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사공은 말한다.
“옛날부터 현명한 군왕들은
나라를 세우고, 천명을 받아 왕업(王業)을 일으키려고 할 때,
복서(卜筮)를 소중히 여겨
선정을 돕지 않은 적이 없었던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요순(堯舜) 이전에
점복에 관한 일은 기록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에 기록할 수 없으나,
하(夏), 은(殷), 주(周) 삼대가 일어난 뒤로는
각각 복서에 상서로은 징조가 나타나,
그것에 의해서 나라의 기반을 닦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라 시조 우(禹)임금은
도산씨(塗山氏)의 딸과 결혼했는데,
그 거북점이 길해
하나라의 왕업을 그의 아들 계(啓)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은나라 시조 설(薛)의 어미니 간적(簡狄)은
날아다니는 제비의 알을 먹은 일을 두고 친 점이 길했기 때문에
은나라가 크게 흥했다.
주나라의 시조 후직(后稷)은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좋아해 즐겨 온갖 곡식을 심었는데,
그 점괘가 길했기 때문에
뒤에 주나라가 천하의 왕자가 되었다.
군왕은 여러 가지 의심스럽고 어려운 일을 결정할 때에는
복서로써 예측했다.
시초(蓍草)나 귀갑(龜甲)을 사용해 판단했는데,
이것은 변하지 않는 규칙이다
만(蠻), 이(夷), 저(氐), 강(羌) 등의 오랑캐들은
비록 군신의 차례는 없어도
의혹을 결정할 때는 역시 점을 치는 풍속이 있었다.
쇠와 돌을 써서 점을 치기도 하고,
혹은 풀과 나무를 써서 점을 치는 등 나라에 따라 각각 그 풍습이 달랐다.
그러나
모두 점을 근거로 해 전쟁을 일으키고 공격을 하고
군사를 나아가게 해 승리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각각 그들의 신령을 믿고
점에 의해서 장차 닥칠 일들을 알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들은 바의 개략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라와 은나라 사람들은
점을 칠 때
시초(蓍草)나 귀갑(龜甲)을 사용했고,
점을 치고 난 뒤에는 이를 곧 버렸다.
당시 사람들은 귀갑을 오래 간직하면 영험이 없고,
시초 또한 오래 보관하면 신통함을 잃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나라에 와서는
왕실의 복관(卜官)이 항상 시초와 귀갑을 소중히 간직했다.
그리고 시초와 귀갑의 크기나 사용 순서 따위를 중시하는 바가
각 시대마다 다르기는 했지만 앞
날에 대해 예측하여 사람들과 나라경영에 도움이 되려고 한
목적은 같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성왕(聖王)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숙명적인 것이 아닌 것이 없으며,
결정해야 할 의문 역시
그 일을 처리하기 전에 그 징조가 먼저 보이지 않은 적이 없다고 여겨,
시초와 귀갑에 의해서 신명의 의사를 묻고
의혹을 푸는 방법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쇠미해지고
어리석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을 스승으로 섬기지 않게 되고,
사람들이 각각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
가르침이 백가(百家)로 나뉘어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에 성왕의 도(道)가 난잡해지고 무질서해졌기 때문에,
도리와 관계된 것을 가장 미묘하고 심오한 경지로 귀납시키기 위해서
항상 '정신'에 규범을 두었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영험한 거북의 뛰어난 점에서는
성인도 이에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는데,
그 이유는
신령스러운 거북점은
길흉을 알려주거나 시비를 분별하는 점에서
대체로 인간 세상의 일과 일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나라 고조(高祖) 때,
진(秦)나라의 옛 제도를 모방해 태복관(太卜官)을 두었다.
그 당시 천하는
겨우 안정을 찾았으나 전란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효혜제(孝惠帝)는
재위 기간이 짧고 여
태후(呂太后)가 실제적인 여제(女帝)였며,
효문제(孝文帝)와 효경제(孝景帝)는
옛 제도를 답습했을 뿐,
복서의 이치를 강구하거나 시험할 겨를이 없었다.
비록 어떤 부자(父子)는
천문과 역법, 복서를 관장하는 주관(疇官)을 대대로 이어오기는 했으나,
복서의 정미 심묘한 점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의 황제가 즉위한 뒤로는
널리 육예(六藝)에 능한 선비들을 위한 길을 열어
백가의 학자들을 두루 초빙하여
한 가지 기예에 능통한 선비들일자라도
각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중에서 월등히 뛰어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올라 사사로움에 치우지지 않고 모든 것을 평등하게 대했다.
그러는 몇 해 사이에
태복(太卜)이 수집한 자료는 대단히 많아지고 인재들이 수없이 몰려들었다.
때마침 황제가 북
쪽으로 흉노(匈奴)를 치고
서쪽으로는 대원(大宛)을 공격하고,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을 손아귀에 넣고자 했는데,
복서(卜筮)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여러 가지 일을 정확하게 예견해
실패한 경우를 미리 대책을 마련해
이로움을 취하고 해로움을 피하도록 했다.
그리고 맹장들이 직접 출전하여
적의 예봉을 꺾고,
전쟁터에서 적에게 승리를 얻는 일에 대해서도
점을 쳐서 정한 시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황제는 더욱더 공이 있는 복관(卜官)을 중시해,
때로는 하사한 돈이 수천만 전(錢)에 이르기도 했다.
그래서 구자명(丘子明)과 같은 복관들은
점을 잘 쳐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들은 황제의 은총을 크게 입어 조정의 대신들을 압도했다.
또한 점으로 남을 해치고자
무고(巫蠱)를 행하는 것을 알아맞히기도 하고,
무고의 사건의 주범을 알아맞히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점괘를 이용해
평소에 사소한 원한이 있거나 못
마땅해 했던 사람을
공적인 일에 결부시켜 죄를 덮어씌워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이처럼 복관들이 제멋대로 다른 사람들을 모함해,
일족(一族)이나 일문(一門)이 멸족을 당한 예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모든 백관들은
두려움에 떨며 ‘귀갑과 시초가 능히 말을 할 줄 안다.’고 비꼬았다.
그러나 그 후에 사람을 해치는 일 등
그들의 간악한 음모가 발각되면
조정에서 삼족을 멸하는 벌로 다스렸다.
시초를 배열해 길흉을 점치고,
귀갑을 불에 태워 그 징조를 관찰했는데,
그 속에는 변화가 무궁무진했기 때문에
반드시 현인을 뽑아 점을 치게 했다.
이것을 보면
성인들이 복서로 점을 치는 일은 매우 신중하게 행했다고 할 수 있다.
주공(周公)은
태왕(太王), 계력(季歷), 문왕(文王)의 거북으로 세 번 점을 쳐서
무왕(武王)의 병을 호전시켰다.
은나라 주왕(紂王)은
포학무도하여 큰 거북으로 점을 쳤으나 길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또 진 문공(晉文公)은
주 양왕(周襄王)의 왕위를 회복하기 위해서 미리 점을 치니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에서 싸운다’는 길조를 얻었다.
덕분에 마침내 천자가 공이 많은 제후에 내리는 붉은 화살을 얻고 패자가 될 수 있었다.
진 헌공(晉獻公)은
여희(驪姬)의 미색을 탐내어
여융(驪戎)을 공격하기 전에 점을 치게 했는데,
그 점괘에는 '입의 형상한 점쾌를 얻었으나 진헌공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 화는 헌공 자신으로부터 해제(奚齊), 도자(悼子), 혜공(惠公), 회공(懷公)에 이르기까지
오대에 미쳤다.
