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걸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묻게 되면 자신이 반편이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내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텔레비전 앞에만 붙박여 눈물을 흘릴 뿐,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화면 속의 열기는 가열되고 있었고, 그럴수록 아내는 휘둘리고 흔들리는 것 같았다. 상면하는 장면이 화면에 담길 때마다 아내는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죽여 울었는데, 그 소리는 고통을 당하는 신음 같았다. 그건 화면 속에서 폭발하고 있는 감격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그 감격과 정반대의 비통에 울고 있는 것이었고, 그 어떤 원색적인 감정의 노출도 보장받고 있는 상면자들의 울부짖음과 통곡은 아내를 고문하는 무자비한 도구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고통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차마 바로 볼 수 없으면서도 현우로서는 속수무책 이었다.
아내의 생활의 질서는 완전히 깨어져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세 끼 밥이야 제때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일은 손을 놓아버린 상태였다. 아내에게 있어서 그외에 다른 일이란 빨래나 청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아니었다. 아내는 주로 아동물 전집을 간행하는 출판사를 상대로 삽화 그리는 일을 맡고 있었다. 아내의 그 일은 결혼과 동시에 출판사를 그만둔 다음에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는 오히려 직장을 그만두면서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일도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셈이었다. 아내에게 일감이 끊이지 않은 것은 우선 그림이 어느 수준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출판사가 필요로 하는 시간을 어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돈보다는 먼저 그림 그리는 일 자체를 자기 삶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래서 누구에게 전혀 표를 내지 않았고, 작업도 낮 시간만을 이용해서 가정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예방했기 때문에 현우는 아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내가 일손을 놓아버린 것을 알게 된 것은 안면이 두터운 ㅂ 출판사 편집부장이 현우에게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당분간 일을 할 수 없으니 딴사람에게 맡기라고 하시는데 그 이유를 말씀 안 하신단 말입니다. 어디가 편찮으신지, 우리가 뭘 섭섭하게 해드린 일이 있어서 그러신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어서 생각다 못해 강 형한테 전화드린 것이니 이해하십시오. 이건 농담인데, 혹시 강 형네 출판사에서 게릴라 작전으로 신간 꾸미느라고 부인 빼돌리는 건 아니오?”
상대방의 헛웃음을 따라 현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보수를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부장으로 앉아 있는 출판사의 일을 아내에게 맡길 현우가 아니었고, 그런 궁색스런 짓을 하지 않아도 아내의 일거리는 언제나 골라가며 맡을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김 형네 출판사 때문이 아니라 아내가 심정적으로 복잡한 일이 생겼어요. 당분간 일에 손대기가 어려울 테니 김 형이 이해하시고 빨리 조처하도록 해주시오. 나중에 내가 한잔 사며 설명하겠소.”
현우가 이런 식으로나마 아내의 일에 개입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방영 시간을 파격적으로 늘리면서 6일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각 신문들까지 가세한 열기는 무슨 민족운동을 벌이는 것 같았다. 아내도 날이 바뀔수록 수척해지는 얼굴로 줄기차게 델레비전 화면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아내는 자기 아버지에 관한 일은 잊어버린 것처럼 한마디도 입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아내는 초조하고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을 현우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먼저 꺼낼 말도 없었다. 현우는 요 며칠 사이에 아내를 대하기가 무척 서먹서먹해지고 있었다. 아내는 조개류처럼 단단한 자기 감정의 집 속에 칩거한 채 상대방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아내의 감정 그 어디에도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음을 의식하며 현우는 이상한 추위를 느꼈다. 그건 쓸쓸함도 외로움도 아니고 이상스런 추위였다. 아내는 명랑하다거나 쾌활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설령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을 타고났다 해도 아버지를 따라 사는 동안에 바뀌고 말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내는 선천적으로 그런 성격을 타고난 것 같지도 않았고, 그래서 더 아버지와 흡사한 분위기의 우수와 정적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현우는 처음 소엽이란 여자를 대했을 때 그 모습에서 문득 어머니를 보았던 것이다. 물론 생김새는 같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어머니와 너무나 닮아 있었던 것이다. 결혼 생활을 통해서 아내는 항시 현우 자신이 안주할 수 있는 따스하고 푸근한 속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일상적인 일을 넘어서 아내와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을 의논하는 것도, 삶의 깊이 있는 문제나 사회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꾸며지는 것도 다 아내가 지닌 내적인 폭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며칠 동안 그 자리를 일방적으로 치워버리고 자기 조가비 속에만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현우가 하는 일이란 아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아내가 겪고 있는 감정의 격랑에 위축당하며 텔레비전 화면을 지키고 있다가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후줄근하게 지친 아내를 부축해서 잠자리로 인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6일째 밤도 마찬가지로 화면을 지키며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내의 눈 가장자리는 그동안 흘린 눈물로 이미 짓무를 지경이 되어 있었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새삼스럽게 놀라운 사실들에 부딪히게 마련이지만, 아내
가 그처럼 줄기차게 여러 날에 걸쳐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현우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눈물주머니가 다섯 배가 크다는 엄연한 과학적 근거를 상기하면서도 아내가 그처럼 줄기차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은 보편적 기준을 넘어선 아내의 특출한 능력처럼 여겨져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우가 이런 시시껄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바디이!”
아내가 느닷없이 부르짖으며 앞으로 내닫고 있었다.
“어, 여보, 왜 그래?”
현우는 갑자기 선잠을 깬 것처럼 어리벙벙한 기분으로 헛소리를 하듯 했다.
“아빠 아빠…….”
텔레비전 화면 앞에 바싹 다가앉은 아내는 마치 어린애처럼 아빠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 애타는 몸짓이 금방 화면 속으로 기어 들어갈 것만 같았다. 현우는 그때서야 화면을 채우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장인인 것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 현우는 무릎이 휘청 꺾이는 충격을 느꼈다.
“……1·4 후퇴 당시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다 합니다. 현재 딸 소엽과 함께 살고 있는 한민섭 씨는 부인이 352에 3247로 연락 주시기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은 접수 번호…….”
현우가 들은 빠른 아나운서의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안타깝게, 참으로 안타깝게,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인의 얼굴은 사라지고 화면에는 늙은 여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도무지 정신을 가눌 수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빨 찾으러 가야 해요.”
아내는 언제 울었냐 싶게 몸을 떨치고 일어나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어디로 간다는 거야?”
현우는 어리둥절해서 물었고,
“저건 생방송예요.”
아내가 쳐내듯이 말하며 휭하니 안방 쪽으로 갔다. 아내의 태도가 표독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우는 괜히 죄진 기분이기도 했고,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지랄같이 찝찝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현우는 넋이 다 빠져 나가버린 것 같던 늙고 지친 화면 속의 장인을 생각하며 그런 기분을 털어버렸다.
어떤 경우에도 아내를 감싸고 다독거려야 했다. 결혼하기 전에, 아내를 사랑하는 밀도로 처가의 색다른 사연을 깊이 이해했고, 자신은 아내와 장인을 부축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다.
