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너도 살아 있구나, 나도... ' 라고 말하고 싶은 느낌.
'잘 살고 있었구나.' 하며 따스하게 전해지는 서로의 마음.
그러면 둘은 함께 미래를 향한다. (가와이 하야오)
초등학교에 갈 무렵 단짝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던 친구는 누나와 고아원에서 자랐다. 나는 가끔씩 친구를 집으로 불러 밥을 같이 먹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대구로 전학을 갔고, 방학이 되면 고향집에 내려가 그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친구를 볼 수 없었다. 누나와 어느 집 양자로 갔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찾아봐야지 싶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던 해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그 친구 소식을 들었다. 나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했고, 우리는 팔공산 밑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형이 찾아와 고아원을 나왔고 그때부터 형과 함께 살게 되었단다. 그러고는 사업이 망해 큰 빚을 지고 아내에게 어린 자식을 떠맡긴 채 가출하여 전국 도박장을 전전하다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려 작은 중고 자동차 상사를 한다고 담담히 전했다.
우리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천만 원만 빌려 줘, 이자없이 1년만 쓰고 줄께." 라고 부탁했다. 친구가 얼마나 어렵게 말을 꺼냈을까 싶어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돈을 보내 주었다. 그것도 마이너스 대출 통장에서.
1년 뒤, 재판이 있어 대구에 내려갔다. 마중 나온 친구는 나를 차에 태우고 팔공산 밑 식당에 가더니 아침을 사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기가 어려워 중고 자동차 시장이 다 죽었다. 파산 신청을 해야겠어. 너에게 빌린 돈은 나중에라도 꼭 같을게." 변호사라지만 당시 나도 재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나는 친구와 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 괜찮아. 나중에 형편 풀리면 갚아도 되고, 안 갚아도 된다." 그날 오후 나는 서울 사무실에 도착한 즉시 친구에게 돈을 보낸 입금증을 바로 문서 파쇄기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다. 천만원에 평생 친구를 샀으니, 이거 남는 장사 아닌가.
- 김 병준 님 / 변호사 -
(강헌 선집 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