초 영왕(楚靈王)이
주나라 왕실을 배반하기 위해 점을 친 결과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
마침내 건계(乾谿)에서 패망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길흉의 징조와 그 응하고 징험함이 거짓 없이 사실로 나타났으며,
당시 사람들도 점괘가 제대로 맞는다는 것을
사실을 통해서 똑똑히 보아왔던 관계로,
점괘의 징조와 응하고 징험함이 사실과 일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군자가 이렇게 말했다.
‘복서를 경시하고 신명(神明)을 믿지 않는 사람이 황당무계하다고 여겼지만,
인간사를 위배하고 사람의 도리에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
미신만을 맹신하는 사람은 귀신에게조차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상서(尙書)』 「홍범(洪範)」조에는,
기자(箕子)가 의심나는 일이나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자 할 때,
함께 상의할 대상으로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 기록이 있는데,
그중에 복(卜)과 서(筮)가 두 가지를 차지했다.
다섯 사람이 각각 점을 쳐서
그 중에서 많은 사람의 판단을 믿고 따랐다.
하지만 이것으로 보아
비록 복관을 설치해 복서를 소중히 여기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점에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강남(江南) 지역을 유람하면서
그곳 백성들이 점치는 모든 행위를 보면서
그곳의 장로들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거북은 천년을 살아야 연꽃 잎 위에서 놀고
시초는 한 뿌리에 백 개의 줄기가 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천년 묵은 거북과 백 개의 줄기를 가진 시초가 자라는 곳에는
호랑이와 이리 등 맹수들이 살지 않으며,
해충이나 독초도 나지 않는다.’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늘 거북을 길러서 그 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원기를 보충해
늙고 병드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어찌 이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선생은 말했다.
“나는 유교 경전에 통달하고
박사(博士)에게서 수업을 받고
『춘추(春秋)』를 공부해,
좋은 성적으로 낭관(郎官)에 임명되었습니다.
황제의 은총으로 다행히 궁궐을 수비하기 위해서 숙위가 되어
10여 년 동안 궁궐을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몰래 『태사공전(太史公傳)』에 심취하여 읽었습니다.
『태사공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하(夏), 상(商), 주(周) 삼대는
귀갑으로 점을 치는 방법이 서로 같지 않았고
사방의 각 이민족들의 치는 복서도 또한 각각 달랐다.
그러나 복서로써 길흉을 판단하는 방법은 모두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귀책열전(龜策列傳)」을 썼다.
내가 장안성에 체류할 때
여러 번 태사공의 글을 읽고 귀책열전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태복관(太卜官)을 찾아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장고(掌故)17)와 문학(文學)18)들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해
귀서(龜筮)의 내용을 파악하고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전은 바에 의하면
옛날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이 거사하려고 했을 때에는
반드시 일을 정하기 전에 먼저 복서를 행해 점괘를 얻은 후에 결정 했다고 한다.
옛날 점복서(占卜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아래에 복령(伏靈)이 있으면 위에는 토사(免絲)가 있고,
위에 시초가 우거지면 아래에는 신령스러운 거북이 있다.’
그래서 소위 복령이라는 것은
토사 밑에서 자라니
마치 나는 새 모양을 하고 있다. 첫
봄비가 오고 난 다음 날씨가 맑게 개서 바람이 없는 날 밤중에
토사를 베어내고 등불을 밝혀 복령을 비추어본다.
등불을 끄고 그곳에 표지를 세우고
길이가 4장 되는 새 천을 주위를 둘러 싸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가서 그곳을 판다.
깊이를 네 자에서 일곱자 정도 파면 그
밑에서 복령을 얻을 수 있다. 7
자가 넘은 깊은 곳에서는 복령을 얻을 수 없다.
복령은 천년 묵은 노송의 뿌리로
사람들이 그것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
내가 듣기에 한 뿌리에서 백 개의 줄기가 난 시초(蓍草)는
그 밑에는 반드시 신귀(神龜)가 살면서 지키고
그 위에는 푸른 구름이 덮여있다고 했다.
옛날 점복서에 또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천하가 태평하고 왕도가 행해지면
기초는 능히 그 줄기가 열자 길이로 크게 자라고
한 뿌리에서 백 개나 되는 줄기가 돋는다.’
지금 사람들도 시초를 얻고자 하나
세상의 법도가 옛날과 같지 않기 때문에
길이가 한 장이나 되고 한 뿌리에서 백 개의 줄기가 있는 시초는 구할 수 없다.
줄기가 80개에
크기가 8자 되는 것도 얻기 힘들다.
시초점을 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줄기가 60개 이상 크기가 6자 이상 되는 것을 얻을 수만 있어도 좋다고 여긴다.
또 옛 점복서에 또 다음과 같은 기록되어 있다.
‘능히 명귀(名龜)를 얻은 사람에게는
재물이 그에게 몰려들어
그의 집은 틀림없이 큰 부자가 되어 천만 냥을 모을 수 있다.’
명귀는 종류는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첫째 북두귀(北鬥龜),
둘째 남진귀(南辰龜),
셋째 오성귀(五星龜),
넷째 팔풍귀(八風龜),
다섯째 이십팔숙귀(二十八宿龜),
여섯재 일월귀(日月龜),
일곱번째 구주귀(九州龜),
여덟번째 옥귀(玉龜) 등
모두 8가지 종류가 있다.
점복서에 그려져 있는 여덟 종류의 명귀 그림에는
각각 거북의 복부 밑에 그 이름과 설명이 적혀있다.
여기서는 그 대강의 뜻만을 기록하고
그림은 옮겨놓지 않겠다.
이러한 명귀의 크기는 한 자 두 치를 되는 것을 얻어야하는데
민간에서는 일곱 치나 여덟 치 길이의 명귀를 얻어도 보배로 여긴다.
무릇 주옥(珠玉)이나 보기(寶器)는
깊이 감춰둬도 그 빛을 드러내듯이
명귀도 반드시 그 신명함을 나타내는 법이니 바로 이것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산에 아름다운 옥이 있으면 초목이 기름지게 자라나고,
깊은 못에 진주가 있어 물가 언덕의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는
윤택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명월과 같은 진주는 강과 바다에서 나는데
조개 속에 감추어져 있다.
교룡(蛟龍)이 그 위에 엎드려 있으니
왕이 이것을 얻으면 오래도록 천하를 보전할 수 있고,
사방의 오랑캐가 복종한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백 개의 줄기가 있는 시초를 얻고
또 그 밑에 사는 거북까지 얻어 점을 친다면 그
가 말한 것은 모두 다 합당하여 길흉을 충분히 결정할 수 있다.
신귀는 장강(長江)의 물속에서 나온다.
그래서 여강군(廬江郡)에서는
매해마다 길이 한 자 두 치 되는 거북 20마리를 잡아
산채로 태복관으로 보낸다.
태복관은 길일을 가려 그 배를 갈라 껍질을 벗겨낸다.
거북은 천 년을 살아야만 비로소 한 자 두 치가 된다.
군왕이 군대를 일으켜 장군을 보낼 때는 반
드시 먼저 묘당(廟堂)에서 거북 껍질을 찔러 점을 쳐서 길흉을 판단한다.
지금 고조의 묘(廟) 안에는
거북껍질을 보관해둔 방이 있고,
그 거북 껍질은 하늘이 내려준 신령스런 보물로 여긴다.
