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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년 전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어느 아침에 출근을 하니 개인적으론 후배되는 직원 한 사람이 출근이 어렵다면서
아침부터 핸펀을 날린다. 사연을 물으니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해남 땅끝마을에 홀로 계시는 아버님께서 깨스 렌지에 음식물을 끓이다가 깜빡 잊고는 외출을 하는 통에 렌지가 과열되어
사시던 농가가 완전 전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지금 해남으로 가는 중이란다.
노인장이 당장 기거할 곳도 갈아 입을 옷도 없을 터이니 여간 낭패스런 일이 아니란 생각에 사장님께 보고를 드리니
회사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의미로 약간의 현금을 마련하여 일단 해남으로 내려 가 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한반도 맨 끝자락 이라고 하는 땅끝마을을 향하여 참으로 멀고도 먼 길을 자동차로 하염 없이 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생 처음으로 길은 외길 남도 삼백리를 폭풍처럼 달리던 그 시절은 쪕 쪕 내게는 인생 절정의 잘 나가던 호시절 이라고나 할까?
어느 덧 대가리엔 무서리가 내리고 오 갈데 없는 패잔병 신세가 되어 후줄근한 등산복 걸쳐 입고 해남땅을 찾을려니 형언키
어려운 묘한 감흥이 새롭다. 좌우 당간 각설하고
예상했던 대로 시골 농가는 흔적도 없이 불에 타 버렸고 노인장은 이웃 빈집에서 우선 기거를 하시면서 사태를 수습하고
계셨는데 위로차 몇 분 되지 않는 동네 주민들이 죄 모여 계셨는데 마침 늦은 저녁을 들고 계시다가 나에게도 수저를 권하신다.
시골 반찬 몇 몇 가지를 추렴한 소박한 밥상에서 향과 색깔이 유독 내 시선을 끄는 음식이 있어 한 점을 먹어 보았는데 흐미
그 맛이 환상적이다.
밥 두 그릇에 제법 많이 남은 갈치속젓을 푹 푹 말아 개밥그릇 비우듯이 싹 싹 핥고 나니 아마도 갈치 속젓을 갖고 오신
할머님이신 가 보다.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며 갈치 철에 부산물로 나오는 내장에 소금 좀 뿌리고 대충 담구었을 뿐인데 그리도 맛이 있냐고 물으신다.
곰삭은 맛이라고 합니껴? 남도 음식의 맛깔진 맛은 젓갈이 우선이고 좋은 젓갈을 담구기 위해선 맛난 소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빛과 소금 이라고들 하져?
물과 공기처럼 당장 없으면 인류가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 바로 이 소금인데 현대인들은 손 쉽게 싼 가격으로 구할 수가 있는
소금의 중요성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건강에 유익하지 못한 식품으로 점 찍어 놓고 있다.
밀가루,설탕,화학조미료(아지나모도) 그리고 흰쌀밥 등등 허여꾸무리한 색깔이 나는 몇가지 식품에 소금을 함께 엮어 넣어
금기시 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탄할 일이다.
그리고 일상의 대화를 하다 보면 의외로 우리나라의 주부들께서는 소금은 짜다는 것 이상은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금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김장철이 다가 오는 이 계절에 오늘은 소금이라는 화두를 잡고 긴 여행길을 함 떠나 보십시다.
나중에 다시 기술하겠지만 우리 조상들은 소금을 비아그라 대용으로 음용 하였다고 합니다.
소금은 육지에서 채취하는 암염(돌소금)과 바닷물로 인공적으로 제조하는 천일염과 자염(육염 혹은 해염)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자연의 방식이 아닌 전기분해(이온)로 염화나트륨 성분만을 강제로 만들어 내는 정제염 3종류로 대별된다.
짧은 지면으로 빠른 이해를 구하기 위하여 우선 용어 위주로 소금에 대한 전반적인 썰레발이를 풀어 보기로 합시다.
