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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하늘
 
 
 
카페 게시글
^^---산행 사진---^^ 스크랩 암릉에서 즐겨보는 뛰어난 다도해의 조망, 운암산-깃대봉(`14.9.13)
가을하늘 추천 0 조회 46 14.09.24 03: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운암산(雲岩山, 485m)-깃대봉(446m)

 

산행일 : ‘14. 9. 13()

소재지 : 전남 고흥군 고흥읍과 두원면 및 포두면의 경계

산행코스 : 고흥종합운동장산림욕장중섯재병풍바위운암산깃대봉죽순바위서촌마을회관송산초교(산행시간 : 3시간40) 10.6Km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산이 높이 솟아 구름 같은 기운이 산을 감싸고 있다는 운암산은 그동안 웬만한 산꾼들 사이에도 낯선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팔영산이나 마복산, 천등산 등 인근의 유명 산들에 가려 철저하게 외면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찾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깃대봉 근처의 암릉과 다도해(多島海)의 뛰어난 조망(眺望)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탓이다. 찾아본 결과 입소문은 사실이었다. 깃대봉 근처, 그러니까 죽순바위와 그 옆의 암릉은 다른 어느 유명 산들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은 산세(山勢)를 보여줬고, 곳곳에서 열리는 다도해의 조망은 눈이 시릴 정도였다.

 

산행들머리는 박지성공설운동장(고흥읍 호형리)

영암-순천고속도로 고흥 I.C에서 내려와 15번 국도 고흥방면으로 달리면 고흥읍이 나온다. 고흥읍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남계교차로(交叉路 : 고흥읍 남계리)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한전앞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잠시 후에 체육시설단지(體育施設團地)가 나온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동 단지에는 박지성공설운동장과 팔영체육관, 테니스장, 그리고 보조축구장 외에도 고흥종합문화회관이 들어서 있다. 복합시설단지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참고로 박지성공설운동장은 축구영웅 박지성이 이 고장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운동장의 공식이름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팔영체육관 입구에서 왼편에 보이는 동촌산림욕장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운암산만 가려면 굳이 이곳을 들머리로 삼을 필요가 없다. 이곳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에는 산림욕장(山林浴場)에 딸린 산책로를 거의 한 바퀴 다 돌고 난 뒤에야 운암산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팔영체육관 뒤쪽을 들머리로 삼을 경우에는 곧바로 운암산으로 향할 수 있어 산행시간을 30분 가까이 줄일 수가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른 채로 산림욕장에 들어선 우리 일행은 방향을 잃어버렸고, 결과적으로 15분 동안을 우왕좌왕하며 헤매다가 겨우 제대로 된 등산로를 만날 수 있었다.

 

 

 

산림욕장으로 오르는 길은 좀 특이하다. 두세 명이 나란히 옆으로 서서 걸어도 충분할 만큼 널따란 산길을 절반으로 나눈 후에 절반은 통나무를 듬성듬성 바닥에 깐 계단길을 만들었고 나머지 절반에는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멍석을 깔아 놓았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산림욕장 형편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기 때문에 햇볕 막기에도 부족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산림욕장 입구에서 시작되는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15분 정도 치고 오르면 전망대 노릇을 겸한 정자(亭子)가 있는 쉼터에 이르게 된다. 정자에 오르면 박지성공설운동장이 있는 체육시설단지와 고흥읍 시가지가 한눈에 잘 내려다보인다.

 

 

일단 전망대에 올라서면 산길은 순해진다. 바닥이 고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거의 없는 그야말로 최상의 산책코스로 변한 것이다.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구간이다. 전망대를 지나면 조금 후에 사각의 정자(亭子)가 있는 제6쉼터가 나오고, 이어서 나타나는 오름길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15분 후에는 산림욕장에서 가장 높은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참고로 이곳 산림욕장에는 100m 또는 200m 간격으로 벤치를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삼림욕장의 정상에서 왼편으로 산길이 하나 갈려나간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왼쪽에 보이는 오솔길은 **)고흥지맥으로서 들어설 경우 운대고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도 이곳에서 방향을 잃고 15분 동안을 오락가락하며 허송세월(虛送歲月)을 했다. 갈림길 근처의 나무기둥에 하늘기둥이라는 산객(山客)이 매달아 놓은 고흥지맥 238m’이라는 팻말이 보이니 참조할 일이다. 이곳에서부터 운암산까지의 구간은 고흥지맥을 따라 걷게 된다.

(**)고흥지맥(高興地脈), 호남금남정맥의 조약봉에서 분기한 호남정맥이 전라도를 좌우로 양분(兩分)하며 346.3km를 진행하다가 적치봉에 이르러 남동진(南東進)하는 산줄기 하나를 가지 친다. 고흥지맥으로 장군봉, 천봉산, 오무산, 천등산, 유주산 등을 일으키는 도상거리 약 88.9km의 제법 긴 산줄기이다.

