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월전쟁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캄보디아, 타이등 인근 국가를 침공해서 승리했으며 중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명실상히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했던 동남아의 맹주였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베트남의 전쟁 중 백미는 1979년에 발발한 중국의 베트남 침공이었다.
1979년 2월 17일, 중국이 5개 사단, 1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베트남을 전면 침공한다.
중국은 쉽게 베트남을 점령할 줄 알았지만 전쟁 초기 중국군의 사상자 수가 베트남군의 3~4배에 달하자 10만명의 병력을 추가로 투입한다. 베트남군은 몇몇 주요 거점에서는 거의 전멸할 정도로 항전을 하고, 전략적인 철수를 병행해가며 중국의 피해를 최대화한다.
3월 3일 국경선으로부터 겨우 30Km 밖에 진출하지 못한 중국군은 철수를 결정한다.
사실 당시 베트남의 주력병력은 캄보디아 침공 때문에 캄보디아 국경에 모두 몰려있었고, 중국의 침공이 시작되자 전략적인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나 하노이 근처에서 베트남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는데, 베트남의 전략적 요충지인 돈단과 몽캉이라는 작은 도시 하나 점령하는데 2천명이상의 사상자와 40대 이상의 전차가 완파된다. 이 때 베트남군의 사상자는 겨우 800명에 불과했다.
중국은 17일만에 물러났지만 베트남은 1988년까지 캄보디아를 점령했고, 그 사이 끊임없이 중국과 베트남은 국경에서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198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철군하면서 중국과 화해하게 된다.
교전중인 정규 중국군
교전중인 베트남 후방 민병대들 한국으로 말하면 예비군들
베트남에 투입전 사열중인 중국군
취사중인 중국군
중월전쟁은 1979년 2월 17일 국경분쟁을 시작으로 일어난 중화인민공화국과 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승리로 남북 베트남은 공산화통일되었고, 그 여파로 인접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마저 공산화되었다. 베트남 공산당은 전쟁중에 중국의 물적, 인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았으나, 역사적으로 월남인들의 대중국감정이 좋지 않은데다가, 공산정권이 남베트남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를 탄압하여 양국관계는 험악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공산당은 공산권 국가들을을 양분한 중소분쟁에서 소련측을 지지하여 중국의 분노를 샀다. 이에 동시에 친중국적인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관계도 악화되었으며, 급기야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이 발발하여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점령하고, 친베트남 괴뢰정권을 세우자, 중국은 캄보디아 전선에 머무르던 베트남군의 주력을 철수시키기 위해서 베트남의 북부를 침공하였다.
전쟁 과정
국경인 윈난성에 집결했던 중국군은 1979년 2월 17일 국경을 넘어 공세를 시작하였다. 베트남 북부는 열대 산악지형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병력의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당시 베트남군은 주력이 캄보디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침공군에 맞선 병력은 민병대와 국경수비대뿐이었다. 그러나 베트남군은 수십년간의 실전경험이 있고 현지 지형에 익숙했지만, 중국군은 60-70년대를 흔들었던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통신이나 장비면에서 근대화가 지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중국군은 커다란 희생을 내면서 계속 전진하여 국경에서 40km떨어진 교통의 요지인 란손 을 3월 6일 점령하였다. 이후 중국은 일방적으로 "징벌적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철군한다"고 발표하여 란손을 철저히 파괴하고 국경 밖으로 철수하였다.
결과
중국군은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철군했으나, 실제로는 처음에 의도했던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의 철군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목표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내내 국경선의 확정을 둘러싸고 중국군과 베트남군의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다가 1989년에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로부터 철군하자, 평화협상이 시작되어 1999년 협정이 체절되었고, 중월간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이 와중에서 1980년대 내내 베트남에서는 해상루트를 통한 화교들의 탈출이 계속되어 보트피플이 동남아를 해상을 떠돌기도 했다.
베트남 포로들을 치료중인 중국군
중국군 포로를 감시하는 베트남 민병대 여군 (이 당시 세계를놀라게한 사진 입니다)
중국군 포로에게 총을 겨누는 베트남군
중국군 전차 이동장면
그때까지 자국 국민의 3분의 1을 학살한 중국군에 지원을 받은 킬리필드 캄보디아 정권을 물리치고
캄보디아를 접수하고 있는 베트남에 주력군 그에 맞선 킬링필드정권을 후방에서 도와주러 온 중국 정규군을 물리친 민병대(향토 예비군)에 역할에 힘입어 그들은 학살로 고통받은 캄보디아 인민들을 구출 하고 중공군 꼭두각시 크메르루즈를 물리치고 친베트남 정권을 캄보디아에 세웠다. 마지막 사진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을 접수하러 들어가는
베트남에 주력군 이들은 프랑스와 미국과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용사들이였다.
첫댓글 음...저당시 중국이 삽질을 많이 했죠. 베트남전을 보면 저 때 베트남 예비군에게 발린 중국군이니 베트남 정규군을 바른 우리 군대가 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