옛 점복서에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거북의 앞발의 뼈는 얻어 몸에 지니고
거북은 집안 서북쪽 구석에 매달아두면
깊은 산이나 큰 숲 속에 들어가도 길을 잃지 않고 헤매지 않는다.’
내가 낭관으로 있을 때
《만필석주방(萬畢石朱方)》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신귀는 강남의 가림(嘉林) 속에 산다.
가림은 범이나 이리 같은 짐승이 없고
부엉이나 올빼미와 같은 악조도 없으며
독초 같은 풀도 나지 않고
들불도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며
도끼나 낫으로 나무를 베지 않는 생태환경이 좋은 숲이다.
그곳에서 신귀는 언제나 아름다운 연꽃 위에서 집을 짓고 산다.
신귀의 왼쪽 옆구리에 ‘9월 9일 중광절(重光節) 갑자(甲子) 날에 나
를 얻은 사람이 원래 필부이라면 고관이 될 것이고,
원래 제후의 신분이라면 제왕(帝王)이 될 것이다.’라는 글이 쓰여 있다.
흰 뱀이 도사리고 있는 울창한 숲 속에서
신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목욕재계하고 그것이 나타나주기만을 기다린다.
이 때는 마치 어떤 사람이 신귀에 관한 비밀 소식을 전해주려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몸가짐으로 겸손하여 엄숙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에 땅에 술을 뿌려 기도하며 제사지내고 머
리를 풀어 산발하여 사흘 밤낮을 갈구해야만 비로소 신귀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미루어보면 어
찌 신귀의 영묘함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우리가 신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방의 어떤 노인이
거북으로 침상의 다리로 삼아 받쳐두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노인이 죽고 침상을 옮겼으나 거북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거북은 능히 스스로 기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거북은 이렇듯 신령스러운 것인데,
어째서 태복관은 살아있는 거북을 얻자마자 죽여 배를 갈라 그 껍질을 취합니까?’
얼마 전에 장강의 강변에 살고 있던 한 사람이
명귀를 얻어 집에서 길러 그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친구와 상의하여 그 거북을 놓아주려고 했다.
그 친구가 듣고 말했다.
‘거북을 죽일지언정 놓아주지는 마시오.
그 거북을 놓아주면 망할 것이오.’
그러자 거북이 꿈에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를 물속에 놓아 보내주시오. 나를 죽이지 마시오.’ 그
러나 그 사람이 결국은 거북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자 거북을 죽인 후에 집의 주인은 죽었고
그 집안에도 불행이 잇달아 밀어닥쳐 망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과 군왕은 도를 달리한다.
백성이 명귀를 얻으면 아무래도 죽이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러나 옛날 관례에 따르면
성왕이나 명군이 명귀를 얻으면 모두 죽여 점복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송나라 원왕(元王)은
거북 한 마리를 얻어 죽여서 점치는데 썼다.
삼가 그 일을 다음과 같이 적어
호사가들로 하여금 읽게 하여 참고하도록 한다.
송나라 원왕 2년,
장강(長江)의 신이 신귀를 황하(黃河)의 신에게 사자로 보냈다.
신귀가 천양(泉陽)에 이르렀을 때
예저(豫且)라는 어부가 그물을 걷어 올려 잡아 대바구니 속에 넣어 두었다.
그날 밤 신귀가 송나라 원왕의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장강의 신이 내린 명을 받들어
황하의 신에게 사자로 가고 있는데
길목에 쳐진 어망에 걸려
천양의 예저라는 사람에게 잡혀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듯 곤경에 빠져 있으나 하소연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왕을 찾아와 구원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평소에 덕과 의리가 있으신지라 이렇게 찾아와 도움을 청합니다.’
원왕이 놀라 깨어나 박사 위평(衛平)을 불러 물었다.
‘방금 과인은 꿈속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긴 목과 머리에 수를 놓은 검은색 옷을 입고
짐수레를 타고 와서 과인에게 이렇게 말했소.
‘저는 장강의 신이 내린 명을 받들어 황하의 신에게 가는 사신이오.
제가 길을 가다가 도중에 쳐진 그물에 걸려 천
양에 사는 예저라는 자에게 잡혀 곤경에 처해 갈 수 없는 몸이 되었으나
하소연할 사람이 아무도 없소. 대
왕은 평소 덕과 의리가 있으니 이렇게 와서 도움을 청합니다’라고 했소.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인가?
위평은 왕의 말을 다 듣고
곧 점치는 식(式))을 들고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달빛을 관찰하고
북두성을 가리키는 곳을 살피고 해가 향하는 곳을 추정했다.
그리고 위평은 컴퍼스와 짧은 자 그리고 저울대와 저울추로 측량했다.
동남쪽, 서북쪽, 서남쪽, 동북쪽의 네 방향에 위치를 정하고,
건(乾), 곤(坤), 진(震), 손(巽), 감(坎), 리(裏), 간(艮), 태(兌) 등
팔괘(八卦)가 서로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원왕이 꾼 꿈의 길흉을 헤아려 보니,
거북이의 형상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위평이 원왕에게 말했다.
“어젯밤은 임자(壬子)일로
밤에 태양이 북쪽 현무상(玄武象)인 우수(牛宿)에 자리잡는 날입니다.
이 때가 되면 바야흐로 황하의 물이 크게 모여
귀신들이 서로 의논할 때입니다.
은하수(銀河水)가 남북으로 똑바로 위치하고
장강과 하수의 신들이 먼저 약속하여 남풍이 새로 불어오기 시작할 때가 되면
장강의 신이 먼저 사자를 황하의 신에게 보내 인사를 드리게 합니다.
지금 하늘의 흰 구름이 은하수를 막고 있으니
세상의 만물은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두성의 손잡이(斗柄)가
태양이 있는 자리로 향하면
장강의 신이 보낸 사자가 잡혀 갇히게 됩니다.
대왕께서 꿈에 보신 검은 옷을 입고 짐수레를 탄 남자는
바로 장강의 신이 사자로 보낸 거북입니다.
왕께서는 급히 사람을 보내 그 거북을 찾도록 하십시오.”
이에 대왕은 “알았소.”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대왕의 명을 받은 사자가
천양의 현령에게 달려가서
어부는 몇 집이나 되고 이름이 예저라는 어부가 누구이며
예저에게 잡힌 거북이가 있는지를 묻게 하고,
“거북이 왕의 꿈에 나타났음으로
왕이 자기를 사자로 보내 거북을 구하라!” 고 했다.
이에 천양령이 아전들을 시켜 호적대장을 조사하고
주민의 사는 곳을 살펴보도록 했다.
강가에서 고기잡이하는 사람이 쉰다섯 집이었는데
상류에 있는 거주하는 집에 과연 예저라는 어부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자에게 어부를 찾았다고 고하고,
천양령은 사자와 함께 달려가 예저를 보고 물었다.
‘지난번에 그대가 고기잡이 나가서 무엇을 잡았는가?'
예저가 대답했다.
‘한밤중에 그물을 걷었는데, 거북이 있었습니다.’ 사자가 말했다.
‘지금 거북은 어디 있는가?’ 예저가 대답했다.
‘대바구니 안에 가둬놓았습니다.’ 사자가 말했다.
‘대왕께선 그대가 거북을 잡은 사실을 아시고 내게 그것을 구해 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예저가 말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곧 거북을 바구니 안에 가둔 것을 꺼낸 다음 사자에게 바쳤다.