택시는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를 향하여 무서운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내는 말이 없었고, 현우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아내는 진작 아버지한테 가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화면에 불쑥 얼굴을 내민 아버지의 처사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떤 면에서는 차가울 만큼 합리적 사고를 하는 아내로서는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일단 접어두고, 방송국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찾아낼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현우의 의식 속에는 ‘아바디’라는 아내의 부르짖음과 화면을 채우고 있던 장인의 얼굴이 가득 차 있었다. 아내가 ‘아바디’를 부르짖는 순간 현우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언뜻 알아듣지 못했었다. 너무 갑작스럽기도 해서였고. 아바디라는 말이 너무 생경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라는 말의 아내의 고향 사투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러자 몸부림치고 있는 아내와 화면 속의 장인 사이에 핏줄 이상의 그 어떤 끈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았다. 긴긴 날에 걸쳐서 같은 병을 함께 앓아온 사람끼리만 통할 수 있는 길이 거기 있었다.
방송국 주변은 자정을 넘긴 밤이 아니었다. 음력 설을 하루 앞둔 하행 열차 대합실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움과 북적거림이 이상하게도 슬픈 음조로 울리고, 가슴을 먹먹하게 적셔왔고, 어떤 엄숙함마저 띠고 있음을 현우는 느꼈다.
아내는 장인의 접수 번호와 이름을 대며 용건을 말했다
“아 따님이십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꾸벅 인사까지 하는 직원은 보기 드물게 친절했다
“아봐 박 형! 여기 상면 또 한 건 발생이야. 빨리 와, 빨리!”
직원은 안쪽에다 대고 신바람 나게 손짓까지 해가며 냅다 소리치고 있었다. 아뿔싸, 그는 말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현우가 손을 저으며 말을 하려는데 아내가 먼저 말을 쏟아냈다.
“아네요, 상면이 아네요!”
소란을 이기려는 듯 아내의 목소리는 카랑하게 컸다.
“네? 뭐라구요?”
직원이 돌아서며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상면이 아니라 그냥 아버질 찾으러 왔다니까요. 지금 스튜디오에 계실 테니까 좀 들어가게 해주세요. 20분 전에 텔레비전에 나왔거든요.”
아내는 화면 속의 아나운서보다도 더 빠르게 말을 해치웠다.
“바빠 죽겠는데 원 별 사람들 다 보겠네. 접수 번호 가진 사람 아니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요. 저 사람들 보이죠?”
직원은 아까 친절했던 것만큼 불친절한 태도로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아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현우는 막았다. 사정을 해서 되지 않을 일임을 밖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입증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모두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자기 나름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여기서 기다리기로 하지. 안에 계신다면 머잖아 나오실 테니까.”
“당신 괜찮겠어요?”
아내는 체념적인 표정이 되면서 이렇게 물었다. 현우는 헛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불필요한 신경 씀은 역시 기분을 언짢게 만드는 법이었다.
“아니, 안 괜찮아”
현우는 화가 난 척 툭 쏘아붙였고, 그런 기분을 눈치 챘는지 아내는 어색한 웃음을 떠올렸다.
번호 순서대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들어가고, 그만큼의 사람들이 나오고 하는데도 장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방영이 끝난 2시까지 기다렸지만 장인은 만날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방송국으로 달려오는 동안 장인은 방송국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로 간 것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혹시 집에 가 계실지도 모른다는 말은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역시 장인은 집에도 와 있지 않았다.
아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현우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감님이 어쩌자고 의논 한마디 없었을까. 사람들이 모인 수로 보아 접수한 당일로 방영되기가 어려울 게 분명한데 그동안을 어디서 지냈을까. 오늘은 또 어디로 갔을까.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다가 현우는 일어나 앉고 말았다. 담배를 찾아 불을 붙였다.
“당신, 내일 아침 일찍 아버님 댁에 가봐야겠어.”
“방송국으로 가는 것보다 그 일을 먼저 해야겠죠?”
아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얼른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게 순서 같아 거기 계실지도 모르고, 안 계시더라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러겠어요. 당신 좀 주무세요. 사무실에 나가 졸겠어요.”
“당신도 눈 좀 붙이도록 해. 몸 상하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되는데.”
아내가 잠이 드는 걸 확인하고 자려 했지만 현우는 먼저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현우의 출근길에 아내도 집을 나섰다. 아내한톄서 전화가 걸려온 건 11시쯤이었다.
“아빤 그 방송이 시작된 이틀 후에 집을 떠나셔서 여태껏 아무 연락도 없으셨어요. 전 지금 방송국으로 가보겠어요.”
예상했던 대로였다. 장인은 방송국이 가까운 어느 싸구려 여관쯤에 거처를 정하고 매일 방송국으로 나갔을 게 틀림없었다. 현우는 어젯밤에 보았던 수많은 인파를 떠올리며 난감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그랬는데 낮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었다. 그 인파 속에서 장인을 찾아내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닐 것이었다.
무슨 노인네 고집이…… 현우는 장인이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은 정도에 지나칠 만큼 사위네 집에 머무는 것을 꺼려했다. 딸이란 으레 시집을 가면 남의 사람이 되게 마련이고, 사람 신세치고 가장 서러운 신세가 늘그막에 딸네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신세라고는 하지만, 장인이 딸네 집 출입을 삼가는 것은 좀 유별난 기피증 같았다. 결혼 10년 동안에 장인이 딸네 집 걸음을 한 것은 딱 네 번이었는데, 그 걸음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집을 조금씩 늘려 이사를 하고 나서였는데, 장인의 걸음은 날로 나아가는 생활의 축하를 위해서였다. 장인은 그때마다 팔각 성냥을 그야말로 한 아름씩 사들고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집 구식구석을 세심하게 살펴보고는, “그래야디, 암 그래야디. 강 서방이레 장하구만.” 언제나 똑같은 이 말도 잊지 않았다. 네 번 중에서 장인이 하릇밤씩 묵고 간 것은 두 번이었다. 외손자의 성화를 차마 뿌리치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래서 2주일 간격으로 이쪽에서 찾아가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장인은 그것마저도 옹색해하고 짐스러워했다. 장인의 그런 태도는 오히려 현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운한 생각까지 들게 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없다 싶어, “아버님, 제발 마음 편히 가지세요. 제가 번 돈은 아버님을 위해 한 푼도 쓰고 있지 않아요. 어떤 달은 이 사람 수입이 저보다 더 많구요, 아버님이 절 부담스러워하시는데 왜 제가 번 돈을 아버님을 위해 쓰겠습니까” 현우는 화난 척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아빠. 강 서방이 얼마나 구두쇠라구요.” 아내가 거들었고, “내 알디, 강 서방이레 속 큰 사람인 거 내레 알디.” 장인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장인은 표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신세를 지고 있다는 부담감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아빠는 그런 분예요. 한번 마음을 정하면 누구도 바꾸지 못해요.” 그래서 아내는 장인이 산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는지 모른다.
