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문학 신인상 수상작(소감문, 작품)*
<신인상 소감문>
머나먼 남쪽 보배섬을 떠나 빛고을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교과서에 실린 청춘예찬 인연 등 아름다운 어휘로 그려낸 글귀에 감동되어 검은 잉크를 적신 펜으로 써서 고향집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어떻게 하면 저런 글을 창작할 수 있을까 부러워하면서 수필가를 흠모하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그 후 문학의 향기가 그리워 동악의 언덕에서 미당 선생님의 훈습을 입었지만 찬란한 무지개를 잡고픈 마음에 휘둘려 망망대해 방황하는 난파선 같은 여정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지천명 고개를 넘어 벗들과 산행하며 흠결로 얼룩진 자신을 돌아보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스마트폰 메모장을 긁적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옥주골의 아름다운 산하에서 겪은 체험과 고향 분들의 금결 같이 소중한 옛이야길 얶어 고향문화원에서 발행하는 조그마한 소식지 <진도문화>에 게제하여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사십 년만에 해후한 초등 친구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학교에서 아이들과 희로애락의 순간을 한 땀 한 땀 수놓아 서울 <교원문학회>에 출품하는 보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광진문인협회>로부터 수상(수필) 통보를 받는 순간보다는 설레진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큰 전답을 가꾸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저와 인연을 맺은 모든 분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특히 어려운 여건에도 우리문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광진문인협회> 분들과 지금도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가는 월강마을 분들, 그리고 이 수필의 창작 계기를 만들어준 친구 쇠줄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이제 해안가에 다다랐습니다. 지금부터 드넓은 대양으로 나아가 영롱하고 귀한 것을 얻기 위해 눈물보다 고결한 정수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막걸리 매운탕*
대지를 익혀버릴 것 같은 계절도 막을 내리고 아침과 저녁에 목덜미 스쳐오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바야흐로 농촌은 황금빛 자태를 뽐내고 도회지 사람들은 한가위 돌아오면 고향 열차에 몸을 실어 그리운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아득한 시절부터 흥이 넘실거리던 고향 마을의 갈대꽃이 누런 물줄기를 따라 하늘거리는 대보에서 고기를 낚아 친구 쇠줄이가 매운탕 끓이면서 큼지막한 막걸리를 한 통을 내리부어 맛있는 매운탕을 먹지 못해 기대에 부풀던 집안사람들을 당황케 한 일이다.
지난해 추석이 다가올 무렵 승용차 수명이 다해 폐차해서 가족들은 도회지 두고 고향 마을에 갔다. 오랜만에 시외버스 타고 홀로 월강집에 가면서 직행버스 안에서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던 세월을 헤아리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하나 둘 쉼 없이 떠오고 나를 위해 멈추지 않는 시간은 화살 같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고향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 그리고 동생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고 고향 산천의 온실과 같은 푸근한 분위기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추석 연휴도 길고 처가를 가지 않아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어 마을 앞의 개천인 대보로 동생과 낵기질하러 갔다.
반듯한 농로 앞에 황금물결 치는 월강평야를 가로질러 고기가 잘 문다고 소문이 자자한 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고향에 내려온 동생 친구 2명이 먼저 와서 낚싯대를 던지고 있었다. 고기가 놀고 있는 물풀과 갈댓잎이 너울대는 곳을 바라보면서 가져간 낚싯대를 꺼내 빨리 손맛을 보고 싶은 조바심이 전신에 밀려와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워 물속에 넣자 순식간에 고기 오는 신호를 알리는 찌가 수시로 움직였다.
