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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다른 강
조 정 래
“이 새끼야 똑바로 엎드려.”
준열이는 형구 등에 올라서서 소리쳤다. 형구가 힘에 부쳐 약간 흔들린 모양이었다.
저러다 준열이가 등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는 날에는 형구는 뼈도 못 추리게 되는 것이다. 형구를 살리는 길은 내가 재빨리 다음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한 동일은 허겁지겁 형구의 옆으로 옮겨가 다시 허리를 굽혀 두 손아귀로 물속에 잠긴 두 발목을 힘껏 붙들었다. 곧 준열이의 한 발이 등을 밟았다. 그리고 또 한 발이 등을 내리밟는 순간 목구멍으로 뜨거운 김이 혁 뿜어져 나왔다.
내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형구는…….
“형구 이 새끼, 빨랑 엎드려!”
준열이는 소리치며 발을 구르기까지 하지 않는가. 동일은 비틀거리지 않으려고 이빨을 앙다물며 발목을 잡은 두 손아귀에 온 힘을 다 모았다.
“형구 너도 동일이처럼 짱짱하게 엎드려, 새끼야.”
준열이의 말이 끝나면서 등이 가벼워지는 걸 동일은 느꼈다. 그러나 잠시도 머뭇거릴 사이가 없었다. 동일은 다시 물을 첨벙이며 형구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형구가 그만큼 애를 먹게 되는 것이다.
동일은 다시 허리를 굽히며 형구의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가슴을 생각했다. 어쨌든 형구가 끝까지 잘 버텨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새끼야, 똑바로 해. 나 물에 빠지겠다!”
준열이가 다급하게 소리쳤고, 동일은 엎드린 채 재빨리 형구를 보았다. 형구의 가느다란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 새끼, 이따 봐!”
준열이의 화난 목소리와 함께 아까와는 다른 무게가 동일의 등을 짓눌렀다. 동일은 숨이 컥 막히는 걸 느꼈다. 그리고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색색의 별똥이 오락가락했다.
“어어, 동일이 너도 이러기야?”
준열이의 당황한 목소리가 꼭 하늘만큼 높은 데서 들리는 것 같았다. 동일은 이빨을 뿌드득 갈았다. 넘어져서는 안 된다. 준열이를 물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팔과 정강이를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를 응시하며 동일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형구의 가느다란 다리가 다시 왼쪽에 나타났다. 이제 이걸 그만 하고 업고 건너자고 해볼까 하고 동일은 생각했다. 그러나 곧 단념해 버렸다. 한번 싫다고 해버린 것을 이제 와서 들을 준열이가 아니었다.
다시 형구 옆에 허리를 굽히려고 할 때였다.
“어, 어, 어…….”
이런 소리를 지르며 준열이가 물로 나뒹굴고 말았다.
동일은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것은 끝장이었다.
“이 새끼, 너 죽어봐!”
온몸이 물에 흠뻑 젖은 준열이가 눈에 불을 켜고 외친 소리였다. 그리고 지쳐 쓰러져 물속에서 아직 일어나지도 못한 형구를 그대로 걷어찼다.
“엄니!”
형구가 비명을 토하며 푹 고꾸라졌다. 준열이는 달려들어 사정없이 형구를 갈기기 시작했다. 형구는 코피가 터졌고, 얼굴은 금방 피범벅이 되었다. 동일은 맨주먹만 말아 쥐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있었다. 잘못 말렸다가는 준열이의 주먹이 자신에게로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준열이는 계속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고, 형구는 이제 얼굴을 가렸던 손마저 늘어뜨린 채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저게 죽어버린 게 아닐까. 동일의 머리를 스쳐간 생각이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준열이는 형구를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준열아 니 형구 죽이고 감옥 갈래? 그만 해, 형구 반은 죽었다!”
동일은 소리치며 준열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준열이도 죽는다는 말은 무서웠던 모양이다. 숨을 씩씩거리며 주먹질을 멈추었다.
“형구야! 형구야!”
동일은 형구에게로 내달으며 부르짖었다.
동일은 소스라치며 잠을 깼다. 꿈이었다. 갈증이 심했다. 아내가 잠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찬물을 한 사발 가득 들이켰다. 꼭 갈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허황되거나 아무 근거 없는 소년기의 꿈이 아니었다. 있었던 일이다. 겪었던 일이다. 깊은 상처가 남긴 없어지지 않는 흉터처럼 마음속 저 어딘가 깊은 곳에 판화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는 기억이었다.
그 기억은 다른 몇몇 개의 기억들과 함께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곤 하는데, 그동안 흐를 만큼 흐른 세월과는 아랑곳없이 어쩌면 그렇게도 퇴색할 줄 모르는 선명하고 분명한 활동사진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꿈들과는 달리 그때의 꿈들은 언제나 총천연색인 것이다. 언젠가 신문을 읽다 보니 어느 심리학자가 꿈에 대해 쓴 글이 있었다. 그 학자는 모든 꿈은 흑백으로 꾼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런데 가끔 총천연색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첫째는 불행한 경우로 정신 질환자들이 천연색 꿈을 꾸며, 둘째는 행복한 경우로 천재적으로 지능 지수가 높은 사람들이 천연색 꿈을 꾼다는 주장이었다.
동일은 우연히 이 글을 읽고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럼 자신은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가 자신이 하는 일은 정신 질환 증세가 있어서는 단 하루도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15년이 넘도록 그것도 ‘모범’이란 말을 앞에 달고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럼 천재가 될 만큼 머리가 좋다는 것인가. 글쎄, 스스로 생각해 봐도 쑥스러울 뿐이다. 그다지 둔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천재는 어림없는 소리인 것이다.
그 학자가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수소문을 해서라도 속 시원히 알아보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무슨 무슨 스키라는 긴 이름의 외국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 시절의 꿈만은 언제나 어김없이 총천연색이었고, 아마 모진 기억이 꿈으로 나타날 때는 다른 꿈과는 달리 총천연색이 된다는 것을 그 심리학자가 그만 빠뜨려먹었을 거라고 동일은 자기 나름의 해석을 첨가시키고 말았다.
요즈음 들어서 갑자기 그런 종류의 꿈을 꾸는 빈도가 늘어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 전에 비로소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건 실로 15년 만에 이룩한 꿈이었고 보람이었다. 핸들을 돌려 목구멍에 풀칠을 해온 지 15년 만에 ‘모범’으로 차주(車主)가 된 것이다.
차를 받던 그날, 동일의 가슴은 형용하기 어려운 갖가지 표정의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제 고향엘 찾아가리라 하는 생각이 가장 진했다.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준열이의 기억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여보, 인제 당신도 어엿한 사장님 이시구랴.”
아내는, 제법 짙게 화장까지 한 아내는 옆자리에 앉아 참으로 고마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
동일은 핸들만을 움켜잡은 채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동일은 아내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안다. 아내는 ‘우리 차’ 갖기를 얼마가 간절히 바랐던가 그건 운전사라는 직업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위험을 의식하는 초조감에 정비례하는 바람이었다. 어떠한 이유도 통하지 않고 매일매일 올가미처럼 압박을 가해오는 입금액. 차주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입금액을 채워놓고 나서야 생계비를 마련해야 하는 하루살이 목숨. 과속과 합승은 피하려야 피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과속이 극약과 같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운전사가 제일 잘 안다. 그러면서도 과속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다. 합승이라는 것도 꼭 구걸하는 것처럼 눈치 보이고 비굴한 느낌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 비굴을 참아내지 않으면 목구멍 에 거미줄이 쳐지는 것을.
아내의 ‘우리 차’ 갖기 소망은 순전히 입금액에 쫓기는 과속 운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여보, 고기 한 칼 안 먹으면 돼요…….”
아내는 그 다음 말은 표정으로 대신하곤 했다. 운전사의 마누라답게 기분이 조금이라도 다칠 말은 아예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이 땅 어느 곳에서나 여자를 우습게 보기는 매한가지지만 유독 이 기름밥을 먹는 동네에선 여자 알기를 겨울 보신탕만도 못하게 취급했다. 그러니까 아내가 그런 말이나마 조심스럽게 하는 것은 하루 벌이를 내놓는 한밤중이었다. 아내는 가엾을 정도로 매일 아침에는 긴장이 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그저 살금살금 조심조심이었다. 하루 재수는 아침 기분에 달렸다는 이 동네의 근거 없는 풍습을 아내는 깍듯이 지키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가 아침에 하는 말이라곤 “진지 잡수세요”, “세수하세요”, “다녀오셔요” 같은 몇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다른 말이 있다면 동일이 들어서 기분 좋을 말뿐이었다. “애기가 첨으로 아빠를 불렀어요, “오늘 곗돈을 타는 날예요”, 이런 말을 짤막하게 하는 것이다.
동일은 이런 아내의 신경 씀이 고맙고 대견하고 그러면서 가엾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 동네의 미신 같은 풍습에서 자신은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여자가 첫 손님이 되면 그날 재수 옴 붙는다거나 안경 쓴 남자가 첫 손님이 되면 하루 재수 똥칠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꼭 무슨 법처럼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여자를 첫 손님으로 태우지 않으려고 갑자기 속력을 내며 핸들을 꺾다가 사람을 치고 말았다. 그 친구는 쇠고랑 신세가 되었는데, 운전사들은 하나같이 사고 원인을 “쌍년”, “개년” 하며 여자에게로 떠다밀었다. 그 여자를 순순히 태웠으면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는 운전사는 하나도 없었다. 만약 그 여자를 태웠더라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몰아붙이는 것이다.
동일은 그런 운전사들의 태도가 싫었다. 핸들은 운전사가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고의 원인과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사에게 있는 것이다. 동일은 이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대다수 운전사들의 이런 저런 말들은 자기네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치사한 비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동일은 누구든 가리지 않고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맞아 들이고 어느 한순간도 신경을 놓지 않고 운전을 했다.
자신의 생각이 이렇다는 걸 다 말했는데도 아내는 줄기차게 운전사 마누라로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더욱 대견하고 한편으로 가엾은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이었다.
“당신, 내가 운전하는 차 첨 타는 거지, 아마?”
동일이 아내를 보며 말했다.
“그래요…….”
아내는 조용히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내의 귀밑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무슨 부끄러운 생각을 했기에 저리도 곱게 귀 밑이 붉어지는 것일까 동일은 언뜻 처녀 시절의 아내를 떠올렸다. 많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맑은 모습이 다 가신 건 아니다.
동일은 자신이 차주가 되고자 했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아내를 이처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게 된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며 역시 차를 갖게 된 건 참 잘한 일이라고 새삼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어느덧 서른여덟의 나이. 군대를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핸들 잡는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된 것이 만 15년이 되었다. 그다지 탐탁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배운 것이 없는 처지에 다른 마땅한 것이 없었다. 배운 게 없을수록 기술을 지녀야 살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 특별히 배워서 깨달은 지혜가 아니었다. 뭐 대단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운전을 잘하는 것도 기술은 기술이었다. 힘만으로 벌어먹어야 하는 막노동이나 리어카를 총자본 삼아 생계를 꾸려야 하는 행상에 비하면 운전은 꽤나 그럴듯한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동일은 ‘내 차’ 갖기를 꿈으로 지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좀더 오래전부터 그 소망은 가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자동차 세차장에서 기름투성이가 되어 자동차 때밀이 노릇을 하며 엄벙덤벙 운전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부터 말이다 그때부터 치자면 자동차 갖기 소원은 21년 만에 이루어진 셈이었다.
동일이 자신의 차를 갖기 원한 것은 스스로가 정한 성공의 제1단계 목표였다. 그 1단계 성공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고향에 내려가지 않으리라고 작정했다. 매일 입금액에 쫓기는 월급 없는 월급쟁이의 초라한 신세로 고향 땅을 밟고 싶지가 않았다 자기 차를 가진 어엿한 차주로서 당당하게 고향엘 가리라 했다.