현우는 퇴근을 서둘러 집에 왔지만 아내는 돌아와 있지 않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벨을 누른 아내는 현관으로 들어서며, “아빠가 원망스러워요.” 울 것처럼 말했다.
그로부터 장인을 찾기까지 8일 동안 아내는 그야말로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초주검이 되고 말았다. 장인을 찾은 것은 현우까지 나선 토요일 어스름녘이었디. 장인은 사람들이 버글거리는 방송국 주변이나 광장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큰길을 건너 아파트 쪽 수양버드나무 아래의 시멘트 벤치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장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알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으로 수척해져 있었고, 땀과 때로 전 의복의 남루는 그대로 거렁뱅이였다.
“아빠, 아빠…….”
아내는 장인을 붙들고 울었지만 장인은 그런 딸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멍한 눈길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현우는 장인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혼이 다 빠져 나가버린 것 같은, 백치의 무표정이 바로 장인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서 옛날 선전(鮮展)에 입선한 경력을 가진 화가를 상상해 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뺘 왜 저한테 연락하지 않았어요.”
“……”
“우리 집 전화 번호를 알려놓고 이러고 계시면 저한테 무슨 소식이 와도 아빠한테 알릴 방법이 없잖아요.”
“……”
“아빠, 일어나세요. 집으로 가셔야죠.”
“아니다, 내레 여기가 돟다.”
말마저 잃어버린 것 같던 장인이 마침내 한 말이었다. 그 말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의와 고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지치고 맥 빠진 장인이 갑자기 실한 둥치의 수양버드나무처럼 보였다.
“아빠 맘대로 하세요. 아빠가 이러시면 제가 차라리 죽을 수밖에 없어요. 아빠가 이러고 계시는데 제 맘이 편할 까닭이 없고, 아빠를 따라다니자니 집안 꼴이 엉망이 되고, 차라리 제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아내는 서럽게 울며 말하고 있었다.
“가자우, 집으루”
장인이 무겁게 일어나며 한 말이었다
이렇게 해서 장인은 그리도 걸음을 삼갔던 딸네 집에 한달 가까이 머물게 되었다. 밤에는 텔레비전 화면을 지켰고, 낮에는 아내와 함께 여의도에서 보냈다. 그러는 동안 그 어디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현우 자신의 계속된 관심과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장인은 허약하게 변해갔다.
“이제 가야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장인은 예고 한마디 없이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이렇게 말하고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 나직한 말이 어쩌면 그렇게 절망스럽게 들리는지 몰랐다. 현우는 문득, 저 양반이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시선이 닿아오는 느낌이 있어 아내에게로 눈길을 돌렸더니, 아내가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장인을 찾아가는 아내의 발걸음은 부정기적으로 바뀌었다. 현우도 특별한 일이 없는 일요일에는 아내보다 먼저 그곳에 갈 채비를 하고는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가 피하듯 그분의 쇠약해져 감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이들만 외할아버지를 자주 만나는 것에 신바람 나 했다. 그곳 산마을은 아이들에게 자연 공부까지 시켜주는 좋은 놀이터였던 것이다. 결국 장인은 5개월 남짓 견디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 시간 정도로 예정했던 서울까지의 시간은 눈 때문에 30분이 더 소요되 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현우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벨을 누르면서야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빠 엄마는?”
문을 따준 아들 동규는 꾸벅 절을 했을 뿐인데, 딸 경미가 쪼르르 달려 나오며 물었다.
“그래, 동규야 경미야, 어서 옷들 춥지 않게 두껍게 입어라”
현우는 소파 쪽으로 가며 말했다.
“왜요, 아빠?”
현우가 막 앉으려는데 아들의 목소리가 그를 주춤하게 만들었다. 어떤 예감을 품은 목소리였던 것이다. 현우는 천천히 돌아섰다.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 생긴 거죠?”
동규의 음성은 벌써 변해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고, 딸 경미는 “아빠아!” 하고 부르며 잠시 멍해지는 것 같더니 왁 울음을 터뜨리며 현우에게 안겨 왔다.
현우는 아들과 딸을 양쪽에 껴안았다 어린것들의 흐느끼는 떨림이 전신으로 번져오는 것을 느끼며 현우의 시야도 뿌옇게 흐려졌다. 그 흐린 시야 속으로 장인의 그림이 맞바라보였다 이미 유산으로 변한 그 그림은 흐린 시야속에서도 여전히 빛나 보였다. 친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아예 모르는 아이들은 이제 한 분뿐이던 외할아버지마저 잃은 것이다.
“고만들 울고 어서 가자 엄마가 혼자 기다리고 계신다.”
현우는 아이들의 등을 다독거렸다.
“오래 기다리셨죠?”
현우는 아이들을 택시에 태우며 의례적으로 말했다
“웬걸요, 생각보다 빨리 나오셨어요.”
운전기사는 곧 출발할 자세를 취했다.
“애들이 왜 저리 우나요. 무슨 일 생기셨어요?”
백미러를 통해서 뒤를 보며 운전기사가 물었다
“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 어서 갑시다”
“거 참 안되셨군요. 제가 후딱 모셔다 드리죠.”
성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차가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도 아이들은 제각기 얼굴을 파묻고 홀쩍거리고 있었다. 그림의 모델이 되었던 2년 전보다 두 아이는 훨씬 철이 들어 있을 것이었다. 그때 여섯 살이던 경미는 국민학교 2학년이 되어있었다.
아내 소엽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동안 외롭고 적막할 것이다. 아니, 죽는 날까지 마음 어느 한구석은 비어 있게 될 것이다. 기억이란 세월을 따라 그 농도가 묽어질 뿐이지, 뿌리마저 뽑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어머니가 남기고 간 공허감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음의 가닥이란 수천수만이어서 어떤 슬픔이 어떤 기쁨과 어떤 상처가 어떤 행복과 상쇄되는 것이 아닌 듯싶었다.
현우가 소엽을 만난 것은, 전에 근무하던 출판사가 과잉 기획의 실패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어 ㅎ출판사로 옮기고서였다. 아동물 전집을 출판하는 그곳에서 소엽은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1년 정도가 지나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색다른 감정을 이입하기에 이르렀다. 소엽과 함께 사무실 밖에서의 시간을 마련하는 1년은 유난히 빨리 지나갔다. 현우는 차츰 마음이 조급해져 가고 있었다. 혼자인 어머니는 결혼을 독촉했고, 소엽은 전혀 그런 낌새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소엽은 아버지 때문에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6개월이 또 미적미적 지나갔다. 현우는 더 미루고 견디고 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입을 열고 말았다.
“우리 인제 그만 함께 삽시다!”
느닷없이 현우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이랬다. 현우는 잔뜩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머!”
소엽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현우를 쳐다보다가, 입을 가리고 돌아서며 쿡쿡쿡 웃었다.
“왜 웃는 거요. 사람 말 말 같지 않소!”
