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이 말은 하나님과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화해로 이끌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라는 뜻입니다.
남편이나 자녀들의 이름으로 대신 헌금을 하면 그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신앙생활을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잘못된 신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보기도를 들으시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1대 1의 관계이지 중간에 누가 끼어들어 대신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중보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의 헌금이나, 신앙생활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신념의 또 다른 예는 천주교의 고해 성사 같은 것입니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면 죄를 사함 받는다는 논리인데, 아마도 야고보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만든 것이 아닌가 하지만(약 5:16) 그 역시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아닌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통해야 하는 "사람"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도 적용할 만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가서 듣는 설교, 유튜브로 듣는 설교, 또 지금 읽고 계신 이런 큐티 형식의 글들, 이런 것들은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 목사님들의 신앙서적을 보면 한 챕터가 끝난 뒤에는 꼭 ‘생각해 볼 문제, 적용할 내용’ 같은 것들을 삽입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왜 미국 목사님들은 이렇게 항상 숙제를 내시나 했는데 신앙의 본질을 알기에 그러한 문제들을 삽입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남이 써 놓은 책을 읽었지만 직접 생각을 해 보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적용하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영생이요(요 17:3) 신앙의 본질입니다.
여러분들도 제가 쓴 글을 읽으실 때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말씀도 배우는 등 많은 도움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참 좋은 것이고 사역자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의 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수도 있고 개개인의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면 영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 개개인과 직접적으로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기다리십니다.
(아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도 저버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식이지만 주님 그분을 직접 알아가는 과정, 즉 그분과 사귀는 과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분과 사귄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믿음이 필요하며 성령님의 내주뿐 아니라 성령 세례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과 직접 교제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중에 하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나 혼자 따따부따하고 주님께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관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혼자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막 떠들면서 때론 막 울기도하고 그러다가 또 따발총같이 떠듭니다. 이제 내가 좀 말을 할까 했더니 떠나버리는 사람과의 관계, 이게 정상일까요? (이런 장면이 카페 같은 곳에서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인가?"라고 생각하겠죠. 아니면 울고불고 한 사람이 듣기만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다던가. 허허..) 물론 기도란 주님과 대화에 국한되지 않고 청원, 탄원 그리고 선포 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한국식" 기도도 그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주님과 사귀는 교제로써 기도입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하고 듣지 않는 이유는 듣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많이들 가르치지 않는 이유는, 위험 부담이 큰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의 논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는 것'은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에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매우 신중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시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신앙생활을 해 주는 한국인들의 심각한 실수'를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자신의 인생에 별일이 없으면 자기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없는 남의 인생에도 간섭을 합니다. 저를 포함 우리 모두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요. 묻지 않은 자에게 길을 알려 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내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나 자신이 주님 안에서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치유 받고, 내가 성숙을 이루고, 내가 주님과 친밀할 때, 굳이 다른 이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아도(그것이 가까운 가족일지라도) 그들의 인생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했을 때보다 더욱 큰 도움과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전임으로 사역을 한 지 12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정말로 그것은 진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혼자 책을 열심히 번역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카페에 글을 쓰면서 과연 나의 섬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긴 한 건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계속 내 부르심을 감당하면서 주님 안에서 성장하고 있었더니 많은 사람들이 저로 인해 유익을 얻고, 주님을 더 가까이 만나고, 비전을 발견하고, 해답을 얻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내가 직접 누군가를 변화시키고자 했을 때보다도 나 자신을 열심히 새롭게 해 나갔더니 주변까지 흘러간 것입니다. 여러분께도 이 방법을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