치킨집에서 나오는 맛소금이란 건 말 그대로 맛을 내기 위하여 소금에 화학조미료를 첨가한 소금이고
불순물이 전혀 없이 빛깔이 뽀얗고 입자가 비교적 가는 소금을 꽃소금이라고 하는데 이 꽃소금은 두번 제조한 재제염이다.
암염이든 정제염이든 아니면 천일염을 바닷물에 녹였다가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만들어 낸
소금을 재제염이라고 하는데 유의할 점은 중국산 암염이나 미네랄 성분이 전혀 없는 정제염으로 만든 꽃소금은 개털이다.
천일염은 현재 서해안 신안 천일염이 가장 유명한데 넓은 갯벌에 염전을 만들어서 바닷물을 가두어 바람과 햇볕을 이용하여
결정체를 만들어 낸 소금을 천일염이라고 하는데 일교차가 거의 없는, 소나무의 송홧가루가 날리는 5월에 나오는 천일염을
송화염이라고 하는데 천일염 중에서 따봉 소금이다.
염전이 아니라 물을 우물 처럼 가두는 염정을 만들고 염도가 높아진 이 우물물을 가마솥에서 끓여서 만들어 낸 소금을 자염이라고
하는데 천일염 보다 짠 성분이 덜 하면서 불순물도 거의 없는 고급(?) 소금이다. 놀랍게도 이 자염이 우리의 전통 소금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전에는 자염만을 만들어 냈었다. 자염은 끓이기 위해서 연료 즉 많은 화목이 필요한 단점이 있어 일본
쪽바리 넘들이 중국 대만에서 만들던 천일염 제조 방식을 우리나라 인천에 있는 주안에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래서
인천 사람들을 말할 때 흔히 인천 짠물 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천일염을 만들 때 마지막으로 소금이 결정되는 결정지의 바닥을 오래 전에는 깨진 옹기 조각을 깔았다가 차츰 발전하여
타일을 바르기도 하다가 근래에 들어 장판으로 깔던 비닐 장판을 깔아서 소금을 만들어 냈었는데 이 소금을 장판염이라고 하고
자연스런 방식이 구태여 좋다고 바닥을 흙 상태 그대로 두고 만들어 낸 소금을 토판염이라고 하는데 장판염은 날씨가 좋으면
이틀이면 소금을 만들어 낼 수가 있고 토판염은 배가 소요되는데 토판염은 흙 성분이 조금 섞여 들어 가기 때문에 색깔이 그리
맑지 않은 단점이 있다.
천일염이 좋은 건 다름이 아니라 갯벌에 함유된 다량의 미네랄 성분이 소금에 들어 가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서해와 비슷한
조건에서 소금을 만들어 내는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이 명품 소금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서해의 갯벌도 근자에 들어 그 진가가 알려 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서해 천일염을 대나무통에 넣고 아홉번을 구워 내는 죽염은 잘들 아시져? 이 죽염을
대중화 시킨 분이 바로 인산 김 일훈 옹 이신데 지금은 그 아드님께서 인산가란 회사를 설립하여 지리산 자락에서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신약과 신약본초란 책을 저술한 인산 선생은 학력도 미미한 엄밀히 말하면 돌팔이 한의사이나 의학에 관해선 아마도 천부적으로
타고 난 재질이 있었던 가 보다. 인산 선생께서
살아 계실 적엔 현대의학에서 손을 놓은 불치병 환자들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숱한 유명인사들의 발걸음이
잦았던 분이시다.
엘지 그룹에서 오래 전에 만들어 낸 죽염 치약은 현재도 잘 팔리고 있는 효자 상품이다.
어느 시대엔 후춧가루를 가장 많이 확보한 자가 전 세계의 경제권을 쥐락 펴락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가 있는데
이 소금이야말로 역사적으로 확연히 밝혀진 사실이다.
