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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고구려
지금까지 동양권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는 조선 태종 2년(1402년)에 권근(權近), 이회(李薈) 등이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다. 그러나 2006년 4월 18일 중국 시안(西安)에서 개최된 중국당안진품전(中國檔案珍品展)에 명나라 때 제작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라는 대명혼일도 복제본이 공개되었는데, 중국 측은 이 지도가 아프리카가 그려진 지도로는 유럽보다 100년이나 앞선다고 발표했다.
원래 이 지도는 청조 황궁 내에 비장되어 있던 것으로, 1944년 이 지도를 열람했던 독일의 중국학자 발터 푹스(Walter Fuchs)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중국 내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의 지대한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당초 이 지도의 지명을 검토한 푹스는 지도 제작 연대를 16세기 후반이라고 추정했으나, 최근 중국 측은 지금까지의 연구를 통해 이 지도의 제작 연도를 명나라 초기인 1389년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도 발표된 바 있는 중국과학원의 연구원 왕치앤지(汪前進)의 논문 <대명혼일도 제작연대에 대한 재검토>에도, 지도에 나와 있는 행정구역 지명을 검토한 결과 쓰촨성의 광원현(廣元縣)은 1389년 6월 29일에 현으로 강등되었으나 지도에는 그대로 광원현으로 표시되어 있고, 쓰촨성의 용주(龍州)는 1389년 10월에 용주군민천호소(龍州軍民千戶所)로 바뀌었으나 그대로 용주로 남아 있는 사례 등으로 봐서 대명혼일도의 제작 시기를 1389년 6~9월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 지도는 가로 453cm, 세로 347cm가 되는 대형지도로 폭 84cm의 비단 4폭을 세로로 이어서 화견(畵絹)으로 사용했고, 채색으로 그려졌다. 도곽(圖郭)이 없는 가장자리는 지도의 내용이 잘려 나간 듯 보여 원래 지도는 지금보다 더 크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도 위쪽에는 한자로 ‘大明混一圖’라고 제목이 크게 쓰여 있으나, 발문이나 간기(刊記)는 없다.
지도에 나타난 지리적 범위는 중앙에 넓게 자리한 중국을 에워싸고 북으로는 몽골, 남으로는 자바섬, 동으로는 조선과 일본, 서쪽으로는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당시 파악되고 있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조선과 일본의 모습만 빼고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비슷한데, 특히 말레이반도를 제외한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대륙의 모습은 매우 흡사하다.
지형은 해안선과 섬, 산맥, 하천, 호수 등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회화식으로 어림잡아 그린 산맥에 비해 수계는 비교적 상세히 묘사되었다. 특히 발해만에서 해남도에 이르는 중국 동쪽의 해안선과 황하, 양자강, 주강 등의 본류와 지류는 현대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양자강은 청색으로 그린 반면 황하는 이름에 걸맞게 황색으로 표현했으며, 옛 물길인 북류 황하까지 나타내고 있다. 다만 명대에 중요시했던 만리장성이 빠져 있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동양 최초 세계지도’ 주장은 무리
이 밖에 지도에는 명나라의 각급 행정소재지를 비롯해, 진보(鎭堡), 옛 요새, 인공수로, 제방, 유적 등 1,000개에 이르는 지형지물이 묘사되어 있다. 행정소재지 명칭은 지색과 별도로 네모진 테두리로 표기한 것이 특색인데, 도읍지 난징(南京)은 청색 네모 안에 적색으로 황도(皇都)라 표기했고, 전국의 13개 포정사사(布政使司)와 그 아래 부·주·현(府州縣)의 명칭은 분홍색 네모 안에 표기했다. 원래 지도의 모든 지명은 한자로 표기되었으나, 청조 4대 황제인 강희(康熙) 연간에 한자 지명 위에 만주어로 음역해 써 붙인 홍첨(紅簽)이 붙어 있다.
중국 본토와 달리 주변 지역은 왜곡되거나 매우 소략하게 그려졌는데, 중국의 서쪽 지역이 특히 심하다. 하단 중앙부에 위치한 해남도(海南島)에서 서쪽으로 평행하게 뻗은 해안선은 인도차이나반도를 나타낸 것이고, 그 서쪽에 산맥이 줄지은 반도는 말레이반도다. 인도반도는 아예 존재감 없이 말레이반도 위쪽에 하천으로 구분된 작은 삼각형 모양으로 나타나 있다. 인도양 서쪽으로는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대륙이 압축된 채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중국 동쪽에는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지나치게 크게 부각된 모습인데, 한반도는 이상하긴 해도 윤곽은 잡혀 있는 편이나, 그 남쪽의 일본 열도는 그야말로 괴상한 모습이다. 한반도 위에는 한눈에 천지로 보이는 백두산이 흰색으로 또렷하게 그려져 있고, 그 동쪽 끝에 또 다른 흰색의 산은 금강산으로 보인다.
일본 교토대 미야 노리코(宮紀子) 교수가 쓴 <몽골제국이 낳은 세계지도>에 “세 개의 섬이 옆으로 나란히 있는 일본 형상의 비스듬히 위에 한반도나 아프리카보다도 훨씬 큰 문어괴물과 같은 육지가 보인다. 놀랍게도 이것도 일본이다. 이 일본은 거꾸로 되어 있지 않고 규슈(九州), 시코쿠(四國), 아와지섬(淡路島)도 그려져 있고, 거기에 오사카만과 도쿄만도 제대로 그려져 있다. 도쿄만의 북쪽에는 성이 보인다. 위치로 봐서는 에도성(江戶城)이라 생각된다. 즉 17세기 초두의 정보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다”라는 일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일본의 저명한 지리학자 운노 카즈다카(海野一隆)도 <지도문화사상의 광여도>에서 이 지도를 보고 “하나의 지도 가운데 두 종류의 일본이 나타나 있다”고 지적했다.
커다란 일본 땅 남서쪽에 그려진 세로로 길쭉한 3개의 작은 섬은 명나라의 유학자인 나홍선(羅洪先)이 1555년에 제작한 광여도(廣輿圖)에 실린 동남해이도(東南海夷圖)의 일본열도 모습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일본이 두 개로 그려져 있는 것은 이 지도가 지닌 치명적인 결함일 수 있다. 문어처럼 생긴 일본의 모습도 그렇거니와 도쿄만 북쪽에 보이는 성이 에도성이라면 중국이 자랑스럽게 공개한 지도의 제작 연도는 신빙성을 잃게 된다.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 후기의 무장인 오타 도칸(太田道灌)에 의해 에도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1457년이기 때문이다.
간기(刊記)나 제문(題文)이 없는 고지도의 연대를 고증할 때 지도의 내용이나 형태, 재질 등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 원칙인데, 자료와 정보가 모호한 고지도를 지명의 변천만으로 제작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자칫 큰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대명혼일도를 중국이 동양 최초의 세계지도라고 공개한 것은 너무 서두른 감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