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남자나 여자가 나실 사람이 되어 주께 헌신하기로 하고, 특별한 서약을 했을 때에는,’” (1~2절)
오늘은 오랫동안 궁금했으나 나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알아내지 못했던 나실인에 대해서 정확히 배우고 묵상할 수 있었다. 그것은 본문의 나실인은 영어로는 Nazarite 혹은 Nazirite인데 이 두 단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였다는 얘기이다.
영어 사전에는 Nazarite [nǽzəràit] 1. 나사렛 사람 2. 나실인 (히브리의 고행자)로 나와 있으나 일단 그 부분은 뒤로 하고 나실인의 세 가지 규례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더 나가서 포도나 그 가공품까지 금하는 것이고
둘째는 머리털을 밀지 말라,
세 번째는 주검과는 일체 접촉하지 말라 라는 규례이다.
“아론의 아들 가운데서, 나답과 아비후가 제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불을 담고 향을 피워서 주께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 불은 주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것과는 다른 금지된 불이다. 주 앞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삼키니, 그들은 주 앞에서 죽고 말았다.” (레 10:1~2절)
“너의 아들들이 너와 함께 회막으로 들어올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라. 어기면 죽는다.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 (레 10:9절)
정설은 아니지만 레위의 두 아들이 혹시 포도주에 취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는지 모른다는 연구도 있다 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라도 정확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나자신도 과거의 행적이 있어 술 문제에 관한한 나나 타인에게 관대하게 생각했으나 오늘 말씀으로 인하여 더 정확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자가 되리라 결단한다.
라 하였둘째와 셋째의 규레는 오늘날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만큼 하나님이 명하신 원래의 뜻을 묻는 묵상이 필요하였다.
어떤 설교가는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은 머리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하였고, 주검은 죽은 자, 곧 죄로 죽은 자와 같은 의미이기에 가까이 못하게 하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나 의미를 따지기보다 규칙을 정하시고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만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더 은혜롭다 생각할 것이다.
또한 이 규례를 어겼을 때는 다시 되 돌릴 수 없게 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결의식을 통해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헌신하기로 작정한 기간 동안, 그는 주께 자신을 새롭게 헌신해야 하므로, 일 년 된 새끼 숫양을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려야 한다. 나실 사람으로 한번 구별된 그의 몸이 이 일로 더럽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 헌신하기로 한 경우에는, 그 이전까지의 기간은 무효가 된다.” (12절)
이런 하나님의 넓고 깊은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도 나실인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런 묵상함에서 오늘 밤에도 비록 적은 무리가 모이기는 하지만 금요기도회를 사모하며 기대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2)
나실인 같은 정결한 삶의 태도는 천국의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 '나실인처럼 결단하지 않으면 결단 당한다.' 2007년 3월 10일

* 참고 : Nazarite와 Nazirite의 구분
구약의 성경은 늘 예언적인내용으로서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도 예언의 일부입니다. 예언을 반증하기 위한 것이 역사인 셈입니다. 사사기의 사사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구원자로서의 예표이며, 또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예언적 사명을 담당했던 자들입니다. 실제 그 이후의 선지자들은 그 점에서 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나사르사람’을 뜻하는Nazarite가 변개된 성경들에는 없는 것입니다. 모두 Nazirte로 철자 하나가 바뀌어 있습니다. 결국 ‘나사르사람’이 아닌 ‘나시르사람’, 즉 우리가 개역성경에서 예전에 보았던 ‘나실인’인 것입니다. 킹 제임스 성경은 ‘나사르사람’을 말하는 반면, 변개된 성경은 ‘나실인’을 말합니다. 이 한글자의 차이가 엄청난 다른 결과를 파생하는 것입니다.
마 2:23의 나사렛사람(Nazarene)은 말 그대로 ‘나사르사람’인데 여기서는 ‘-ene’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어미변화로 성경은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어근인 나사르(Nazar)는 구약에서 Nazarite가 되었든, 신약에서 Nazarene이 되었든 모두 같은 어원인 것입니다. 또한 Nazareth(나사렛)이라는 지명도 모두 같은 어근입니다.(히브리어 스토롱사전 5139, 5144참조, 헬라어 스트롱사전 3478~3480참조)
결국 ‘나사르사람’(영어는 두 개의 어미변화로 신, 구약에서 다르게 쓰인), 그리고 지명인 ‘나사렛’은 모두 Nazar(=구별된, 성별된)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같은 단어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단어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것을 온전한 성경으로 이해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변개된 성경들이 나지르(Nazir)를 고집하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들먹인 결과 나실인은 어떠한 특별히 구별된 종교적인 사람이고,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룩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이 중대한 진리를 놓친 것입니다.
이에 우리가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할 것은 구약에서 제시되는 ‘나사르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사르사람’으로 처음 제시된 사사(재판관)인 삼손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태어나기 전부터 천사에 의해 수태가 고지된 자입니다. 그는 날 때부터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고, 포도즙과 독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산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합니다.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온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정확히 예표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나사르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성경은 삼손이‘나사르사람’이 된 것을 기록하셨건만, 사람들은 ‘나실인’이라는 종교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고, 성직자로 드려진 어떠한 특정한 사람들을 연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표로서 설명하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나사렛이라는 동네가 신약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르사람’으로 인정되기 위해, 그 예언의 성취를 위해 일부러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에서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전 생애와 관련 있습니다.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하여 구원을 성취하시는 그 사람이 바로 메시야, 그리스도이십니다.
Nazarite에서 ‘-ite’라는 어미는 혈통적으로 어떠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삼손과 같이 혈통적으로, 신분적으로 구별 된 사람이셨음을 알려주는 것이고, Nazarene에서 ‘-ene’라는 어미는 어떤 지역의 사람을 뜻하는 말로, 예수님께서 실제 이 땅 어딘가에 오셨지만, 이미 성별되어진 땅에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음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물론 나사렛이라는 도시자체가 성별된 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오심으로 인해 그분이 구약에서 말한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별된 자’, ‘메시야’이심을 나사르의 혈통에 대입하여, 믿는 유대인들에게 확증하시고자 하는 성령님의 의도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하나같이 메시야가 ‘나사르사람’일 것이라는 예언을 믿어왔던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성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사르(Nazar)와 나시르(Nazir) 한 글자 차이가 진리를 알고 모르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어떤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느냐에 따라 진리에 대한 조명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킹 제임스 성경을 최종 권위로 믿으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무오함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출처] 예수님이 나사렛사람으로 불리게 되신 이유 (덕양교회) 작성자 유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