동일에게 있어 고향이란 일반적인 느낌과는 판이한 곳이었다. 어떤 살붙이나 먼 친척 같은 것도 없었다. 있다면 한(恨)이, 세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시퍼렇거나 시뻘겋게 채색된 한만이 고향을 향해 드러나 있었다.
고향 하면 뼈저린 가난이 떠올랐고, 준열이가 떠올랐고, 동일은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그건 뼈에 사무치는 굴욕이었다. 견디어내기 어려운 짓밟힘이었다. 철이 들면서 가슴속에서 돌덩어리가 들어앉기 시작했다. 반드시 받은 만큼 갚아주리라는 결심이었다. 그 복수심은 기묘한 힘으로 동일을 흥분시키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으레 사람의 마음먹음은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면 허물어지게 마련이건만 동일의 가슴에 자리 잡은 복수심은 그 반대였다. 하는 일이 짜증스럽고 싫증이 나다가도 준열이에게 당했던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불현듯 힘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준열이네 집은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와집이었다. 하늘에 닿게 크고 높은 대문에는 번쩍거리는 놋쇠 장식이 붙어 있었고, 집은 어찌나 큰지 숨바꼭질을 하면 술래는 한나절 내내 술래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당도 당산나무 밑 공터보다 넓었는데 어찌나 손질이 잘되었는지 조그만 돌멩이 하나 박혀 있지 않았디.
준열이네 논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었다. 만약 준열이네가 논길을 막아버리면 다른 동네 사람들은 거의가 자기네들 논으로 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준열이네한테 꼼짝을 못했다. 준열이 아버지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준열이한테도 어른 노릇들을 못했다 준열이가 애호박에 말뚝을 박아도 야단을 치지 못했고, 대추나무를 장대로 후려쳐대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준열이는 외아들이었다. 처음부터 외아들은 아니었고 전쟁 통에 외아들이 되었다. 손위로 누나가 둘, 그 위에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전쟁이 나던 해에 고등학생이었다. 전쟁이 나자 준열이 아버지는 큰아들을 지키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집 뒤켠의 약수터 속에 굴을 파고 큰아들을 거기다 숨겼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준열이 형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누가 몰래 잡아간 것이 아니라 야음을 틈타 스스로 도망을 친 것이었다.
“부잣집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그랬던지 빨갱이 사상을 가졌더랜다.”
어머니의 말이었고,
“그럼 준열이네 형이 공산당이었단 말이지?”
동일은 너무 늘라서 물었다.
“요런 철딱서니 없는 것아, 입 조심해라 그런 말이 준열이 아부지 귀에 들어가면 우린 굶어 죽는다. 행여라도 그런 말 입 밖에 안 내겠다고 엄니한테 당장 약속해라”
동일은 어머니의 부릅뜬 눈이 너무 무서워 고개를 떨구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절대 입 안 놀려요.”
준열이네한테 밉보이는 경우 어떻게 된다는 것쯤 동일은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준열이네 집안일을 해주고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였다
동일이 준열이네 형이 숨었다는 굴에 처음 들어가본 것은 준열이를 따라서였다. 그 굴은 참으로 희한하고도 무시무시하게 생겼었다. 동일네 집 뒤켠에는 집채보다 더 큰 바윗돌이 잇닿아 있었고 약수터는 그 바윗돌 사이에 있었다. 그 약수터는 아무리 가뭄이 든 여름에도 마르는 일이 없고,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애들이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게 바로 약수샘이었다. 샘 안은 애들이 열 명쯤 들어설 정도로 넓었고,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흡사 가느다란 벌레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여름인데도 가까이 가자 서늘한 기운이 끼쳐왔다.
“너 여기 들어갔단 말 딴 애들한테 하면 알지?”
준열이는 가운뎃손가락 마디가 위로 솟게 주먹을 눈앞에다 쥐어 보이며 다짐했다. 입을 잘못 놀리면 죽여버리겠다는 시늉이었다. 동일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서 있던 순자는 겁먹은 얼굴에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여기 들어간 걸 우리 아부지가 알면 나도 다리 부러진다.”
준열이가 다시 말했다. 동일은 그만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이 약수샘 속에 어떻게 굴이 있을 수 있을까 싶던 호기심이 싹 가시고 말았다. 준열이가 다리 부러질 일이라면 자기 같은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무서워, 나 구경 안 할래.”
순자가 아까보다 더 겁난 얼굴로 말했다.
“요런 펴엉신, 우리 아부지 엄니는 이따 밤에나 돌아와. 그리고 이 속에 굴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구경한 거나 마찬가지 죄야.”
준열이가 눈을 사납게 뜨며 말했다. 동일은 순자의 눈물 어린 눈길을 외면해 버렸다. 준열이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와!”
준열이가 앞장섰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맑디맑은 몰은 온몸이 오싹하도록 차가웠다. 약수샘 천장은 고개를 숙여야 할 만큼 낮았다. 준열이를 따라 오른쪽으로 더듬더듬 발을 옮겼다. 서너 발짝 옮기자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졌다. 몇 발짝 더 옮기자 물이 발목을 적셨다. 발 밑은 몇 계의 층계로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 다치지 않게 조심해.”
준열이의 목소리가 어른의 목소리처럼 크게 울려 들렸다. 그리고 앞이 갑자기 밝아졌다. 준열이가 성냥불을 켠 것이다. 곧 어른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구멍이 나타났다. 준열이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초에 불을 옮겨 붙이고는 그 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면서도 동일은 준열이의 뒤를 따라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굴속은 커다란 방만 했다. 천장도 어른의 키 높이만큼 높았다. 바닥에는 가마니가 깔려 있었다. 준열이는 벽에 결린 등잔대에다가 초를 세웠다. 그동안 맞은편 벽에는 준열이의 커다란 그림자가 귀신처럼 무섭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자는 구석에 바싹 붙어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으때, 근사하지?”
준열이가 웃었다. 동일은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이며 준열이가 꼭 무서운 어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희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돼.”
준열이는 체조 선생처럼 두 팔을 허리에 올리며 말했다. 동인은 자신도 모르게 똑바로 섰다. 그러면서 순자를 흘끗 보았다. 순자는 거의 울고 있었다. 입술이 씰룩이고 있었는데, 곧 커다란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든지 아니면 비명을 질러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순자가 제발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기를 동일은 빌었다.
“둘 다 옷 벗어!”
준열이가 말했다. 동일은 무슨 소린가 싶어 준열이를 보고만 있었다
“둘 다 옷 벗으라니까!”
준열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 …나 안 더운데…….”
동일이 간신히 말했다.
“새끼, 누가 더워서 벗으랬어?”
준열이가 발길질을 했다. 피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이 아찔해지며 정강이가 똑 부러지는 것처럼 아팠다.
동일은 엉겁결에 셔츠를 벗었다. 우물거리다가는 또 얻어맞는 것밖에 없었다.
“너도 빨랑 벗어!”
준열이는 순자를 다그치고 있었다.
“바지까지 홀랑 다 벗어!”
셔츠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는 동일에게 명령했다.
“… …준열이 오빠, 나 내보내줘.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깐 나 좀 내보내줘. ……준열이 오빠 나 좀 살려줘…….”
순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바닥을 맞비벼대고 있었다. 그런 순자가 너무 가엾고 불쌍했다. 동일은 갑자기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앞에 버티고 선 준열이를 그대로 들이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끓어 올랐다.
“내가 왜 느네 오빠냐? 내 말 안 들으면 어찌 되는지 알지? 맛 좀 단단히 보고 싶으냐?”
준열이의 이 말은 역시 효과가 있었다. 순자는 계속 울며 아주 느리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준열이 앞에서 둘이 다 알몸이 되었다.
“쭈았어. 너희들, 개가 하는 것 봤지? 지금부터 둘이서 그렇게 해!”
너무 상상 밖의 말이었다. 하도 이상한 놀이만 궁리해 내는 놈이라서 벌거벗겨 놓고 춤이라도 추라는가 보다고 동일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말도 안 돼. 우린 개가 아니잖아”
자신도 모르게 동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뭐라고? 이 개새끼!”
동일의 눈에서 번쩍 불똥이 튀었다 연거푸 양쪽 볼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동일은 두 주먹을 힘껏 말아 쥐며 부르르 떨었다. 죽거나 말거나 이놈하고 한판 맞대거리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불기둥같이 치솟았던 것이다.
ㅡ동일하 준열이한테 그저 고분고분해라. 그래야 쓴다. 그래야 산다. 그저 참아야 해.
어머니의 목메인 말이 쟁쟁하게 들려왔다.
“이래도 못해?”
준열이가 숨을 씩씩 거렸다. 동일은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동일이가 한댔으니까 순자 너부터 빨랑 엎드려!”
준열이가 순자의 팔을 낚아채서 쓰러뜨렸다. 순자의 삐쩍 마른 알몸이 가마니 위에 조그맣게 웅크려졌다.
“동일이 너 뭘 해!”
동일은 순자 옆으로 다가갔다.
“괜찮하 옷까지 다 벗었잖아”
동일은 순자의 팔을 잡으며 나지막하게 말하다가 깜짝 놀랐다. 순자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 몸은 약수에 발을 담갔을 때처럼 써늘한 느낌이 들도록 차가웠다.
“괜찮아…….”
동일이 겨우 말했고,
“……”
순자는 동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동일은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일이 오빠 넌 순 바보다. 못난이, 겁쟁이다. 준열이가 하라는 대로 이게 무슨 짓이야. 같은 남자고, 같은 학년이면서 그걸 하나 못해 보고 시키는 대로 이게 무슨 짓이야. 겁에 질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순자의 눈이 이렇게 자신을 원망하는 것만 같아 동일은 더 이상 순자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순자는 형구의 동생으로 2학년이었다. 형구는 3학년이었고, 준열이는 한 학년이 위였다. 동일과 마찬가지로 형구도 아버지가 없었다. 둘이 다 난리 중에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다른 게 있다면 형구 아버지는 산사람이 된 것이고, 동일의 아버지는 국군으로 나갔다가 죽은 것이었다. 형구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한테 표 나게 차별 대우를 받았는데 그게 다 형구 아버지가 산사람이 되어 죽은 탓이라고 했다. 똑같이 남편이 없는데도 자기 어머니보다 형구 어머니가 언제나 더 맥 빠져보이고 근심이 많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거
라고 동일은 생각했다.
형구 어머니도 주로 준열이네 일을 해주고 살아갔다. 똑같이 준열이네 일을 해주고 먹고 사는 처지였지만 자기 어머니가 형구 어머니보다 한 급 위라는 것을 동일은 눈치로 환히 알고 있었다. 함께 부엌일을 할 때도 장작을 나르거나 물동이릍 이는 건 형구 어머니였다. 논에 점심을 내갈 때도 형구 어며니가 인 함지박이 언제나 컸다. 누룽지를 봐도 표가 났다. 동일은 콩이 많이 박힌 누룽지를 먹게 되는데 형구나 순자는 보리가 더 많은 누릉지를 먹어야 했다. 한번은 미안해서 누릉지를 형구에게 나눠주었다.
“싫어, 안 먹어.”
형구가 대뜸 한 말이었다.
“왜? 이게 훨씬 맛있어.”
동일은 더 가까이 누룽지를 내밀었다.
“나도 알아.”
형구가 아까보다 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왜 싫으냐?”
“그거나 이거나 똥 되기는 다 마찬가지야.”
“너 임마……?”
