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태국 사찰 방문기 (2)
수코타이 유적 (2)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수코타이
수코타이 지역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 소개하였지만 다시 한번 간략하게 소개한다.
인구는 약 3만 7000명 이다. 방콕에서 북쪽 427km이고, 욤강 동쪽 언덕에 있다. 방콕에서 비행기로로 갈 수가 있고, 버스도 있다. 몽골의 압력으로 13세기 후반에 남하한 타이족이 최초의 통일국가로서 수코타이 왕조(1238∼1438)를 세우고 수도로 삼았다. 제3대 람캄행대왕 시대에 가장 번창하였으나, 그 후에 아유타야왕조의 세력 아래에 들어갔다. 현재의 도심지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성벽·궁전·사원 등의 수코타이유적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다. 도성 안팎에는 37곳에 이르는 사원과 승방, 인공호수와 제방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도성의 중앙부에 있는 왓 마하탓은 수코타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복합체이다. 경내는 한 변이 210m인 해자에 둘러싸여 있으며 여러 개의 사원과 왕궁유적이 있다. 동쪽에는 사각 모양의 불당에 부처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중앙불당에는 대불좌상을 비롯한 수많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중심에는 석가모니의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던 중앙탑이 솟아 있는데, 기단에는 석가모니를 따르는 160명의 승려가 새겨져 있다. 199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태국 야유타야 지도
(c) 왓 마하탓 (Sukhothai Wat Maha That)
'왓 마하탓'은 수코타이 시절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므엉 수코타이(수코타이 고대도시)의 중심지였다. 왓 마하탓의 왓은 절 이라는 의미이며 마하탓은 석가모니 붓다의 유물을 보관한 불교사원이라는 뜻으로 수코타이. 시사차날라이. 아유타야. 방콕. 롭부리 등에 있다. 수코타이의 왓 마하탓은 초대왕인 인드라딧 왕부터 건축을 시작하여 람캉행대왕과 로에타이 왕때 크게 확대 했으며 그 뒤에 왕때도 점진적으로 증축했다. 가로 206미터. 세로 200미터의 벽돌담장과 외부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198개의 째디(chedi)와 10개의 사원 2개의 대형 불상이 있는 형태다. 다른 사원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매우 컸다.
왓 마하탓
왓 마하탓 불상
왓 마하탓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원 중심부에 위치한 연꽃모양의 째디로 수코타이 양식의 독특한 요소다. 람캉행 대왕시절인 1292년 처음 지었고 그 뒤 로에타이 왕이 스리랑카에서 석가모니의 머리카락과 목뼈를 봉안하기 위해 다시 전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원의 정동쪽에 있는 불상과 양 옆에 서 있는 형태의 불상은 아유타야 시절 만들었으며 동쪽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코타이(Sukhothai) 비문(돌 위에)을 평가할 때 왓 마하탓 (Wat Mahathat)는 1292 년과 1347 년 사이 어느 해에 세워졌다.
왓 마하탓 (Wat Mahathat)은 동쪽에서 역사 공원에 들어서는 첫 번째 복합 건물이다.
많은 성전 건축물이 있으며, 20 세기에 복원 된 건물이 많이 있다. 따라서 장식 중 일부는 오래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왓 마하탓 (Wat Mahathat)의 주요 건축물은 연꽃 모양의 체디가 있는 중앙 그룹, 4 개의 더 작은 스투파 및 4 개의 크메르 스타일의 prang을 포함한다. 앉아 부처님 이미지와 어셈블리 홀 (동쪽); 중앙 그룹의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두 개의 만다파 (사각형 건물). 각각 높이가 있는 불상이 있다.
이 유적지는 수코타이 역사 공원을 대표하는 유적지답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단체로 온 사람들도 많았다. 이 유적지는 물위로 비치는 유적지의 모습이 멋지다.
왓 시춤
(d) 왓 시춤(Wat Si Chum)
'왓 시춤‘은 고대도시의 북쪽에 있으며 인근에는 왓 프라파이 루앙(Wat Phra Phai Luang)이 있다. 나는 중앙유적군을 나와 안내인을 따라 이곳으로 향했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차로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달리는 차에서 보니 여기 저기 많은 유적들이 나타났다.
이곳은 1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곳으로 방문객이 많지는 않지만 널리 알려진 곳이다. 조그만 사무실에서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아래의 글은 주로 안내문에 쓰여진 것을 참고로 하고 번역하여 옮겨 적는다.
왓시춤은 프라 앗차나라는 대법당에 지배자인 마라의 태도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불상이 안치된 사원이다. 이 불상은 ‘말하는 부처님’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사찰은 람캄행 대왕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유타야 시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사용하지 않고 버려둔 상태가 되었다. 1952년 부미볼 아둘야데지 왕명에 의해 재건 되었다. 시춤 사원 혹은 왓지춤 사원에 모셔있는 불상은 일반 사찰에서 주법당에 불상을 모시는 것과는 다른 형태이다. 주법당에 있는 벽화에서는 지금은 빛이 바랜 상태이지만 그 벽화의 전성기일 때의 아름다움과 위엄을 지금도 역력히 볼 수 있다.