현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안하기도 했고, 모독감을 느끼기도 했고, 하여튼 그 순간에 현우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 뿐이었다.
소엽은 마구 뛰기 시작했고, 현우는 뭐가 뭔지 모를 감정으로 담배만 뻑뻑 빨아대고 서 있었다.
“세상에, 그런 멋없는 사랑의 고백이 어딨어요. 그때까지 당신은 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때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결혼하자는 것도 아니고 함께 살자고 했고, 목소리가 컸던 것은 긴장했기 때문이라 치더라도 얼굴은 왜 그리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는지 몰라요. 세상에, 그 얼굴과 사랑의 고백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어요. 순간적으로 딱한 생각이 들고, 사랑의 고백을 들으며 딱한 생각을 하는 저나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당신이나 다 웃음거리였으니 웃을 수밖에요.”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가 한 말이었다.
어떤 말이나 행위가, 첫 번째 하기가 어려운 것일수록 일단 한 번 해놓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처음보다 몇 갑절 수월해지는 것이다 현우도, 에라 모르겠다. 기왕 뽑은 칼 어찌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는 심정으로 소엽을 밀어붙였다.
“아빠를…… 아빠를…….”
소엽은 신음을 하듯이 아빠를 뇌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부모와 결혼의 문제는 어느 것도 택일이 아니오. 공존의 문제라는 걸 확실히 아시오. 난 그 어떤 여자하고나 결혼을 해야 할 입장이니까 소엽 씨의 태도를 분명히 하시오. 내일까지 소엽 씨 아버님을 만나게 해줄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시오.”
현우는 명언을 했던 것이고, 남자다운 결단을 내린 셈이 되었디. 1주일 후에 아버지를 뵈러 가자는 쪽지를 소엽은 삽화 속에 끼워 현우의 책상 위에 놓고 간 것이다.
현우가 또 하나의 소엽을 본 것은 초상화 가게의 폭이 좁은 쇼윈도에서 였디.
“아니, 저건 소엽 씨 아니오?”
“엄마예요. 아빤 지금까지도 저렇게 엄마를 찾고 있어요.
초상화 가겐 꼭 돈 때문에 열고 있는 게 아녜요. 제가 벌고부터는 두 식구 살기는 충분하거든요.”
소엽은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름이 강현우라 하셨디요.”
소엽의 아버지 한민섭 씨는 콧등에 걸쳐진 돋보기 너머로 현우를 쳐다보며 먼저 알은체를 해주었다.
“네에, 말씀 낮추십시오.”
현우는 다시 머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소엽의 이야기를 통해서 상상했던 한민섭 씨와 실제의 한민섭 씨는 거의 일치했다. 그림자 같은 사람이었다. 오뉴월 땡볕 아래의 짙은 그림자가 아니라 10월 스산한 햇볕이 드리우는 엷은 그림자였다.
“우리 소엽이한테 말 다 들었디. 소엽이가 마음 준 사람이믄 됐디. 고맙구만, 우리 소엽이레 마음 맡길 자릴 장만해 줘서. 그데(그저) 마음 맞춰 잘 살아야디.”
두 사람의 일에 대해서 한민섭 씨가 더듬거리듯 느릿느릿 한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분은 짧은 말 속에서 ‘마음’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했다. 현우의 의식 속에는 마음이라는 두 글자가 판화처럼 찍혀왔고, 그분의 사랑을 지키는 마음은 2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저렇게 쇼윈도에 걸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엽아, 뭘 하구 있네. 옆의 다방에 가서 커피 석 잔 날래 배달하래라.”
세 사람이 넉넉하게 앉기에도 비좁은 가게 안에서 서로 무릎을 맞대듯이 하고 커피 한잔씩을 마셨다. 그분이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며 베풀어준 연회였던 셈이다.
“강 군은 어드렇게 생각하나, 요사이 벌어디구 있는 일이레 뭐이가 좀 될 거 같아?”
그분은 쇼윈도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 채 물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우는 그분의 요즈음 심정이 어떠하리라는 것쯤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그대로 말했다.
“그렇디, 강 군이 잘 봤어. 통일이레 그리 쉬운 일이 아니디.”
그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격적인 남북 협상의 전개로 금방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세상은 온통 법석을 떨고 있는 참이었다. 그리로 쏠리고 있는 그분의 관심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분과 쇼윈도에 결린 그림과 남북 협상이 삼각형을 이루는 각각의 꼭짓점이었다.
“강 군, 소엽이 데리고 나가보라우”
그분이 무슨 생각에서 부스스 깨어나는 것처럼 말했다. 가게를 나온 소엽과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이 걸었다
“현우 씨 달리 봐야겠어요.”
소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뭐를?”
“어쩜 그리 완벽할 수가 있어요, 꼭 예행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당당하다고 할까, 의젓하다고 할까 즉석에서 아빠의 승낙을 받아내다니, 하여튼 놀랬어요.”
“허참 내가 병신처럼 굴어서 퇴짜라도 맞기를 바란 것 같은 말투로군.”
“그래요, 반반이었어요. 잘되기를 바라기도 했고, 잘못되기를 바라기도 했고, 그게 무슨 심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현우는 소엽의 그런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것은 새로운 탄생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태어난 집의 호적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생판 모르는 집의 호적에 이름을 끼워 넣어야 하는 행위가 어찌 법적인 절차일 뿐이겠는가. 더욱이 소엽의 경우는 그 갈등이 누구보다도 심할 것이었다.
“염려 말아요, 나도 그런 고약한 심보를 가질 기회가 한 번은 있으니까. 다음은 소엽 씨 차례잖소. 다음 주 토요일에 어머님을 뵈러 갑시다.”
소엽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보도를 내려다본 채 묵묵히 걷고 있었다. 얼마 동안을 말없이 걸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엽은 혼자 생각에 끝도 없이 빠져 들어갈 것만 같았다.
“아버님은 고향 사투리를 그대로 쓰시더 군요.”
현우는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싫으세요?”
소엽이 튕기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어설픈 서울 말씨를 썼더라면 오히려 싫었을 것이오. 진짜 아버님을 뵙는 기분이라서 좋았어요.”
“그래요, 아빠는 사투리를 버리면 고향을, 엄마를 버리는 것으로 생각하시나 봐요. 아빠가 딱하고 가엾어요.”
소엽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젖어 있었다.
그때 현우는 소엽의 손을 꼭 잡으며, 너무 외롭고 괴로워하지 말어. 내가 힘이 돼줄게 하는 속다짐을 했던 것이다.
“험한 길 무사히 데려다 줘서 고맙소. 2천 원 더 얹었소.”
아이들을 길가로 세운 다음 현우는 운전 기사에게 돈을 건넸다.
“어이쿠, 2천 원씩이나 고맙습니다. 큰일 무사히 치르십시오.’