사자가 거북이를 수레에 싣고
천양의 성문을 나오는데
대낮인데도 보이는 것이 없었고
바람이 일고 비가 내리치며
하늘과 땅이 모두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청황의 오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구름이
거북을 실은 수레 위를 덮으니 천둥과 비가 함께 몰아치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사자의 일행이 거북을 실을 수레를 이끌고
왕도의 남쪽 정문으로 들어와 궁궐의 동쪽 방에서 왕을 접견하고 거북을 보였다.
거북의 몸뚱이는
흐르는 물처럼 윤택하여 빛이 났다.
거북이 원왕을 멀리서 쳐다보며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앞으로 다가오더니 삼보의 거리를 기어와 멈추더니,
다시 목을 움츠리며 물러가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원왕이 보고 기이하게 여겨 위평에게 물었다.
“거북이 과인을 보더니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앞으로 나왔다가 다시 목을 움츠리고
제자리에 돌아간 것은 무슨 뜻이오?”
위평이 대답했다.
“거북은 여태까지 계속 대바구니 속에 갇혀서 불안한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덕과 의를 갖추신 대왕께서 사자를 보내 구해주셨습니다.
지금 목을 늘어뜨리고 앞으로 나간 것은 감사하다는 뜻이며
목을 움츠리고 물러난 것은 빨리 떠나고 싶다는 뜻입니다.”
원왕이 말했다.
“알았소!
거북이 이토록 신령스럽단 말인가?
오래 머물게 할 수 없겠소.
속히 수레를 준비하여 거북을 보내주어
사자의 임무를 완수할 기한에 늦지 않게 돕도록 합시다!” 위평이 대답했다.
“이 거북은 천하의 보물입니다.
남보다 먼저 이 거북을 얻는 사람이 천자가 됩니다.
또 이 거북으로 점을 치면 영험하여 물어보는 것마다 다 알아 맞히고
전쟁마다 그 승패여부를 다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거북은 깊은 못에서 태어나
황토에서 자라서 하늘의 도와 상고 시대의 일에 밝습니다.
물속에서 3천년을 노닐면서도 그곳을 벗어나지 않으며
편안하고 얌전하고 조용히 움직이기 때문에 힘을 쓰지 않아
수명은 천지와 같아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이 거북은 사물과 함께 변화하여 사계절마다 색깔이 바뀝니다.
가만히 숨어 살면서 엎드린 채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봄에는 푸른색 여름에는 누런색 가을에는 흰색 겨울에는 검은색으로 바뀌어
명확하게 음양을 꿰뚫고 형덕(刑德)을 심판하고
먼저 득과 실을 알고 길흉화복을 살필 줄 압니다.
이 거북으로 점을 치면
미래를 예측하고 전투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왕
께서 이것을 보물처럼 간직하면 제후들을 모두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 거북을 놓아 보내 주지 마시고 사직을 안정시키시길 바랍니다.”
원왕이 말했다.
“이 거북은
대단히 신령스러워
하늘에서 내려와 깊은 못으로 떨어져 환난을 겪으면서
과인을 어질고 후덕하며 신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찾아와 나에게 찾아와 구원을 요청한 것이오.
과인이 만일 놓아주지 않으면
이것은 어부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어부는 살코기로 이익을 얻고자하고
과인은 거북의 신묘한 능력을 탐한다면
아랫사람은 어질지 못하게 되고,
윗사람은 덕이 잃게 되오.
군주와 신하가 예를 갖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복을 얻을 수 있겠소?
과인이 어찌 거북을 놓아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평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듣건대 큰 덕은 갚지 않아도 되고,
남이 귀중한 물건을 맡기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준 보물을 대왕이 받지 않으면
하늘은 도로 대왕의 보물을 빼앗아갈 겁니다.
지금 이 거북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거북은 위로는 끝없는 하늘에 이르고 아래로는 척박한 진흙탕에 먹칠을 하고
구주(九州)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치욕을 당한 일도 없었고 붙들려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천양에 이르러서 어
부에게 사로잡히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왕께서 비록 놓아 주신다하더라도
장강과 황하의 신은 틀림없이 노하여 복수해 치욕을 갚으려 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장마는 그치지 않고 홍수는 다스릴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가뭄이 들고 바람이 기승을 부려 먼지를 일으키며
메뚜기 떼가 들끓어 백성들은 수확 시기를 잃게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 거북에게 인의를 베풀어도 반드시 거북의 징벌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다른 원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귀신의 재앙이 거북의 몸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
왕께서 나중에 비록 후회하셔도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거북이를 놓아 주지 마시길 바랍니다.
원왕은 탄식하며 말했다.
“무릇 남의 사자를 가로막고 남의 계획을 방해한다면
이런 짓은 난폭한 행위가 아닌가?
남의 물건을 빼앗아 자기 보물로 만든다면
이는 또한 횡포가 아닌가?
과인이 듣기로는
폭력으로 재물을 얻는 자는 반드시 폭력으로 재물을 잃고
강제로 빼앗은 자는 나중에 빈털터리가 된다고 했소.
하(夏)나라의 걸왕,
은(殷)나라의 주왕은
폭력을 휘둘러 백성들을 억지로 눌렀다가
결국은 자신의 몸을 죽이고 나라를 망쳤소.
지금 경의 말을 받아들이면
과인은 인의가 업사든 말을 듣고
포악하고 강압하는 무도한 일을 저지른 군주가 되는 것이오.
그리되면 장강과 황하의 신은 탕왕과 무왕이 되고
나는 걸왕과 주왕처럼 될 것이오.
이는 이로운 점은 없고 예기치 않은 재앙이 닥칠지도 모는 일이니 걱정스럽소.
과인은 거북을 대하고 의혹에 싸여 불안한데
어떻게 이 보물을 취할 수 있겠소?
빨리 이 거북을 수레에 실어 보내 이곳에 오래 두지 마시오.”
위평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과 땅 사이에 돌이 쌓여 높은 산이 되었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땅은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물 중에는 위태로운 듯이 보이나
도리어 편안한 것이 있고
혹 가벼운 듯이 보이나 도리어 옮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 충신이지만 오히려 방종한 사람보다 못한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못났지만 오히려 큰 벼슬에 적합한 경우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아름답고 예쁜 얼굴을 갖고 있어도 뭇사람들의 화근이 되기도 합니다.
지혜가 남보다 뛰어난 신인이나 성인이 아니고는
사물의 이치를 다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혹 덥기도 하고 춥기도 합니다.
추위와 더위가 정상이 아니면 사물을 해치게 됩니다.
일 년 중에 다른 절기가 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봄에는 만물이 나고,
여름에는 자라며,
가을에는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저장합니다.
혹자가 인의를 실행하고
혹자는 포악한 행위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기도 합니다.
난폭한 행동도 때로 행할 이유가 있고,
인의를 실행하는 데도 때가 있습니다.
만물은 모두 같은 방법으로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대왕께서 신의 견해를 알고 싶으시다면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은 오색을 나타내어서 흑백을 분간하고
땅은 오곡을 낳음으로써 선악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면 금수와 같게 됩니다.
짐승처럼 골짜기나 동굴에서 살며 농사를 지을 줄 모르게 됩니다.
천하에 재해와 환난이 빈번히 일어나고
음양이 서로 뒤섞여 어긋나고 놀라 혼란해집니다.
모든 일을 급하게 해도 혼인은 하지 않습니다.
요괴와 재난이 출현하여 인간의 번식능력이 아주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출현하여 모든 생명을 구별하여
서로 해치는 일이 없도록 했습니다.
