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15 - 헤라클레이온 시내를 걸어서 성당과 오래된 골목길을 구경하다!
어제 2024년 4월 28일 헤라클레이온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
헤르소니소스를 지나 말리아 Malia 해변을 구경하고는 돌아오다가
리조트 호텔이 즐비한 헤르소니소스의 해변을 보고는 헤라클레이온으로 돌아 왔습니다.
헤라클레이온 Heraklion 의 중심부인 베니젤로 광장 Plateria Venizelou 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인 2024년 4월 29일 레스토랑으로 내려가서는 호텔에서 주는 간단한 뷔페식 아침을 먹습니다.
그리고 어제 크레타섬의 동쪽을 보았다면 오늘은 크레타섬의 서쪽을 보기로 하고는 광장의 모로시니
분수에서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아가는 김에 헤라클레이온의 남부 시가지를 구경하기로 합니다.
이라클리온(헤라클레이온) 문화유산의 또 다른 측면은 베네치아의 영향이니 르네상스 시대에 이
도시는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찬탄을 자아내는 건축 유산을 남겼습니다.
어제 구경했던 북쪽 옛 항구의 입구에 위치한 베네치아 요새는 이 시대를 상기시켜 주는데
요새 꼭대기에 올라 도시, 항구, 주변 바다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한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리클리온(헤라클레이온)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라는 1821 거리를 걷는데
도시의 활기 넘치는 문화 행사는 예술적, 지적 정신을 더욱 잘 보여줍니다.
이 도시에서는 음악, 춤, 연극, 예술을 기념하는 다양한 축제가 일년 내내 개최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도
이라클리온 여름 예술 축제는 전 세계의 재능있는 공연자들이 모여드는 하이라이트 라고 합니다.
좁은 거리, 다채로운 건물, 매력적인 베네치아 시대 건축물로 가득한 아름다운 구시가지를 걷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내려가다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문득 동아일보에
사지원 기자가 올린 “쓰디 쓴 커피 유행, 금욕 중시한 프로테스탄트 덕분” 이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17세기의 ‘카페’ 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 를 묘사한 그림. 처음에 커피는
유럽에서 와인과 맥주에 비해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상인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하우스를 짓고 커피를 ‘이성적 음료’로 홍보하면서 급속히 보급됐다.
16∼17세기 유럽에서 커피의 보급은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맛도 쓰고 영양가도
별로 없는 커피는 와인이나 맥주보다 인기가 없었다. 상인들은
궁리 끝에 커피를 ‘욕망의 음료’ 인 알코올과 대조되는 ‘이성의 리큐르’ 로 홍보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커피하우스’ 도 지어 사람들의 생산성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다. 결국 커피는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하던 프로테스탄트의
확산과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사회 분위기를 고려한 상인들의 전략이 들어맞은 것이다.
일본 메이지대 문학부 교수인 저자는 커피 확산 과정을 종교와 연관지어 풀어낸다. 이 책은 역사서
치고는 독특하다. 선사시대 부터 고대, 중세, 근대까지 차곡차곡 역사적 사실을 쌓아 엮는
식의 통사(通史) 적 접근을 따르지 않는다. 그 대신 정형화된 연대기를 벗어나
다섯 가지의 주제로 역사의 맥을 짚는다. 다름 아닌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 다.
첫 주제 "욕망" 에서는 커피뿐 아니라 차, 알코올, 코카콜라가 어떤 식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만들어왔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2009년 출간 후 10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는데, 역사 교양서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뒤 15년 만에 재출간됐다.
저자는 근대의 시작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속력을 가진 지중해 문명에서 찾는다. 지중해를 에워싸며
발생한 다양한 문명들은 서로 충돌하고 발전하면서 유럽의 원형을 만드는 용광로가 됐다는 것.
그러면서 “일본이 세계사에 본격 등장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늦은 시기” 라며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 열강의 반열에 가까스로 끼어들 수 있었다”고 썼다. "신 중심" 의
중세에서 인간의 능력을 꽃피운 근대로 넘어가기 까지의 과정을 다룬 저자의 설명이 흥미롭다.
중세와 근대를 움직인 ‘제국주의’ 는 힘을 과시하고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적 욕망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과 스파르타의 싸움을 그린 영화 ‘300’ 에 이것이 잘 반영돼 있다.
