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Think Globally, Act Locally.) 공교회적으로 생각하고 지역교회적으로 행동하라.
사도 바울이 교회의 계급 체계를 세밀하게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 어디에서 그러한 계급 체계를 발견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오늘날 교회는 '권위'에 대한 혼란 가운데 있다. 일만 스승 있으나 아비가 희박한 데 그 이유 있지않은가 싶다. 자신이 아비임을 극구 강조하는 자, 진정 아비일까? 아비 소릴 못듣는대도 먹이고 재우는 자, 아비 아닌가! #inchrist_
"인지이론에 의하면 독서, 실험, 토론, 연습,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 등 의 방식에 비해 효과가 가장 낮은 학습법은 강의를 듣는 것이다." (경향신문 기사) 설교가 사람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도 같은 데 있지않나 싶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 거하시는 자택이 어떻게 생겼냐고 여쭌다면, 당신께서는 우리를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소개해주실 것이다. Michael Mann
교회가 구약적틀에 갇혀있어 신약적패러다임으로 나아가지 못함의 이유 두가지로 짚어보고 싶어요
(1) 오늘날 성경은 여전히 '금서'이죠. 성직자/평신도 이분법과 교회안에 팽배한 반지성주의는 신자들로 하여금 참된 이성의 훈련 그리고 성경에대한 탐구의책무로부터의 자유를 넘 쉽게 윤허해버렸죠. 그래서 성경(text)에 대한 1차적 상황(context)이해 그리고 2차적인 지금 여기로의 재상황화라는 성경독법을 앗아가버렸습니다. 해서 열려있으나 닫힌책 되버렸죠.
(2) 유교주의화 된 기독교 문화가 아닌가 싶어요. 육에 속한 유교문화가 성경의 여과없이 그대로 교회에 들어와 구약적틀과 결부되고, 그 틀에 상응하는 교회정치구조라는 옛부대가 공모해낸 결과물이 지금우리의 모습 아닌가 해요.
"교회는... 달러가 곤두박질하고, 교회건물이 불타버리고, 교단이 해체되고, 교회행사들이 망쳐버려도 살아남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KarlIngersoll 의 트윗에서
교회와 학교, 대형화 될수록 두가지에 매몰되기 십상이죠. 권력지향성과 관료주의/행정이 그것들입니다. 이 두가지 배제하려면 소형화가 정답이죠. '메가처치논박'(신광은)이란 책 강추!
사람들은 체벌 하느냐 마느냐로 옥신각신.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학교와 교육이 무엇인가'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 또한 시시콜콜 여러문제로 아웅다웅. 진짜 문제는 '교회란 무엇인가'이다.
난 대형교회가 참 힘들고 어색하다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설교와 성가대찬양, 옆에 앉은 이 누군지도 모르는 익명성 가운데 마치고 돌아갈땐 어색한 인사라니... 그 무인격성! 그 소통의 부제! 숨이 막힌다. 공동체가 그립다.
처음,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남녀노소의 교제였다. 그런데 그 교회가 그리스로 가서 철학이 됐고, 로마로 가서 종교기관이 됐으며, 유럽에 가서는 문화가 됐고, 미국에서는 기업체가 되고말았다. Richard Halverson 한국에서는?
You aren't~ They don't~같이 남을 부정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이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내적 확신/믿음이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I Am으로 계시하셨다. 우린 그의 자녀들 아닌가?
(하나인 공교회) 성도의피가 낭자한 반복적인 패권다툼의 교회사에 기댈 것 없어보인다. WCC의 정치이념적 접근 또한 공교회성을 담보할 수 없다. 기독민초 각자 성경에서 하나된 공교회를 확인하고 아래에서 위로의bottom to top 연합을 일궈내야한다
(하나인 공교회) 전천년인가 후천년인가, 세대주의인가 칼빈주의인가의 문제로 교회가 나뉠 수 없다. 교리로 싸우고 나뉜 분노의 교회사로부터 학습된 거짓을 계속 답습할텐가. 보이는것은 가짜이며 허상이다 누가 뭐래도 성경은 몸인 교회가 하나임을 강론한다!
(하나인 공교회) 누군가 물었다, 어느교단 소속이며 어느교회 다니느냐고. 그와 내가 그리스도께 속했다면, 우린 서로에게 속해있다. 머리와 몸은 불가분 하나이다.