동일은 멍해지고 말았다. 형구는 가끔 그랬다. 꼭 어른 같은 말을 불쑥 내쏟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여럿이 모여앉아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너덧 명의 아이들은 제각기 대통령, 장군, 교장 선생님, 도지사 등등 떠들어댔다. 형구의 차례가 되었다.
“난 죽어도 검사가 될 거야.”
‘죽어도’라는 말을 할 때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고개까지 약간 비틀렸다.
“그거 해서 머하게?”
한 아이가 물었고, 어떤 아이는 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묻기도 했다.
“할 일이 많지만, 제일 먼저 남 못살게 구는 사람들한테 벌을 내릴 거야.”
형구는 굳어진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너무 말라서 항시 기운이 없어 보이던 형구가 이때처럼 기운차게 보인 적은 없었다.
형구만 엉뚱한 게 아니라 동생 순자도 가끔 어리둥절한 말을 하곤 했다.
“난 순사가 될 거야.”
“건방지게 여자가 무슨 순사야 여잔 시집가서 밥해 먹고 애 낳는 일이나 하는 거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어. 선생님이 그러는데 서울에는 여자 순사가 있댔어.”
“거긴 서울이니까 그렇지.”
“나도 서울에 가면 될 거 아냐.”
“얼렐레, 니가 무슨 수로 서울 가?”
“봐라, 봐. 조금만 더 크면 죽어도 서울에 가고 말 테니까 그래서 죽어도 순사가 될 거야.”
순자는 즈네 오빠처럼 ‘죽어도’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순사가 돼서 머할 건데?”
“것도 몰라서 물어?”
이렇게 되묻는 순자는 전혀 딴 아이처럼 당당해 보이는 것이었다.
동일도 장래의 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형구나 순자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정해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보다 더 훌륭한 것, 더 근사한 것, 더 힘이 센 것을 고르느라고 고심하고 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준열이를 꼼짝 못하게 누를 수 있는,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어서어서 커라. 공부도 열심히 허고. 그래서 우리도 옛말 이르며 요렇다께 한번 살아얄 것 아니냐.”
어머니는 거의 매일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럴 때마다 동일은 어른이 빨리 될 수 없는 게 그저 안타까웠다.
아무리 그런 꿈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준열이 앞에서는 꼼짝없이 죽어지내야 했다. 말타기 놀이나 술래잡기 놀이에서 준열이는 한 번도 말이나 술래가 되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준열이는 빼놓고 가위바위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준열이는 언제나 제일 험하게 말을 타는 것이었다. 살찐 몸으로 마구 굴러대면 쓰러지지 않는 애가 없었다. 그럼 준열이는 욕을 해대면서도 만족한 표정을 짓고는 했다
준열이가 제일 즐기는 놀이 중에 ‘싸움시키기’가 있었다. 땅바닥에 큼지막한 네모를 그어놓고 애들을 두 패로 갈라 한 사람씩 차례로 싸움을 하는 것이다. 싸움은 코피가 터지거나 울게 되면 지도록 되어 있었는데, 몇 대 몇으로 점수가 매겨져 이기는 편에는 푸짐한 먹을 것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애들은 있는 힘껏 주먹을 내두르는 일을 번번이 했다. 오늘은 어떤 걸로 배를 채우게 되나 생각하면서.
싸움이 다 끝나고 이긴 편과 진 편이 나뉘게 되면 준열이는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오늘은 보리 서리를 간다!”
이긴 편 애들은 와 함성을 지르게 마련이었다. 보리 서리를 잘못 해먹다가 들키게 되면 요절이 나게 마련이었다. 서리를 해먹으려면 꼭 불을 피워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으슥한 곳을 택해도 들키기가 십상이었다. 그런데 맘 놓고 서리를 해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바람 나는 일인가.
준열이는 이긴 편 아이들을 몰고 자기네 산골밭으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한 패는 보리목을 자르게 하고 다른 패에게는 삭정이를 모아오게 했다. 검불과 삭정이에 불이 붙고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통통하게 살이 찐 보리목이 불길을 받기 시작한다. 보리 익는 구수한 냄새가 자욱하게 퍼지면서 허기진 배는 더 고파지고, 푸짐한 서리는 절정에 이른다. 애들은 불에 그을은 보리목을 집어 후후 입으로 불어가며 손바닥이 새까매지도록 문지른다. 그러면서 싸움에 이기기를 백번 잘했다고 생각하고, 새까만 손바닥에 초록빛 보리알이 보석처럼 모습을 드러내면 싸움을 시킨 준열이에게 반감을 갖는 게 아니라 서리를 맘놓고 해먹을 수 있게 해준 준열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싸움에 진 아이들은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망연히 바라보다가 코피를 다시 닦고, 멍 자리를 다시 어루만지며 하나 둘 쓸쓸하게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싸움을 시킨 준열이도 미웠지만 싸움에 이기고 서리를 해먹느라고 군침을 질질 흘리고 있을 애들이 더 밉게 생각되는 것이었다.
한참 신나게 서리를 해먹다 보면 어른이 쫓아오게 마련이었다. 준열이네 두 머슴 중의 한 사람이곤 했는데, 그들은 준열이를 발견하고는 그만 맥 빠지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쫓아올 때는 당장 요절을 낼 작정이었지만 주모자가 바로 준열이인 것을 안 그들은 아주 야릇한 얼굴이 되는 것이었다. 애들은 그런 머슴을 흘긋흘긋 훔쳐보펴 더욱 신바람 나게 보리목을 손바닥에 비벼대는 것이었다.
“되련님…… 배탈 안 나게 쬐금만 잡수셔야 해요.”
머슴은 이런 말을 얼버무리며 돌아서곤 했다.
콩서리나 밀서리 같은 것도 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애들은 저희들끼리만 모인 자리에서는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모으는 것이었지만, 일단 준열이가 싸움판을 벌이게 되면 누구 하나 반대하고 나서는 아이가 없었다. 잔뜩 기가 죽어서 준열이가 땅바닥에 그린 편짜기 제비를 뽑는 것이었다. 한번은 동일이 묘안을 낸 일이 있었다.
“준열아 오늘 한 번만 싸우지 말고 전부 좀 데려가주지 않을래? 그동안 모두 열심히 했잖니.”
동일의 말에 애들은 눈을 반짝이며 준열이의 눈치를 살폈다.
준열이는 한참 동안이나 동일을 노려보았디.
“알았어. 동일이만 빼고 다 같이 가자”
애들은 좋아서 와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앞장서는 준열이의 뒤를 따라 모두 그 자리를 떠나갔다.
갑자기 썰렁해진 공터에 동일은 혼자 오도카니 서 있었다. 신나게 떠들어대며 멀어져가고 있는 아이들의 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동일은 왈칵 무섬증을 느꼈다. 저건 순 나쁜 놈들이다. 저희들을 위해서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을 했는데, 그 덕에 저희들만 좋아지고 난 이 꼴이 됐는데도 나를 위해 무슨 말을 해주는 놈들은 하나도 없다. 나를 이렇게 괭개쳐놓고 저희들만 저렇게 신나다니. 저것들은 준열이보다 더 나쁜 놈들이다.
동일은 저것들은 친구도 아니라는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 다시는 남들을 위해서 앞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마음에 새겼다 그러면서 동일은 자신이 갑자기 나이를 서너 살 쯤 더 먹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활이 준열이네한테 매여 있는 데다가 학년까지 같은 동일은 동네의 그 어떤 아이들보다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한테 그런 내색을 한 일은 없었다. 이야기를 한다고 어머니 힘으로 자신이 편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일이 고향을 떠난 것은 국민학교를 졸업한 해 3월이었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낳아서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니라.”
서울로 이사를 가기로 했다는 계획을 밝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너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했고, 그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이라고 했으며, 중학교까지는 고향에서 마칠까도 생각했지만 기왕 타향 법 먹을 양이면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야 그만큼 자리도 잡힌다는 것이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 하나 공부 뒷바라지는 할 수 있으니 그저 공부나 잘하라고 당부했다.
동일은 하릇밤 사이에 준열이보다 더 근사하게 자리바꿈을 하고 말았다. 준열이는 백 리가 넘게 떨어진 ㅂ시(市)로 중학을 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동일은 ㅂ시보다 몇십 배 좋은 서울의 중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까불지 마, 새끼야.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는 가난뱅이가 서울만 가면 다냐? 니까짓 것들은 서울 가면 보나마나 거지야, 거지. 중학교가 아니라 거지 학교에 다니게 될 거란 말야.”
준열이가 사납게 내뱉은 말이었다. 동일은 이 말에 자신 있게 맞설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사실 어머니가 무슨 수로 자기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큰 근심이었던 것이다.
“성님,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세상이라는 서울서 혼자 힘으로 어찌 살아가실라요.”
형구 어머니는 근심스럽게 말했다.
“다 사람 사는 세상인디, 여기서 남에 집 종 노롯 하듯 살면 어디선들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는가.”
어머니가 다시 마음을 다잡듯 한 얼굴로 먼 데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가서 자리 잡걸랑 나도 좀 데려가주시겄소? 아니 이놈에 정신 좀 봐…….”
형구 어머니는 말을 얼버무리며 앞치마를 걷어 올려 코를 닦았다. 울고 있는 것이다.
“괜헌 소리요. 형구가 없는데 서울 가면 무슨 소용이…….”
형구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냈다.
형구가 죽은 지도 1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형구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왕벌에 쏘인 다음 앓다가 죽어버렸다. 형구는 준열이가 죽인 것이었다. 그날도 대여섯 명의 아이들은 준열이를 대장으로 뒷산에서 놀고 있었다. 병정놀이를 하다가 한 아이가 참나무 가지에 붙은 무지무지하게 큰 벌집을 발견한 것이었다. 벌집의 크기만큼 벌들도 보통 벌의 다섯 배 정도 커 보였다. 아이들은 살금살금 가까이 접근해서 숨들을 죽이고 그 큰 벌집으로 드나드는 엄지손가락만 한 벌들을 구경하기에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저 벌집을 따자!”
그때 준열이가 낯으나마 힘있게 한 말이었다.
아이들은 그 순간 전신이 바싹 오그라드는 긴장을 했다. 보나마나 자기들 중에서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전에도 벌집을 발견하게 되면 그대로 내버려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돌을 던져서든 장대로 쳐서든 벌집을 떼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건 어쩌면 그 어떤 놀이보다도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대로 벌집을 치는 순간 벌들이 와아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은 때를 같이하여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들을 질러대며 사방으로 내빼는 것이다. 벌들은 무서운 기세로 애들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어물어물하다가는 벌한테 사정없이 쏘이고 말았다. 그 장난을 할 때마다 한 명씩은 벌에 쏘이게 마련인데 대개 벌집을 친 아이가 당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아이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나 바위 뒤에 숨었다가 벌집을 치는 순간에 내빼는데, 벌집을 친 아이는 아무래도 벌집에서 제일 가깝게 마련이었다.
애들은 싫은 것을 무릅쓰고 준열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가위바위보를 해야 했다. 애들은 손을 내밀기 전에 제각기 손가락에 침을 바르고 손등에 주름을 잡아보고 하며, 무엇을 내야 좋을지 간절한 표정으로 점을 쳤다. 긴장 속에서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지막 두 사람이 남았다. 두 사람 중의 하나가 형구였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형구는 돌아섰다. 그리고 혀를 있는 대로 빼고 주먹을 쥐어 손가락에 칙 침을 발랐다. 동일은 자기도 모르게 형구 옆으로 다가섰디. 그때 형구가 들릴락말락하게 말했다
“나 차라리 죽고 싶다”
이렇게 말하는 형구를 바라보며 동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심하게 떨리고 있는 형구의 입술을 보고 있었다.
