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
남 택 수
고향 집에는 고추농사를 많이 지었다.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이면 고추 따기가 시작되었다. 그 고추를 시장에 가서 팔아야 공납금도 내고 교복도 살 수 있었다. 고추 따는 날이었다. 밭두렁에서 놀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께서“애야, 너도 고추 한번 따볼래.”라고 하셨다. 여태껏 구경만 하던 나로서는 정말로 신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슴까지 무성하게 자란 고추밭에 들어가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허리를 굽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 가운데 빨간 것을 열심히 골라 땄다. 옆에서 함께 일하던 어머니가 내 바구니를 보더니 “야가, 빨간 고추를 따야지 와 익지도 않은 거를 다 땄노?”라고 하셨다. 내 바구니 속에는 덜 익은 고추가 수두룩하였다. 분명히 빨갛게 익은 놈을 땄는데, 이상했다. 다시 무성한 이파리를 헤치고 고추를 자세히 살펴보니 새파란 고추와 빨간 고추가 섞여 분별하기 어려웠다. 나는 동생보다 고추를 못 따는 바보가 되어 버렸다.
이듬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전교생이 신체검사를 받았다. 전날 가마솥에 물을 데워 묵은 때를 벗겨 내고 팬티차림으로 줄을 섰다. 키와 몸무게를 재고 그다음 교실로 이동하여 시력을 검사했다. 한쪽 눈을 가리고 다른 눈으로 그림과 숫자를 읽으면 눈이 좋고 나쁨을 판별해 주었다. 다음 검사는 책에 쓰인 글씨를 읽는 차례였다. 앞에 친구들은 선생님께서 넘기는 대로 척척 잘 맞추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얄팍한 책을 펼치니 밤하늘의 별 같은 점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몇 가지 색깔로 찍힌 점을 자세히 보면 숫자가 나타났다. 나는 다른 친구들이 했던 대로 보이는 숫자를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순간 선생님께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장을 그다음 장을 펴서 읽게 하였다. 어떤 것은 글씨 같았으나 몇 장의 점들은 글씨가 아닌 이상한 모양으로만 보였다. 뒤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검사 책을 한번 보고 내 얼굴을 다시 쳐다보고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는 속으로 “자슥아들이 돌았나? 웃기는 와 웃노.” 라고 하면서 녀석들을 보았다. 그런데 저들끼리 숙덕거리는 말이 “반장이라 카는 게 일이삼사도 올케 모른데이.”라고 하지 않는가.
중학교 생물 시간에 색맹과 멘델의 유전법칙에 대해서 배웠다. 나는 선천성 부분색맹으로,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적록색약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색맹은 여자보다 남자가 20배 정도 많은데 이는 유전자에 의한 열성형질 때문이라 했다. 여자는 부모 모두에게서 색맹 형질을 물려받을 때에만 색맹이 되고, 색맹인 남자와 정상인 여자 사이에서 난 딸은 색맹이 안 된다는 것이다. 색맹인 아버지와 정상인 어머니의 아들은 모두 정상이며, 이 아들은 색맹 형질을 자손에게 전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론대로라면 나는 아들만 두었기에 나의 후손은 색맹이 전혀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다행한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진학을 위해 여러 대학의 입시 요강을 살펴보았다. 예비고사는 합격했으니 본고사만 잘 보면 되던 때였다. 나는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에 가고 싶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중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범대학에는 원서도 내지 못했다. 그 당시 학칙에는 색맹인 사람은 사범대학, 교육대학, 사관학교 심지어 실험실습을 이수하는 모든 학과에 진학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일이삼사를 모른다는 오해를 받았고, 동생들도 구별하는 빨간 고추를 분간하지 못하고, 이제 장래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여 자못 실망이 컸다.
팔다리가 멀쩡하고 시력도 좋았지만,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색맹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타고난 팔자라고 불러야 할지. 그럼에도 가기 싫은 군대는 꼭 데려갔다.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귀찮고 사는 것이 싫었다.
학교 울타리에 피어 있는 백만 송이 장미꽃이 출근하는 나를 반긴다. 함초롬히 이슬 머금은 장미꽃에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나지막한 담장에 새빨간 장미꽃이 조롱조롱하다. 캠퍼스와의 경계를 표시하는 벽돌담장이 큰길을 따라 요철(凹凸)모양으로 정갈하다. 그 위에 대리석으로 마감하여 담장 너머로 보이는 대학 건물과 조화롭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사각 창살을 가지런히 엮어놓아 안과 밖이 서로 잘 보인다. 길을 걸으면서 캠퍼스의 4계절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나는 빨간 장미꽃을 가까이에서만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 혼자 빨간 장미꽃을 볼 때에는 내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이 정상이었다.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멀리서도 빨간 장미가 예쁘게 잘 보이는 친구와 함께 가니, 그 꽃이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 내가 그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만, 나는 보이는 대로 느낄 뿐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느끼며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종교의 영역이요 믿음의 산물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시적인 두 가지의 색채는 구별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의 아름다운 색깔을 올바로 분별했으면 좋겠다.
장미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교문으로 들어섰다. 잎사귀에 묻힌 새빨간 장미는 잠시 후 사라졌지만, 노란 장미와 분홍색 장미는 오래오래 손을 흔들며 나와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당선소감
사물은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앞면만 보고 뒷면을 보지 못하거나 위는 보고 아래를 보지 못한 체 그 물건의 속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겉도 보고 속까지 살펴봐야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눈으로 안 되면 맛이나 냄새로 또는 만져봐야 그 성질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눈으로 직접 보아도 다른 사람이 보는 모습과 다르게 보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초록과 빨강이 섞인 모습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선천성 부분색약이다. 그 때문에 놀림도 당하고 가고 싶은 대학에 가지 못하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색맹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색맹이기 때문에 손해 본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부모를 원망하거나 나무라지는 않았다. 운명이고 팔자라 여기며 그냥 살았다.
그런데 색맹인 덕분에 대박을 만났다. 조물주가 우리 부모님을 통하여 은혜와 덕을 베푸셨다. 멀리서도 빨간 덩굴장미 꽃이 선명하게 잘 보이는 이상한 사람들은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큰 복을 받았다.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이 기쁨을 색맹인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리고 싶다.
이제 우리 모두 색맹이 되어보자. 붉거나 푸르거나 상관없이 바라보자. 붉은 것을 푸르다고 해서 푸르러지는 것이 아니요, 푸른 것을 붉다고 한들 실상이 변하랴. 가시적인 색깔과 모양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실물은 그대로이다.
세상일에 다툼이 너무 많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맞고 너는 틀렸다고 하기 때문이다. 비록 좀 다르게 보이더라도 실물은 똑 같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눈높이가 같지 않더라도 더불어 살아야 하리라.
색맹이 노안이 되어 두 눈이 침침해지더라도 심안이 밝아졌으면 좋겠다. 비록 가시적인 두 가지의 색채는 구별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의 아름다운 색깔을 올바로 분별하여 수필다운 수필을 한 편이라도 남긴다면 얼마나 좋으랴.
어줍은 습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더 큰 채찍으로 간직하면서 게으름을 쫓도록 하겠습니다.
대구문인협회와 대구문학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프로필
남 택 수(南擇洙)
경북 청송 출생(1953)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영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상
시흥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행정실장
첫댓글 남택수 행정실장님, 다시 한번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