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0일
본문 : 갈3:11
제목 : 하나님의 은혜, 믿음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다음 주일인 추수감사절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녀 삼으시고 지금까지 눈동자처럼 보호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날입니다. 아울러 우리 영명교회가 '총동원 새 생명 큰잔치'를 열고 새로운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복되고도 복된 날입니다. 우리 모두 진실하고 성실하게 전도하여 잃어버린 귀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마치 정오의 햇빛과 같이 밝은 은혜의 날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오늘은 갈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말씀을 통해 '믿음'의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한 오늘 본문의 믿음의 히브리어 '에무나'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이자 우리가 '아멘'이라고 표현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구약에는 '에무나'가 총 49회 나오는데 모두 믿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하박국서를 살펴보겠습니다. 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의 믿음은 내가 옳다고 판단한 나의 생각, 의지, 결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변함없이 진실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믿음의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주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붙드심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참 믿음을 주셔서 우리를 주의 길에 서게 하시며 주의 뜻에 순종하게 하시는 고맙고 놀라우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음의 주체자이심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너무 많은 오해와 착각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속에 빠져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생명의 믿음을 너무나 안일하고 무지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을 마치 수도꼭지만 돌리면 콸콸 나오는 물처럼 내 마음대로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것을 성숙하게 하는 기간을 정하셔서 성실하게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믿음의 주체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마음에 맞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해와 오판으로 믿음을 잘못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즉 국가와 개인, 국가와 국가, 기업과 기업,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남편과 아내, 목사와 성도 등의 많은 관계 속에서 믿음을 잘못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서의 '믿음'은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잡고 있었던 아론과 훌의 행위(출17:12)와 같이 참된 신앙으로 연합하여 협동하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구약의 하박국(2:4)과 신약의 갈라디아서(3:11)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생명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심을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했다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옛 죄악에 파묻혀 있지 않고 예수 안에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늘의 법적 효력을 발휘하는 믿음을 주님께서 아무렇게나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서 품고 살아야 하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죄악의 삶을 은혜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귀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 많은 인생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진리 가운데 서서 그분의 은혜를 선포하고, 그 은혜의 권위와 가치를 바로 깨달아 신앙인의 품위를 지키며 역동적이면서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옳은 길이며 우리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명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며, 그분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곧 참된 믿음의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출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결혼하고, 노예인 아이를 낳고, 노예로 죽을 때까지 평생 죽으라고 일만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절망의 삶으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불쌍하고 소망 없는 우리에게 간절하게 원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은혜로 그분의 백성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그 신분에 맞게 주인이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 진리에 순응하여 순종하고 어떤 상황과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한결같은 신앙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 즉 '에무나'입니다. 엄마가 꼭 붙잡고 안아주는 사랑의 행위에 아이가 편안하게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이유는 엄마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자기를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 엄마의 사랑을 알고 엄마를 믿습니다. 이것이 '에무나'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르비딤 골짜기에서 아모리족속과 전쟁할 때 있었던 일에 대한 기록입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우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들에게는 상전의 눈치를 보며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살고 싶었던 노예근성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전쟁에 능한 아모리족속을, 그것도 그들의 안방이자 앞마당인 르비딤 골짜기에서 싸워 이기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것없고, 서툴고, 별 볼 일 없는 이스라엘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나라였으며,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주인이자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그들 대신 싸워 이기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하나님의 종 모세는 믿음의 진을 쳤습니다. 그것은 산 위로 올라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과 대면하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측근인 아론과 훌이 동행했습니다. 산에 올라간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아론과 훌은 모세를 도왔으며, 산 아래에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선별한 서툰 병력들을 데리고 나아가 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전쟁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최정예 특전사 부대와 동네에서 일만 하던 사람들과 전쟁하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출17:9-11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한마디로 영적 싸움인 동시에 체력 싸움이었습니다. 긴 시간 팔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기도하러 가지 않고 측근을 둘씩이나 데리고 간 이유가 12절에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출17:12-13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기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전쟁의 참패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아론과 훌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끝까지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죽음을 불사하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모세의 동역자로서 그를 섬기던 아론과 훌은 어려운 상황에서 두려움이 찾아와도 도망하지 않고 끝까지 그들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결국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모세와 동역한 그들의 모습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믿음의 사람들입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큰 감동과 은혜를 받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합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그들의 믿음을 우리는 '에무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리고 해가 질 때까지 그 손이 내려오지 않게 한 것이 바로 동역입니다. 동역자인 그들도 무섭고, 힘들고, 배고프고, 괴롭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순종함으로 충성스럽게 자리를 지킨 그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 아래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은 수제자 베드로도, 도마도, 야고보도 아닌 요한이었습니다.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자기 자리에서 감당하는 사람이 곧 믿음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자리는 은혜와 생명의 자리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마지막 때'에 세상은 더욱 우리와 우리의 교회를 괴롭힐 것입니다. 그들이 르비딤 골짜기의 아말렉 군대처럼 우리를 괴롭힐 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내팽개치고, 예배의 자리도 박차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면서 도망치듯 우리의 곁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도님들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환경과 처지를 바라보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며, 역전을 이루시는 분은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모세를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예배자의 삶을 충실히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주께서 승리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에무나'의 은혜를 가슴에 품고 주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