짐승에게는 암수가 있으므로
산과 들에 살도록 하고,
새에게는 자웅이 있으므로
숲과 못에 퍼트려 살게 하며,
딱딱한 껍질을 가진 벌레는 골짜기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은 다스리는 백성들을 위해서는
성곽을 만들어 안에는 집집이 경계를 두고,
그 밖으로는 두둑과 길을 만들었습니다.
부부에게는 논밭과 집을 나눠주고
세금을 걷고, 즐비한 집들의 지적도와 호적을 따로 만들어 구별했습니다.
관청을 세워 관리를 두고 작위와 봉록을 주며
그들을 권장하게 만들고,
명주와 삼베옷을 지어 입히고 오곡을 길러 먹도록 했습니다.
백성들은 논밭을 갈고 흙덩이를 부수고 호미질로 김을 맵니다.
입은 맛있는 것을 먹고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며, 몸
은 그 이익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강하지 않고서는 여기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그
러므로 밭갈이 하는 사람이 강하지 않으면 창고를 채우지 못하고,
장사꾼이 강하지 않으면 이익을 얻지 못하며,
부녀자가 강하지 않으면 옷감이 정교하지 못하고
관청의 통제가 강하지 않으면 위엄을 세울 수 없습니다.
또한 대장이 강하지 않으면 군사들이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고,
제왕이 강하지 않으면 평생 이름이 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따라서
강이란 것은 모든 일의 시작이며 분별하는 도리이고
사물의 기강임으로 강함을 통해 구한다면 얻지 못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대왕께서 저 옥독(玉櫝)과 척치(隻稚)는
곤륜산에 나오는 돌을 깨서 다듬어야하고,
명월주(明月珠)는
사방의 바다에서 나오는 조개를 깨서 시장에 내다판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성인들이 그것을 얻어 큰 보물로 삼고,
큰 보물을 가진 사람이라야만 천자가 됩니다.
지금 왕께서는 거북을 도와주는 것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계신데,
곤륜산에서 돌을 깨서 옥돌을 캐는 행위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을 캐는 사람에게 허물이 없듯이
보물이라 해 깊이 간직하는 사람에게 화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또한 거북이 사신으로 가다가
우연히 그물에 걸려 어부가 얻은 바가 되어
꿈에 나타나 직접 도움을 호소하여 구했으니 이것은 나라의 보물입니다.
왕께서는 아무 것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원왕이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내가 듣기로 간언은 복이고 아첨은 화가 되오.
남의 임금 된 자가 아첨을 받아주는 것은 어리석고 미혹되기 때문이요.
그렇지만 화는 함부로 오지도 않고 복은 공연히 오지도 않소.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합해져 모든 재물이 생기게 하고
음양의 기운이 나뉘어져 사계절이 차례로 바뀌며
일 년 열 두 달은 동지와 하지를 기준으로 번갈아 순환합니다.
성인들은 이를 꿰뚫어 봄으로써
몸에 재앙을 입지 않고,
명철한 왕은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남이 감히 속이지 못하는 것이오.
그래서 복을 일컫기를
사람이 스스로 낳는다 했고
화가 이르는 것도 사람이 스스로 만든다고 했으니
화와 복은 같다고 할 수 있고
형(刑)과 덕(德)이 짝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소.
그래서 성인은 이를 꿰뚫어 보기 때문에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오.
걸왕과 주왕 때에는
하늘과 공을 다투고
귀신의 길을 막아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게 했소.
이런 일들은 원래가 무도한 일이었는데,
거기에 아첨하는 신하들이 많았소.
걸왕에게는
조량(趙梁)이라는 아첨하는 신하가 있었소.
그는 걸왕에게 무도한 일을 하도록 가르쳤고
늑대처럼 탐욕스러운 짓을 권장해서
탕왕을 하대(夏臺)의 옥에 가두고 관룡봉(關龍逢)을 살해하도록 했소.
좌우의 신하들은 죽음을 두려워 걸왕을 곁에 모시면서
구차스럽게 아첨만 일관했소.
나라는 위태로워 마치 달걀을 쌓아 놓은 경우와 같았으나
모두들 걱정 없다고 말했소.
모두 걸왕을 칭송하여 만세를 부르고
혹자는 환락에 빠져서 즐거음이 아직 반에 미치지 못했다고 선동하는 사람이 있었소.
결국 걸왕의 이목을 가리며
함께 속이고 미쳐 날뛰었으니
마침내는 탕임금이 걸을 정벌하고 주왕 자신은 죽고 나라는 망하고 말았소.
아첨하는 신하의 말에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재앙을 불러들였던 것이오.
이런 일들은 춘추에 기록되어 잊혀 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소.
또 은나라의 주왕에게도
좌강(左彊)이라는 아첨하는 신하가 있었소.
그는 자신의 눈짐작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을 자랑하며
주왕으로 하여금 상아로 만든 화려한 궁전을 짓게 했는데,
그 높이는 하늘에 닿을 정도였소,
또 주왕은 이때부터 옥으로 만든 침상에
코뿔소의 뿔과 옥으로 만든 그릇 및 상아로 만든 젓가락으로 국을 먹기 시작했소.
그는 성인 비간(比干)의 심장은
갈라지고 만들고 겨울 아침에 시내를 건넌 장사들은 다리가 잘라버렸소.
그러자 기자(箕子)는
죽을까 두려워하여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해서 화를 피했소.
주나라 태자 역(曆)을 죽이고
주문왕 희창(姬昌)을 잡아 석실에 밤새 가두어 두려고 했소.
결국 날이 밝자 음긍(陰兢)이란 사람이 그를 구출하여
함께 주나라 땅으로 돌아가
태공망을 얻어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공격했소.
문왕이 병으로 죽자
그 시신을 수레에 싣고 행군한 태자 희발(姬發)이 대신 장수가 되어
무왕이라 하고
목야에서 싸워 화산(華山) 남쪽에서 주왕을 깨뜨렸소.
주왕은 싸움에서 져 돌아갔으나
상아로 장식한 궁전이 포위되자 침소에서 자살했소.
이리하여 주왕의 시신은 묻히지도 못하고
머리는 잘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의 횡목에 매달려 끌려갔소.
과인 이와 같은 일만 생각하면 창자가 뒤틀려 끓어지는 듯 한 아픔을 느끼오.
걸왕과 주왕의 부는 천하를 차지했을 만큼 컸고
천자라는 귀한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몹시 거만하고 욕심이 끝이 없었으며,
일을 만들어 높임을 받는 일을 즐겨했고
아주 탐욕스럽고 교만했소.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는 신하는 쓰지 않고
아첨하는 신하의 말만 받아들여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소.
지금 과인의 나라는 제후들 사이에 끼여
힘이 가을날의 새털만도 못하오.
일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면 어디로 도망칠 곳을 없을 것이다.”
위평이 또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황하의 신이 아무리 신령스럽고 현명하다 해도 곤륜산의 신만은 못하고,
장강의 원류가 멀어 길게 흐르더라도 사해(四海)의 크기보다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곤륜산과 사해의 보물을 빼앗아 취하고
제후들은 이것을 가지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작은 나라는 망하고 큰 나라는 위태로워지며,
남의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남의 처자식을 포로 잡으며.
나라를 해치고 종묘를 없애기까지 하면서 이 보물을 서로 가지고자 다툽니다.
전쟁을 벌려 분쟁을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강포함입니다.