 

 

고흥지맥갈림길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운암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이곳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중섯재 1.5Km/ 삼림욕장 정상 0.3Km)가 좀 문제다. 이정표에서 운암산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 고흥지역의 산들을 오르면서 느낀 점은 등산로 정비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수많은 노력들이 이런 하찮은 실수로 인해 한꺼번에 다 까먹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삼거리 근처의 쉼터에서 쉬고 있던 이 고장 사람들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이 부근에서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하는 말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이 지났다. 중간에 길이 헷갈려 우왕좌왕한 시간을 뺄 경우 35분이 걸린 셈이다.

 

 

삼거리에서 중섯재 방향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낯익은 팻말(운암산 정상 3.5Km) 하나가 보인다. 이 지역 산들에서 자주 보게 되는 고흥군 특유의 이정표이다. 그리고 이 팻말들은 100m 또는 200m 간격으로 연이어 나타나다가 중섯재 이후부터 안 보이는 가 싶더니, 운암산 정상부터는 다른 이정표마저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이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등산객들 대부분은 정상으로 올라갔던 코스로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 것을 엄청나게 싫어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운암산을 오르는 다른 코스에도 이런 팻말들을 설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중섯재로 향하는 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고집하며 나있다. 삼거리에서 사면을 따라 난 길이 중간 어림에 있는 안부를 지나고서도 맞은편 산봉우리로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우회하며 계속해서 사면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산길은 완만(緩慢)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거의 평지수준이라는 얘기이다. 삼거리에서 중섯재까지의 거리는 1.5Km, 짧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 이유이다. 마침 햇살까지 가득하니 구태여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간간히 코끝을 스치며 지나가는 상큼한 풀냄새를 음미하며 느림보의 미학을 시도해 본다. 갑자기 산행이 행복해진다.

 

 

 

느림보의 미학에 너무 빠졌었나보다. 중섯재까지의 거리가 겨우 1.5Km에 불과한데도 25분이나 걸린 것을 보면 말이다. 중섯재는 남쪽(오른쪽)의 중흥마을과 북쪽(왼쪽)의 운곡마을을 잇는 시멘트포장 임도가 지나가는 고갯마루이다. 이정표 두 개(이정표 #1 : 중흥 3.7Km/ 삼림욕장 2.5Km), 이정표 #2 : 수도암/ 송산)와 등산로 안내판(운암산 정상 2.0Km) 하나가 세워져 있는 중섯재는 쉼터를 겸하고 있다. 테이블(table)까지 갖춘 사각(四角)의 정자(亭子)와는 별도로 벤치(bench)까지 배치하는 등 정성을 들인 흔적들이 역력하다.

 

 

쉼터의 맞은편에서 운암산 정상으로 가는 산길이 열린다. 산길은 처음에는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그러다가 바위지대를 만나면서 갑자기 가팔라지더니 7~8분 후에는 벤치가 놓여있는 쉼터에 이른다. 특이한 점이 없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벤치 옆에 세워진 나무기둥이 눈에 띈다. 이곳이 병풍바위란다. 부랴부랴 숲이 열리는 곳을 찾다가 오른편으로 들어서니 병풍바위의 위가 나오면서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은 아마 천등산과 딸각산일 것이다.

 

 

 

 

 

병풍바위를 지나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산길 주변은 후박나무와 소사나무 등 남해안의 섬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들이 간간이 보이나 대부분의 나무들은 내륙의 산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햇살이 빗방울처럼 스며드는 숲길은 바윗길을 겸한다. 그리고 바윗길의 특징대로 심심찮게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멋진 조망(眺望)을 보여준다. 여자만()은 빙 둘러싸고 있는 내륙의 품안에 갇혀있고, 그 여자만은 또 자그마한 섬들을 가두어 놓고 있다.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가파르게 치고 오르던 산길은 능선삼거리(등산로 안내판 : 정상 0.5Km/ 임도 1.5Km)에서 일단 숨을 죽이면서 얼마동안 완만(緩慢)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막바지 몸부림이라도 치려는 듯 왔다갔다 갈지()자를 만들면서 고도(高度)를 높이더니 이내 운암산 정상에 올려놓는다. 산행을 시작한지 정확히 2시간이 지났다. 중간에 길이 헷갈려 허비한 15분을 제할 경우 1시간45분이 걸린 셈이다.

