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고기, 멸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바닷물고기라고 하면 어떤 물고기를 떠올릴까요? 고래나 상어 같은 물고기가 아닐까요? 아니면 귀여운 돌고래도 좋겠지요. 그렇다면 멸치는 어떤가요? 바다를 유유히 헤엄치는 멸치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은 거의 없을 거예요. 멸치는 멸칫과의 바닷물고기입니다. 몸길이는 13cm 정도, 등은 검푸르고 배는 은빛을 띤 백색입니다. 몸은 길고 원통 모양이며 비늘은 둥글둥글합니다. 플랑크톤을 주로 먹고 살고,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합니다. 이쯤 되면 어엿한 바닷물고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멸치를 떠올리면 늘 떼로 몰려다니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멸치 볶음이 그렇듯, 늘 한데 뭉쳐져 있지요. 멸치 한 마리 한 마리의 모습을 눈여겨 들여다보는 일이 흔하지 않습니다. 작가 유미정의 첫 그림책인 《멸치의 꿈》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멸치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름 없는 멸치들도 그 안에는 바다만큼 큰 꿈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바다에서 온 멸치가 바다로 되돌아갈 꿈을 꾸는 이유를 천천히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한 마리의 멸치가 전하는 꿈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 멸치는 사천구백아흔아홉 번째로 태어난 멸치입니다. 형제자매들과 신나게 놀다가 달빛을 쫓아 몰려갔는데, 아뿔싸! 그것은 고깃배의 등불이었습니다. 신나게 놀던 멸치들은 뱃사람들의 그물에 잡혀 소금물에 팔팔 삶아지고, 햇볕에 쪼글쪼글 말려집니다. 멸치끼리 키 재기를 시켜 등급을 매깁니다. 이후 멸치 상자에 담겨 서로의 마른 몸을 끌어안고 바다를 그리면서 긴긴 밤을 보냅니다. 멸치의 삶은 거기에서 멈추게 될까요? 멸치는 다 분해되고 나서야 자신의 몸을 제대로 들여다봅니다. 사람들이 마른 멸치의 몸에서 똥을 뺀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엿한 멸치의 내장이지요. 다 발라놓은 자신의 몸을 보고 그제야 깨닫습니다. 구불구불한 뼈는 출렁출렁 파도처럼 보이고, 울퉁불퉁한 몸은 단단한 바위처럼 보인다는 것을요. 멸치 대가리는 어떨까요? 빳빳이 마르고 난 뒤에 보니 다들 웃거나 울거나 소리치거나 화를 내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멸치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꿈을 되새깁니다. 바다로, 바다로 가자고 다짐합니다. 고깃배 등불에 속지도 않고, 뱃사람 그물에 걸리지도 않고, 햇볕에 마르지도 않는, 스스로가 바다가 되자고 다짐합니다. 작아서 눈에 보이지 않았던 멸치, 바싹 말라서 존재감이 없던 멸치가 마음속 깊이 담아 두었던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멸치를 보며 생각합니다. 우리의 꿈은 너무 늦지는 않았는지, 아니 꿈조차 꾸지 않는 삶은 아닌지 말이지요. 작가는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냉장고 속 멸치를 꺼내 들고 한 마리씩 그려 보았다고 합니다. 입이 쩍 벌어지고, 구멍이 숭숭 뚫리고. 몸이 뒤틀린 마른 멸치들을 보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다고 말합니다. 작은 멸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 이 그림책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작고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그들의 삶이 전해 주는 지혜가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