왓시춤은 제 2의 비문 혹은 왓시춤의 비문이 발견된 장소이다. 태국의 역사에서 볼 때 왓시춤이 수코타이 지방의 중요한 명소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남아 있는 불상, 사찰의 법당들 그리고 역사공원에 있는 기둥들에서 수코타이의 독특한 에술의 자취를 느낄수 있다. 수코타이를 여행하는 분이라면 꼭 사찰들을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말하는 불상, 아차나불
아차나불의 가늘고 긴 손
정면에는 우리의 대웅전에 해당하는 우보솟(ubosot)이 있고 뒷편에는 부처님을 모신 몬돕(mondop)이 있다. 높이 15미터. 폭 11미터의 크기이며 폭3미터의 두터운 벽속에 숨어 있는 듯 한 이 부처상을 보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좁은 벽속에 있는 듯 한 불상을 아차나불이라 부르며 두려움을 모르는 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지붕이 없지만 본래는 지붕이 있었다고 추정 한다. 가름한 얼굴. 가늘고 긴 팔과 다리. 풀이 죽은듯한 눈. 매부리코의 전형적인 수코타
이 양식이다. 특히 손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환상적으로 마치 여성의 손을 보고 있는 듯하다. 전설에 의하면 버마 군대가 침공해 왔다가 이 불상을 보고 놀라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Legend of the speaking Buddha image
말하는 불상(佛像)의 전설
프라 아차나 상(像)은 프라 푸드 다이 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번역하면 ‘말하는 부처님’이란 뜻이다. 나레수완 왕 제위 기간인 16세기 후반에는 버마와 전쟁이 잦았다. 전설에 따르면 전투 전에 군의 사기를 돋우고 싶어진 왕은 군사 중 한명에게 명해서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게 불상이 있는 몬답사원의 좁은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군대에게 연설을 하도록 명했다.
왕은 좁은 장소에서의 음향의 이치와 말하는 군사의 모습이 보일 수 없는 점을 감안하여 군사들이 그 연설이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릴 것이라고 계산 했다. 다른 설에 의하면 버마 군사들이 불상에 다가가면서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가버렸다고도 한다.
왓시춤에 관한 한국어 자료는 별로 없었다. 주로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이 주류였다. 그런데 여기 왓 시춤 벽화에 관한 아주 중요한 기사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왓 시춤 설명보드
왓 시춤 벽화
자타카에서 부처님은 원숭이로 자주 등장한다. 자타카의 많은 원숭이 이야기들 중에는 우리나라의 별주부전과 유사한 이야기도 발견된다. 물론 등장하는 동물에서 차이가 나는데 토끼는 원숭이로 거북이는 악어로서 나타난다. 위도가 높은 동아시아에서 원숭이와 악어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동물이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끼와 거북이로 이야기가 변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숭이와 악어가 등장하면서 내용적으로 별주부전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가 와나린다 자타카이다.
자신 죽이려는 악어 속여
섬 밖으로 도망간 원숭이
한국의 별주부전과 유사
한때 브라흐마닷타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리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는 원숭이로 태어나셨다. 자라면서 아주 크고 강하고 영리한 원숭이로 성장했고 강가에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강의 중앙에는 섬이 있었는데 이 섬에는 맛있는 망고나무와 다양한 과일나무들이 풍부했다. 원숭이는 육지와 섬의 사이에 있는 작은 바위섬을 이용하여 크게 점프해서 양쪽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육지에서 바위섬으로 점프하고 다시 섬으로 점프하여 많은 과일들을 먹고 난 후 저녁이 되면 섬에서 바위섬으로 점프한 후 다시 육지로 점프해서 되돌아갔다. 이 강가에는 악어부부가 또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악어부인은 매일같이 섬과 육지를 왔다 갔다 하는 원숭이를 보면서 이 원숭이의 심장을 먹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악어에게 자신의 소망을 말했고 남편악어는 부인의 소망을 이루어주겠노라고 답했다. 그리고 남편 악어는 조용히 바위섬으로 올라가 원숭이가 점프하기를 기다렸다. 그날 저녁 원숭이가 육지로 돌아가려고 바위섬을 살펴보니 바위섬의 높이가 이전보다 더 높아져 있었다. 원숭이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지로 가기 위해서는 저 바위섬을 지나야만 했기에 확인해보기로 했다.
원숭이는 나무위로 올라가서 바위섬을 향해 “친구 바위섬이여”라고 소리쳤다. 원숭이가 3번 소리쳤지만 악어는 답하지 않았다. 원숭이는 “바위섬이여, 왜 오늘은 답하지 않는가?” 라고 다시 물었다. 악어는 자신이 답을 해야만 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고, “원숭이여, 무슨 일인가?”라고 답했다. 원숭이
가 누구냐고 묻자 악어라고 답했고, 왜 그곳에 있느냐고 묻자 원숭이의 심장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위험해진 것을 알아차린 원숭이는 악어를 속이고 섬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원숭이는 악어에게 말했다.
“친구 악어여, 내 심장을 당신에게 드리겠소. 입을 크게 벌리고 내가 근처에 가면 잡아먹으시오.”
원숭이는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리게 되면 눈이 자동으로 감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숭이의 이야기에 악어가 입을 크게 벌리자 그의 눈이 자동으로 감겨 버렸다. 악어의 눈이 감긴 것을 확인한 원숭이는 악어의 얼굴로 점프한 후 재빠르게 다시 육지로 점프해서 도망갔다. 악어는 원숭이의 지혜에 크게 감탄했다. 그리고 그는 4가지 덕성을 갖춘다면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는데 그대가 바로 그러한 원숭이라며 칭찬했다고 한다.
원숭이의 심장이 토끼의 간으로 바뀌고 원숭이의 지혜가 토끼의 재치로 바뀌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별주부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태국 수코타이 왓시춤의 벽화에는 바위섬에 웅크리고 있는 악어와 나뭇가지를 잡고 바위섬을 응시하는 원숭이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황순일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sihwang@dg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