형구는 무엇을 내기로 결정했는지 모른다. 말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맞섰다. 형구는 말아 쥐고 있던 주먹을 그대로 내밀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손은 쫙 펴져 있었다
“형구야…….”
동일은 신음처럼 형구를 불렀고, 둘러선 아이들은 영문 모를 소리를 와 질렀다
얼굴이 더 하얗게 굳어진 형구는 준열이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려는 듯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먼저 가위바위보왜서 이긴 애들이 벌써 꺾어다 둔 막대기를 받아 들었다.
동일은 그 막대기가 너무 짧다고 느꼈다.
“가만있어, 형구야. 더 긴 막대기를 찾아보재”
동일이 말했고,
“괜찮아. 이보다 배가 더 길어도 마찬가지야.”
형구는 이렇게 말하고는 벌집이 붙은 참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몸 숨길 자리를 찾느라고 우왕좌왕했다.
갑자기 산속이 밤중처럼 조용해지는 것 같았다. 형구는 막대기를 앞으로 잡고 걸음을 옮겨놓고 있었다. 벌들이 윙윙대는 소리가 꼭 쇠파리가 내는 소리처럼 크고 가깝게 들렸다. 형구가 벌집 가까이 접근하고, 막대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동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형구가 막대기로 그 무지무지하게 큰 벌집을 후려쳤다. 동일은 자신도 모르게 애들의 외침을 따라 내빼기 시작했다. 얼마를 달렸을까.
“엄니, 엄니, 나 죽어, 엄니이―.”
뒤에서 숨넘어가는 형구의 비명이 들려왔다. 동일은 뜀질을 뚝 멈췄다. 그리고 재빨리 돌아섰다. 저만큼 앞에서 형구가 땅바닥을 구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동일은 뛰어가려 했다.
“벌이 온다 벌!”
누군가가 외쳤고, 멈춰 섰던 아이들이 다시 내빼기 시작했다. 동일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정말 그 큰 벌이 떼지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동일은 자신도 모르게 돌아서서 이빨을 앙다물며 뛰기 시작했다. 뒤쪽에서는 계속 형구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형구는 세 군데나 벌에 쏘였다. 눈 바로 아래, 목, 그리고 팔이었다. 애들이 다시 돌아갔을 때 형구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정신을 잃고 있었고, 눈은 혹이 붙은 것처럼 부어올라 있었다.
“느네들 내가 시켰다고 아가리 놀리면 알지!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준열이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형구는 한약방 할아버지가 다녀간 다음 저녁이 늦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밤새도록 헛소리를 했다고 했다.
형구는 보름이 넘도록 앓았고, 병원에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커서 꼭 검사가 되겠다고 당차게 말하곤 했던 형구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어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져선 뒷산에 묻혀졌다.
형구 어머니는 돌무덤 속에 묻혀 있는 아들을 생각하며 울고 있는 것이다.
“동생, 그만 울어. 딸자식은 자식이 아닌가 내 가서 자리 잡으면 동생 부르고말고. 서로 얼마나 의지가 될 텐데.”
형구 어머니와는 이렇게 헤어졌다.
가난과 외로움의 연속인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매일 매일 종류가 바뀌는 행상을 했다. 어느 날은 생선일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과일이기도 했다. 종류에 따라 날씨에 따라 장사는 달라지는 모양으로 어느 날은 터무니없이 손해를 보기도 했다. 동일은 자신이 어머니를 조금도 도울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어머니는 거의 밤마다 앓는 소리를 했다.
“딴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게 엄니를 돕는 길이다. 그저 공부 잘해서 훌륭하게 돼야 한다.”
어머니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어머니는 이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옷깃을 여미고 단정히 앉는 것이었다. 동일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그 소원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찬물에 손을 넣었을 때 찬 기운을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끼곤 했다. 그러면서도 동일은 어머니의 고생을 다소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신문 배달 같은 것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자꾸 이 에미 속 썩일래? 공부 한 가지만 잘하기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냐?”
어머니는 사정없이 동일의 뜻을 겪어버리곤 했다.
어머니가 하는 고생에 비해 살림 형편은 영 필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그 고생을 하면서도 어느 때 한번 등록금 날짜를 어긴 적이 없었다.
고생스런 나날과는 달리 빨리 바뀌는 햇수였다. 중학 졸업을 서너달 앞둔 겨울날 그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어머니가 눈길에 실신해서 쓰려지고 만 것이다. 어머니는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한 달 가까이 시름시름 앓다가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동일아…… 내가…… 내가…… 동일아……:”
어머니는 동일의 손을 으스러져라 움켜잡고 눈을 부릅뜬 채 숨을 거두었다 동일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주인집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화장을 했고, 밤이 깊어도 어며니가 돌아오지 않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견딜 수 없는 절망에 빠졌다. 어머니의 베개를 붙안고 몸부림치며 울었다. 어머니 뒤를 따라 죽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옛말 이르고 살기를 그렇게 바랐던 어머니는 그날을 보지도 못하고 혼자 홀홀히 떠나고 만 것이다.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고생에 시달리다 못해 어머니는 결국 저 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어머니는 형구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했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서너 차례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날이 갈수록 뜸해지다가 언제부턴가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만큼 고생에 시달리고 지쳐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형구 어머니를 부를 가망이 영영 보이지 않아 아예 소식을 끊어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석아, 기운 내. 사내 녀석이 그렇게 슬퍼하고 맥이 빠져서는 안 된다 기운을 내라. 어차피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법이다. 그리고 이 세상 부모는 모두가 자식보다 먼저 죽게끔 되어 있다. 그게 자연의 순리야. 기운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리해라. 그게 제일 걱정이고, 힘드는 일이다.”
주인아저씨가 한 말이었다.
적막하고 암담한 생활이 문을 연 것이다. 더 배우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뿐이었다. 어머니가 남겨놓은 것은 몇 푼 안 되는 사글셋방 보증금과 거의 폐품에 가까운 살림살이가 전부였다. 대학은 아예 포기한다 하더라도 고등학교 공부까지는 마치고 싶었다. 이 서울이라는 엄청난 동네에서 발붙이고 살려면 아무리 낮아도 고등학교 공부까지는 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었다.
며칠을 궁리에 궁리를 했지만 점점 더 암담해질 뿐이었다. 맞바라보고 앉은 벽처럼 앞은 완전히 막혀 있었다.
―나 차라리 죽고 싶다.
어느 순간 형구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엄지손가락만 한 왕벌의 집을 떼내려 막대기를 받아 든 순간 형구는 정말 죽고 싶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암담하고 미칠 것 같았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때 형구의 심정이 어쩌면 지금 자신이 처한 형편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고 동일은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 렸으면…….”
동일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꼭 메아리처럼 번져 울리면서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정말 죽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는 이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혼자뿐이다. 혼자서 살아갈 힘도 없고, 살아간다 해도 무슨 재미가 있는가,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어머니의 고생에 대한 보답 때문이었고, 헌 책의 낙서를 지워가며 공부했던 것도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날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아무것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의 뒤를 따라 죽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ㅡ까불지 마 새끼야.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는 가난뱅이가 서울만 가면 다냐? 니까짓 것들은 서울 가면 보나마나 거지야, 거지. 중학교가 아니라 거지 학교에 다니게 될 거란 말야.
불현듯 떠오른 준열이의 말이었다. 동일은 습관처럼 가슴이 차가워지는 긴장을 느꼈다. 그 말은 수시로 귓가에 쨍한 울림과 함께 들려오곤 했었다. 공부가 싫증이 날 때, 잘사는 애들이 언뜻 부러워질 때, 어머니의 피곤에 찌든 모습을 대할 때…… 그리고 꿈속에서도 그 말은 꼭 생시에서처럼 분명하게 들리곤 했다.
두고 봐라 꼭 성공하고 말 거다 성공해서 보여줄 거다 거지가 아닌 내 모습을 말이다.
동일은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 그 희망이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준열이의 말대로 거지가 되게 된 것이다.
“그건 안 돼…….”
동일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이빨을 악물었다. 그리고 꼭 앙갚음을 해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몸 그 어디선지 모르게 무서운 힘이 탱자 가시처럼 수없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준열이가 먼저 죽었다면 모르지만 아직 뻔히 살아 있는데 먼저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준열이보다 더 많이 배우기는 틀렸다 하더라도 꼭 많이 배웠다고 성공하라는 법은 없다 싶었다. 많이 배우지 못했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었다. 훌륭한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동일은 잠시나마 마음을 약하게 먹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어머니를 따라 죽는 것을 제일 싫어할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다. 만약 저 세상이 있어 죽은 다음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어머니는 뭐라고 할까 아마 알은체도 하지 않고 돌아서버릴 것만 같았다. 혹시 말을 한다 해도 “요런 못난이, 너만이라도 옛말 이르고 살길 바랐더니 살아보지도 않고 이게 무슨 짓이냐. 넌 준열이한테 그리 모질게 당한 게 분하지도 않고 원통하지도 않더란 말이냐. 사내자식이 어째 그 모양이냐.” 이런 호된 꾸중일 것이 거의 분명했다.
동일은 무릎을 꿇고 벽을 바라보고 앉아 차근차근 결심을 다져나갔다. 우선 자신보다 더 불행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일찍, 그러니까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몇 갑절 행복했던 것이다. 어머니 밑에서 중학교까지는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구두닦기며, 신문팔이를 하는 애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억세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명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학교 선생님들의 구두를 도맡아 닦는 아이였다. 그는 열다섯 살이었는데 고아였다. 고아원에서 국민학교까지 나오고는 도망 나와 구두닦기를 시작한 애였다.
“모르면 말 마. 고아원은 감옥이야. 이렇게 내가 직접 돈벌이를 하니까 얼마나 배짱 편˙한지 몰라. 배불리 먹고 멋대로 자고, 아주 띵호와야. 난 이래봬도 아주 부자라구 형도 중학생 교복 입었다고 날 깔보떤 좀 곤란해. 이 학교 학생들 전체 중에서도 내가 아마 제일 부잘걸. 아무리 부잣집 아들이지만 돈은 다 즈이 아빠 거지 지 것이 아니거든. 난 시시하게 공분 더 안 해. 돈 차곡차곡 모아 어른이 되면 사장 노릇 할 거야. 지금도 은행 직원들이 날 괄시하지 못한다구. 앞으로 10년이면 스물다섯, 그때 내가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난 나밖엔 이 세상 사람은 하나도 안 믿어. 우리 교장 선생님은 고맙게 생각하긴 하지만 돈은 절대 안 맡겨. 돈보면 맘 변하는 게 사람이야.”
언젠가 명수가 양지쪽에서 연신 구두를 닦아가며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동일은 그저 감탄하고 있었다. 명수는 자기보다 두 살이나 아래인 데도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말하고 있었다. 꼭 어른처럼 말이다. 가무잡잡한 얼굴 안에서 항시 또렷또렷하던 큰 눈이 그날따라 더욱 빛이나 보였다.
동일은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명수처럼 당장 돈벌이만을 위해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어렵고 고생이 되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다니고 싶었다. 돈벌이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하려면 천상 야간 학교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취직을 하는 일이 문제였다. 취직을 시켜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단 하나, 주인아저씨밖에 없었다. 동일은 망설이던 끝에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허, 생각보다 속이 깊은 놈이로구나 그래야지, 암 사내란 심지가 굳어야 하는 법이야. 돈 벌어가며 공부하겠다고? 그게 바로 고학이라는 건데, 그리 공부해서 성공해야 보람이 있는 게야. 염려 말어, 이 아저씨가 가진 건 없어도 여태껏 인심 하나 잃지 않고 살아왔으니 너 취직 하나 못 시키겠냐.”
주인아저씨는 오히려 기뻐하며 칭찬까지 해주었다.