전쟁을 일으킨 페르시아가 스파르타에 요구한 건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 는 지배욕의 표현이었다.
‘무릎 꿇기’ 는 중국의 전통적인 조공 무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황제는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공물을 바친
사신들에게 몇배에 달하는 답례품을 하사했다. 경제적으로는 황제에게 손해지만, 정복욕의 측면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것. 다만 제국주의 발생을 남성성으로만 연관짓는 관점에 대해선 100% 공감하기는 힘들다.
복잡하거나 심오한 역사적 진리를 다루는 책은 아니다. 그 대신 파편적으로 흩어진 역사적
사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흥미롭게 풀어간다.
그러면서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건에 대해선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서술한다. 학창시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역사 연표를 외우는데 질려버린 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력 있는 책이다.
그러고는 골목길로 내려가서 좌회전을 하니 참으로 운장하고도 고풍스러운 건축물인 아지오스
미나스 교회 Basilica of Agios Markos 가 보이는지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합니다.
교회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니 놓친 열차가 아름답다고.... 우리 원래 계획으로는
오늘은 크레타섬의 서쪽이 아닌 남쪽으로 가서 미노아 왕국에서 크노소스와
말리아에 이은 3대 궁전 중에 하나라고 하는 파이스토스 Phaestos 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서쪽 성벽 밖 하니아 게이트 앞에 있다는 헤라클레이온 시외버스터미널 Terminal B
(Hania Gate : 나중에 보니 동쪽 시외버스 터미널로 통합되어 없어짐?) 로
가서 버스를 타면 2시간 후에 파이스토스 Phaestos (Festos 페스토스) 에 도착합니다.
다시 차량으로 이동 하는 페스토스 Festos 는 미노아 1기(BC 2000년 ~ BC 1850년)
에 건설된 미노아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지로 궁전은 동서와 중앙에 3채가
있는데 회랑, 극장, 항아리등 수공예품은 미노아인의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왕궁에서 발굴된 도기는 현재 사용해도 될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으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 문양과 흙으로 꽃을 빚어 꽃아놓은 잔등이 볼만하다고 합니다.
지진으로 무느진 건물을 BC 17세기에 재건한 것으로 페스토스는 고르티스 Gortys
에 의해 BC 2세기에 멸망했으며.... 이후 페스토스는 로마시대에
크레타섬의 수도였는데 북쪽에 보이는 이다 산은 제우스가 탄생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라클리온(헤라클레이온)에서 남서쪽으로 60km 떨어진 고대 도시 파이스토스의 고고학 유적지는 한때
번성했던 미노아 문명의 인상적인 유적을 보여주면서 방문객들을 청동기 시대로 다시 안내한다나요?
택시로 10분을 가면 아기아 트리아다 Agia Triadha 이니.... 바다와 메사라 평원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오렌지나무와 석류나무가 즐비한 과수원 복판에 작은 궁전으로 신전으로 추정
되며 성 조지오스 갈라타스 교회는 베네치안시대 때 건축되었으며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다시 차를 타고 고르티스 Gortys (Gortinas) 로 가는데 크레타 도시들 중에 기독교를 먼저 받아들인 도시
로 사도 바울의 피후견인이자 크레타의 첫 번째 주교인 성 티투스 Saint Titus 가 살았다고 합니다.
고르티스 법률을 새겨놓은 거대한 돌 서판은 현존하는 최초, 최고의 유럽 법률이며 오늘날 까지 형법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데... 다시 차로 페스토스 Phaestos (Festos) 에 가서 버스를 타고 헤라클리온으로 돌아옵니다.
시간만 더 있으면 인근에 위치한 티라소스 Tylissos(Tillisos) 는 헤라클리온 남서쪽 에 그림
같은 마을로 미노안의 건물 3채인데 큰 항아리에 프레스코 벽화조각들이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크레타섬의 남부에 저 유적지들은 교통이 불편하니
천상 렌터카로 가야만 둘러볼수 있는 곳이라..... 몇 번을 생각하다가 결국
에는 포기하고 버스로 쉽게 갈수 있는 크레타섬의 서부 레팀논으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