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8. 4.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촛불집회 950회
도무지 더위가 수그러들지 않아 밤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끈적이고 후덥지근하고 그렇게 더운 가운데도 변함없이 광장으로 오는 촛불시민들, 그를 위해 우리 든든한 기둥 수연 샘이 시원한 것을 준비했다.
오늘의 사회자는 김종희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이하 생략) 기획팀장.
"우리 여기 앉아 있는 분들도 이 더위에 내가 안 가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오셨을 것 같은 생각에 고마운 마음으로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 촛불집회 제950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구호.
"미국 사드 미국으로! 평화는 이땅으로!"
벌써 950번째 외침이다. 그건 정말 대답없는 메아리일 뿐일까? 아무 의미 없는 것일까?
소성리가 낳은 우주대스타 정진석 님의 노래.
70년대 감성을 울리다 훌쩍 떠나버린 젊은 가객, 김정호의 '하얀 나비'
사드를 막아내려던 초기, 늦게까지 마을 회관에 모여 지킴이를 하던 할매들, 사이렌이 울리면 쫓아나와야 하지만, 그래도 불안한 쪽잠을 자러 가는 할매들을 보며 만들었다는 '평화는 어디에'
'이땅이 니땅이가? 이땅은 니땅 아이다(아니다). 내땅이다'고 단호하게 외치는 노래. '이땅이 니땅이가?'
박석민 머리 허연 막내 님이자 자문위원이 발언을 짧게 했다.
2009년 8월 4일 죽은이로 '아시아의 물개'로 불리던 조오련이 있었다고. 아마 지금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나이 든 세대에겐 영웅이었던 그이였다. 아시안 게임에서 난공불락이라 여기던 일본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을 때, 그 인기는 대단했다. 그는 특히 대한해협 최초 횡단으로도 그 이름을 알렸는데, 2차로 횡단 준비를 하다가 돌아가셨다 한다.
조오련, 아시아의 물개
출처 : 일생에 단 ..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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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조오련, 아시아의 물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1952-2009)은 대한민국 수영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다. 그저 수영이 너무 좋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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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주 님이 기차 타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래해야 한다고 석민 님이 잠시 발언을 중단했다.
친정인 구미를 다녀올 때면 늘 들르던 지민주 님. 이번에 유희 님에게 마지막 영상편지를 모아 전해주기도 했던 다정한 그이시다.
얼마전 돌아가신 김민기 님을 그리는 '아침 이슬' 노래.
'평화란 무엇인가'
일상은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 그래서 불렀다, '세상에 지지 말아요'.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급히 가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다시 나온 박석민 자문위원.
"전두환이 광주 학살하고 난 다음에 3S정책 한 거 아시죠? 스포츠, 스크린, 섹스. 우민화 정책으로 정치 문제에 관심 없게 (한 거죠.) 84년에 프로야구가 처음 생겼는데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생긴 나라예요. 그때 당시에 우리나라가 전 세계 외채 4위였어, 나라 빚이.
그래서 내가 스포츠는 이제 안 봐요. 뉴스 할 때나 좀 보는데 이번에 올림픽 보니까 우리나라 전투민족이더라고요. 총 칼 활 그래서 이 재래식 전투 가지고 미국하고 싸우면 이기지 않을까라고 아까 수다를 떨었어요.
아까 김민기 얘기 잠깐 하셨는데 정말 마지막까지 다 주고 간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요. '학전' 만들어서 그때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 연극 배우들 뭐 월급 있어 - 근데도 불구하고 4대보험 제일 먼저 만들었던 사람이에요. 4대 보험 만들어서 다 보장하고, 수입이 생긴 거를 다 공개해서 같이 나누고 그래서 이번에 김민기 씨 장례 치를 때 우리가 아는 유명한 배우들이 다 오열하고 우는 게 다 학전 통해서 '지하철 1호선' 연극을 통해서, 거기에서 그때가 아니었으면 김민기 선배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다(황정민)는 얘기잖아요."
이제 다시 평화협정으로 이야기가 돌아갔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인류는 분쟁을 치러요. 전쟁을 해요. 욕심 이런 것 때문에도 분쟁이 생기는데 그것이 종식되고 해결되는 마지막은 평화협정, 정전협정 체결을 하죠.
인류에서 가장 처음으로 정전협정, 전쟁을 마무리하는 협정을 체결한 건 히타이트하고 이집트하고 싸웠던 기원전 1247년에 있던 카데나 전투(10년 전투) 이후에 정전협정을 체결했어요. 지금부터 3300년 전이에요.
근데 우리는 정확하게 휴전 협정이죠. 정전도 아니에요. 총을 쏘는 전투행위만 중단한 이 상태가 나라를 비정상으로 만들어온 지난 71년이에요. 이를 뛰어넘지 않으면 한 발도 못 가는 거고, 게다가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훨씬 더 험악해지고 있는 건 작년 한미 정상회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핵 관련된 합의를 하고 난 다음, 올해 7월 11일 나토 정상회담 갖고 한미 간에 발표한 게 한미 핵 억제 핵 작전 지침에 대한 서명을 했잖아요.
그동안 미국이 운영하던 핵을 선제로 사용할 수 있는 계획에 한국이 껴달라고 계속 조른 거고 그래서 미국이 받아준 거예요. 받아줘서 논의할 때 같이 해요.
그리고 여기에 한국이 북을 훨씬 더 능가하는 재래식 무기를 동원해서 올해 8월 을지훈련 때 하겠다고 하는 거죠.