“너 나한테 꼭 약속할 게 한 가지 있다. 내가 꽂아주는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디며 오래 일해야 한다. 어떠냐?”
아저씨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짐을 받으려 했다.
“네, 아저씨…….”
동일은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러나 마음속의 각오는 몇십 배 크고 강한 것이었다.
아저씨는 생각보다 빨리 일자리를 구해왔는데, 거기가 자동차 세차장이었다. 좀 뜻밖의 일자리긴 했지만 아저씨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말해서 자동차 때 미는 일이야. 그 일 하다 보면 수리 기술도 익히고 운전 기술도 익히게 될 게야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기름 밥 먹기가 원래 고달픈 거다. 젊었을 적 고생 사서도 한다니까 맘 단단히 먹고 해봐. 부모 덕도 좋지만 자수성가하는 게 더 멋진 일이야. 암 근사하고말고.”
아저씨는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를 했다.
세차장 일은 참으로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기름투성이가 되어 차 밑을 닦아내야 하는 고역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었다. 기름이 몸에 묻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름에도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차 밑으로 기어 들어가야 했다. 그때 뜨거운 증기라도 뿜어져 나오게 되면 금방 숨이 막혀버릴 것 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겨울에는 물을 계속 만져야 하는 일이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비가 쏟아진 뒤거나, 눈이 퍼부은 다음에는 차가 줄을 서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주인인 사장은 벙글거렸지만 동일은 반대로 시무룩해졌다.
동일은 공장 뒷방에서 자취를 했다. 학교는 야간 상업학교에 진학했다. 사장은 그런대로 잘해주는 편이었다. 학교 시간에 늦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곤 했다. 공장 뒷방을 쓰게 해준 것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공장에서 학교를 다니게 배려해 준다는 것은 거의 없는 일이었다. 동일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더욱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했다. 너무 일이 고달픈 탓인지 중학교 때와는 달리 공부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상당수의 애들이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야간 학교에서는 공부 시간에 조는 학생들이 많았다. 동일도 자신도 모르게 깜빡깜빡 졸기가 일쑤였다. 어떤 날은 반은 졸다가 공부가 끝나기도 했다.
“얌마 그놈에 공부하곤 무슨 웬수가 졌다고 그렇게 악착같이 매달리냐?”
세차 ‘시다’를 거쳐 지금은 어엿한 보링 기술자 노릇을 하는 경진이가 하는 말이었다.
“맞어, 저 자식은 싸가지 없이 딴 꿈을 꾸고 있는 거야, 형. 지 놈이 자동차 때밀이 하는 푼수를 모르고 아주 뭔가 그럴듯한 걸 해먹어 보겠다는 꿍속을 가진 거라구 얌마 웃기지 말고 일찌감치 냉수 키고 속 차려라. 용써 가며 공부해 봤자 다 인생살이 오십보백보야. 니나 내나 다 그게 그거라구”
운전 기술이 유별나게 좋은 창길이가 한쪽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맞장구를 쳤다. 둘 다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자리도 높아 동일은 씩 웃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공부를 그만 때려치우라고 했다. 기름밥 먹기 시작한 신세에 어차피 기름밥으로 쇼부를 봐야 하니까 애써서 공부 같은 것 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시내버스 몇십 대를 가진 누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고, 시외버스를 굴려 몇 억을 가진 아무개는 국민학교 5학년 중퇴라고 떠들었다. 기름 밥 동네에선 학벌은 말짱 헛것이라는 것이었고, 돈 버는 데 학벌 가지고 버는 것 봤느냐고, 기름 밥 동네에서 돈을 벌자면 우선 달구지 하나만 내 것으로 손에 딱 잡으면 끝난다는 것이었다. 그때를 위해서 지금 자기
들은 아니꼽고 더럽지만 꼰상(사장) 밑에서 죽어지낸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런 말들을 들으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일은 밤이면 멍하니 앉아 자신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상업 공부는 상당히 까다로운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돈 계산을 하기 위한 공부였는데 동일은 왠지 탐탁하지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면 은행이나 회사의 경리 사원이 될 것이었다. 은행 같은 데 취직이 되면 나쁠 건 없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주산 실력이 몇 단, 부기 실력이 몇 급…… 자격 조건이 꽤 까다로웠다. 그런 기본 자격을 갖추려면 학교 공부만으론 어려
웠다. 따로 학원엔 못 다니더라도 혼자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떼낼 방법이 없었다. 천상 학교를 다녀온 다음의 밤 시간뿐이었는데, 머리를 쥐어박고 펜 끝으로 허벅지를 쑤시고 해도 소낙비처럼 퍼붓는 잠을 쫓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뜻대로 안 되는 자기가 한심스럽고 안타까웠지만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하루 종일 차에 매달려 지쳐버린 몸은 돌덩이처럼 잠의 수령 속으로 잠겨들기만 했다.
한 학기를 그런 식으로 넘기고 나니 그동안 헛짓을 한 것 같은 생각뿐이었다. 뭐 똑별나게 배운 것도 없었고, 그래서 실업학교 학생다운 남다른 점도 없었다. 눈 나쁜 사람 밤길 가듯 주판알을 더듬거리며 올리고 내리는 게 고작이었고, 부기는 아직 차변 대변의 구분이 확실하지 못해 어릿거리는 반편이였다.
낮에 하는 일과 밤의 공부가 너무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학과에 별 흥미도 없었다. 동일은 며칠을 궁리하던 끝에 마침내 묘안을 생각해 냈다. 기왕이면 낮일과 연결되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야간 공업고등학교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일은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공업학교 야간은 없었다. 실망이 너무 커서 꼭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에 싸여 한동안 우울했다.
날이 가도 그 기분은 깨끗이 가시지 않았고, 공부는 더 겉돌기만 했다.
해가 두 번 바뀌게 되였을 때 동일은 그 서럽고도 한심한 이름인 ‘시다’ 딱지를 떼게 되었다. 그리고, 서당 개 5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던가 자신도 언제인가 모르는 사이에 운전 기술이 꽤는 손에 익어 있었다. 기름밥을 먹으면서 얻어진 그럴듯한 부수입이었다. 차를 세차장으로 넣고 빼는 일은 눈 감고도 해낼 수가 있었다.
“어라, 어라 저 쌍판 노는 것 좀 보게.”
“니 신세도 빠꼼하다. 잘해봐라”
동일이 차를 다루는 것을 보고 손위의 경진이와 창길이가 내던지는 말이었다. 그들의 어조는 어찌 들으편 대견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한심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 둘 다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세상 어느 것 하나도 불만 아닌 게 없었다.
고생하는 자기들 신세가 불만이고, 자기들을 이렇게 만든 부모가 불만이고, 핑핑 놀고 먹으면서 돈을 긁어모으는 사장이 불만이고, 어지간한 집 한 채 값이 넘는 고급 차 가진 사람들이 불만이고, 어깨뼈가 휘도록 후닥닥 돈이 안 벌리는 것이 불만이고……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는 언제나 독기 서린 욕이 떠날 날이 없었다. 흙탕물 속에 사는 봉어가 제아무리 용을 쓴들 흙탕을 안 마실 재간이 있겠는가. 동일은 그들의 언행을 닮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자신도 모르게 꽤는 물이 들어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거친 말투가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었다.
말버릇만이 아니었다. 비라도 칙칙하게 내리는 저녁나절 같은 때는 그들은 곧잘 동일의 방에다 술판을 벌였다. 그런 때면 동일은 영락없이 주모(酒母) 노릇으로 잡탕찌개를 끓여야 했다. 기름 밥 동네에서 밥그릇 숫자가 하나라도 많은 사람의 술시중을 드는 건 여러 잔소리가 필요 없이 의당 당해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동일이 딱 질색인 것은 억지로 술을 먹이는 일이었다.
“얌마, 빨랑 잔 받어.”
“아, 싫다니까요.”
“싫어도 받어. 명령이야.”
“난 학생이잖아요.”
“카아 ― 이 새끼 사람 웃기네. 드럽게 고상하게 나온다야”
“얌마, 쉰내 작작 뿜어라. 왕년에 학상님 안 지내본 분 여기 계신 줄 아니? 난 소학교 5학년 적부터 술 배웠다야.”
“맞어, 술은 빨리 배울수록 좋구 것도 우리 같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길이 제대로 드는 법이야. 자아 받어.”
“아, 형들 정말 왜 이래요.”
“하, 이 새끼 이거 증말 쪼다네. 니 × 대가리에 털 났니, 안 났니?”
“예에……?”
“이 시키 하는 꼬락서니가 보나마나 털 안 났어.”
“맞어, 고잘 거야. 얌마 너, 빨랑 바지 벗어봐!”
느닷없이 소리를 빽 질렀다. 갑자기 엉뚱하게 화제가 바뀐데다 소리까지 지르는 바람에 동일은 물벼락 맞은 장닭꼴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뭘요, 왜들 이래요, 형들…….”
“저런 펴엉신, 옷 안 벗길려거든 빨랑 술잔 받으란 말야.”
막다른 골목이었디.
이렇게 해서 입에 대게 된 그 쓰고 뜨겁고 지랄 같고 환장할 소주라는 물건이 심심찮게 자주 대하다 보니 묘하게도 그 나름의 맛이 생기는 것이었다.
“오줌 누고 씻지도 않은 니 놈 손으로 꿇인 찌개에다 쐬주 한잔 카아 털어 넣고 나면 이 알딸딸한 기분. 이게 바로 우리 같은 하바리 인생의 낙 아니겠냐. 얌마 안 그래?”
그들의 되풀이되는 푸념의 그 알딸딸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알 듯도 싶고 모를 듯도 싶었다.
졸업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 시키, 증말 독종이다. 졸업 시험까지 끝내고 난 기분이 어떠냐?”
창길이가 있는 대로 턱을 빼내며 물었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얌마, 그게 의리라는 것 아니냐. 니 놈 5년 동안 야간 다니는 것 봐주느라고 이 형님들 숨넘어갈 삔했다. 이제 학바리 신세 끝났으니 오늘 밤 이 형님들이 한잔 화끈하게 꺾도록 해주지.”
경진이가 한쪽 다리를 까불어대며 말했다. 동일은 가슴 뭉클한 것을 느꼈다 꼭 고속도로를 달리는 덤프트럭 바퀴처럼 거칠고 사나운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따뜻하고 보드라운 일면도 있었던 것이다.
“형들 맘은 고맙지만 난 아직 졸업식도 하지 않은 학생인데요.”
“하아 이런 쪼오다 봤나 까짓 졸업식이 무슨 얼어 죽을 거냐. 너 먹고 싶어 죽겠는 까이 놓고 결혼식 안 했다고 애만 태울 거냐?”
“두말하면 잔소리지. 동일이 임마는 그러고도 남을 쪼다지:”
“잔말 말고 오늘 밤에 화끈하게 한잔 꺾는 거야.”
그래서 동일은 그날 밤 그야말로 이 세상에 귀 떨어지고 처음으로 매미집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들은 여자가 있는 술집을 매미집이라 불렀고, 매미야 눈물나게 울어봐라 하면 여자들은 청승맞고 구성지게 슬폰 노래를 불렀고, 그건 너무했으니 다음 매미는 신나게 울어 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음 여자는 유쾌하고 신바람 나는 가락을 뽑아대는 것이었다.
“맥주는 물이야 물. 코쟁이들은 물로 마신다구”
“얌마, 어른 된다는 게 별건 줄 아냐? 술 마시고 ×하는 게 어른인 거야. 자아 마셔, 마시라구”
그들은 숨 돌릴 겨를이 없이 번갈아 가며 잔을 동일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형들, 나 정말…….”
