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훈 장편소설 '남한산성'이 100쇄를 찍었다고 한다. '한국 문학에 갑자기 쏟아진 축복'이라는 극찬을 받은 '칼의 노래'에 이은 쾌거다! 소설가 김훈은 신문사 문화부 기자 시절 문학적 향기가 듬뿍 밴 기사들로 작가들을 사로잡았다. 소설가로 변신한 뒤 나온 그의 첫 소설을 읽으며, 산문과 서사 사이에서 어색하게 멈칫거리는 모습에 다소 실망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제 안에 쟁인 기자 관습에 젖은 문장을 털어내며 대형 소설가로 진화했다.
글깨나 쓴다는 이들이 다들 컴퓨터나 랩톱('노트북'이라고 부르는 그것!)의 자판을 두드려 쓸 때 그는 연필 그러쥔 손에 굳은살이 박일 만큼 꾹꾹 눌러서 글을 써낸다. 그는 손끝 촉감이 영감의 원천이라고 믿는 것일까. 손의 자극이 잠든 뇌의 뉴런들을 깨워 생각을 활성화한다니, 연필 쥔 손에서 문장이 술술 나오는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남은 '디지털 비전향자'일 테다.
아시다시피 김훈은 자전거 예찬론자다. 자전거는 바퀴 두 개로 움직이는 단순한 동력 장치다. 그는 두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 두 바퀴를 움직여 만경평야를 가로지르고 소백산맥을 넘는다. 그렇게 자전거 바퀴를 통해 대지와 교감한 기억을 몸에 새기고 반추하며 '자전거 여행'이란 빼어난 산문집을 써낸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 바람을 가르며 나아갈 때, 자전거가 인간 친화적 도구라는 확신은 더 단단해진다.
디지털 기술이 장착된 사물들은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자전거는 그렇지 않다. 자전거는 공해물질 없이 늘 사람의 몸과 하나로 움직인다. 김훈에게 자전거는 차라리 건각(健脚)을 기능적으로 연장(延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필로 글을 쓰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진 행위가 아니라 제 몸을 건사하고 쓸 줄 아는 사람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