소금은 멀리 중국에서 부터 나라에서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는 전매 제도를 시행 하였었고 우리나라는 고려 충렬왕 때 처음으로
전매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하는데 일제 시절에도 홍삼,담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금을 전매 상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레를 돌려 자신의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으며 무저항을 주장하던 인도의 마하트마 깐디, 이 깐디가 살던 인도에서 조직적으로
영국에 대항하여 저항 운동이 벌어 진 것도 다름 아닌 이 소금 때문이다. 영국 놈들이
인도 사람들을 쪼이고 압박하기 위해서 소금 전매 제도를 만들면서 불편을 느낀 인도 민중들이 저항 운동을 벌이게 된 것이다.
소금은 무게와 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주로 배를 이용하여 운송을 하였다.
낙동강 하구인 부산 쪽에서 만든 소금은 배를 이용하여 구미를 거쳐 상주 까지 올라 오고 상주에서 부터 내 고향땅인 안동 꺼증은
수심이 얕은 탓에 자그만 배에 소분을 하여 운송을 하곤 그 이후론 보부상 즉 등짐 소금장수들의 등에 업혀서 이 골짝 저 골짝으로
팔려 가고 서해 쪽에서 만든 소금은 한강을 타고 올라 와서 일차로 마포 나루에 짐을 뿌리고 그 다음엔 양수리를 거쳐 남한강을
타고 충주 나루 꺼증 올라 가서 소금을 뿌리곤 돌아 오는 배편에 제천,영월,단양,영주 등 등에서 수집된 곡식 등을 싣고 한양으로
돌아 오게 된다.
오늘의 메인 썰레발이는 사실 여기에서 부터 시작 된다.
충주에 도착한 소금은 이때 부터는 등짐 소금장수들의 지게에 얹혀 내륙 깊숙히 들어 가게 되는데 깊은 오지인 강원도 산중이
가장 문제라고 한다. 소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데 길이 먼 강원도 까지 소금장수를 불러 들이는 비방이 참으로 슬기롭다.
예전에는 각 부락마다 서낭당이 있고 그 인근에 무녀가 살면서 점을 치기도 하고 병을 고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선 아랫도리를 팔기도 하였다고 한다. 무거운 소금 지게를 진 소금장수가
강원도 깊은 골짝에 있는 마을로 들어 오기만 해 주면 소금장수가 떠나는 날 까지 숙식을 무녀가 있는 서낭당에서 제공되는데
이 무녀의 아랫도리 품질과 온 몸을 바치는 써비스 정신이 뛰어 나야만 그 떡맛을 잊지 못하는 소금장수가 다음 해에도 소금을
짊어 지고 그 마을로 찾아 든다는 것이다.
룸 싸롱이 없던 시절 동네 홀애비나 아랫도리가 무거워 져서 걸음을 제대로 못 걷는 떡꺼머리 총각넘들의 성적인 불만은
이 무녀가 해소해 주는데 밤이면 밤마다 은장도로 허벅지를 푹 푹 찔러 대는 쌩과부나 노처녀의 말 못할 몸부림은 구럼
어느 누가?
비아그라 대용인 소금을 많이 먹어서, 무거운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랫동안 달린 튼실한 하체의 소유자인, 허구헌 날 집을
떠나 유랑 생활을 하는 소금 장수가 있자너 자나?
그래서 인지 설화에 나오는 소금장수는 언제나 쎅스 머신 처럼 묘사되면서 벼라 별 엽기적인 행각을 하고 다닌다.
예산 수덕사 밑에 있는 사하촌에서 불렀다는 노래, 제가 언젠가 함 소개해 드린 적이 있져. 흐 흐
뒷산 딱따구리는 쌩나무도 잘만 뚫는데
우리집에 있는 멍텅구리는 뚫린 구녕도...
이와 비슷한 노래 구절이 강원도 땅에도 물론 있습니더. 우리 선조들의 한을 노랫가락으로 풀어 내린 정선 아리랑에 나옵니다.
물레방앗깐 물레는 물살을 잘도 감아 도는데
우리 집꾸석에 있는 멍텅구리는 나를 감아 돌 줄을 모르네...