“잔소리 말어. 넌 인제 어른이고, 쐬주보다 몇 배 비싼 맥주를, 그것도 구멍가게가 아닌 매미집에서 사는 건 순전히 이 형님들이 가진 의리 때문이야, 후딱후딱 잔 건네.”
“글쎄 나발통 많이 까면 공산당이야. 어른이 뭐냐. 술 마시고 ×하는 거다 이거야.”
“맞었어. 야 참 동일이 너 ×해 봤니?”
“……”
동일은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고 있었다. 술기운과는 상관없이 전진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아, 저게 바로 아다라시 숫총각이로구나”
“야 이년들아, 똑바로 고쳐 앉아. 이 숫총각님한테 큰절 올려라. 니년들처럼 드러운 것들이 감히 숫총각님하고 맞술상을 받다니.”
“영광이와요, 이 애자.”
경진이 옆에 앉은 여자가 쉰 냄새가 물씬하는 눈웃음을 반죽하며 말했다.
“가슴이 푸드득 떨리네요, 이 숙자는:”
창길이 옆에 앉은 여자는 곧 덮치기라도 할 듯이 두 팔을 쫙 벌리며 말했다. 동일은 자기도 모르게 얼른 옆으로 피해 앉았다. 그러자 모두가 못 견디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쭈았어. 오늘 밤 딱지를 떼주자”
경진이가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말했고,
“야, 느네 집에 아다라시가 웂잖아 느덜 같은 시궁창은 우리한테나 맞지 아예 자격 상실이야”
창길이가 옆에 앉은 여자의 머리를 가볍게 밀치며 말했다.
“시궁창에서 연꽃 찾으시누만. 잘해보셔. 기름 밥 먹는 주제에 총각은 뭐 별건가 찬밥 더운밥 가리게.”
여자가 곧 가래침이라도 듣우어 뱉어버릴 것처럼 말했고,
“가죽피리 한번 제때 잘 놀렸어. 화류계식으로 해치우는 거야. 아무 년이나 골라 와. 다 지 재수다.”
경진이가 느물느물 웃으며 말했다.
동일은 술상이 출렁거리고 앞에 앉은 사람들 얼굴이 제멋대로 길어지고 넓어지는 것을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너무 취해 있었다.
“형들 이러지 말아요. 난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른다구요. 정말 살려줘요. 연습해 가지고 다음에 할게요:”
동일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방으로 떼밀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고,
“연습을 해? 누구하고? 바로 오늘부터 연습하는 거야.”
“누군 첨부터 할 줄 알았는 줄 아니? 무조건 타면 되게 돼있어. 그게 다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거라구.”
둘은 동일을 방으로 떼밀어 넣으며 혀 짧은 소리로 말하고 있었고, 그들 뒤에서 두 여자는 키득키득 히득히득 웃고 있었다.
동일은 천장과 벽이 곧 허물어질 것처럼 흔들리는 속에서 슈미즈 바람의 여자를 발견했다. 얇은 분홍색 슈미즈 속에서 드러난 젖가슴과 윤곽이 뚜렷한 삼각팬티. 그 여자는 조용하게 웃고 서 있었는데, 천장이나 벽과는 달리 그 여자는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동일은 손등으로 눈을 쓱 문질렀다. 이제 천장도 벽도 흔들리고 있지 않았다.
여자는 분명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으로 바싹 앞에 다가서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밤새도록 그렇게 서 있을 건가요?”
여자가 나직하게 말했다.
“……”
“옷 벗으세요:”
여자는 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젖가슴이 흔들렸다. 순간 가슴이 꿈틀하고 머리가 찡하니 전기가 통했다.
어떻게 해서 옷이 벗겨졌는지 모른다. 자기도 알몸이었고 여자도 알몸이었다. 동일은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수음을 할 때와는 너무나 다른 강렬한 욕정에 불붙고 있었다. 여자가 자리에 누웠고, 그 여자 위에 막 몸을 대는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순자의 모습이, 약수물보다 더 차가운 몸으로 바들바들 떨던 알몸의 깡마른 순자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준열이가 지켜보는 약수샘의 굴속에서 해야했던 그 짓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아니, 왜 그래요?”
여자가 올려다보며 묻고 있었다.
“……”
조금 전까지 들끓어 오르던 감정이 싸늘히 식고 없었다.
순자는 지금 열여섯이나 일곱,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까. 순자는 지금쯤 그때 그 짓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을까
“왜, 내가 싫어?”
“……”
준열이에 대한 증오심이 칼날로 파랗게 일어났다.
“어디 아픈가?”
“……”
준열이 그놈은 지금쯤 어디에 살고 있을까
“파란 나이에 병인 모양이군.”
여자는 혼잣말을 하며 내던져진 팬티를 주워 발에 꿰었다.
동일의 눈길은 차갑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 어지럽던 술기운은 머리에 통증을 남기고 있을 뿐 간 곳이 없었다.[
다음 날 경진이와 창길이 두 사람한테 완전한 병신으로 놀림을 당했지만 동일은 완전한 병신이 된 채로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순간의 기분은 자신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모양의 증오가 창끝처럼 예리하게 가슴에 새겨진 것이었다.
졸업을 하고 이내 세차장을 그만두었다.
“뮐 할 작정이냐. 자리는 구했고?”
사장이 대뜸 물었다. 목소리와는 달리 표정은 꽤나 언짢은 빛을 띠고 있었다. 동일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을 하기로 작정했다.
“운전 면허증을 따려구요.”
“왜, 달구지 굴리게?”
“예에…….”
“그것 참 여기 일은 싫으냐?”
“아뇨. 돈을 좀 빨리 벌고 싶어서요.”
“내가 역시 사람은 제대로 봤구나. 니가 그렇게 오래는 내 옆에 붙어 있지 않을 거라고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넌 다른 애들보단 한결 다른 데가 있었지. 낮에 그 힘든 일 하고 밤에 학교를 다닌다는 게 좀 어려운 일이냐. 철난 어른도 어려운 일이다.”
“……다 사장님이 잘 봐주셔서…….”
“아니다, 몽땅 니 혼자서 해낸 장한 일이지. 니가 좋은 길 찾아가겠다는데 낸들 어쩌겠냐.”
운전 면허증은 쉽게 따낼 수 있었다. 그 바닥에서 보낸 세월이 헛되지 않아 곧 핸들을 잡아 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핸들을 돌리는 돈벌이, 그건 참으로 질기고 팍팍하고 고달픈 인생살이였다. 언제 두부 뭉개지듯 차 속에서 숨을 끊게 될지 모르는 위험과 계속 함께 사는 생활이었다. 자기가 내는 사고보다도 남이 내는 사고를 덮어쓰는 위험이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남보다 천천히 가자 졸지 말자 돈을 벌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아껴 쓰자 이 세 가지를 가슴속에다 대리석에 새긴 비문(碑文)처럼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차 속에서 준열이를 처음 만난 것은 운전을 시작하고 2년째 되는 가을이었다. 가로수 잎이 뒹구는 어느 길목에선가 무신경하게 차를 세웠고, 뒷문으로 두 남녀가 탔다.
“내 말대로 하라니까”
남자가 말했고,
“싫대니까 책임 못 질 일을 왜 해.”
여자가 앙칼지게 맞받았다.
그들은 차를 타기 전부터 다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꼭 내 책임만은 아니잖아”
“뭐라구? 남자가 치사하게 인제 와서 발뺌하려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싫대니까.”
“그럼 어떡하겠다는 거야?”
남자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어머머, 창피하게 왜 소리치는 거지?”
“소리 안 치게 됐어? 무슨 여자가 고집통이 그따위야!”
“아니, 무슨 말이 그리 거칠어? 그게 바로 준열 씨 본색인가 부지?”
준열 씨― 동일은 자신도 모르게 급브레이크를 잡으며 재빨리 백미러로 눈길을 돌렸다.
“이봐 운전 똑바로 해!”
남자의 성난 목소리가 여자의 황급한 어머머 소리를 뭉개면서 동일의 뒷덜미를 때렸다.
목소리보다 더 성난 표정으로 구겨진 남자의 얼굴이 백미러 속에 담겨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준열이의 얼굴이었다. 동일은 순식간에 전신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핸들을 잡은 두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이봐, 운전 똑바로 하라니까:”
뒷좌석의 준열이는 이제 겁먹은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동일은 어금니를 악무는 만큼의 힘으로 핸들을 움켜쥐며 생각했다. 그대로 모른 체를 하고 넘겨버릴 것인가 아는 체를 할 것인가 그러면서 동일은 이미 차선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보도 가까이 차를 세웠다.
“어디 고장이오?”
준열이가 등 뒤에서 물었고, 동일은 몸을 뒤로 돌렸다.
“나 누군지 알겠어?”
뜨겁게 뛰는 가슴을 의식하며 동일이 한 말이었다
“아니…… 너, 너 동일이…….”
준열이는 반가운 것도 당황한 것도 아닌 얼굴로 말을 더듬고 있었고, 동일은 그의 옷깃에 달린 대학교 배지를 찾아내고 있었다.
“너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택시 운전사, 하여튼 출세했구나”
준열이의 거침없는 말이었다. 그는 이미 그 옛날의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
동일은 굳게 입을 다문 채 준열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는 사람인가 부지? 그럼 난 먼저 내리겠어.”
여자가 말했고,
“동일아, 우리 함께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하지.”
준열이가 말했고,
“운전사 주제에 커피 같은 거 마실 줄도 모르고, 그럴 시간도 없어.”
동일이 잘라 말했다.
“나 갈 테야.”
여자가 택시 문을 발칵 열고 나갔고,
“이봐 명희, 아니 저게……, 야 그럼 또 만나자.”
준열이는 우왕좌왕하다가 여자를 쫓아 허둥지둥 택시를 내렸다.
“……”
몇 년 만인가 그동안 10년이 넘어 흘렀다. 너는 대학생, 나는 택시 운전사……, 여자의 뒤를 다급한 걸음으로 따라가고 있는 준열이의 뒷모습을 창을 통해 응시하고 있는 동일의 가슴에는 그동안 수없이 되새겼던 기억들이 다시 생생한 물기를 담고 되살아나고 있었다.
ㅡ너 죽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택시 운전사, 하여튼 출세했구나.
준열이의 이 비웃는 말은 동일의 가슴에 또 한줄기 증오를 잉태시켰다. 이 말은 되씹을수록 열이 나고 떨리게 했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 분명 굶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고, 너 같은 꼴에 택시 운전사나마 얼마나 출세냐는 것이었다.
동일은 더욱 마음을 다잡아먹고 돈을 아꼈다. 그와의 차이라는 것은 곧 돈이 있고 없음의 차이였던 것이다. 나머지 모든 일들은 그 차이가 빚어낸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9개월 후 군대를 나가기 전까지 준열이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그를 다시 태울 수 있기를 바랐는지, 어느 기간까지는 다시 만나지 말기를 바랐는지 그건 자신도 확실히 모를 감정이었다.
동일은 그동안 모은 돈을 군대 복무 기간 동안 은행에 정기예금 시켜 놓고 입대했다. 군대 생활은 남들이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고달프거나 지겨운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사회생활의 연장이었다. 누구나 다 거치는 기본 교육을 마치고는 금방 운전 교육을 시키는 조수 노릇을 거쳐 조교가 되었고, 계급이 올라가면서 운전 솜씨가 소문나 사단 영관급의 차를 몰게 되었다. 그러니 군대 생활은 졸병들이면 하나같이 소망하는 ‘특과’라는 자리에서 보낸 셈이었다.
