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시 안에서 바라보는 세상 이야기 *
100원은 900원이다
우리나라의 화폐단위는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짜리의 동전과 1,000원, 5,000원, 10,000원, 그리고 50,000원짜리의 지폐로 나뉜다. 각각의 가치와 쓰임새가 있겠지만 물가의 상승으로 동전의 소용은 점차 줄어들었다. 1원과 5원짜리 동전은 기억에 가물가물하고 10원짜리는 책상 서랍 속에서 잠자다가 사라져버리곤 했다. 가끔 거스름돈으로 사용되던 50원짜리 동전도 요즘은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신용카드의 사용으로 현금결제의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상품의 결제뿐만 아니라 교통비도 대부분이 카드로 결제한다. 아예 현금결제가 불가능한 버스도 있다. 현대인들은 점점 똑똑해지는 문명의 이기들과 함께 점점 편리한 생활을 누리며 산다. 사람들은 비싼 대가를 지불 하면서도 편리함을 포기하고 과거의 생활로 뒤돌아가지 못하는 족속이다.
신용카드의 사용이 증가하고 일상화되던 시점에 택시도 카드결제기를 설치했다. 기존 미터기와 연결해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초기에는 얼마 안 되었으나 점차 늘어나 요즘은 애어른 가리지 않고 카드를 들이민다. 카드결제기를 공짜로 달아주고 수수료를 챙기던 ‘티머니’ 회사는 택시의 모든 운행정보를 들여다보는 ‘빅 부라더’가 되었다.
시의 경계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시계외할증요금이 오르고 오후 10시가 되면 야간할증요금이, 11시가 되면 심야할증요금이 자동으로 오르니 신통하다. 옛날처럼 미터기를 조작했다는 누명을 쓸 일은 없어졌다. 알아서 10원 단위까지 계산해주고 카드를 꽂으면 결제를 해주니 참 편하긴 하다.
비록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겨가지만, 이튿날이면 어김없이 통장으로 입금을 해주니 이보다 성실하고 똑똑한 비서는 없을 것이다.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전에 하던 방법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귀찮기도 하다. 돈을 받는데 귀찮기야 할까마는 가끔은 계산의 회로에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헛된 망상에 빠지기를 잘하는 내 탓이기야 하지만, 택시요금이 22,360원인데 50,000원권 한 장을 받고 10,000원권 3장과 1,000원짜리 7장과 100원짜리 동전 7개를 거슬러 준다. 그리고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한다.
잠실 롯데백화점에서 중년의 남자와 여자 노인이 탔다. 앞에 앉은 남자가 장미아파트 입구에 자기를 내려주고 어머니를 모셔다드리라고 했다. 아들과 노모가 백화점에서 데이트하고 집으로 가는 길인가 보다.
“카드를 주머니에 넌 거 같은 데 없네.”
“집에 가서 잘 찾아보세요.”
데이트 시간이 짧았는지 모자간의 대화는 이어졌다. 저 나이에 어머니가 정정하시니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의 내 나이에 하늘로 가신 등 굽은 어머니의 모습이 차창에 어른거렸다.
카드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던 노인은 올림픽공원 건너에 집을 산 내력을 자랑처럼 풀어놓았다. 30년 전에 3,000만 원에 샀는데 정말 잘 샀다고, 공원이 가까워서 운동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대화를 즐기시는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골목 안 대문 앞에서 멈추었다.
“얼마 나왔어요?”
“칠천백 원 나왔네요.”
10,000원을 받고 3,000원을 손님에게 드렸다. 손님은 100원을 더 받으라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하였다. 손님은 아니 된다며 손사래를 치고 1,000원을 돌려주시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세 번 했다.
사실 동전 9개를 하나하나 세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현금으로 결제 시 100원은 받지 않는다. 손님들이 고맙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어떤 손님은 왜 잔돈 900원을 거슬러주지 않느냐는 듯 요금을 확인하고는 멋쩍게 웃고 간다. 왠지 100원을 받기 위해 900원을 내어주는 것은, 동전 하나를 취하기 위해 동전 아홉 개를 내어주는 것은 손해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얼마 전 뉴스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개설해 벌어들인 돈을 쌓아놓은 사진을 보았다. 50,000원 권으로 묶은 돈다발이 창고에 가득했다. 몇백억 원이라고 했다. 억 억 하는 세상에서 동전 하나의 가치를 따지고 있는 나는 얼마나 초라한 사람인가. 1,000원짜리 지폐 한 장만 못 하기는 마찬가지인데 100원을 손해 본들 900원의 이익을 본들 그게 그거다. 그래도 900원의 사랑을 베풀어주신 손님은 분명 나보다 더 행복하실 거다.
첫댓글 감동적인 글 잘 읽고
갑니다
늘 건필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공감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큰 금액이 아니어도 노인의 마음이 고맙네요.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다 보니 점점 머릿속에서 계산, 기억 해야 할 것들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인터넷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 하거나, 노래 가사를 기억하지 못 하거나, 간단한 계산을 못 하는 경우지요
사람의 머릿속에 무슨 칩을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인터넷기사도 나왔던데 문명의 이기는 어디까지 진화할지 모르겠네요.
항상 행복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점점 쇠퇴하는 기억력을 실감합니다. 내비가 없으면 길을 못 찾고 핸드폰이 없으면 하루를 살아내기 버거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참 편하고 좋은 세상인데 노년층에는 불편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작은 행복도 있으니 살만한 세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억대의 탐욕보다 100원의 100원, 900원의 베품이 더욱 값어치가 있지요.
할머니의 훈훈한 인정 이야기 배람합니다.
작지만 작지 않은 행복을 느껴봅니다. 감사합니다 ^^
모든 걸 카드로 결제하다 보니 택시 기본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요.
그래서 며칠 전 하루에 택시를 여섯 번이나 탔는데 얼만 지도 모르고 영수증도 안 받았어요.
현금은 회원의날 술값으로만 내죠 ^^
택시요금은 도시마다 다르지요. 서울은 기본요금 4800원입니다.
카드로 결제하는게 서로 편하긴 합니다.
냉정하지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