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석이 본 좋은 시> 공중무덤/마경덕
공중무덤 / 마경덕
새벽이 숲을 켠다
나뭇가지에 낀 어둠이 뿔뿔이 흩어지고
밤새 보름달에 접속한 하늘은 해상도를 높인다
잠시도 귀를 굶기지 않는 나무들
일찍 새떼를 풀어놓고 새소리로 아침을 먹는다
숲이 낳은 새들
지난밤 둥지에서 충전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방전된다
새를 타고 산 너머로 날아간 나무도 있다
물똥을 싸도 잎사귀서랍에서 벌레과자를 꺼내주는 나무는
새와 같은 핏줄이다
서쪽 능선이 서둘러 붉은 이불을 편다
공중의 길을 지우는 어스름
정시에 숲이 닫히고 빈 둥지가 불안하다
새들의 무덤은 공중에 있다
<서범석의 시 읽기>
먼저 시간 구성을 보자. 제1연-새벽, 제2연-아침, 제3연-낮, 제4연-저녁, 제5연-밤. 순차적으로 하루를 전개한 시간구조이다. 여기에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순리적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각 연의 묘사를 보자. 제1연-날이 새는 모습을 그렸다. ‘숲을 켠다, 나뭇가지에 낀 어둠, 보름달에 접속한 하늘’ 등에서 보이는 의식구조는 우주적으로 또는 생태학적으로 ‘하나로 융합된 자연’이라는 세계관이다. 현상들의 상호의존성이다.
제2연-‘새 소리로 아침을 먹는다’, ‘숲이 낳은 새들’에서 모든 생명의 무게가 동일하다는 생태론적 가치관과 만난다. 생명의 일체성이다.
제3연-‘새를 타고 간 나무’, ‘잎사귀서랍에서 벌레과자를 꺼내주는’, ‘새와 같은 핏줄’ 등에서 전일적 세계관을 본다. 변화의 순환성 또는 영원성이다.
요약하면 유기적 묘사를 통하여 생태학적 세계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녹색의 에코토피아를 꿈꾸게 한다. 줄이면 아름다운 ‘생태시’다.
‘공중’은 새들이 사는 곳, 밤이 되면 죽음이 온다. 하루는 일생이다. 생과 사의 영원한 순환이 자연의 순리이다. 이원적 간택의 세계를 넘어서야 전일적 세계관이 보일 것이다. 앞서 본 시간 구성은 제1연-출생, 제2연-유·소년기, 제3연-청·장년기, 제4연-노년기, 제5연-죽음으로 바꿔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서 ‘공중 무덤’이다.
서범석 (시인, 문학평론가, 현 대진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