아무 탈 없이 군대를 나온 다음 날로 다시 옛날 일자리로 돌아갔다. 단 하루라도 놀고먹고 싶지 않았다. 1차 목표는 판잣집이라도 좋으니까 내 집을 장만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2차로 장가를 드는 일이었다. 외로워서 도저히 혼자 살 수가 없었고, 장가를 들기 전에 꼭 내 집을 갖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동일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아끼는 데 더 자신이 있었다. 세 끼 밥 먹고 살을 가릴 수 있는 옷을 사 입는 일 외에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옷도 될 수 있는 대로 싸고 실용적인 것만을 사 입었다. 하루 종일 차 속에 앉아 있어야 하는 처지에 값비싼 옷을 입을 필요가 없었다. 친구도 거의 사귀지 않았다. 친구래야 같은 운전사가 고작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들은 돈 씀씀이가 헤펐다. 일이 없는 날이면 그들은 떼지어 모여 술판을 겸한 화투판을 벌이거나 영화관이나 당구장에서 돈을 죽이기가 일쑤였다. 동일은 술을 멀리했고 화투는 아예 손에 대지를 않았다. 술이나 마시고 놀음이나 하는 친구 다 부질없는 것이라 싶었다. 그건 친구가 아니었다. 서로를 망가뜨리고 병들게 하는 원수들이었다. 쉬는 날이면 허리가 아프도록 잠을 잤다.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다음 날 일을 위해서 잠만큼 신효한 약이 없었다.
아끼는 돈은 스스로가 놀랄 만큼 빨리 불어났다. 스물아홉 되던 해 봄에 집을 장만했다. 제대를 하고 만 4년 만에 이룬 꿈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판잣집이 아니었고 한 겹이긴 했지만 빨간 벽돌집이었다. 방 셋에 조그만 마루까지 딸린 그럴 듯한 집이었다. 자신은 제일 작은 방을 쓰고 나머지 두 방은 두 가구에 전세를 놓았다 그 전세금까지 거의 집값에 충당했기 때문에 수중에는 한 달치 생활비 정도가 남았을 뿐이다. 그 기쁨은 아무것에도 비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비롯해 지금껏 슬픔과 고통이 있었을 뿐 기쁨이라곤 그렇게 크게 없었기 때문에 그 어떤 기쁨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새집에서 첫 밤을 맞으며 어머니의 기억이 어느 때 없이 아프게 가슴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때는 어쩌는 도리가 없었지만 산소를 만들지 못하고 화장을 해버렸던 일이 새삼스럽게 죄로 사무쳤다.
동일은 시간을 내서 옛날 세차장의 사장을 찾아갔다.
“자알 했군, 자알 했어. 자넨 어렸을 적부터 돌멩이보다 야무졌으니까”
집을 장만했다는 말을 듣고 사장은 꼭 자기 자식 일이나 처럼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이제…… 나이도 나이고 해서…….”
중매를 부탁한다는 말을 동일이 얼굴 붉혀가며 어렵게 하자,
“아암 그래야지. 장가들어야 하구말구 내 당장 오늘부터 다른 일 전폐하구 참한 색시 구하러 나서지. 그런 일로 날 찾아주다니 고맙구먼, 고마워. 자네 같은 실한 아들이 있다면 뮐 더 바라겠나.”
사장은 티 없이 고마워하고 흡족해 했다
동일은 앞으로 1년을 예정 잡고 안방과 마루를 쓰고 있는 사람들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일에 매달렸다. 장가를 들면 집주인답게 당연히 안방을 차지해야 할 것이었다.
사장이 소개한 두 번째 여자와 맞선을 보고 나서 마음을 정했다. 스피츠 강아지처럼 눈치 빠르고 귀여운 여자였다.
계획을 2개월 앞당겨 장가를 들었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대신 자기가 쓰던 방을 세로 내놓기 때문에 돈 부담이 줄어든데다 그동안 전세금이 전반적으로 올라 있어 예정을 앞당기는 데 별로 무리가 없었다.
신부를 맞은 첫날밤, 동일은 다시 처음 여자를 대했을 때와 똑같이 약수샘 속의 굴에 갇힌 순자 모습이 떠올라 남자 구실을 못하고 말았다. 그건 참으로 예기치 않은 악몽이었다. 여자를 탐하고 있는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그 기억은 마음을 배반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살아 있는 힘처럼 제멋대로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처음 여자를 대하고 나서 여태껏 몇 년에 걸쳐 단 한 번도 여자를 돈 내고라도 산 일이 없었던 것이다. 생리는 수음으로 처리되었고, 그래서 그 기억은 그동안 잊혀져 있었던 것이다.
멋모르고 잠든 신부를 바라보며 그동안 몇 번이고 여자를 사서 그 기억을 물리칠 수 있도록 훈련해 두지 못한 것을 동일은 안타깝게 후회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자기 마음먹은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은 황당한 체험 앞에서 동일은 사뭇 당황하고 있었다.
다음 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한 탓인지 지난밤보다 심하게 아예 발기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 기억을 떨치려 하면 할수록 더 분명해지고 선명해지며 몸이 차갑게 굳어져왔다. 미치고 환장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때 쓰는 거라고 동일은 생각했다
“어디 아프세요?”
신부가 나지막하게 물으며 동일의 이마를 훔쳤다 그때서야 자신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혼자 고생 많이 했다더니 건강이 나쁜가 봐요.”
신부가 염려스러운 듯 말하며 머리맡에 놓인 수건을 집어들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난 지금 미치고 환장하겠어. 건강은 아무 이상이 없어. 어떻게든 살려고, 악착같이 살아서 당한 만큼 갚아주려고 세 끼 밥만은 한 번도 거른 일이 없어. 배탈 한번 안 나고, 몸살 한번 앓지 않았으니 그만하면 건강이야 최고지 뭐야. 난 정말 미치고 환장하겠어.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몰라 그러니 네가 어찌 알겠니, 순자나 알까
“빨리 서울 가서 보약을 잡수셔야겠어요. 편히 주무세요.”
신부의 근심스러운 얼굴을 더 볼 수가 없어 동일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순자는 그동안 결혼을 했을까. 여자니까 진작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했다면 순자는 어땠을까 순자도 나처럼 이런 일을 당했을까 당했으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남자와 여자는 다르니까…… 그렇지만…… 남편을 나로 착각하며 나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건 아닐까. 어쩌면 결혼을 잘못한 것이 아닐까. 순자하고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순자도 마찬가지고…… 아니다 둘 다 식은땀만 흘려대면 그건 또 무슨 꼴인가.
동일은 몸을 뒤척이며 별의별 생각에 다 시달렸다. 그러면서 준열이에 대한 증오심이 전보다 더 퍼렇게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신혼여행 사흘째 되는 날 동일은 모든 것을 말하기로 작정했다. 또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밤의 고통이 낮에는 우울로 바뀌어 여행이 고역스럽기만 할 뿐 전혀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아내로 살아가려면 알아둘 필요가 있는 일이라서 동일은 차분하게 지난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려 이야기가 끝났다. 신부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입술을 잘근거리기도 하며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내 맘을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이해하기 어려울 거요. 정말이지 미치고 환장할 것 같소.”
“글쎄요·…¨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저는 건강이 나쁜 줄 알았어요. 다행이에요. 그리고 다는 이해 못해도 반 이상은 이해할 수 있어요. 우선 준열이 그 사람을 그만 미워하세요. 다 지난 일인데다 지금은 떳떳하게 살고 있잖아요. 이 나이에 집 있겠다, 결혼했겠다. 돈벌이하겠다, 이제 그 사람보다 못할 것 아무것도 없잖아요. 다 잊어버리세요.”
동일은 콧등이 찡하도록 장가 잘 들었다는 생각을 했고, 불현듯 성적 충동을 느꼈고, 지금이라면 문제없이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의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날 밤 동일은 비로소 신부의 남편이 되었고 동시에 신부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
“…… 이제 다 이기신 거예요.”
뜨거운 땀에 흠뻑 젖은 동일의 등을 감아 잡은 신부가 눅진하게 속삭인 말이었다.
가장(家長)이 된 동일은 더욱 성실한 일벌이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전 운전을 우선으로 했고, ‘내 차 갖기’의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 핸들 돌리는 피곤을 잊고는 했다.
화물 트럭과 정면충돌할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기도 했고, 눈 얼어붙은 비탈길에서 지옥을 만나는 위험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되는 시큰한 기분을 맛보았고, 사는 고달픔의 진득진득한 보람을 매만질 수 있었다. 아내는 운전사의 아내답게 검소하고 알뜰했다. 그녀는 시루가 아니라 항아리였다. 세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그만큼의 재산을 커다란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있었다. 그 재산이라는 것이 엄동설한에 나무 크듯 하는 것이었지만, 벌이가 크지 못한데다 매일 들쭉날쭉인 돈을 그만큼 모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두 번째도 아들을 낳았고, 동일은 형용할 수 없는 어떤 승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누구나 붙들고 자신의 삶을 자랑하고 싶었고, 사는 것이 뭐가 어려우냐고, 끈질기게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어느 날 성묘를 가는 일가족을 태우고 장거리를 뛰게 되었다. 장거리를 뛰면 수입도 배가 넘는데다 복잡한 시내에서 손님을 잡으려고 시달리는 일을 면해서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뿐만 아니라 목적지가 바로 고향 가까이라는 점이 동일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동안 준열이를 다시 태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아니고 각오도 아닌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학을 나오고, 얼마나 잘 되어 있을까. 어떤 큰 회사 사원? 그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다. 혹시 검사 같은 으스스한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럴 리가 없다. 그런 자리가 나이롱뽕 해서 따는 자리가 아닌 바에야 제 놈이 무슨 재주로 감히……. 그동안 언뜻언뜻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어쩌면 서울에 살지 않는지도 모른다. 서울이 아무리 넓다지만 그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수도 있었다. 거의 매일이다 싶게 시내를 샅샅이 헤집고 다니다 보면 같은 사람을 하루에 두 번 태우는 경우도 있었고, 출근 길목의 합승 손님들은 눈인사를 할 정도로 구면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서울에 산다고 해도 버스가 단골이라면 10년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만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준열이가 그런 신세라면 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자가용을 굴리는 팔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뭐가, 왜 심각한지 모른다. 다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이 가슴을 답답하게 채워오는 것이다.
동일은 손님들이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곳의 특산물을 사는 동안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마실 것을 찾아 가능하면 나이가 든 주인이 있는 가게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 고향까지는 사오십 리. 준열이네는 특히 잘살았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은 거의가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찌, 그 집 잘 아시오?”
가게 주인 영감이 콜라잔을 내밀며 반문했다.
“그 집 아들하고 옛날 친구였어요.”
동일은 벌써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가슴을 의식하며 대답했다
“말 말어. 진즉 요절났으니까”
영감은 퉁명스럽게 말했고,
“요절요? 왜요?”
동일은 순간적으로 가슴에 백 촉 전등이 한꺼번에 수십 개 켜지는 기분으로 되물었다.
“왜긴 왜야 아들 농사 설지어서 그렇지.”
“그 아들이 어쨌게요?”
동일은 흥분하고 있었디.
“그 많은 재산을 다 엎어먹고 집 한 채만 덜렁 남았지 뭐야. 그러게 자식한테 재산 남길 것 없다는 옛말이 틀린 데 없지. 10년 가는 권세 없고 3대 가는 부자 없다더니만, 이건 당대에 엎어먹고 말았으니 원…….”
영감은 혀가 끊어지지 않나 싶게 혀를 차대는 것이었다.
“그래 그 아들은 어디 사나요?”
“애비까지 잡아먹고 나서 서울서 내려와 처박혀 있는 모양이더만.”
“뭘 하고 사나요?”