그러므로 천하를 강포하게 취하더라도
문덕(文德)으로써 다스리고, 사계절의 질서에 위배되지 않고,
반드시 어진 선비를 친애하고 음양과 더불어 변화시켜
귀신을 사자로 삼아
천지간을 통하여 더불어 벗이 되면
제후들은 찾아와 기꺼이 복종하고 백성들은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나라는 편안해지고
세상은 더불어 다시 옛것을 고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탕왕과 무왕은 이를 행했기 때문에 천자의 지위를 차지했고,
『춘추』에서는 이를 기록하여 세상의 기강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왕께서는
탕왕 무왕을 찬양하지 않고
스스로 걸왕과 주왕에 비교하시려고 하십니까?
걸왕과 주왕은 처음부터 강포했으며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걸왕은 화려한 기와집을 짓고 주왕은 화려한 궁전을 지었으며,
백성들로부터 부세로 거둬들인 비단실을 장작 대신 태워
백성들의 힘을 애써 소모시켰습니다.
부세는 한도가 없었고, 제멋대로 살육을 자행했으며,
사람들이 애써 키운 육축(六畜)을 죽여 그 가죽으로 자루를 만들고
그 자루 안에 육축의 피를 담아 천정에 매달아
사람으로 하여금 활로 쏘게 만들어 상제(上帝)와 힘을 겨뤘으며,
사계절을 거슬러 행동하고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먼저 백곡을 맛보았습니다.
간언하는 자는 그 바로 죽이고
아첨하는 자는 곁에 두었습니다.
성인은 엎드려 숨어 살고 백성은 선한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자주 가뭄이 들고 나라에는 이상한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해마다 해충이 발생하여 오곡은 익지 않아
백성들은 한 곳에서 편안히 살지 못했고
귀신들은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거센 바람이 일고 대낮인데도 칠흑처럼 어두워졌으며
일식과 월식이 동시에 일어나
천지에 빛이 사라져 어둡게 되고 뭇별들은 어지럽게 운행하니
세상의 기강이 끊어졌습니다.
이러한 일을 보건대
어떻게 걸왕와 주왕이 오래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탕왕과 무왕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당연히 망해야 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탕왕은 걸왕을 토벌하고
무왕은 주왕을 공격하여 이겼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때를 만들어 두 사람을 천자로 만들어
자손대대로 이어지게 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종신토록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칭송하고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다 때에 맞추어 행할 것은 행하여 일
의 상황을 살펴보고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갔기 때문에
비로소 제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거북은 큰 보물입니다.
성인의 사자가 되어 뜻을 현왕(賢王)에게 전하러 왔습니다.
거북이 손발을 쓰지 않아도 우뢰와 번개가 인도하고,
바람과 비가 거북을 전송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덕이 있으면
이 거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후한 덕을 지니시고 계시니,
이 보물을 받아 마땅한데도 굳이 받지 않으시니 걱정이 됩니다.
대왕이 거북을 놓아 멀리 보내면
송나라에는 반드시 재앙이 생길 것입니다.
뒤에 후회하셔도 그때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위평의 말에 원왕은 몹시 기뻐했다.
그래서 원왕은 하늘이 하사한 신물에 대해서
태양을 향해 감사드리고 두 번 절한 뒤에 거북을 받았다.
그리고 날을 가려 재계한 뒤
갑(甲)과 을(乙) 일이 가장 좋은 날이었으므로,
그 날에 흰 꿩과 검은 양을 잡아 그 피를 거북의 몸통에 뿌리고
제단 가운데 놓고
칼로 거북의 등딱지를 벗겨 가졌다.
거북의 몸은 긁힌 상처는 하나도 없고 온전하게 벗겨내어 포
와 술을 그 창자에 채워 경의를 표했다.
귀갑을 가시나무의 가지를 태워 이것으로 점을 치는데
반드시 그 위에 틀이 나타났다.
금이 나타나고 문양이 서로 엉킨 것을 복공(卜工)에게 주어 점을 치게 했더니
하는 말마다 모두 적중했다.
그래서 귀갑은 나라의 보배로 간직했는데,
주변의 나라에도 그 소문을 듣고 알려지게 되었다.
또 소를 죽인 뒤 그 가죽을 벗겨
정나라에서 나는 오동나무에 씌워
전투용 북을 만들자
풀과 나무가 각기 흩어져 무장한 군사로 변했다.
그리하여 싸우면 이기고 치면 취하는 데는 원왕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원왕 때 위평은 송나라 재상이 되었다.
그 무렵 송나라가 가장 강했던 까닭은 거북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거북은 매우 신령스러워 원
왕의 꿈속에는 나타날 정도였지만
자신은 어부의 대바구니에서는 스스로 빠져나오지는 못했다. 그
몸이 열 번 말해서 모두 맞혔어도
사자로서의 명령을 황하의 신에게 전하고 돌아가
장강의 신에게 보고할 수는 없었다.
그 거북은 사람으로 하여금 싸우면 이기고 치면 얻을 수 있게는 했지만,
스스로 칼날을 물리쳐 등딱지를 발리는 우환을 면할 수는 없었다.
성스럽고 탁월한 지혜로 미리 자기의 위기를 알고
재빨리 왕의 꿈에 나타나기는 했으나, 위평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상하는 일마다 모두 완벽하게 맞혔으나
자신의 몸은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운이 불리하면 제아무리 현명해도 그 현명함을 쓸 수 있겠는가?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어질지만
선비는 가끔은 어질 때가 있다.
그러므로 밝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밝은 귀에도 들리지 않는 것이 있는 법이다.
사람은 아무리 현명해도
왼손으로 네모를 그리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릴 수는 없다.
해와 달이 밝아도 때로는 뜬구름에 가려질 때가 있다.
예(羿)는 활을 잘 쏘기로 이름이 높았으나
웅거(雄渠)와 봉문(蜂門)에는 미치지 못했고,
우임금은 지혜로 이름이 높았으나 귀신을 이기지 못했다.
지축이 부러지는 바람에
서까래가 없어져 하늘도 동남쪽으로 기우는데, 하
물며 사람이 어찌 완전하라고 꾸짖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공자가 신귀(神龜)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신귀는 길흉을 알지만 그 뼈는 헛되이 발려질 뿐이다.”
해는 덕(德)의 상징으로
천하에 군림하나 세 발 까마귀에게 욕을 당한다.
달은 형(刑)의 상징으로서
덕인 해를 돕지만 두꺼비에게 먹히 월식이 된다.
고슴도치는 까치에게 욕을 당하고,
등사(騰蛇)는 신령스럽기는 하나 지네에게 위협을 당한다.
대나무 겉은 마디가 있으나 속은 텅 비어 있으며,
소나무와 잣나무는 모든 나무의 으뜸이지만,
베어져 집의 문으로 만들어진다.
일진(日辰)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孤)와 허(虛)한 날이 생긴다.
황금에도 흠이 생기고 백옥에도 티가 생길 수 있는 날이 있다.
일에는 빨리 해야 할 것과 서서히 해야 할 것이 있으며,
모든 사물에는 결점에 구속되는 경우와 장점에 의지되는 경우가 있다.
그물에는 촘촘한 것과 성긴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는 잘하는 점도 있고 못하는 점도 있다.
어떻게 해야 모두 옳을 수 있으며
사물 또한 완전할 수 있겠는가?
하늘도 오히려 완전하지는 못하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집을 지을 때는
기와를 석 장 모자라게 덮어 완전하지 못한 하늘에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에는 온갖 등급이 있고, 만물은 불완전하지 생성되는 것이다.”
저(褚)선생이 말한다.
“어부가 그물을 들어 올려 잡은 신귀가 스
스로 송나라 원왕의 꿈속에 나타났다.
