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산
3월10일
[영종도 르포] 섬 최고봉 백운산 산행과 선녀바위둘레길 걷기, 섬 명소 순례
갈매기 떼와 해변의 낭만을 즐기는 트로트 가수 손빈아와 장하온. 선녀바위해변은 작지만 독특한 바위가 많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갈매기 떼가 있다.
두 번이나 겪은 지독한 치욕. 쓰라린 패배를 잊을 수 없던 그는 절치부심하여 다시 태어났다. 낯선 서양인과 일본인에게 두 번의 패배를 겪었다. 자줏빛 제비로 불리던 순박했던 그는 흰 포말의 파도를 입에 물고 쓰러졌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던가. 칠흑 같던 투망의 덫을 빠져나와 고요한 망망대해에 땀을 쏟아 부었다. 군인의 시신이 뒹굴고 약탈당한 어부가 넋 놓고 바라보던 은빛 바다의 부활. 몰락한 4개의 영혼이 하나로 부활해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일어선다. 그의 이름은 영종도다.
을왕리해수욕장의 겨울은 차갑고 고요하다.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하얗게 얼어붙었다.
자줏빛 제비섬이라 하여 자연도
원래 이름은 제비가 많은 섬이라 하여 '자연도紫燕島'라고 불렸다. 조선시대에 해안 요새인 영종진永宗鎭이 설치되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 남연군묘 도굴 사건의 주동자들이 이곳에 상륙해 행패를 부렸다. 1875년 운요호 사건 때는 일본군이 영종도의 조선 수군을 전멸시키고 요새를 파괴한 뒤, 민간인 학살과 약탈을 범하며 피바람을 일으켰다.
상처를 간직한 섬은 1990년대부터 변신을 꾀했다. 영종도, 신불도, 삼목도, 용유도 4개의 섬이 간척을 통해 하나로 다시 태어났다. 대규모 간척 사업은 10여 년간 계속되어 우리나라에서 6번째 큰 섬(125㎢)으로 부활했다. 2001년 동북아 최대 공항인 인천공항으로 태어났고,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다리인 인천대교와 영종대교가 세워졌으며, 고속도로와 공항철도가 들어섰다. 현대사가 압축된 한국인의 힘을 보여 주는 섬, 영종도로 간다.
영종도 여행의 주인공은 트로트 가수 손빈아와 장하온이다. '트로트계의 엄홍길'이란 별명이 있는 손빈아는 백두대간을 완주했으며, 명산 100을 완등한 현역 연예인 중 가장 활발히 산을 오르는 등산마니아다.
장하온은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했을 정도로 운동을 즐기고 지구력이 뛰어난 트로트 가수다. 올해 안에 명산 100을 완등한다는 목표로 열성적으로 산을 타고 있다. 트로트계의 대표 등산마니아 남녀가 함께한다.
하늘정원을 걷는 손빈아·장하온. 하늘정원은 비행기를 가까이 볼 수 있는 명소지만, 주차할 곳이 없는 곳이 흠이다.
영종도 최고봉인 백운산을 오르는 손빈아·장하온. 손씨는 트로트 가수 최초로 백두대간을 완주했으며, 100명산을 완등했다. 사회체육학과 출신의 장씨는 100명산 완등을 목표로 주 2회 이상 꾸준히 산행을 하고 있다.
섬 최고봉最高峰 백운산 최고最古 사찰인 용궁사로 갔다. '용궁사'란 이름의 절이 곳곳에 많이 있으나, 가장 오래된 절이 영종도 용궁사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문무왕 10년(670)에 창건했다. 백운산 산 이름도 이곳 절의 첫 이름인 백운사에서 유래한다. 그후 구담사로 바뀌었다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중수되면서 용궁사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이 있다. 옛날 운묵마을 예단포에 손씨 성을 가진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끌어올린 그물에서 돌부처가 나왔다. 고기를 기대했던 어부는 투덜거리며 돌부처를 바다에 던졌다. 며칠 후 다시 그물을 던졌더니, 돌부처가 다시 올라왔고 바다에 다시 던졌다.
마시안해변의 얼음 파도 조각 위를 걷는 장하온·손빈아. 마시안해변은 경치 좋은 카페와 빵집이 여럿 있다.
흥선대원군이 절 이름 지어
그날 밤 손씨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돌부처가 다시 걸리면 이번에는 영종도 태평암에 가져다 놓으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돌부처가 그물에 올라오자, 그는 태평암에 가져다 세워 놓았다.
