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잠자리가 영 말씀이 아니었다. 늦은 시각에 부랴부랴 텐트치느라, 노면을 고르지 못하고 대충 했더랬다. 그러니. 울퉁불퉁 온 등허리가 배길 수밖에. 일어나 보니, 논농사를 짓던 곳인지 억센 풀뿌리가 여기 저기, 어디 그 뿐인가? 좁고 낮은 공간에 억센 남정네 두 명이 대자로 누웠으니, 초저녁에는 열기가 후끈거리고 습기가 차 눅눅거린다. 그런데, 새벽에는 웬 늦가을 날씨인가? 땡초 曰, 어~ 치버라!
눈을 뜨니, 5:30. 밖을 내다보니, 짙은 안개 투성이다. 큰일이다. 행여 비라도 오게 되면, 방수 카바도 없는디 ... 땡초는 잘도 잔다. 깨워 말어? 결국은 6:00에 깨워 부랴부랴 나는 식사, 그란디 땡씨는 우웰빙스럽게도 생식가루 한잔에 카스테라다.
7:00에 방태산 언저리의 오지마을을 찾아 힘찬 행군이다. 왜 방태산(인제)이었나? 이 산행의 텍스트는 안치운 교수의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이하 '옛길'로 약함)이었다. 그랬는데, 그 안 교수는 어떤 계기로? 아시는가? 우리 사회에서 환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차준엽 선생을! 며칠 전 '조선'의 인물란에 조간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더랬다. 오래 전, 북한산 초입의 200년된 수목이 신축 아파트에 포위당하여 질식 직전에 있을 때, 15일간 단식투쟁을 전개하였던 그 사람! 그후 경기도 가평에 운둔하다시피 지낸 사람! 그러한 그에게 넋을 놓아 찾아갔던 묘령의 처녀! 그들은 드뎌 26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을 극복하였기에, 그네들의 결혼식에 사회자는 "지난 10년동안 계속되었던 차준엽의 결혼준비위원회를 해체합니다"라는 말로서 하객들을 썰레게 했던 일화를 ... 그 차 선생이 안 교수에게 방태산의 대골과 아침가리(얼마나 멋드러진 이름인가!)를 적극적으로 권했단다.
우선 짐을 1/3로 줄여서 하나에 맨 다음, 나머지는 민박집엘 맡겼다. 진동계곡의 마지막 마을에서 방태산휴양림 쪽(신작로)이 아니라 오른쪽의 옛길로 접어들었다. 시원한 계류를 끼고 도는 조그마한 오솔길, 공기는 참으로 삽상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참으로 절묘하다. 조그마한 둔덕인 줄 알았는데, 돌담이며 그 돌담에 낮으막한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낮그마한 토담집이 엎드려 있다.(디카 사진 참조. 이하 '디사'로 약함) 절묘한 위장이다. 어느 기인이 은둔해 있는걸까?
경치를 완상하며 30분쯤 더 걸었나?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이정표는 일체 없다. 그러다가 작업복 차림의 몇몇의 사람들(남2, 여1)이 우릴 지나친다. 길을 물어봐도 모른단다. 그래서 지도와 참고자료인 단행본을 꺼내보고 있는데 올른쪽 길의 위쪽에서 어르신 한분이 내려오더니 그 길에 마련된 차단기를 '철컥'하고 되돌아선다. 땡초가 잽싸게 뛰어가 여쭈니, 그 길 안쪽에 동네가 있지만 오지 마란단다. 한마디로 귀찮단다. 이 노인에 대한 글은 '옛길'에서 읽은 적이 있다. 홀로 사신다. "무슨~ 사여~ㄴ 있겠지 ..."
할 수 없이, 왼쪽 길로 접어드니, 30m 폭의 바윗길이 계속된다. 한참 올라 갔더랬제! 오잉! 바윗길의 끝간 데에 좀전의 세 사람이 목욕을 끝내고 젯상을 차리고 있다. 오! 심마니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구나! 사진을 찍겠다니까, 강한 어조로 싫어한다. 아! 오늘은 왜 이리 말빨이 안멕힐까? 삼배를 한 다음, 막걸리와 마른 안주를 권한다. 생각도 안은 곳에서 귀한 곡차를 얻어마신셈이다. 그러고 보니, 신발은 장화를 신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신발을 보더니 위험하단다.(길이 없는 곳을 가야 하기에 ...) 할 수 없지, 뭐!
소원성취하시라는 인사를 건넨 다음, 다시 내려오다가 바윗길 틈새의 모래무지 위에서 직경 20cm, 폭 15cm쯤의 짐승 발자국이 땡초의 눈에 띄었다.('디사' 참조) 우와! 크다! 백두대간에 호랑이 출몰!(?) 이제는 노인이 오지말라는 길로 한참 올라갔다. 아! 글쎄, 그 깊은 산골에 중기계를 동원하여 신축가옥(아마도 펜션이겠지!)의 조경공사를 하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난개발로 도처에서 신음을 토하고 있다. 합법적이기에 허가가 났겠지만, 이건 단순히 법률적인 문제에 국한되질 않지 않는가? 인간의 탐욕이 왜 이리 극성스러운지! 그 바로 뒷집이 '옛길'에 소개된 이규만씨 집이다. 세빠또만한 강아지만 빈집을 지키고 있다. 그는 대구에 출타 중이란다.