이에 원왕은 박사 위평을 불러 꿈에 본 거북의 모양을 알려주었다.
위평은 점판(占板)을 돌려,
해와 달의 위치를 살피고
형(衡)과 도(度)로써 방위를 바로잡아 길흉을 판단한 뒤에
점을 쳐 물건의 색으로써 그것이 곧 거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위평은 원왕에게 달래어
신귀를 붙들어두어 나라의 중요한 보물로 삼게 하여 이는 장한 일이다.
옛날부터 복서를 행할 때는
반드시 거북을 사용한 이유는
위평의 이름이 전해 내려온 바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나머지는 차례로 적어 전한다.”
3월, 2월, 정월, 12월, 11월에는
가운데는 닫히고, 안은 높으며, 밖은 낮다.
4월에는
거북의 머리는 쳐들고 다리를 벌려 발을 오므리기도 펴기도 한다.
5월에는
거북이 머리를 숙여서 크게 된다.
거북의 뜽딱지에 가로지른 금이 생기면 길하다.
거북이 머리를 숙여서 커지는 달은
6월, 7월, 8월, 9월, 10월이다.
귀갑으로 점을 칠대는 다음의 금기사항을 잘 지켜야 한다.
자시(子時), 해시(亥時), 술시(戌時)에는
점을 쳐서도 안 되고 거북을 죽여서도 안 된다.
만일 한낮에 일식을 만나게 되면
점을 치는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해질녘이 되어 점을 치면
거북은 분명하게 말하지 않음으로 점을 치면 안 된다.
경(庚)과 신(辛) 등의 날에는
거북을 죽여도 좋고
거북의 등딱지를 벗겨 얇게 하는데 좋다.
항상 달의 초하루에는
먼저 귀갑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 상스럽지 못한 것들을 없앤다.
점을 치는 방법은
먼저 맑은 물로 귀갑을 씻고
다시 계란으로 귀갑을 문질러
상서롭지 못한 것을 제거한 뒤에라야 점을 치는데
이것이 통상적인 원칙이다.
만일 점을 쳐서 맞지 않을 때는
다시 계란으로 씻어 낸 뒤
동쪽을 향해 서서 싸리나무나 단단한 나무로 굽는다.
그때 흙으로 만든 알로 귀갑을 세 번 가리킨 다음
그 귀갑을 손에 들고 계란으로 문지르며 이렇게 빈다.
“오늘은 길일입니다.
삼가 기장과 계란과 귀갑을 구운 나무를
옥령(玉靈)에 달라붙은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씻어 깨끗이 했습니다.
옥령은 반드시 믿음과 정성으로써 모든 일의 정황을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길흉의 조짐을 분별하여 점칠 수 있습니다.
믿음도 없고 정성도 없다면 옥령을 불태워
그 재를 날려 보내 다음 거북의 징계로 삼겠습니다.”
점을 칠 때에는 반드시 북쪽을 향해 선다.
귀갑의 크기는 반드시 한 자 두 치가 되어야 한다.
점을 칠 때는 먼저 떼어 낸 귀갑을 구워 가운데에 구멍을 뚫는다.
다시 거북의 머리를 굽는데 각각 3번 반복한다.
구멍을 낸 가운데를 굽는 것을 정신(正身),
머리를 굽는 것을 정수(正首), 다리를 굽는 것을 정족(正足)이라고 한다.
이렇게 각각 3번 반복한다.
그런 다음 가시나무가지나 단단한 나무로 세 번 구운 귀갑을 돌리며 이렇게 빈다.
“그대 옥령부자(玉靈夫子)의 신통력을 빌리려고 합니다.
신통한 부자옥령(夫子玉靈)이시여,
싸리나무로 그대의 가슴을 구워
그대로 하여금 앞날의 일을 먼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대는 위로는 하늘까지 오르고 아래로는 심연의 끝에 이릅니다.
수많은 신령한 것들로 책(策)을 헤아려 점을 쳐도 모두 믿을 만한 것들이 없습니다.
오늘은 길일입니다.
행하는 일마다 순조롭습니다.
어떤 일을 점치려 하는데 좋은 징조를 얻으면 기뻐하고 얻지 못하면 뉘우치겠습니다.
만일 얻을 수 있으면 일어나서 저를 보고 몸을 길게 하고 손발은 모두 위로 향하십시오!
얻을 수 없다면 일어나서 나를 보고 몸을 굽혀 안과 밖이 서로 응하지 않도록
손과 발을 오므리십시오.”
신령스런 거북으로 점을 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신령스런 거북님의 신통력을 빌리고자 합니다.
오서(五筮)와 오령(五靈)의 신령함도
사람의 생사문제를 아는 데에 있어서는 영험한 신귀에 미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몸을 바르게 하고 어떤 물건을 얻고 싶어 합니다.
만일 얻을 수 있다면 머리를 내밀고 발을 펴며 점괘의 문양이 안팎이 서로 응하게 하고
만일 얻을 수 없다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며 안팎이 서로 응하지 말고
각각 내려 점을 칠 수 있게 하십시오.”
환자를 점 칠 때는 다음과 같이 빈다.
“지금 아무개가 병이 깊어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는다면 머리를 보이고 발을 안과 밖이 서로 다르게 하고 몸을 꺾으십시오.
만일 그가 죽지 않는다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십시오.”
환자가 탈이 있을까 없을까를 점칠 때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환자가 탈이 난다면 징조를 보이지 말고, 탈이 없다면 징조를 보이십시오,
안에 탈이 있으면 안에 징조를 보이고, 바깥에 탈이 있으면 박에 징조를 보이십시오.”
감옥에 갇힌 사람이 나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빈다.
“ 감옥에서 나올 수 없으면 횡길(橫吉)하여 편안히 있게 하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으면
발을 펴고 머리를 쳐들어 징조를 밖으로 보이십시오.”
재물을 구하면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빈다.
“얻을 수 있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 안팎이 서로 응하게 하고, 얻을 수 없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라는 증조를 보이십시오”
노비나 말과 소를 팔고 사는 것을 점칠 때에는 이렇게 빈다.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 안팎이 서로 응하게 하고,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고 옆으로 선이 나타나도록 하여
편안히 있도록 증조릴 나타내십시오.”
도둑이 몇 명 모여 있는 곳을 공격하는 일을 점칠 때는 이렇게 빈다.
“ 지금 우리 장수는 군사 몇 명을 이끌고 도적을 치러 갑니다. 이길 수 있다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며 몸을 곧게 하고, 안은 높이고 밖은 낮게 하십시오.
이길 수 없으면, 발을 오므리고 머리를 쳐들고, 몸은 안이 낮고 밖이 높게 하십시오.”
가야 할지 가지 말아야 할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가도 좋으면, 머리와 발을 펴고, 가지 말아야 하면, 발을 오므리고 머리를 쳐드십시오.
그리고 만약 횡길안(橫吉安)이면 마땅히 가지 않겠습니다. ”
도적을 치러 가면서 도적을 만날 것인지 못 만날 것인지를 점칠 때에는 이렇게 말한다.
“만날 수 있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은 오므려 징조를 밖으로 나타내십시오.
만나지 못하면, 발을 펴고 머리를 드십시오.”
도적의 동정을 살피러 가면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만한다.
“ 도적을 만날 수 있으면, 머리를 들고 다리를 오므리시고 징조를 밖으로 보이십시오.