“하긴 지 놈이 뭘 해. 농사일을 배웠으니 농사를 짓겠나, 배움을 제대로 했으니 취직을 하겠나, 그런 못된 늠 뭘 해먹고 사는지 내 알 바 아니지:”
동일은 그 길로 차를 몰아 가보고 싶은 충동에 싸였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있었다 해도 아직은 갈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차를 갖기까지…… 동일은 출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느라고 애쓰며 서울로 차를 몰았다.
“아저씨, 좀 천천히 가요:”
뒷좌석에서 넘어온 이 말을 듣고 아차 싶어 속도계를 보니 바늘이 110킬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예, 죄송합니다.”
동일은 심호흡을 하며 핸들을 고쳐 잡았다. 전에 없었던 일이다. 어느 때나 좀 빨리 달릴 수 없느냐는 짜증스런 말을 들으며 운전의 세월을 보냈던 자신이다.
골인 지점을 바로 눈앞에 둔 마라토너처럼, 정상 정복을 바로 한 발 앞에 둔 알피니스트처럼 동일은 마음 걷잡을 수 없는 설렘의 흥분에 싸여 있었다. 준열이의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진 소식을 들은데다가 머잖아 자력(自力)으로 차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 나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보, 두 번만 더 부으면 적금을 타게 돼요. 그럼…….”
아내는 통장을 내보이며 “…… 우리도 차를 갖게 돼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내의 그 감격을 더 감격스럽게 해주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아내의 그 끈질긴 노력에 하늘이 감복해 내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적금을 타기도 전에 ‘모범 운전사’에게 배당되는 ‘개인택시’의 행운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었다.
“여보, 정말 하느님이 계신가 봐요. 어쩌면…….”
아내는 눈물마저 글썽이며 감격에 감격을 하고 고맙고 고마운 마음으로 개인택시 배당권을 받았고, 동일 자신도 그게 무사고 운전의 당연한 결과라는 자만스런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누구에겐지 모르게 고맙고 감사한 생각뿐이었다.
개나리꽃과 같은 빛깔의 모범 운전사의 유니폼과, 같은 노랑색깔 바탕에 빨강과 초록의 줄이 쳐진 개인 택시. 그건 운전사 입장에서 얼마나 떳떳한 경력이며, 승객의 입장에선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대상이던가. 드디어 자신은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노란색 택시를 운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운전사로서의 기쁨 위에 또 한 가지의 기쁨 그건 자력으로 장만한 차를 몰고 고향에 가는 것보다 그런 모습으로 가는 것이 한결 더 떳떳하고 돋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모범 운전사의 유니폼과 개인 택시――그 차의 소유주는 바로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는 건 법이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음 노는 날 고향엘 가기로 하지.”
동일은 핸들을 힘주어 고쳐 잡으며 말했다.
“애들은요…….”
“물론 데려가야지!”
동일의 목소리는 힘에 넘쳤다
“학교는…….”
“일요일이야. 미리 봐뒀어.”
“……”
동일은 창 밖 저 앞쪽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옆 볼에 꽂혀오는 물기 젖어 뜨거운 아내의 눈길을 역력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 녀석의 집. 그 넓은 마당에 차를 들이밀어 세울 것이다. 그리고 마당이 파이도록 몇 바퀴 뺑뺑이를 돌 것이다. 그리고 녀석에게 코가 비틀어지게 술을 퍼 먹일 것이다. 그리고 옛날의 잘못을 빌게 할 것이다. 그리고 반항하면…… 그리고 주먹으로…… 그리고…… 그리고…….
“여보, 위험해요!”
아내가 소리쳤다. 동일은 소스라치며 핸들을 꺾었다. 앞에서 달려오던 차가 출렁하며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정신 차리세요. 무슨 딴생각 하세요.”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고,
“거, 걱정 말어……”
가슴이 꿈틀하며 비위가 상하는 걸 느끼며 동일이 간신히 말했다.
이제 제1단계 목표인 ‘내 차 갖기’는 이루어졌다. 제2단계 목표는 무엇인가 굳이 세우자면 차를 여러 대 가진 부자 차주가 되는 것이다.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사고 없이 굴리기만 하면 지금까지 겪었던 고생의 반의반도 안 해서 또 한 대를 사들일 돈이 모아질 것이었다. 두 대를 굴리면 세 대가 되기는 더 쉬워진다. 세 대를 굴리면 네 대는 더더욱 쉽다. 그래서 한 사람이 쉰 대, 예순 대를 굴리는 것이다.
옛날 세차장의 사장이 말했었다.
“세상살이는 고비를 넘기기 놀음이야. 누구한테나 고비가 있는 법이야. 한 고비, 두 고비, 세 고비, 그걸 잘 참고 견디면 그 담부턴 저절로 부자가 되고 저절로 사장이 되는 거야. 그 고비를 못 참고 술 마시고, 노름하고, 계집질하고 돈 헤프게 쓰는 놈들은 평생 도로 아미타불이야. 암 없는 놈일수록 첫 고비를 넘길 때까지 독하고 맵고 짜게 살아야 해. 느덜 첫 고비는 차 한 대씩 장만하는 데까지야”
그 말을 잊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제일 자신 있는 일이라면 돈 안 쓰는 일이라고 할 만큼 돈을 아끼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사람은 배운 것은 없어도 많은 옳은 말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일요일 아침, 동일은 차를 깨끗하게 닦고, 미터기 위에 ‘쉬는 차’ 표시를 씌웠다. 두 아들은 차를 뺑뺑이 돌며 강아지들처럼 즐거워 뛰었다. 아내는 이것저것 먹을 것을 장만했다.
아내가 옆자리에 앉고, 두 아들은 뒷자리에 앉았다.
“아빠, 출발!”
큰아들이 문을 쾅 닫으며 말했고,
“그래, 가자!”
동일은 대답하며 액셸러레이터를 밟았다.
열세 살 되던 해 늦겨울에 떠나서 서른여덟이 되었으니 25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이었다. 거기에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마저 재로 뿌려버렸으니 남은 건 굴욕스런 옛 기억과 준열이뿐이었다. 두 애들은 아빠 고향엘 간다고 턱없이 즐거워하는 것이지만 막상 아빠 고향답게 보여줄 만한 것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세 시간 남짓 달려 소로(小路)로 접어들었다. 동일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어금니를 꾹 맞물었다. 20여 분 달리면 고향 마을에 당도할 것이었다. 또다시 옛날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제각기 다른 냄새까지 묻혀내며 떠오르고 있었다.
차를 몰아가며 동일은 조금씩 당황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집들은 모두 울긋불긋 단장한 개량 주택들이었고, 길도 아스팔트로 덮여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를 알 수가 없었다. 두 차례나 차를 세우고 방향을 확인해야 했다.
황소산을 마주 대하고서야 동일은, 아 맞게 찾아왔구나! 생각했다. 꼭 소가 서 있는 형상이던 그 산은 옛모습 그대로 우람하게 솟아 있었다. 그러나 동일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도 높아 보이던 황소산이 별로 높게 느껴지지가 않아서였다. 그동안 산이 늙어 주저앉은 게 아니라 어릴 적 눈과 마흔이 다 된 자신의 눈 탓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네는 상상을 훨씬 앞질러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옛모습 그대로인 게 없었다. 동네를 다 불태워 완전히 새로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초가집들은 흔적도 없었고, 울퉁불퉁하던 자갈길은 시멘트로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동일은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러면서 옛날의 이발소 자리를, 정미소 자리를 더듬고 있었다.
“.……”
동일은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한곳을 웅시하고 있었다.
동네의 모든 것이 변해버린 속에서 그 집만은 옛모습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하나뿐인 기와집이었기 때문에 개량의 손길을 타지 않았던 모양인데, 그건 황소산처럼, 아니 그보다도 몇 갑절 더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그건 나이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변모가 아니었다. 집안이 망했다고 집까지 졸아들 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 크던 집이…….
“다른 집들이 다 좋아졌으니 저 집이 보통일 수밖에요.”
아내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 버렸다. 그렇다. 그 집은 어쩔 수 없이 최고에서 보통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일은 천천히 그 집 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준열이 ― 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동일은 차를 세웠고, 그 집을 바라보았다. 놋쇠가 달려 있던 대문은 간 곳이 없고 요즘 집과 같은 흔한 대문이었다.
동일은 차를 내렸고,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대문을 향해 걸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가슴에 쿵쿵 울려 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대문 앞에 섰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침착하게 그러나 큰소리가 나도록 대문을 두들겼다.
“누구슈우”
늙은 여자의 목소리 였다. 준열이의 어머니인가 싶었다.
“잠깐 실례합니다.”
동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대문이 열리고, 일삼아 구겨버린 종이같이 주름살을 뒤집어쓴 늙은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실례합니다. 박준열 씨 있습니까?”
물으며 동일은 노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전혀 모를 얼굴이었다.
“뉘기요? 박 머시기요?”
노파는 시골 사람다운 경계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되물었다.
“이 집 주인 말입니다”
동일은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 집 주인은 우리 아들인디, 성이 박가가 아니여.”
“네에?”
노파는 뭐라고 중얼중얼하며 돌아서고 있었다.
“아니 저어, 할머니, 할머니네가 언제 여기로 이살 오셨나요?”
아아 결국 집마저 팔아먹었구나, 그럼 어디로 떠난 것일까. 그는 이상한 허탈의 물살을 뒤집어쓰며 같은 순간에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건 왜 물어?”
노파는 눈을 희게 흘기며 물었다
“친구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반년 넘었어.”
“전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이사 갔나요?”
노파는 입을 뿌루퉁하게 내밀고는 고개만 저었다.
“모르시나요?”
노파는 역시 고개를 젓고만 있었다.
“가르쳐주기 싫으세요?”
노파는 다시 눈을 흘기더니,
“까짓 게 무슨 벼슬이라고 알면서 안 가르쳐줘. 찾을 거 없어. 아주 멀리멀리 떠났으니.”
“멀리 어디요. 서울로 갔나요?”
“서울서 누가 법 먹여주나? 이 늙은 게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서울로는 안 갔어.”
“……왜 이 집은 팔았나요?”
“굶고 사는 장사 봤어?”
“……”
동일은 더 물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더 묻고 싶지도 않았다. 동일은 아까보다 더 심한 허탈의 물살에 휘말려야 했다. 최소한 그는 이 집에 살아주었어야 했다. 항상 주눅 들고 기가 꺾여 옆걸음질로 드나들어야 했던 이 집 마당에서 그를 만났어야 했다
동일은 돌아섰다. 그리고 멍하니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이에 길게 늘어서 있는 세월. 그 세월은 이제 아무 표정이 없었다. 동일은 문득 한곳에 시선을 모았다. 덧없이 넓고 푸른 하늘 그 한쪽 구석에서 한 마리 새가 어디론지 날아가고 있었다. 저 적막한 하늘을 날아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동일은 언뜻 그 새가 고향을 떠날 때의 자신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준열이도 뭐가 다를 게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는 점점 작아져 한 개 점으로 변하고 있었고, 마침내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준열이가 자신이 찾아올 것을 예견이나 한 듯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처럼 저 넓디나 넓은 하늘에서 방금 시야를 벗어난 그 새를 찾기는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준열이를 찾아내기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동일은 이제 준열이를 잊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의 살길을 찾아 날아야 하고, 자신은 자신의 살길을 찾아 앞으로 계속 날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잊기로 했다. 동일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찾아올 이유가 없는 고향이 되고 말았다. 한가닥 우울이 가슴을 감았다. 그가 집마저 팔고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사실도 꼭 통쾌한 일만은 못 되었다.
“그 사람 만났어요?”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었다.
“아빠 고향에 왔으면 뮐 구경시켜 줘야지 이게 뭐야.”
큰아들 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아빠가 다녔던 국민학교부터 보자.”
그는 우울한 기분인 채 핸들을 잡았다.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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