그리고 미국 정권이 어떻게 되는 거하고 상관없이 이게 유지되기 위해서 7월 28일 날 한미일 국방장관회담을 도쿄에서 했고, 그래서 안보 협력 프레임워크 이걸 지금 추진한다고 하는 건, 한일 간에 아직 군사동맹이나 이런 것들이 논의되지 않고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다 뛰어넘어서 한미일이 이런 북방 문제나 안보 문제를 같이 협력해서 북을 옥죄는 근데 북만 옥죄는 게 아니라 사실은 대중국 포위 계획을 갖고 있는 거고, 그것이 동북아의 커다란 위기와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어.
제가 사드 기사 2013년 기사부터 한 5,500개 쭉 해서 한 두 달 동안 쭉 공유를 했는데 이러고 보니까 사드 배치 결정 우리가 한 게 아니더라고요. 박근혜가 한 게 아니더라고.
사드 배치가 2014년부터 논의가 되다가 이게 한 8개월 넘게 논쟁이 생긴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여기저기를 쑤신 거 아니에요? 칠곡도 나오고 군산도 나오고 저기 부산도 나오고 곳곳이 이제 나오는데 군사적인 효용성 안보 문제 다 떠나서 우리나라는 이걸 다 거부했어요.
모든 지자체장이 자기네 동네 온다 그러면 다 뭐했어요? 다 삭발했어. 김천도 했죠. 박보생 시장 안 했나? 박시장도 삭발했잖아.
김천 온다고 그러니까 삭발했지, 칠곡군수 삭발했지, 청주 삭발했지, 다 했어 다.
그러니까 군사적인 문제를 다 떠나서 전쟁 무기는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는 게 이미 한국 사회에는 인정돼 있던 거란 말이에요.
근데 이 논란을 8개월 겪었는데 사드 배치 수개월 안에 한다는 발표를 한미 연합사령관, 주한미군 사령관이 하더라고. 그러고 난 다음 세 달 있다가 박근혜가 7월 8일 날 발표한 거야.
우리 박수규 훈장님이 아침에 집회할 때마다 얘기하는데 '종이쪼가리 하나 없다.
이 사드는 그래서 불법이다.' 이런 얘기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라 땅을 주는 거고 나라의 안보를 훨씬 더 위태롭게 하는 군사무기 체계가 들어오고 - 중국 한반도 문제도 아니에요. - 중국을 겨냥한 이런 미국의 전략무기가 들어오는데 정말 종이쪼가리가 하나도 없어요.
조약 체결권은 대통령하고 외교 장관한테만 줘요. 그런 중요함 때문에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사드 발표할 때 윤병세 외교장관 뭐 했어요? 백화점 갔어요. 바지 고친다고 쇼핑했어.
이 정상이 아닌 그런 나라 꼬라지에, 지금 사드 반대 싸움은, 지금 한미 간에 추진하고 있는 핵동맹, 한미동맹에 근거해서 핵동맹 핵억제, 그다음에 확장 억제 정책에 맞서 싸우는 가장 최전선의 싸움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의미를 알고 있고,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거고, 그 싸움의 전선에 있는 우리가 포기하면 이 싸움은 끝나요.
그래서 우리가 이 싸움을 끝까지 감당하겠다고 하는 결의를 가지고 이 더운 여름에도 우리가 모이는 거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 서로 힘도 모으고 서로를 보듬고 이런 것들이 더 높아져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로 엊그제 보령 평통사를 만들었던 안학수라고 하는 작가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시 하나 읽고 마무리할게요.
어디까지 갈라설까
언제까지 미워할까?
갈라서서 얻을 것이 무엇이기에
미워해서 이룰 것이 무엇이기에
60년을 반복해 온 우리
마음 풀고 믿어야 할 이때
누가 먼저 풀어주랴 누가 선뜻 믿어주랴
아무렴 그렇지 그래
내가 먼저 웃어야만 너도 내 손 잡아주지
내가 먼저 보듬어야 너도 나를 안아주지.
행복의 씨앗을 내가 먼저 뿌려주마.
평화의 홀씨를 너와 내가 날려주자.
메마른 이 땅에도 행복이 솟아나리
사나운 저곳까지 평화가 피어나리
행복, 평화의 불씨를 우리가 중심이 돼서 뿌리는 이 사드 반대 싸움 끝까지 힘있게 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의 덧붙이는 말.
"1943년 1월 9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나서 1945년 8월 6일 핵폭탄의 참혹함을 그대로 2살밖에 안 됐지만 참혹함을 그대로 겪으셨던 한국인 원폭 피해자 합천지부장 심진태 지부장님께서 '자신은 핵무기의 위력을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이 세계에 핵무기가 없어지는 그날을 위해서 끝까지 싸우다가 돌아가시겠다' 하는 신문 기사 인터뷰를 봤는데, 우리 사드가 처음 들어왔을 때 사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아냐? 너희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어떻게 안다고 무기를 갖다 놓겠다는데 이렇게 반대하고 나서냐?' 하고 우리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던 김천 할아버지들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먼저 겪은 그 어른들이 나서서 전쟁하려는 이 정권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남북의 평화를 가장 앞장서서 외쳐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습니다.
오늘도 더운 이 자리에서 평화를 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사드 뽑고 평화 심자!"
다음 주 이 자리에서 건강한 얼굴로 다시 만나 촛불을 밝혀요.
☆ 사진과 동영상은 주로 유정 님이 제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