나도 뒤질세라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워 물 속에 던지자 순식간에 고기 오는 신호를 알리는 찌가 수시로 움직였다. 오랜만에 낵기질하는 손맛에 취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붕어 빠가사리 잉어 피리를 낚다가 물고기 오는 신호가 뜸해져 갈바람에 요동치는 갈댓잎의 흔들림을 가만히 들으니 어렸을 때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꼬맹이 시절 오뉴월 농번기에 월강평야에서 '어여로 상사디아' 풍년을 기원하는 어르신들의 노랫가락이 여기저기 울려 퍼질 무렵이었다. 이런 흥겨운 정경을 바라보며 낚시를 즐기시는 아버지 곁에 이곳 대보에서 낚싯대를 힘차게 당길 때마다 올라오는
붕어를 따서 조락에 집어넣고 기꺼워하던 모습과 여기서 오백여 미터 내려가면 볼그레한 부들꽃이 울긋불긋 피어있는 저수장이 있는데, 그 도톰한 둑 안쪽에 노랑박구네 뒤란 대밭에서 꺾어온 왕대에 튼실한 고래 심줄을 묶고 낚시에 꿈틀거리는 지렁이 끼워 던지자 심하게 찌가 꿈틀거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낚싯대를 당기자 손바닥보다 붕어가 파닥거리며 올라와 집에 가져오니 어르신들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아 어깨가 으슥해졌던 영상이 희미하게 물속에 스쳐 지나갔다.
저 멀리 북산서 황혼의 어스름이 가까이 다가와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려고 발길을 옮기려는데 동생 친구들이 오랜만에 형 얼굴 대하니 반갑다며 가까이 와서 미소를 흘리며,
"형 메기매운탕 좋아하지요."
"내가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야!"
자신의 조락에 손을 넣더니,
"이거 제가 드릴게요."
"아니 힘들게 낚았는데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떴게 해"
자신들이 낚은 커다란 메기 3마리를 어망 속에 넣어주었다. 그 순간 동생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매운탕을 끓이려고 하자 어머니께서 내일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보여 고깃배만 따서 깨끗하게 씻어 두었다.
여행과 낚시의 노독으로 피곤해서 잠시 쉬고 있는 사이 고향집에 명절 새로 온 쇠줄이가 집에 찾아와서 매운탕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쇠줄이는 그것을 제일 잘 끓인다고 스스로 자부하면서 내일 일찍 와서 매운탕 맛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약속을 한 후 잠자러 갔다. 다음날 아침 쇠줄이는 들통 같이 큼지막한 진도 막걸리 한 통을 탈래탈래 들고 나타나 요리를 시작했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조금 부어 마늘 대파 고춧가루와 어제 손질한 민물고기를 넣고 마지막으로 자기가 가져온 막걸리 한 통을 다 부어버렸다.
나는 미심쩍고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막걸리를 많이 넣어야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 맛이 사라지고 구수한 맛이 난다는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운탕은 보글보글 하얀 김을 내며 끓어 달큼한 내음을 금실처럼 날려 식구들은 맛있는 매운탕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스펀지처럼 부풀어 혓바닥을 다시고 있었다.
잠시 뜸 들이다 저녁 밥상이 준비되고 고대하던 매운탕이 모락모락 새하얀 김을 내며 상에 올랐다. 내가 제일 먼저 숟가락을 푹 집어넣어 맛을 보고 차례로 집안 식구들이 떠먹더니 하나 같이 낯빛이 밝지 못하고 더 매운탕 그릇에 수저가 가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다음 날 중학교 친구인 해남에서 사는 산너매 희원이와 국제약국 아들 창로 그리고 어제 메기를 선사한 동생 친구들이 방문해 매운탕을 대접했으나 그들 또한 한번 숟가락을 넣어 보고 얼굴빛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냄비에 그득히 쌓인 매운탕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당한 연인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냄비에 막걸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 국물 맛이 텁텁해지고 막걸리 고유한 냄새가 매운탕의 얼큰하고 시원한 맛을 모두 없애버려서 먹을수록 뒷맛이 개운치 않아 숟가락을 쫓아버린 것이다.
그 후 맛이 없는 이유를 쇠줄이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최고의 매운탕을 끓여주기 위해 막걸리까지 선물한 정성이 가상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제 낚은 싱싱한 자연산 메기와 빠가사리 잉어 붕어를 재료로 얼큰하고 시원한 매운탕을 끓여먹지 못한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 형에게 큼지막한 메기를 선사한 동생 친구들의 훈훈한 마음과 최고의 매운탕을 끓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친구의 정성은 의미있는 울림으로 남아 먼 훗날 두고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추석 무렵 월강 집에서 매운탕 소동은 고향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정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잊지못할 추억의 한 장면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