 

 

 

좁다란 공터로 이루어진 운암산 정상은 삼각점(고흥 24)만이 홀로 정상을 지키고 있는 외로운 산이다. 아니 가난한 산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까지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저 대구의 산악인 김문암씨가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다이다. 그렇다면 운암산의 산신령(山神靈)은 욕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이름표라도 달아 달라는 현몽(現夢)까지 포기한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하나 운암산의 특징은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이 온통 잡목(雜木)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정표는 없지만 운암산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남쪽)은 깃대봉을 거쳐 중흥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북쪽)으로 난 길을 따를 경우에는 수도암삼거리를 거쳐 운대리에 이르게 된다. 만일 운암산에서 조망(眺望)을 즐기고 싶다면 왼편 운대리쪽으로 얼마간 더 나아가면 된다. 팔영산의 올망졸망한 암봉들과 천등산, 비봉산 등이 조망될 것이다. 득량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다.

 

 

하산은 깃대봉을 지나 중흥마을로 내려가기로 한다. 평탄하게 시작되는 산길을 따라 70m쯤 걸으면 죽순바위(절터)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그 거리는 짧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10분 정도 후에는 안부에 이르게 된다.

 

 

안부에서 잠깐 평탄하던 산길이 점차 가파르게 변하더니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그러다가 잠시 완만(緩慢)해지나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가팔라져 버린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가파르고 거칠기야 아까 운암산을 오를 때만은 못하겠지만 그동안 산행을 이어오느라 지친 체력을 감안해서 한 말이다. 가파른 오르막길과의 싸움은 30분 남짓이면 끝을 맺고 드디어 시루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운암산 정상을 출발한지 40분 남짓 걸렸다.

 

 

 

서너 평 남짓 되는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깃대봉 정상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없다. 아까 운암산과 마찬가지로 김문암씨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운암산과는 달리 이곳에는 이정표(수도암/ 송산)가 세워져 있다. 이곳 부근이 운암산을 대표할 정도로 아름다운데 대한 대접이 아닌가 싶다. 깃대봉 정상은 삼거리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갈 경우에는 수도암(修道庵)이 나온다. 참고로 수도암은 규모는 비록 작지만 통일신라의 흥덕왕(재위 826836) 때 영허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이다. 1083(고려 순종) 도희스님이 창건했고, 1370(고려 공민왕) 영허대사가 중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화재로는 나한전인 무루전(無漏殿;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56)이 있다.

 

 

깃대봉의 남쪽, 그러니까 송산리 방향의 바위에 올라서면 한마디로 끝내주는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지금은 가을의 초입, 하늘은 높고 말이 살을 찌운다는 계절이다. 그 계절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화창한 날씨에 짙푸른 하늘은 온 세상을 덮고 있다. 그 아래에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송산리를 중앙으로 놓았을 때 왼편에는 여자만()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득량만이 펼쳐진다. 왼편에 보이는 바다는 꼭 여자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확히는 왼편 끝자락에 보이는 팔영산의 뒤편이 여자만이기 때문이다. 팔영산에서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다도해(多島海)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창만의 바다에 떠다니는 섬들은 아마 와도와 취도, 첨도, 그리고 시호도일 것이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길두리의 간척지(干拓地) 들녘이 펼쳐지고, 그 오른편에는 있는 갈대밭은 물돌이의 곡선(曲線)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한 폭의 잘 그린 채색화(彩色畵)를 만들어낸다.

 

 

 

 

 

깃대봉에서 송산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바위봉이 하나 나타난다. 이곳 운암산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인 죽순바위이다. 깃대봉에서 죽순봉까지는 겨우 10분 거리, 그러나 이 구간은 거리에 비해 너무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왼편의 팔영산이 아까보다 훨씬 또렷하게 나타나면서 이번에는 여자만까지 첫선을 보여준다. 그리고 길두리의 바닷가 풍경도 아까보다 훨씬 더 선명해졌다.

 

 

 

 

죽순바위는 거대한 하나의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져있다. 때문에 올라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난간형식의 안전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바위 위에 오르면 또 다시 멋진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보았던 모든 풍경들이 한결 더 또렷하게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람들은 뭔가를 보고 눈이 시리다는 표현을 할 때가 있다.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다보면 세속(世俗)의 번뇌(煩惱)까지도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하긴 이런 아름다움 속에 어찌 번뇌 따위가 찾아들 수 있겠는가.

 

죽순바위에서 바라본 송산리방향, 앞에 보이는 저 봉우리를 올라야 제대로 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죽순바위에서 바라본 깃대봉

 

 