이런 사유로 현대판 멍텅구리들에게 비아그라는 신이 내린 마지막 은총이라고들 하는 가 보다.
멍텅구리를 서방으로 둔,아니면 말 못할 사정으로 이룬 멍텅구리 마져 없었던 여인네들과의 빅딜을 성사 시키는 소금장수의
묘한 함수관계를 약간은 색다른 방식으로 작품화한 단편이 바로 작가 이 문열의 익명의 섬이란 글이다.
한 처녀가 어느 시골 학교 교사로 부임을 하여 보니 동네에는 깨철이라고 불리우는 약간은 모자란 청년이 집도 없이 동가식
서가숙 하면서 살고 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로 부터 겉으론 푸대접을 받는 듯 하지만 내실은 그렇지 않아 최소한 끼니는
굶지 않고 살고 있었다.
처녀 선생님이 어느 비 오는 날 동네 입구에 있는 공가에 비를 피하러 들어 가니 그 공가에 깨철이가 웅크리고 있다.
손님이 오신 줄로만 안 깨철이의 뜨거운 손길이 처녀 선생님께로 다가 올 적에야 이 마을에서 깨철이가 무위도식 하면서 끼니를
굶지 않고 사는 내력을 깨우치게 된다. 아마도
깨철이는 소금을 됫박으로 퍼 마셨던 가 보다.
남은 음식과 헌 옷가지를 제공 받는 깨철이는 두쪽 밖에 없는 아랫도리를 물레처럼 잘도 돌리면서, 무주 공산처럼 주인장의
발길이 닿지 않아 한동안 가동이 중단된 온 동네 공장문을 두들기며 삶의 활력을 부어 넣어 준다.
고스톱을 치다 보면 자신이 한 첫뻑을 자신이 다시 가져 올 경우에 아줌마들이 코멩멩이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어마나! 사랑 받고 돈 받고...
세상일이란 내면을 알고 보면 참으로 재미 있다.
나도 깨철이나 소금장수들 처럼 소금이나 욜씌미 마니 묵어야 겠다.
분당 탄천변에서 여태도 깨철이를 동경하고 있는 돌삐 드립니다.
맛보기 : 우리 조상들은 그릇하고 여자는 밖으로 내 돌리면 깨지기 쉽상이라고 내외를 하면서 우선 감추기에 급급하다 보니
여성들이 입는 옷은 신체 부위를 드러 낼 여지가 없게 만들어 입었다.
우선 가슴은 치마끈으로 바짝 조여서 대구 납짝만두 처럼 접시젖을 맹글어 버리고 허리와 히푸는 각선미하고 여엉 거리가 멀게
통짜로 내려 뜨려 버린다. 그러니깐
어깨선에서 부터 치마끝 까지 낭창 낭창하게 내려 뜨렸을 뿐인데 흐미 보면 볼수록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한복에서
화룡첨정이라고 합니껴? 미의 클라이맥스가 과연 어딜까요?
치마 속에 숨어서 보일락 말락 하는, 어깨에서 발끝까지 마냥 흘러만 내려 오다가 도토마리 처럼 살짝 비틀며 감아서 치고 올라 온
버선코의 용틀임을 보셨습니껴? 잠시 숨을 막히게 하는 아름다움의 절정입니다.
백두대간 등줄기가 지리에서 긴 여정을 끝내고 잠시 숨을 고를 때 이곳 두륜산은 그 아쉬움을 불끈 치솟아 올렸습니다.
마치 버선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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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매~~
돌삐님은 산행하시고 피곤하실텐데,
긴~장문의 산행이야기까지~
요즘 제가 인산가소금을 먹고있거든요~
아홉번구운,인산가소금을요.ㅎ
돌삐님,산행이야기 잘읽고갑니다.
소금 이야기..유익하게 읽고 갑니다.
어릴때 선생님 말씀..세상에 소금같은 사람이 되어라..
그 소금..맞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