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4.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사무 5,1-10; 마르 3,22-30)
제1독서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탄은 끝장이 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하루 앞둔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기념일입니다. 그는 루터나 칼빈, 쯔빙글리 등이 들어 올린 이른바 종교개혁의 깃발 때문에 가톨릭 교회에 짙은 어둠이 드리우던 시대에 태어나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반종교개혁을 기치로 가톨릭 교회의 쇄신을 부르짖던 예수회 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가톨릭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신자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3백 년 전에 보편적 거룩함의 성소, 즉 모든 이가 자신의 직업과 신분에 따라 신심을 달리 간직해야 하며 이를 통해 거룩하신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평신도 사도직 영성을 부르짖은 교회학자가 되었습니다.
1619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신심생활 입문>은 그가 수많은 신자들의 영성 상담을 하며 심금을 울리는 지성적인 강론으로 무려 5만 명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재개종을 시킨 체험에서 쓰여진 기념비적인 저작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갈파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 종류를 따라 열매를 맺을 것을 초목에게 명령하셨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또한 교회의 살아있는 초목인 신자들에게 그 처지와 각자 맡은 직분에 따라 각각 다른 신심의 열매를 맺기를 명하신다. 평신도와 성직자의 신심이 같을 수 없고, 기혼자와 수도자의 신심이 같을 수 없다. 개인들의 능력과 직업과 직무에 맞추어 신심이 각기 다르게 열매를 맺어야 한다. … 진정한 신심은 그 어느 것도 손상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사를 완성시킨다. 꿀벌은 꿀을 마실 때 꽃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며, 보석을 꿀에 담그면 그 광채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이와 같이 각자의 직분과 직업과 처지에 따라 하느님께로 향하면 가정의 평화는 커지고, 부부간의 애정은 깊어지며, 사회에서 각자가 맡은 직무는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평신도들과 기혼자들에게는 성직자나 수도자들과는 다른 신심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완덕의 생활을 구할 수 있고 이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교회의 대다수 구성원인 평신도의 각성과 신심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같은 취지로 소설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수학과 철학의 방법론적 원리를 세운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 열역학 법칙을 발견하여 물리학의 기초를 세운 영국의 아이작 뉴톤 등과 함께 17세기에 근세 유럽의 여명을 밝힌 선각자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하루 앞둔 오늘,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삶을 기억함은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회심하기를 바라서가 아니요, 오히려 가톨릭 평신도들이 개신교 신자들이 말씀에 대해 지닌 열정과 지식을 본받기를 바라서이며, 그래서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기 위하여 자신의 처지와 직분과 직업에 충실함으로써 완덕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서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정작 지향하던 보편적 성성(聖性)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의 선구적 실천을 본받아 평신도들도 거룩함에의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으며, 교회 일치에 관한 기본 노선으로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로 전 세계를 비추고 온갖 민족과 인종과 문화의 모든 사람을 한 분이신 성령 안으로 모아들여야 할 자기 사명의 힘으로, 교회는 성실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촉진하는 저 형제애의 상징이 된다. 그것은 먼저 바로 교회 안에서 사목자들이든 그 밖의 그리스도인들이든 하나인 하느님 백성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람 사이에서 언제나 더 많은 열매를 맺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정당한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과 존경과 화합을 증진하도록 요구한다. 신자들을 갈라놓는 것보다 일치시키는 것들이 훨씬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일에는 일치가, 불확실한 일에는 자유가, 모든 일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사목헌장, 9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