우상은 하나의 객체라서 눈에 보이게 뚜렷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객체자체로 그냥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니시다. 현실 삶에서 그분께 순종하는 과정에서 인식할 수 있는 살아계신 분이시다. (사회적 하나님, 케네스 리치)
젊었을때 주를위해 헌신했던 3,40대가 교회를 등지고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저버린건 아니다. 교회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사역의심장부로 초대하지 않으면안된다
@Truth_Free: Francis Schaeffer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는 이 세상이 우리 메시지의 진실성을 판단하는데 사용하는 기준이다. 즉 기독교 공동체는 최후의 변증이다"
내 안에 사랑이 충만해야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미미한 사랑을 외부로 발산하면 사랑은 증폭되고 나는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에베소서는 "교회가 곧 복음임"을 '존재론적으로' 주장하고, 사도행전은 이를 '실행적으로' 증명한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교회와 복음이 '존재론적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있다. 따라서 '실행적으로' 실패를 거듭하게 된건 필연적이다.
(공동체적) 교회를 체험한 신자는 교회의 충만함을 느끼고 항상 교회를 전하고자 노력한다. 교회를 체험해보지 못한 신자는 항상 교회를 찾다가 절망한다. 평생 그럴것이다.
7,80년대 미국 지저스피플운동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시 교회는 어색한 옷이었다. 오늘날 이 땅에도 교회에 다니는게 무척이나 힘든 그리스도인이 많아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위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체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작은 조직에서부터 작은 성공을 거듭해 '성공 체험'을 누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도 바뀌어 전체가 바뀐다. - 오키다 히토시 아사히맥주 회장
조직체는 구성원을 대체소모품으로 여겨 해고해도 그만이다. 유기체는 성원을 대체불가 기관으로 여긴다. 예수께서 99마리양을 두고 잃은1마리를 찾아나선건 세상 조직논리에 대한 전존재적 저항이자 유기체인교회에 자성촉구하는 롤모델적 메시지다
근원적(root)본질에 천착해야한단 지론땜에 다소 과격한(radical)표현이 많아 죄송해요 'radical'이 'root'에서 유래한 단어라더라고요. 어원적으로 급진성은 보수성에 맥이 닿아있단 생각 해봐요^^
"일반신도들 또한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름부은 받은자들(ordained)임을 교회가 깨닫기 시작했다." Dr. Paul Kaak '목사안수가 교단으로부터인가'에 관한 성경적 고찰 http://j.mp/8YftEK
하나님은 만유(evrythin)를 품으신분으로(엡4:6) 우주만큼 도량넓고 대승적인분인데요. 오늘날 세간의 기독교에대한 몰이해와 안티의발흥은 기독교를 그릇 대표한(misrepresent) 기독교인들탓이죠. 저도포함
(태생적배타성의 교리를 안고있음에도 불구) 기독교가 외부인과 단체에대해 배타성을 띌때 안티기독교가 민족주의라는 또다른 배타성에 기반하여 기독교를 공격하죠. 이 우주적 배타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시아가 약속되었었고요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문제는, 개인의 윤리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지향적 교회구조때문이다. 상호간 섬김과 복종으로 평화의 도를 살아냈던 재침례교도들(Annabaptists)의 메시지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 크다.
John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You are what you eat." (English proverb)
맨처음 교회는 성령이란 소프트웨어를 담아낸 사람들이란 하드웨어였다. 그런데 3세기 경 바실리카(회당)에 기반한 기독교의 득세로 인해, 교회는 행사란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는 조직체라는 하드웨어로 변질되고 말았다.
예수님을 CEO로 그린 책이있는 반면 블루칼라로 묘사하는 해방신학 인물화도 있다 수긍되는면도 있지만 주님을 전용하려는 시도엔 동의가 어렵다 그것이 특히 이념편향적이라면 말이다 주님께 굳이 이념이있으셨다면 가난한자와 과부에대한 관심이 곧 그의 이념이었다
정치이념과 사상은 때론 종교와 같다. 좌이건 우이건 어느 한쪽으로 경도되기 시작하면, 사안별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이 위치한 이념적입장에 따라 말하고 행하기때문이다. 사고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함정에 유의해야한다.
