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충청남도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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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0. 22:30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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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천안이 태평하면 천하가 편안할 것’이라는 말이 있는 천안의 백제 때 이름은 환성(歡城)이다. 천안은 1416년에 천안부로 개칭되었고, 1914년에 목천군과 직산군을 통합하였으며, 1991년에 시가 되었다. 지금은 천안시에 딸린 목천군의 풍속이 『여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백성은 순박하고 재물은 넉넉하여 편안히 생업에 종사하며 곡식 농사에 힘쓴다.
목천이 청주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과 달리 천안과 직산은 남북으로 통하는 삼남대로의 큰길이고,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어떤 일에 진전이 없을 때 쓰는 말로 ‘천안에서 자고 직산에서 잔다’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천안군」편에 “말 탄 길손이 저물녘에 천안에 와서 문 안으로 들어가 말에서 내려 한가로이 서성거리네. 빈 뜰 고요하여 만뢰가 쥐 죽은 듯한데 낙엽만이 쓸쓸히 난간을 울리네”라고 하여 나그네의 외로움을 토로하는 원나라 사람 계명숙의 시가 나오는데, 이 시에서 느껴지는 조용함이나 한가함과는 달리 예로부터 천안은 영남대로와 삼남대로가 갈라지는 곳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근현대에 접어들어서는 경부선, 장항선, 안성선 등의 철도와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는 새로운 교통의 요지가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영남루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이다. 임금이 온양온천 나들이 때에 행궁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천안삼거리에 얽힌 이야기들이 여럿 있다. 전라도 고부에서 과거를 보러 올라가던 박현수라는 선비가 삼거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밤이 되어 잠을 청하는데 어디선가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서 가보니 능소라는 어여쁜 기생이 가야금을 타고 있었다. 하룻밤에 그녀와 백년가약을 맺은 박현수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돌아왔고, 흥이 난 능소는 가야금을 타며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제멋에 겨워서 축 늘어졌구나” 하며 흥타령을 읊조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충청도 땅에 유봉서라는 홀아비와 어린 딸이 살고 있었는데, 아비가 변방에 수자리를 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어린 능소를 삼거리 주막에 맡기고 가면서 버들가지를 하나 꽂고 갔다. 오랜 세월이 지나 돌아와 보니 버드나무가 자라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있고 그 아래 아리따운 처녀가 된 능소가 기다리고 있어 부녀는 감격의 상봉을 하였다. 그때부터 ‘능수버들’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천안삼거리 공원
천안은 또한 호두과자와 성환읍의 명물 성환 개구리참외의 본고장이다. 호두과자는 지금도 원조 싸움이 치열한데, 과자에 들어가는 호두는 대개 광덕산을 중심으로 많이 재배되고 있다. 광덕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물이 잘 빠질 뿐만 아니라 골짜기가 깊고 일조량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호두를 재배하게 된 것은 고려시대의 중신인 유청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 가져온 씨앗을 심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성환읍의 개구리참외는 그 껍질이 개구리 등을 닮아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이 참외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들여와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원래 이곳의 특산물이라고도 하여 유래가 분명하지 않다. 개구리참외가 나라 안에 이름이 높아 일제강점기에는 비행기로 일본에까지 실어가기도 하였다. 하지만 경북 성주의 참외가 온 나라를 제패한 것과 달리 성환의 개구리참외는 그 맥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한편 고추장이 천안의 명물이었던 적도 있었다. 19세기 전반에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고추장 이야기가 나오는데, 특히 순창의 고추장과 천안의 고추장이 전국에서 이름났다고 한다. 지금은 천안 고추장은 이름이 없고 오로지 순창 고추장만 명성이 자자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아 흥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 충청도,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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