운전 기사는 예를 차리고 떠나갔다.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적설이 희붐하게 드러나 보였다. 현우는 두 아이를 양쪽 손에 잡고 걷기 시작했다. 가슴 한쪽이 휑 뚫려 있었고, 양쪽 손을 하나씩 나눠 잡고 말없이 걷고 있는 두 아이가 이상한 무게감으로 느껴져왔다 현우는 고향 마을에 있는 실한 당산나무를 떠올렸다. 여름이면 두꺼운 그늘을 드리워서 누구나 편히 쉬게 했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색색의 금줄을 감고 꿋꿋하게 서 있던 당산나무 현우는 이제 자신이 그 당산나무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빈소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두 어린것은 흐느낌을 참지 못하며 외할아버지 사진 앞에 절을 올렸고, 아내는 아이들을 품고 새로운 설움에 복받치고 있었다.
2
산골의 겨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두 아이를 약산댁 집에다 재우고 돌아온 소엽은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아버지의 영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밤을 지켜줄 서너 명의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술상을 받고 있었다. 남편도 그 사람들 사이에 끼여 앉아 있었다. 그들의 떠들썩한 이야기 소리가 소엽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울디 말라우 울디 말라니끼니. 기래, 기래, 아바디레 이야기 하나 해주디. 아바디는 이래 봬도 말이디, 넷날에 선전에 입선했던 당당한 화가야. 참 그렇디, 네레 선전이 뭔가 모루 갔구나 선전이 뭔가 하믄 말이디, 우리 나라 전체에서 제일가는 전시회, 아니디, 너 미술 꽁꾸르 알디. 기래, 그 미술 꽁꾸르레 말이야. 너네 핵교 전체를 모은 전교 꽁꾸르가 아니구 우리 나라 전체를 모은 굉장히 큰 미술 꽁꾸르레 바로 선전이래는 거인데, 아바디레 그 꽁꾸르에서 입선해 상을 받아서. 그러니끼니 아이들이레 아무리 환쟁이·간판쟁이라구 놀려두 상관없어. 아바디는 화가니끼니 소엽이 네 마음속으루 우리 아바디는 화가다 하구 단단히 마음먹고 있으믄 그런 놀림이레 다 소용없는 기야.”
소엽의 귀에는 아버지의 말이 생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부산의 미군 부대 옆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살았다. 아이들은 소엽을 ‘양코배기 환쟁이·양갈보 간판쟁이’라고 놀려댔다. 그 놀림이 아버지를 두고 하는 욕이었기 때문에 소엽은 아버지한테 말도 못하고 놀림을 당하기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뇰림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소엽은 견디다 못해 아버지한테, 그런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애들의 놀림에 대해서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핏기 없는 얼굴이 벌겋게 되도록 아버지는 손짓까지 해가며 그 이야기를 열심히 했다. 자신감을 갖게 된
소엽은 아이들의 놀림에, 우리 아빠는 화가라고, 선전에 입선한 화가라고, 선전이 뭣인지 아느냐고 설명까지 해가며 맞섰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소엽은 오히려 더 심하게 몰리게 되었다. “야, 이노무 가시나 뻥까지 마래이. 느그 아부지가 그리 유명한 사람이몬 와 선상님 같은 것 몬하고 양갈보 환칠이나 하고 앉았나 말이다.” “맞다, 니 말맞다. 요노무 삼팔따라지 가시나가 여게가 어디라고 인자 거짓말까지 하노. 요노무 가시나를 카악 죽이뽈까 그만.” “니 시껍묵기 전에 없어져 뿌러라. 우리하고 놀라 생각 말고 니도 양코배기 낯짝 환칠하는 것이나 가서 배와라.” 소엽은 아이들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아버지한테 또 아이들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하얀 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다시 본다는 것은 너무 겁나는 일이었다. 소엽은 낯선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 아버지 옆을 베돌며 방과후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소엽아, 밖에 나가서 뛰어놀아라.” 아버지가 몇 번인가 말했다. 그때마다 소엽은 가슴을 조이며, 아빠가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더 좋다고 꾸며대곤 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겨울 방학이 되자 아버지는 이사 채비를 했디. 소엽은, 아버지가 자기 맘을 환히 알고 이사를 가는 것만 같았다. “아빠, 어디로 이사를 가는데?” “대구.” “대구? 대구가 어디야?” “가봐야디.” 아빠는 진열장에 걸어놓았던 그림을 떼어냈디. 조금 슬픈 것 같은 어머니의 예쁜 얼굴을 그린 그림이었다. 까만 머리 한가운데 난 반듯한 가르마가 꼭 하얀 길만 같았다. 소엽은 진열장 유리를 통해서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 반듯한 가르마를 오랫동안 따로 바라보곤 했다. 그 하얗게 뻗어나간 길은 엄마가 걸어온 길이라고 소엽은 생각했다. 어떤 때는 정말 아슴한 저 끝에서부터 그 하얀 길을 따라 엄마가 걸어오는 것이었다. “엄마!”
소엽이 부르면 어머니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는 했다. 어머니가 가까이 와서 자기를 안을 때까지 절대로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면서도 소엽은 마음이 다급해져 번번이 “엄마!”를 부르고 말았다. 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그 하얀 길을 따라서 왔고, 소엽이 부르기만 하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야속하고 미운 엄마였다. 소엽은 그 하얀 길에서 어머니를 만나곤 하는 것을 아버지한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 이야기만 하면 너무 슬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러나 떠나야디. 네 어마니는 부산에 없는 사람이니끼니.”
아버지는 어머니 그림을 정성 들여 싸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후에 4년 동안 살았던 부산을 떠났다. 대구로 이사를 한 아버지는 미군 부대 옆에 가게를 차리지 않았다. 소엽은 얼마 동안 대구에는 미군 부대가 없는 줄 알
았디. 그런데 어느 날 낮선 사람이 찾아왔다. “보래, 느그 아부지 어딨노?” 그 사람은 가게로 들어서며 대뜸 물었다 “지금 안 계세요.” “안다, 어디 가셨나 묻는 기다” “자알 모르겠어요오.” 소엽은 겁이 나서 도리질을 하며 말을 늘여뺐다. “일났다 아이가 윌리엄 떠날 시간은 돼오고, 이 사람이 어째 안 하던 짓을 하노. 그림 솜씨 좋고 꼬빡꼬빡 약속 잘 지키더마는 이번엔 우짠 일고.” 남자는 좁은 가게 안을 왔다갔다하며 투덜대고 있었다. 윌리엄. 그림 솜씨, 약속 이런 말이 소엽의 귀에 박혀왔다. 윌리엄은 부산에서 많이 들은 미국사람들의 이름이었다 “아저씨, 우리 아빠가 미국사람들 초상화 그리나요?” “맞다 아이가. 이 아자씨가 느그 아부지 일거리 구해다 안 주나. 어지께꺼지 그리기로 된 그림을 오늘 아칙꺼지 미루더마는 윌리엄이 떠날 시간이 임박토록 안 가져와 내가 이리 급히 달려왔는데 여기도 없제, 니는 모른다 카제, 이 일을 우짜믄 좋노.” 소엽은 아버지가 무언가를 싸가지고 나간 것을 보았었다 “아저씨, 아빠가 아저씨 만나러 가셨을 거예요. 뭘 가지고 나가셨거든요.” “그으래? 와 진작 말하지. 나 퍼떡 갈 낀께 가게 잘 보거라” 남자는 다급하게 나갔다. “아빠아…….” 소엽은 울먹이며 멀어져 가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엽은 그때서야 아버지가 자기 몰래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미군 부대 옆에 가게를 차리지 않은 것도, 미군들의 초상화를 몰래 그린 것도 다 자기 때문인 것을 소엽은 깨달았다. 아버지가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으면 두 식구가 먹고 살 수가 없고, 자기가 학교에 다닐 수도 없다는 것을 소엽은 알았다. 그래서 대구를 떠날 때까지, 아니 서울로 이사를 해서도 소엽은 모른 체했다. 대구에서는 2년을 살았다. 아버지는 진열장에 걸렸던 어머니 그림을 내려 정성스럽게 싸면서 또 말했다 “네 어마니는 대구에 없는 사람이니끼니.”
