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터가 아니라 바울이 옳다!
1. 오직 믿음인가? 회개와 믿음인가?
(2) 로마서 2장은 회개를 강조한 회개장이다!
4) 로마서 2:17-27
놀랍게도, 회개에 대한 강조는 16절에서도 끝나지 않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집니다.
로마서 2:17-24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잘 보십시오! 이 구절들은 1-5절에서 말한 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강하게 질책한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에 대한 것이지요! 그 다음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회개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고 할례를 받았으니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유대인들의 망상을 박살내고 있습니다.
로마서 2:25-27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 여러분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2장이 회개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면 여러 구절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구절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롬 3:20).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서 2:6-11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바울이 왜 여기서 이런 말을 하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이 구절을 읽을 때도 '우리는 선행이나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데 왜 바울이 이런 말을 하지?'라는 의문이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2:25-27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 구절도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합니다. 12-15절에 의하면, 율법 없는 이방인은 본성에 새겨져 있는 마음에 새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또는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이라고 말하지? 왜 이것이 가능한 것처럼 말하지?"라는 의문이 들고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가정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마지막 두 구절에 나오는 '마음의 할례'와 '의문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는 말에 근거해서 "이들이 믿는 이방인들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주석들이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해석들은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또, 추론일 뿐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문맥을 통해 2장 전체가 회개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모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조금도 어색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각 구절의 의미가 이해가 되고 깨달아집니다. 그러므로 6-11절과 13절은 물론 25-27절도 회개하고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25-27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네가 (회개하고)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회개하고)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회개하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회개하지 않고 계속)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어떻습니까? 자연스럽고 쉽게 이해가 될 뿐 아니라 공명이 되지요!
참고로, 우리는 산상수훈 시리즈 설교에서 마태복음 4장 17절에 근거하여 팔복이 회개한 사람들(제자)의 특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마 5:20).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는 21-48절에서 예수님이 그 의미를 온전히 드러낸 율법을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바울도 여기서 정확히 같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팔복뿐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에 대해 예수님과 똑같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과 다른 복음은 거짓 복음입니다. 절대로 그런 거짓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건 그렇고, 뒤에 나오는 28-29절에 근거해서, 율법을 지키는 무할례자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로 보는 것은 아주 틀린 해석은 아닙니다. 회개와 믿음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적으로만 맞는 해석일 뿐 처음부터 문맥을 정확히 따라간 정확한 해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2장에 믿음이 암시 혹은 전제되어 있을 수 있어도 바울이 2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한 이방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로마서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 1장의 서론을 제외하고 2장은 아직 믿음을 다룰 때가 아닙니다. 믿음은 3장 19절 이후에 비로소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말하지만, 두루뭉술하게 믿는 이방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2장이 회개에 대해 말한 것이라는 바울의 논증의 흐름을 놓친 것이고 정확한 해석이 아닙니다.
한편, 저는 13절을 설명하면서 바울이 그 구절에서 갈라디아서 3장 10절처럼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단지 율법을 듣기만 하지 않고 행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의롭다 함을 받는 가상적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회개에 관해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26절의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이라는 부분은 이런 저의 견해와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7절의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은 "온전히"라는 단어 때문에 충돌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온전히"라고 했으니 갈라디아서 3장 10절과 같은 율법의 행위를 말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 지금까지 설명한 해석이 그릇된 것 아니냐? 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맥을 잘 보십시오! 25절에서 바울은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야 할례가 유익하다는 뜻입니까? 아니지요! 단지 회개하고 율법을 지키느냐? 회개하지 않고 율법을 안 지키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유대인들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다고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7절은 이것의 반복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도 같은 의미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3장 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이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율법의 행위를 뜻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온전히"라는 단어를 쓴 것일까요? 이한수 교수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텔레오'("온전히") 동사는 호머 시대 때부터 '성취하다, 이루다, 실행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술어이다. 바울이 특별한 이 동사를 사용한 것은 질적으로 보다 깊은 수준에서 율법을 성취하는 것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cf. 약 2:8). 그것은 바울이 이미 기독교적인 용법으로 자리를 굳힌 '성취하다' 동사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사료된다(8:4; 갈 5:14; 6:2; cf. 마 5:17-18)."
이처럼 이한수 교수님은 "온전히"가 예수님이 온전히 그 뜻을 드러낸 율법을 지키는 것, 즉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행동으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지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뜻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해석은 28-29절에 나오는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그리고 육신의 할례와 마음의 할례라는 표현과 잘 조화됩니다. 그래서 저는 "온전히"가 이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혹 아니라면, 회개는 모든 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므로(겔 18:30-31) 회개하고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살거나, 산상수훈을 설교할 때 증명한 대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가능하므로 그것을 내다보고 율법을 범하는 유대인을 더 강하게 질책하기 위해 온전한 자들을 예로 든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중 어느 것으로 보든 저의 해석과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2장 전체가 회개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