이후 영종진 군졸들이 돌부처에 활을 쏘며 장난을 쳤는데,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백운사 주지가 돌부처를 절에 모셔갔고, 이 소문이 퍼져 영험하다 하여 신도들이 기도하러 몰려들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흥선대원군은 절을 고쳐 지어주었고, 용궁에서 온 불상이 있으니 용궁사로 절 이름을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현판을 써 주었다.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쓴 현판은 지금도 요사채에 걸려 있다.
용궁사에는 과거 옥으로 된 불상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도둑맞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라진 옥불상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석불이라 믿고 있다. 옛 구담사 시주자 명단에는 마지막 대왕대비 조씨 등의 이름이 있어 왕실의 후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선녀바위둘레길의 기념사진 명소인 출렁다리 위의 장하온·손빈아. 마운틴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두 가수는 열혈 등산마니아인 노규선 대표와 함께 매주 산행을 한다.
왕과 왕비의 현신인가. 1,300년 수령의 거대한 느티나무 두 그루. 왕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곤룡포를 입은 거인처럼 버티고 섰다. 전설 몇 개쯤 가지고 있음직한 늙은 느티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다. 이토록 속을 다 비워내고도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모습이라니, 1,300년을 버틴 비결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비워냄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라 불리는데, 할아버지 나무는 할머니 나무 쪽으로만 가지를 뻗는다고 한다. 예부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용황각 약수를 마시고 할아버지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낳는다는 설이 있다.
야자 매트가 깔린 푹신한 산길로 든다. 야트막한 정상(255m)까지는 1km 거리, 그래서 고도를 높일수록 아침 운동 삼아 온 주민들이 늘어난다. 높이가 낮다 하여 방심하지 않는다. 길찾기에 주의하며 조심스레 올라서인지 정상이 금방이다.
싸늘한 아침부터 오르막을 올라 힘들 법도 한데 선남선녀 트로트 가수들은 싱글벙글이다. 진심으로 산을 좋아하는 것이 보여 마음이 놓인다. 두 사람의 기운을 받아 발랄한 트로트 리듬처럼 가뿐히 정상에 올랐다.
멀리서 비행기가 분주히 오가는 걸 구경하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 백운산 정상은 그야말로 인천국제공항 전망대인 것. 동쪽으로 인천대교가 길게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신도, 시도, 모도, 장봉도가 영종도를 호위하는 구축함마냥 바다에 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사진 찍을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 하늘정원. 잘 생기고, 예쁜 두 가수가 패션 화보 같은 자세를 취했다.
씨사이드파크의 명물인 스카이데크.
얼어 붙은 바닷물 위를 걷다
운서초등학교 방향으로 하산한다. 거친 숨을 가라앉히듯 호흡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정갈한 침엽수 숲이 마중 나온다. 이렇게 키 큰 리기다소나무 숲은 드물다. 얼핏 잣나무나 가문비나무로 오해할 정도로 곧고 길게 뻗어, 공기가 차분해지는 것만 같다.
신도시 분위기의 주택가로 이어진다. 영종도에도 걷기길이 몇 개 있는데, 둘레길은 백운산을 내려와서 동쪽 해안선인 씨사이드파크로 이어진다. 인천시에서 운영하는 동쪽 해안가의 공원에는 레일바이크, 캠핑장 같은 다양한 편의시설과 해안선을 따라 자전거길이 나있다.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라이딩을 즐기려 했으나, 겨울엔 운영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에 발길을 돌린다.
사람 없이 고요한 공원, 바다가 주인공이다. 미래의 빙하기 어느 순간에 뚝 떨어진 걸까.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호수마냥 얼어붙은 바다, 그 뒤로 인천 시내의 빌딩숲이 희미한 실루엣을 이룬다. 회색 풍경이 삭막하면서 깊은 심연 속인 듯 아득하다.
바위와 모래해변이 독특한 조화를 이룬 선녀바위해수욕장.
새우깡 길들여진 갈매기와 춤을
미래 지향적인 조형물이자 전망대인 스카이데크를 걷는다. 정작 눈길을 끄는 건 바다 건너의 놀라운 건축물이다. 바다를 건너는 21km의 인천대교는 바다에 세운 바벨탑마냥 경이롭다. 이토록 긴 다리는 본 적이 없다. 실제로 대한민국 최장 교량이며, 세계에서 5번째로 긴 다리이다.