30대 중반에 홀로 오지로 들어와 살고 있는 그가 모 기자의 눈에 띄어 세간에 알려졌고 그 기사를 읽은 마산사는 수더분한 어떤 처녀가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와 오늘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단다. 직접 대면치 못해 아쉽지만, 틀림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일 게야! 그 길도 그기에서 끊어지고 만다. 그러니 다시 내려올 수 밖에 ... 내려오는 길에 융단과 같은 길이로 자란 이끼로 뒤덮힌 바위 위에서 흐려내리는 계곡물을 허겁지겁 받아 먹었다. 왜 '허겁자겁'였을까? 예로부터 방태산 계곡물은 산삼 썩은 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아시죠!) 민박촌으로 내려오니 11:10. 유아교육을 전공했다는 30대 후반쯤의 아쭘씨가 하는 가게(오디하우스)에서 백숙을 하나 시켜 놓고 곡차로서 피로를 푸는 호사를 누려 봤다.(아! 글씨, 살다가 이런 날도 있어야제! ...)
시원한 평상에서 한숨 늘어지게 잔 다음, 2;00부터 방태산휴양림 쪽으로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참으로 깊은 계곡이다. 바닥이 거대한 반석으로 된 곳은 흐르는 물이나 달리는 내 마음,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다. 제법 올라왔기에 인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슬슬 시작해 볼까나! 거시기한 상태에서(자세히 알려고 하지 마시기 바람) 물 속으로 잠깐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았다. 이럴 때, 한 컷을 생략할 수야 없겠지. 난 어디까지니 당당했다. 그랬는데, 땡초는 젖*다*가 보이는 게 부끄러웠는지? 돌아서서 작업을 하고난, 다음 포즈를 취한다. 우하하하~ 친애하는 회원 여러분! 어떤 장면이 연출되었을까요! 그림을 그려 줘? 말어? 먼저 등산용 스카프의 네 귀퉁이를 둘로 접은 다음 그 한 복판만을 세번 정도 비비 꼬은 다음 어깨에 살짝 걸치니, 이름하여 '땡초표 브라자'가 등록된 것이다.('디사' 참조)
내려오니, 7시쯤이다. 그러니, 오늘은 약 9시간쯤 걸은 셈이다. 이제, 그 시간동안의 여정을 결산해 보아야겠지!
먼저, 과연 산행을 통해 문명사회의 찌들지 않은 삶의 원형을 엿볼수 있을까? 라는 호기심이다. 현대 도시문명의 거대한 두 가지 흐름인 산업화와 자본주의화로 인해 피폐해진 우리들의 심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아직까지는 오염되지 않은 걸로 알려진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 거다. 그런데 오지마을도 차츰 사라지고 있음을 절감했다. 방태산 진동계곡에는 깊은 계곡임에도 그 초입에는 제법 많은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전에는 밭농사로 생계를 이어갔을 이들이 너도 나도 모두 민박업에 혼을 빼놓고 있다. 더욱이나 이들의 민박업은 다분히 생계유지형의 특성을 띄고 있지만, 요즈음 민박업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나서 그런지, 거의 8할이 외지인으로 채워지고 있단다. 즉, 민박업도 불과 2~3년만에 토착민에 의한 생계유지형에서 외지인에 의한 재산증식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민박업이 하나의 준기업형으로서, 전도가 유망하다는 일부 언론의 무분별한 선동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여겨진다. 요즈음 농촌에는 젊은 세대가 거의 살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 식사를 한 끼 대먹었던 식당에서는 민박을 겸하고 있는데, 30대 후반쯤의(많이 보아야) 여성이 약 10개 정도의 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방 하나에 5만원, 여름 두 달 정도는 방이 꽉 찬다고 한다. 게다가 식당도 식사 손님과 술 손님으로 밤 늦게까지 부산스러웠다. 이렇다면, 도시의 웬만한 봉급생활자보다 나을 건 틀림없지 않은가? 이렇게 성업 중이니, 토착민도 외지인도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풋풋한 인정은 꼬리를 감추고 마는 것은 필연이겠지! 이게 바로 어쩌기는 너무나 힘든, 도도히 밀려드는 자본주의화의 물결이라고 여겨진다.
다음으로, 정말 오지마을에 살고 있는 화전민들도 농약에 찌든 구차스런 생활보다는 보다 손쉽게 돈벌 수 있는 소위 펜션사업에 한창 열중하고 있다. 이리 말하면, 교통이 불편한 깊은 골짜기인데 ... 라고 의아해 할지 모르나, 이제 이 삐까뻔쩍한 대한민국에서 교통이 불편한 곳이 어디 있나? 그리고 대도시에서의 극단적인 경쟁의 구도로 인한 상채기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깊은 골짜기일수록 더욱 적합하지 않은가?
첫댓글 자본주의의 힘은 깊은 골짜기의 오지마을도 그냥 놔두질 않는군요. 자본주의 다음의 사회체제는 어떤 사회일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