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 발제
3. 墻頭紅杏(장두홍행) : 담장 위의 붉은 살구꽃으로 이번 장부터는 5명의 집현전 학사들 시를 전부 소개합니다. 유영봉 교수가 역주한 시로 각자 특색있게 쓴 한시다. 5분 중 성삼문의 시를 첫번째로 선택하고 다른분의 시는 필자 판단으로 선택해 감상문을 쓴다. 다음 장에는 앞으로 소개할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시의 형식을 설명하고 책에 등장하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대기를 작성합니다.
⊙근보 답시(오언절구)
해마다 담에 기댄 살구꽃은
年年倚墻杏(연년의장행)
사람 향해 먼저 피는 가지가 있나니,
先發向人枝(선발향인지)
지난 밤비에 몸을 적신 것은
偏宜經宿雨(편의경숙우)
아침 햇살을 참으로 좋아해서라.
正好得朝暉(정호득조휘)
⊙반산 단시조
나지막 담벼락 위 연분홍 살구꽃이
은근히 풍긴 미향 처녀는 갈길 멈춰
혼약(婚約)한 총각 올까봐 괜히 가슴 두근대
⊙10년전 살구 이야기 / 백하 수필
충북 음성 감곡 개미실 이야기로 내가 살던 뒷집은 기와집으로 바깥마당에는 살구나무·대추나무가 두 그루씩 있었다. 현재 중산형이 살고 있는 집으로 이때쯤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나와 옆집 친구(개똥이·어렵게 얻은 독자 아들이라 이렇게 불렀다.)는 돌팔매질을 하며 살구를 따기위해 애를쓰곤 했는데 이 집이 바로 초등학교 시절 사랑방에서 글방을 여신 중산형의 아버님 댁이었다. 그 당시 중산형의 아버님은 우리를 회초리로 매질하시면서 천자문부터 소학·대학·사서삼경을 가르쳐 주신 訓長(훈장)이셨다. 무릎을 꿇고 하늘 천 따 지 하며 한자를 무조건 외우던 시절, 그때 나는 몸이 아주 약했었다. 단지 눈만 초롱초롱 빛났다고 어른들이 이야기 하곤 했다. 그리고 매일 오줌을 싸서 머리에 키를 이고 동네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다닌 기억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왜 그리도 오줌을 쌌는지, 그때 나에게 소금을 주신 엄니들은 지금은 거의 아니 계신다.
6살 때인가 홍역을 아주 심하게 앓았었는데 그래도 옆집 개똥이네가 가게를 해서 사탕과 과자로 生과 死를 오가는 나를 살리셨다고 한다. 그때 아마도 이빨이 다 망가지는 始初(시초)이었는지 아직도 이빨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내가 하도 심하게 앓아서 엄니는 나를 위해 푸닥거리 (굿판)도 하시고 용한 점쟁이와 스님에게도 다니면서 나의 생을 占(점)치곤 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병약하게 자랐다. 학교도 8살에 들어갔으니 동네 동갑들 보다 1~2년이 늦다. 그래서 나는 외톨박이로 성장하며 동네 친구들과도 학년이 맞지 않아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서 책과 벗하며 지낸 거 같다. 오직 만화책과 세째형이 휴가 때 가져온 미제 노트와 연필, 색연필(형은 그 당시 미군 부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로 아무데나 그려대곤 한 거 같다. 그렇게 저학년을 보내고 4학년때 부터는 그래도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부터 반장과 회장을 하며 초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그리고는 서울로 중학교를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권유를 내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아 읍내의 중학으로 진학한다. 중학생 때는 아주 명랑한 개구쟁이로 선생님으로 부터 꾸중도 무척 많이 들었다. 특히 지난번 'TV는 사랑을 실고'에 출연하신 남정희 은사가 1학년 3반 (반장은 현재 배우인 정한헌) 담임 이셨는데 난 선생님한테 뺨도 많이 맞은 제자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 후 십 수년지나 충주시내에서 만났었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2년간 배운 한문 실력으로 나는 漢文(한문)을 가르치는 학생 교사로 또한 국민교육헌장을 최초로 암기한 학생으로 중학교 歷史(역사)에 남아 있다. 3학년 때는 학예부장으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로 독후감을 써서 선생님들을 놀라게도 했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겁이 없었는지, 그 당시 이맘때는 장마로 접어들고 모내기가 한창이라 동네가 텅 비어서 나와 옆집 친구는 동네 살구나무를 마구 흔들어 대서 떨어진 살구를 윗도리에 담아 각자의 집으로 가져가 항아리에다 감춰 두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6월을 우리 동네 개구쟁이들은 동네 모든 살구나무를 흔들어 대어 온통 동네마당을 살구로 만들어 놓으면서도 시치미 뚝 떼고는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노랑살구를 나눠 주곤 했는데 그때 그 살구나무는 지금 하나도 없다. 참으로 아쉽다. 그때 그 살구나무는 왜, 지금은 한 나무도 없는 것인지? 살구꽃의 꽃말이 '소녀의 수줍음'이라는데 어느 소년은 어린시절 이야기를 수줍음도 없이 쓰고 있다. (2010년 한국문협 음성지부 년회지 수록 글 퇴고) ★상기 글은 <길에서 글을 묻다>에 수록 한다
*오학사 시 이어보기
http://m.blog.naver.com/ckcssh/22186131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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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보 성삼문
반산 한상철
백하 한신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