죽순바위에서 내려와 조금만 더 걸으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운암산이 지닌 절경(絶景)을 제대로 다 보려면 직진을 해야 하는데도 왼편에 보이는 길이 더 또렷하기 때문이다. 운암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루봉을 거쳐 송산리 쪽으로 하산을 한다. 그 코스에 죽순바위라는 걸출한 바위가 있는 것 외에도, 스릴(thrill)을 만끽할 수 있는 암릉까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코스에는 이정표가 하나도 없다. 그런 탓에 길을 잘못 들어 까딱하면 산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갈림길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가슴 떨리는 스릴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흔적은 비록 희미하지만 곧바로 직진해서 맞은편 산봉우리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봉우리에 오르고 나면 길은 더 희미해진다. 그렇다고 당황할 일은 아니다. 왼편으로 보면 희미하게나마 산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왼편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커다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올라서는 게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위태롭지만 얼기설기 엮어 놓은 안전로프를 믿고 일단 위로 올라서보자. 다시 한 번 남해바다가 활짝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길두리 갈대밭만 놓고 볼 때에는 오늘 산행 중에 가장 뛰어난 전망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까의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접어든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모습이 까마득하다. 그만큼 이 바위가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위에서 다시 내려와 이번에는 조금 전에 올랐던 바위의 왼편으로 진행한다. 거대한 바위절벽 아래를 지난 산길은 조금 후에는 비스듬하게 누운 바위벼랑의 사면(斜面)을 뚫고 이어진다. 비록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긴 하지만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왼편이 수십 길의 벼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까딱 실수라도 할 경우에는 큰 사고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벼랑사이로 난 길에 이어 이번에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려서는 게 쉽지도 않은 수직(垂直)의 절벽(絶壁), 거기다 짧은 슬랩(slab)도 지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스릴 넘치는 구간이다. 그리고 만일 여성이라면 듬직한 남성의 도움이 절실한 구간이다. 그리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연인들이라면 이곳에서 사랑을 키워보면 어떨까 싶다.

 

 

 

 

 

바윗길이 끝나면 정자(亭子)까지 갖춘 또 다른 거대한 바위벼랑 아래에 이르게 된다. 벼랑 아래의 동굴에는 물이 가득 담긴 샘이 하나 있다. 바로 영천샘이다. 플라스틱 바가지가 놓인 곳에 군데군데 촛농이 떨어져있는 것을 보면 뭔가 영험(靈驗)까지 있는 샘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글에선가 옛날 이곳에 사찰(寺刹)이 있었다고 쓰여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샘물의 수질(水質)은 어떨까? 먼저 다가간 집사람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되돌아 나온다. 마셔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것이다. 다가가 보니 물이 넘치지 않고 고여 있다. 그래서 집사람이 못 마시겠다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샘에서 아래로 파이프(pipe) 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이 흐르지 않는 이유는 이 파이프를 통해 아래로 흘러갔기 때문인 것이다. 물맛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시원하면서도 단 것이 감로수(甘露水)가 따로 없었다.

 

 

샘터에서 빠져나오면 산길은 부드러워진다. 들쑥날쑥한 자갈이 깔린 바닥이 다소 부담스럽지만 폭이 넓고 반반한 산길은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아 좋다. 산길은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비록 투박하지만 수십 기()의 돌탑들을 길가에 배치해 놓았고, 심지어는 코스모스까지 일렬로 심어 놓았다. 널따란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선두대장의 방향표시지는 왼편으로 깔려있으나 이곳에서는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왼편으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산길이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길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듯 거칠고 황량했을 따름이지 임도(林道)의 형태는 그대로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송산초등학교(폐교) 운동장

샘터에서 25분 조금 못되게 걸어 내려오면 시멘트포장 농로(農路)에 이르게 된다. 산행이 종료되는 송산초등학교는 이곳에서도 다시 15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행여 오뉴월에라도 이곳을 찾았더라면 낭패당하기 십상일 거리이다. 뙤약볕을 일절 가리지 못하는 이런 길을 한여름에 걷는다는 것은 낭패 그 이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을의 초입, 햇볕은 그다지 따갑지가 않다. 당연히 길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은 매실과 무화과, 그리고 감나무가 섞여있는 과수원 사이를 통과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누렇게 익어가는 논들 사이를 지나가기도 한다. 물론 이곳은 시골, 스멀스멀 코끝으로 스며드는 소똥 냄새에 익숙해질라치면 어느새 서촌마을회관에 이르게 되고, 회관 앞 정자나무 아래를 지나 냇가에 이르면 저만큼에 송산초등학교가 보이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에 걸린 시간은 총 4시간, 중간에 알바 등으로 소비한 20분을 감안할 경우 3시간40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 따라나선 산악회는 산행 후에 제공되는 음식이 뛰어난 것으로 입소문을 탄 청마산악회이다. 오늘의 식단도 역시 뷔페(buffet), 십여 가지에 가까운 밑반찬에 시원한 콩나물국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은 색다른 먹을거리가 두 가지나 더 상위에 올라있다. 집나간 며느리를 집으로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회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세발 낙지가 바로 그것이다. 전어회는 김진수선배님 등 세분이 추렴을 해서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세발낙지는 금시초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악회 회장님이 별도로 내놓은 것이란다. 오늘 산행에 참가한 사람은 겨우 25, 그러지 않아도 적자를 면키 어려웠을 텐데 참으로 대단한 베풂이다. 오늘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해준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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