서울에서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5년을 살았다. 그 대신 이사를 두 번 했다 아버지는 진열장에 내걸었던 어머니 그림을 떼서 어느 때나처럼 정성 들여 싸면서 말했다. “서울이레 워낙 넓기두 하구 사람도 많으니끼니.” 두 번째 이사를 할 때도 똑같이 말했다. 그때마다 학교가 멀어지는 불편쯤은 소엽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를 찾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한 몇 배의 불편도 참아낼 수 있었다. 소엽은 어느 날 영화 포스터를 앞뒤로 붙인 두 개의 나무판에 멜빵을 해서 지고 가는 선전원을 보았다.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그 사람의
모습은 머리와 다리뿐이었다.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 포스터가 걸어가고 있었다. 함께 가던 서너 명의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까르르 웃었다. 그러나 소엽은 엉뚱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래, 어머니 그림을 진열장에만 붙여놓을 게 아니라 저렇게 하고 다니면 훨씬 효과가 나겠구나. 그러나 소엽은 이내 침울해지고 말았다. 그걸 누가 할 것인가. 어머니를 찾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었지만 소엽은 그 일만은 해낼 자신이 없었다. 전학을 할 때마다 겪어야 하는 그 서먹서먹하고 서투른 외로움이나 이사를 해서 통학 거리가 멀어지는 불편 같은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 일을 해낼 자신이 없는 것은 부끄러움이나 창피스러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어떤 것. 말로는 무어라고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이 있었다 내가 남자였더라면…… 그러면 소엽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엽은 최초로 남자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그런 생각이 꼭 비굴한 변명만 같아 아버지, 어머니에게 한없이 죄스러움을 느꼈다
“소엽, 한소엽, 아주 예쁘고 드문 이름이구나.”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소엽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뭘 하시지?” “화가예요.” 소엽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옳아, 그래서 이런 문학적인 이름을 지어주셨구나. 너한테 잘 어울리는 예쁜 이름이구나. 너의 아버지는 아주 멋쟁이시다” 국어 선생님이 기분 좋은 얼굴로 돌아섰다. 소엽은 그때까지도 자신의 이름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국어 선생님한테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소엽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
“기래, 내레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해주디 않았었디. 우리 소엽이레 이제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나이가 됐구만. 아바디레 대학을 댕기며 그림을 그릴 때여서. 여름 방학에 집에 돌아오믄 아바디를 제일 먼저 반기는 거이 강변에 나란히 서 있는 키가 큰 미루나무들이어서. 아니디, 더 분명하게 말하자믄 미루나무 잎사귀들이었디. 그 작은 잎사귀들은 바람도 부는 것 같지 않은데두 언제나 흔들리는데, 그 잎사귀가 윤이 나서 그 위에 햇빛이 닿으믄 반사가 되는 기야. 기런데, 흔들리는 잎에 햇빛이 닿으니끼니 그 반사레 더 심하디. 수없이 많은 잎사귀들이레 일제히 흔들거리는데 그 위에 햇빛이 쏟아지니 어떻가서. 하아 그 흰빛들의 반짝거림, 아바디는 그걸 그리고 싶어했었디. 그리고 또 그리고, 실패하구 또 그리고 했었디. 그러다가 설라무네 어느 날 시를 쓰는 친구한테 그거를 시로는 어드케 표현하느냐구 물었디. 그 친구는 오래도록 그 반짝임을 보구 있다가 아무말두 하디 않구 돌아가서. 며칠이 지나 시를 한 편 보내왔는데 아바디레 시를 모르면서두 그 반짝임을 제대루 쓴 것 같디가 않아서. 기런데 그 시에 소엽(素葉)이래는 말이 있디 않았가서? 하얀 잎사귀래는 뜻이디. 그 말 한마디래 반짝이는 미루나무 잎을 딱 맞게 표현한 거이야. 그 잎사귀는 분명히 초록색인데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흔들릴 때는 흰빛이 되는 기야. 반짝이는 햇빛, 살아서 움직이는 흰빛이디. 아바디는 그걸 그리고 싶어했는데 실패만 해서. 그 말이레 하도 좋아서 그 친구에게 니해를 구해, 네 이름으루 삼았디. 그러니끼니 네 이름은 시인이 맹근 기야.”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흰빛으로 반짝이는 무수한 미루나무 잎들의 흔들림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처럼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대전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아버지는 진열장에서 어머니 그림을 떼내서 정성스럽게 싸며 또 말했다. “너의 어마니는 서울에 없는 사람이니끼니.” 그 말은 어느 때보다 낮았고, 아버지는 가늘게 한숨까지 쉬었다.
대전·전주·목포를 거쳐 광주까지 내려갔다. 그곳들에서는 각기 1년씩을 살았다. 소엽은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이사를 하려고 아버지는 진열장에 걸린 어머니 그림을 내려 또 정성 들여 싸면서 말했다.
“가야디, 대학은 서울에서 다녀 야디.”
소엽이 미대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머리를 끄덕였을 뿐이다. 소엽은 그때 아버지의 눈에 번지는 눈물을 보았다.
학년이 올라가며 그림에 몰두할수록 소엽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지치지도 않고 그려왔던 어머니 그림이 소엽의 의식을 흔들고 있었다. 소엽은 아버지 몰래 트렁크 속에 들어 있는 그림들을 꺼내보고는 다디. 그때마다 소엽은 두려움을 느꼈고, 그만큼 자신감을 잃었다. 소엽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트렁크 속에는 여섯 장의 어머니를 그린 그림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2년 반 정도 걸려 한 점씩을 완성해서 쇼윈도에 바꿔 건 것이었다. 소엽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 그림들이 모두 똑같은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림에 조금씩 눈떠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의 그림의 깊이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그림은 얼핏 보면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나란히 펼쳐놓고 비교해 보면 하나하나가 모두 달랐다. 색감 처리며, 터치 방법이며, 명암 표현이며가 그림마다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바라보면 어머니는 똑같은 생김, 똑같은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소엽은 그만 기가 질리는 것이었다.