첫댓글출중한 메세지도 있는가 하면, 사변적(철학적?) 목소리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양(量)까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댓글을 달 수도 없습니다. 옥석(玉石)을 가리려니까 마치 대형서점의 기독교 코너에 들어선 기분입니다. [차라리 10개 단위로 번호를 부여하든가, 분야별로 묶어 주셨더라면 '숭사리'들의 교제로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카페지기'님!]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철학과 사변이 주님께 굴복된 것이라면 말이죠. 이성과 철학을 경시하거나 죄악시하는 기독교 내부의 반지성주의는 교회에 해악을 끼쳤다고 믿습니다 성직자들만이 이를 공유하고 신도들에겐 무지 또는 무지한척 하는 굴종을 강요했죠 몸담고 계신 공동체에 반지성적 경향
예수를 믿는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예수님이라는 인생의 답을 찾아 방법을 공부하고 열심을 내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서로 판단 한다.... 합리적이고 민주 적인 사람들.....이생의 자랑 둘째는 회개하여 예수님을 찾고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어 친밀함과 안식과 회복으로 희락과 평강의 삶을 산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여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산다...침노하는 자
모든 겸손과 온유함으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첫댓글 출중한 메세지도 있는가 하면, 사변적(철학적?) 목소리도 많이 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양(量)까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댓글을 달 수도 없습니다. 옥석(玉石)을 가리려니까 마치 대형서점의 기독교 코너에 들어선 기분입니다. [차라리 10개 단위로 번호를 부여하든가, 분야별로 묶어 주셨더라면 '숭사리'들의 교제로 참~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분량이 너무 많습니다. '카페지기'님!]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철학과 사변이 주님께 굴복된 것이라면 말이죠. 이성과 철학을 경시하거나 죄악시하는 기독교 내부의 반지성주의는 교회에 해악을 끼쳤다고 믿습니다 성직자들만이 이를 공유하고 신도들에겐 무지 또는 무지한척 하는 굴종을 강요했죠 몸담고 계신 공동체에 반지성적 경향
팽배하단 생각입니다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생각의 단편들 글로 풀어낸 트윗글들에 굳이 논평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논평이 두렵진 않고요 단지 상호교제가운데 유익을 취하는게 제 본뜻이기때문입니다
'반지성적인 경향이 팽배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어느 공동체나 사람들이 모이다 보면 진선진미(眞善眞美) 할수만은 없겠지만...
아비 소릴 못듣는대도 먹이고 재우는 자, 아비 아닌가! #inchrist_
교회가 구약적 틀에 갇혀 있어..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대형교회 ,소통의 부재 ,숨이 막힌다.
교회가 로마로 가서 종교 기관이 됐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I Am으로 계시하셨다. 우린 그의 자녀들 아닌가? 아멘!
누가 뭐래도 성경은 몸인 교회가 하나임을 강론한다
누군가 물었다, 어느교단 소속이며 어느교회 다니느냐고. 그와 내가 그리스도께 속했다면,
우린 서로에게 속해있다. 머리와 몸은 불가분 하나이다.
우상은 객체이지만 하나님은 객체가 아니다. 그냥 살아 계시는 분이다.
내 안에 사랑이 충만하지 않더라도 미미하하더라도 외부로 발산하자.
하나님은 만유(evrythin)를 품으신분으로(엡4:6) 우주만큼 도량넓고 대승적인분인데요.아멘 !
대승적이라는 단어에 태클 걸 사람이 숭사리에 있지 싶다.카이.ㅋ
You are what you eat." ㅡㅡ> 사람이 먹은 것이 그 사람이 된다카이 ㅋ
교회가 조직체라는 하드 웨어에서 소프트웨어인 성령이 잘 가동 되기를...
끝으로 브라더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위 글의 단락들에서 마음에 와 꽂히는
부분을 되풀이 반사해 보았읍니다.
촌철살인^^
예수를 믿는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예수님이라는 인생의 답을 찾아 방법을 공부하고 열심을 내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 서로 판단 한다.... 합리적이고 민주 적인 사람들.....이생의 자랑
둘째는 회개하여 예수님을 찾고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어 친밀함과 안식과 회복으로 희락과 평강의 삶을 산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여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산다...침노하는 자
모든 겸손과 온유함으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아멘.. 다만 피아간의 정확한 구별보다.. 피아간의 무아지경의 상태는 어떤지요.. ^^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라는 말씀처럼.. 피아간에 구별이 없이 모두 하나로
내가 그고 그가 나일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피아는 적군과 아군을 말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은는 형제며 지체며 모이면 교회가 되지요.
아.. 그렇군요.. ㅎㅎㅎㅎ 적군과 아군이라는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ㅎㅎㅎ
제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었군요.. ㅎㅎㅎ 죄송합니다..
피아간.. 보다 피차간.. 이 어떤지요?^^
그러네요... 사라님 표현이 좋습니다. 침노하는 자를 넣다보니 피아간이란 말이 좀 거친 표현 같아서 바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