도적을 만날 수 없으면, 다리를 벌리고 머리를 드십시오. ”
도적이 쳐들어올 것인지 안 올 것인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 쳐들어온다면, 밖은 높게 안은 낮게 하고, 발은 오므리고 머리를 쳐드십시오.
쳐들어오지 않는다면, 발을 펴고 머리를 들든가 횡길안을 보이십시오.
그것에 따라 기다리든지 나가든지 하겠습니다.”
관직이 옮겨졌을 때, 관직을 떠날 것인지 그대로 있을 것인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떠나는 편이 좋으면, 발을 펴고 머리를 쳐들고, 떠나지 않거나 스스로 떠나는 편이 좋으면,
발을 오므리거나 횡길안을 보이십시오. 그것에 다라 떠나던가 않던가 하겠습니다.”
관직에 있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점칠 때에는 이렇게 말한다.
“좋으면, 몸을 바르게 하는 정조를 보여 횡길을 나타내고, 좋지 않으면,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십시오.”
집에 있는 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점칠 때에는 이렇게 말한다.
“길하면 몸을 바르게 하거나 횡길안을 나타내고, 불길하면,
몸을 구부려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십시오.”
그 해 농사가 풍년인지 흉년인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풍년이면, 머리를 들고 발을 펴며, 안은 스스로 높이고
밖은 스스로 밑으로 늘어지게 하십시오. 흉년이면,
발을 오므리고 머리를 쳐드십시오.”
그 해에 전염병이 민간에 돌지 안 돌지를 점 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전염병이 돌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며,
몸의 마디가 굳어지는 것을 밖으로 보이십시오. 돌지 않는다면,
몸을 바르게 하고 머리는 쳐들고 발을 펴십시오.”
그 해에 병란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병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징조를 보이거나 횡길을 나타내고, 병란이 일어난다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며, 몸이 밖으로 굳어지게 하십시오.”
귀인을 만나는 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좋으면, 발을 펴고 머리를 쳐들며, 몸을 바로 하여 안이 절로 높아지게 하십시오.
좋지 않으면 머리를 쳐들어 몸을 꺾고, 발을 오므려, 고기잡이가 없는 것처럼 하십시오.”
남에게 부탁할 경우 그것이 잘 될지 안 될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잘 될 것 같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서 안은 절로 높아지게 하고, 잘 안 될 것 같으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십시오.”
도망간 사람을 뒤쫓아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점을 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잡을 수 있을 때는, 머리를 쳐들고 다리를 오므려 안팎이 서로 응하게 하고,
잡을 수 없을 때는 머리를 쳐들고 다리를 벌려 횡길을 나타내십시오.”
고기잡이나 사냥을 나갈 때 잡는 것이 있을지 없을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잡을 수 있다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서 안팎이 서로 응하게 하고, 잡을 수 없으면,
발을 오므리고 머리를 쳐들거나 횡길을 나타내십시오.”
길을 가다가 도적을 만날지 만나지 않을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도적을 만난다면, 머리를 쳐들고 발을 펴며 몸을 꺾어, 밖은 높게 하고 안이 낮게 하십시오.
도적을 만나지 않는다면, 징조를 보이십시오.”
비가 올지 않올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비가 온다면, 머리를 쳐들고 밖은 높게 안은 낮게 하고, 비가 오지 않는다면,
머리를 들고 발을 벌리거나 횡길을 나타내십시오.”
비가 갤지 개지 않을지를 점칠 때는 이렇게 말한다.
“갠다면, 징조를 보이고 발을 펴서 머리를 쳐들고, 개지 않는다면, 횡길하십시오.”
명(命)에 말한다. “ 횡길이 나타난 경우,
병을 점쳐 보면 병세가 심한 환자라도 그 날 안으로는 죽지 않으며,
병세가 심하지 않은 환자는 그날로 낫고 죽지 않는다.
감옥에 갇힌 사람 가운데 큰 죄를 지은 사람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은 나오는데,
만일 그 날이 지나도 나오지 못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갇혀 있어도 상하는 일은 없다.
재물을 구하고 노예와 말과 소를 사는 일도 그날 안으로는 얻을 수 있지만,
그날을 넘기면 얻지 못한다.
길을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면 떠나지 말아야 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올지 안 올지의 경우는 온다.
그러나 밥을 먹을 때가 지나도 오지 않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적을 치러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일이라면 가지 말아야 한다.
설령 가더라도 도적을 만나지 못한다.
도적이 일어났다는 말이 들려와도 쳐들어오는 일은 없다.
관직이 옮길지 옮기지 않을지의 경우는 그대로 있게 된다.
관직이나 집에 있는 경우 모두 좋다.
그 해의 농사는 흉년이고, 민가에 전염병은 돌지 않는다.
이 해에는 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을 찾아가야 할지 말아야할지의 경우는 찾아가 봐야 한다.
찾아가지 않으면 기쁨이 없다.
남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경우 가서 부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도망 간 사람을 뒤쫓아도 잡을 수 없고, 고기잡이나 사냥을 나가도 얻는 것이 없다.
길은 나가도 도적을 만나지 않는다.
비가 올까 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면 오지 않는다.
날이 갤지 개지 않을지의 경우는 개지 않는다.”
명에 말한다. “징조를 보였을 경우, 환자는 죽지 않고,
감옥에 갇힌 사람은 나오며,
가야할지 가지 말아야할지의 경우는 가야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올지 안 올지의 경우는 온다.
장사를 하면 이익을 얻고, 도망친 사람을 뒤쫓으면 잡을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면 잡지 못한다.
집 나간 사람은 찾아도 오지 않는다.
명에 말한다. “기둥이 서 있을 경우[柱徹], 환자를 점치면 죽지 않고,
감옥에 갇힌 자는 감옥에서 나오며, 가야 할지 가야 말아야할지의 경우에는 가야하고,
올지 안 올지의 경우는 온다. 장사를 하면 얻는 것이 있고,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은 걱정이 사라진다. 도망친 사람을 뒤쫓아도 잡지 못한다.
명에 말한다.
“머리를 쳐들고 발을 오므리고 안으로는 변화가 있고 밖으로는 변화가 없을 경우,
병을 점치면 큰 병이라도 죽지 않고, 감옥에 갇힌 사람은 풀려난다.
재물을 구하고 노비와 말과 소를 사는 일은 잘 되지 않는다.
가야 할지 가지 말아야할지의 경우는 가는 편이 좋다는 말을 들었더라도 가지 말아야 한다.
올지 안 올지의 경우는 오지 않는다.
도적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도 오지 않고 어떤 사람이 온다는 말이 있어도 오지 않는다.
벼슬이 옮길지 안 옮길지의 경우는 옮긴다는 소문이 있어도 옮기지 않는다.
관직에 있으면 걱정되는 일이 많고 집에 있으면 재난이 많다.
이 해의 농사는 중간 정도이고, 민간에는 전염병이 유행한다.
이 해 안에 병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소문만 있고 공격을 받지 않는다.
귀인을 만나면 길하다.
청탁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가서 부탁해도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한다.
도망친 사람은 쫓아가도 잡지 못한다.
고기잡이나 사냥을 해도 잡히는 것이 없다.
길을 가도 도적을 만나지 않는다.
비가 올지 안 올지의 경우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다.
날이 갤지 안 갤지의 경우는 개지 않는다.
원래 귀갑에 나타나는 막(莫)자는 수비(首備)로 표시하는데
비(備)는 우러러본다는 앙(仰)으로 물어본다.
그래서 앙(仰)이라고 정했다. 이것은 나의 사사로운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