“아빠, 왜 자꾸 똑같은 엄마 그림을 그려서 바꿔 달아?”
“으응, 햇빛을 받아 어마니 얼굴이 변했으니끼니 어마니레 지나가다 보더라두 못 알아볼 수 있잖가서.”
국민학교 때 들은 그 말이 아버지가 계속해서 어머니 모습을 그린 이유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는 굳이 유화를 그릴 필요가 없이 손쉽게 초상화를 그려 바꿔 붙여야 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는 일과 동시에 작품 생활에 몰두해 왔던 것이고, 쇼윈도에 내걸린 그림은 아버지의 개인전을 겸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초상화를 그려서 먹고 살아야 하는 서글픔이나 자기 혐오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자기 변모를 꾀하는 본격 작품을 제작하지 않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소엽은 생각했다.
소엽이 대학을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림을 보자고 한 일이 없었다. 소엽은 늘 조마조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걸 기회로 그림에 자신이 없다는 말을 속시원하게 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교수의 칭찬이나 격려는 소엽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졸업 작품전을 열 때도 소엽은 물론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다. 가족이 전시장을 다녀가지 않은 학생은 자신뿐인 것 같았다. 소엽은 자신의 그림이 전시장이라는 객관적인 장소에 걸려 조명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혐오스러웠다. 동의할 수 없는 의무라는 것은 역시 피곤하고 역겨운 것이었다. 다른 동료들은 당장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신바람을 일으키며 전시장을 드나들었지만 소엽은 당번으로 지정된 이틀 간을 가까스로 메우고는 다음부터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아버지는 졸업식에 참석했다. 아버지는 그 빈번한 전학을 할 때마다 소엽의 손을 꼭 붙잡고 새 학교로 가고는 했다. 그리고 소엽의 담임 선생님 앞에 그 큰 키를 반으로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늙으나 젊으나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소엽의 국민학교 때부터 졸업식에는 꼭꼭 참석했다. 졸업식이 끝나기를 기다려 아버지는 소엽과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진은 언제나 딱 한 장을 찍었고, 운동장 가운데서 학교를 배경으로 잡는 것도 변함이 없었다. “사람이래는 거이 추억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디.” 소엽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세발 사진기 앞에선 아버지가 대답한 말이었다.
“아빠 오래 기다리셨죠. 빨리 사진 찍어야죠.”
“찍 어야디.”
대꾸를 하고서도 아버지는 그대로 서 있었다. 아버지는 눈이라도 부신 듯 가늘게 뜬 눈으로 학사복 차림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슴한 눈길과 슬픔이 서린 얼굴, 소엽의 가슴은 찡 울려왔다. 아버지의 그 모습은 바로 그림 속의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을 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아빠!”
소엽은 아버지의 팔짱을 꼈다
“기래, 찍어야디.”
아버지는 세발 사진사를 터무니 없이 큰소리로 불러댔다.
“아빠, 맛있는 점심 사주세요.”
소엽은 아버지의 팔짱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디.”
아버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소엽은 미리 보아두었던 조용한 식당으로 갔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기회였다.
“아빠 저 말예요…….”
주문한 식사가 오기 전에 말을 끝내고 싶어 소엽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처럼 말이 막혔다.
“괜티않아 무슨 말이든 해보라우”
아버지가 돋보기의 렌즈를 이용하지 않고 안경 너머로 사람을 볼 때처럼 소엽을 쳐다보았다.
“저어…… 아빠가 실망하실지 모르지만 말예요…… 저어,
그림을 그릴 자신이 없어요.”
소엽은 끝부분의 말을 재빨리 해치웠다.
“허어, 그건 아바디레 실망할 일이 아니디. 네레 겪는 괴로움이 될 수는 있어두”
소엽은 가슴이 뜨끔해졌다. 아버지는 말처럼 아무런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절대 변명은 아니구요, 엄마를 그리신 아빠의 그림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어요.”
“네레 그 그림들을 꺼내보구 있다는 걸 아바디는 발쎄부터 알구 있었어.”
“네에?”
소엽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그림들의 순서레 뒤바뀌어 있군 했거던.”
아버지는 엷게 웃고 있었다. 소엽은 거기까지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일이었다.
“상관없어, 자신감이레 있다구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니끼니. 네 나이쯤에 자신감이 없다구 느끼기두 어려운 일이구. 그거이 더 빠른 발전을 개져오는 계기레 될 수두 있디.”
아버지는 실망은커녕 오히려 대견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 저는 어떤 도약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는 게 아네요. 근본적으로 능력 부족이 아닌가 하는 절망 상태에 빠져 있는 거예요.”
소엽은 슬슬 말이 나오고 있었다.
“자아, 식기 전에 먹으믄서 니 얘기 하자우 기런데, 아바디가 보기는 그렇디 않구만. 네 그림 정도믄 정상 수준인 것으루 보이더만.”
“어머, 아빠가 언제 제 그림을 보셨어요!’
소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졸업 전을 가봤디.”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질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쩜……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빠”
소엽은 이제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신문 구석지에 기사레 났었디.”
소엽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자신의 그림 앞에 아버지가 서 있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아무 걱정할 거 없어. 초조해 할 것두 없구. 예술이란 평생을 걸어 하는 것이고, 그러구두 이루는 사람보다 이루디 못하는 사람이레 더 많은 법이니끼니. 그리구 미술대학교를 다녔다구 해서 꼭 화가가 돼야 한대는 책무두 없는 것이디. 그림에 대한 바른 니해를 갖추는 것만두 훌륭한 성과구 실은 그것두 어려운 일이야. 조급하게 생각 말구 아무때나 그리구 싶을 때 그리믄 되는 기야.”
아버지는 마치도 쓰다듬듯이 부드러운 눈길로 말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그것도 그림에 관해서 이야기한 것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소엽은 자신의 성장을 의식했고, 자신을 대화 상대로 삼아주는 아버지에게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소엽은 졸업과 동시에 출판사에 취직을 했다. 아동물의 삽화를 그린다는 일이 봄 기운처럼 신선감을 주기도 했고, 손수 돈을 벌어보고 싶은 충동도 작용했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계속 초상화를 그리기에는 아버지는 너무 늙어 있었다. 아버지를 그 환멸스러운 노동의 중압감으로부터 비켜서게 해드리고 싶었고, 늦게나마 아버지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를 소엽은 기대하고 있었다.
“아빠, 저 출판사에 취직됐어요.”
아버지는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소엽을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소엽은 월급을 받으면서부터 식생활 개선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윤택해진 밥상을 받으면서도 아버지는 아무런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반찬을 고루고루 드시는 것으로 소엽의 뜻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소엽은 그런 아버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소엽은 월급 봉투를 아버지에게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버지가 의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어드케 일은 할 만하네?”
1년이 가까웠을 무렵 아버지가 처음으로 물은 말이었다.
“네, 재미가 있어요. 도움도 되구요.”
그건 아버지를 의식한 겉치레 말이 아니었다. 처음 기대했던 것만큼 그 일은 소엽을 만족시키고 있었다. 자칫 대중적 안일에 빠질 위험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색감의 다양한 구사와 인체 동작의 스케치 같은 것은 대학에서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공부였다. 만화로 전락할 위험성과 회화의 비대중성 중간 지대를 확보해야 하는 그 일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묘미와 자극을 주는 것이었다. 그런 기분 때문인지, 돈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제법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화가들도 그 출판사의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소엽은 현우라는 남자한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여지고 있었고, 부모와 결혼의 문제는 어느 것도 택일이 아니라 공존의 문제라는 그 남자의 말에 구원이라도 받은 것처럼 소엽은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기로 한 것이다.
“고맙다 소엽하 기럼, 결혼해야디.”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그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신의 손까지 잡으며 반가워했다. 소엽은 비로소 아버지가 내심으로 자신의 결혼 문제를 걱정해 오고 있었음을 알았고, 자신의 나이가 어느덧 스물일곱에 이르러 있음을 깨달았다.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나이였다.
“무게 있구 실해 보이더구만”
강현우를 만나보고 난 아버지의 한마디였다. 소엽은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결혼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고, 더구나 한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꼭 돌부처처럼 책상을 지키고 앉아서, 차장이란 직책을 어떻게 지켜나갈까 싶게 말하기를 싫어하던 사람이 강현우였다. 그는 5개월이 안 걸려 부하 직원들을 손아귀에 넣었고, 부하 직원들의 그 어떤 실수나 불찰도 지적하는 일이 없이 혼자 처리하는 것이 그 사람의 단수 높은 방법이라는 수군거림이 미술부까지 전해졌다. 그런데, 자신에게로 뻗쳐오는 그 사람의 눈길이 심상치 않음을 소엽은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엽은 날이 갈수록 그 사람이 두 팔을 쫙 펼쳐 몰아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했다. 소엽은 그런 기분을 결코 싫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고 놀랐고, 그 놀라움에 주춤거리면서 그가 몰아대는 대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야 했다. 그때부터 그 골목에는 끝이 있을 것임을 예감했고, 그 예감과 아버지의 존재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앞으루 네 고향은 남편과 자식이다.”
소엽이 결혼을 하자마자 산마을로 떠날 준비를 갖춘 아버지가 매정하리만큼 잘라서 한 말이었다 그러면 아빠의 고향은 엄마란 말인가 그 고향을 찾아 그 긴 세월을 헤맸고, 딸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고는 아빠는 아빠의 고향을 찾아 임진강변으로 가시려는 것인가 소엽은 여자의 길을 생각하며 아버지를 산마을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규 어마니, 무슨 생각을 그르케 하구 있나. 마음 단단히 먹구 아바디 짐 정리해야디. 내일 아침녘에 입관해야 할 거니 끼니.”
약산댁이 소엽을 흔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할머니.”
소엽은 눈물을 홈치고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약산댁이 말하는 짐이란 아버지가 유언한 어머니 그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혹시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숨 끊어지거든 그 그림들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챙겨서 관에 넣어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약산댁은 일깨워주듯 했었다.
아버지의 그림은 언제나처럼 그 낡은 트렁크 속에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소엽은 그림을 꺼냈다. 불빛에 어머니의 얼굴이 드러났다. 세로의 길이가 긴 20호짜리 그림이었다. 그림 속에서 어머니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반듯한 흰 가르마도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끝내 그 하얀 길을 걸어서 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그린 그림이 아홉 장인 것을 소엽은 알고 있었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옮겨놓았다. 소엽은 대학 시절처럼 그림의 순서를 뒤바꿔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 그림의 순서는 아버지가 그린 차례대로였다. 여덟 장째를 넘겼다. 마지막 한 장이 남은 것이다. 그런데 아홉 장째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한 장이 더 있었다. 소엽은 재빨리 아홉 장째를 넘겼다.
“어머!”
소엽은 소스라칠 만큼 놀랐다. 그것은 어떤 늙은 여자의 얼굴이었다.
“아니, 이 그림은 어머님의 늙은 모습이잖아.”
소엽은 남편의 목소리가 먼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을 느꼈다.
“와들 그리 놀라디. 그 그림 처음 보나?”
약산댁의 목소리도 소엽에겐 아슴하게 들려왔다.
“그러카꾸만. 녕감님은 그 그림을 그 이산 가족 찾긴가 뭔가루 서울에 있다가 온 다음부터 그리기 시작했디. 녕감님은 기운을 못 쓰구 골골하믄서두 그 그림을 그리느라구 식은땀을 흘리구 하더라니끼니. 녕감님은 성미가 별나서 어쩌다 내레 그 그림 그리는 거를 들여다보믄 벌컥 화를 내곤 하셨디.”
약산댁의 목소리가 점차로 확실하게 들리고 있었다.
그 그림은 어머니의 늙은 모습을 그린 것이었는데, 미완성이었다 어깨 위로만 완성에 가까웠고, 배경 처리며 저고리 부분은 기초색만 칠해져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살이 뒤덮여 있는 늙은 어머니의 얼굴을 소엽은 언제까지나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소엽은 트렁크에서 꺼냈을 때의 순서대로 맞춰진 열장의 그림을 관 속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가슴 위에다 올려놓았다. 맨 아래에 있었던 미완성 그림이 바로 아버지의 가슴과 닿았다.
삼일장이 나가는 날 아침부터 찌푸린 하늘에서는 눈발이 희끗거렸다. 생전에 아버지는 당신이 누울 자리까지 정해놓고 떠나갔다. 그런데 그 자리가 남향이 아니라 북향이었다. 그런 것이 모두 소엽의 가슴을 쳐오며 눈물을 쏟게 했다.
하관이 끝났을 즈음 눈발은 한층 거세어졌다. 매장과 함께 선소리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소엽과 현우를 떠밀다시피 하산을 권했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풍진 세상 떠나간다
어어헝, 어허 달공
선소리의 구성지고 슬픈 가락이 눈발 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소엽은 걸음을 멈추었다. 소엽을 부축하고 걷던 현우도 걸음을 멈추었다. 흩날리는 무수한 눈발 속으로 첩첩한 산이 흐릿흐릿하게 보였다. 구슬픈 선소리에 실린 아버지의 넋이 그 산줄기들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소엽은 보고 있었다. “조급하게 생각 말구 아무때나 그리구 싶을 때 그리믄 되는 기야” 아버지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현우는 겹겹이 이어지고 있는 아슴한 산줄기를 바라보며 장인의 명복을 빌었고 서울로 돌아가면 여태껏 가슴에 묻어왔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한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가지.”
현우는 소엽을 부축했고, 소엽은 걸음을 떼어놓았다.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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