특히 탈북민 중에는 인천대교를 처음 보고 충격 받은 이가 많다고 한다. 남한 입국 후 국정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인천대교를 처음 보게 되는데 압도적 규모와 외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 이토록 거대한 다리를 세운 한국의 기술 수준에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다음날 다시 찾은 영종도. 동장군의 칼날이 성성하다. 어제보다 바람이 더 맵다. 두꺼운 장갑과 구스다운재킷, 프리마로프트재킷, 귀마개 등 겨울 장비가 총출동한다. 대신 차가운 공기는 맑은 시야를 데려왔다. 을왕리해수욕장이다.
유명세에 걸맞게 회나 조개를 파는 식당이 늘어서 있었다. 그럼에도 바다는 서정적이다. 깨끗한 모래해변에는 미처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포말의 파도가 얼어 있다. 금목걸이를 한 젊은 사내가 방파제 끝까지 차를 몰고 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들썩거릴 것만 같았으나, 을왕리의 아침은 고요하다.
선녀바위둘레길 혹은 문화탐방로라는 이름의 둘레길이다. 을왕리해수욕장에서 해안선을 따라 선녀바위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3km의 걷기길. 데크길을 따라 툭 튀어나온 반도 끝으로 간다. 쉼터며 전망데크, 기념사진 명소가 잘 정비되어 있어 주말엔 꽤 북적일 것 같다.
걷기길은 조금 지루할 만하면 독특한 조형물과 전망데크가 나타나 잔잔한 재미가 있다. 그 정점에 출렁다리가 있다. 붉게 칠한 다리는 기념사진 찍기 안성맞춤이다. 끼 많은 두 사람이 멋있는 자세를 취하며, 예쁜 미소를 짓는다. 주민욱 사진기자의 입 꼬리가 올라간다.
을왕리 부근 작은 포구의 바위더미를 걷는다. 차가운 바닷바람에도 아랑곳없이 활기찬 두 가수가 씩씩하다.
선녀바위 해변에 닿자 갈치 비늘처럼 바다가 살아 반짝인다. 드문드문 보이는 관광객들 겉옷 지퍼를 내릴 만큼 오른 기온, 이제야 관광지 분위기가 난다. 밀물이 사람을 슬그머니 밀어낸다. 아랑곳 않는 두 사람이 바다로 향한다. 갈매기 떼가 두 사람 곁에 몰려 왔다가 돌아가길 반복한다. 새우깡을 주는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 관광객에 길들여진 묘한 습성이다.
두 사람이 뛴다. 단단한 해변을 춤추듯 질주한다. 한껏 몰려온 갈매기가 순간 날아오르며 어딘가로 날아간다. 새우깡에 감춰진 실상과는 달리 뭔가 희망이 깃든 장면이다. 파도의 물살마다 새겨진 햇살에서 이상한 삶의 원기가 끓어오른다.
BAC 인증 섬은 아니지만, 인천공항 전망대인 백운산(255m) 정상은 올라가볼 만하다. 정상에는 너른 데크와 헬기장이 있어 경치가 빼어나다. '야영금지' 현수막이 있음에도 짧은 산행으로 야경을 즐기려는 백패커들이 많이 찾는다.
천년 고찰과 수령 1,300년 된 할아버지 할머니 느티나무가 있는 용궁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볼거리 여행을 겸할 수 있다. 해발 80m 기슭에 자리한 용궁사는 진입로는 좁으나 주차장이 넉넉하다. 정상에서 어느 곳으로 하산해도 무방하다. 용궁사에서 정상으로 올라 운남공원 방면으로 내려서는 산행은 3km이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썰물에 드러난 을왕리해변의 바위를 넘는 장하온·손빈아. 산행으로 다져진 두 사람의 몸놀림이 유연하다.
영종도 둘레길은 백운산을 내려와 씨사이드파크로 이어진다. 둘레길을 모두 걷기에는 일반적인 포장도로가 많은 편이라 하이라이트 코스만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을왕리해수욕장과 선녀바위해수욕장을 잇는 걷기길은 3km로 짧고 비교적 완만해 초보자나 어린이와 함께 걷기에 제격이다.
영종도 남동쪽 하늘정원은 착륙하는 비행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소다. 다만 하늘공원주차장이 렌트카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일반차량은 진입할 수 없게 해놓았다. 주차가 어려운 게 단점. 영종도 북쪽 명소로 예단포둘레길이 있다. 1km로 짧아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씨사이드파크에서 본 인천대교.
교통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영종대교 통행료는 편도 6,600원, 인천대교는 5,500원이다. 영종도는 평지가 대부분이라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만 평일에는 공항철도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으며, 주말에도 공항철도 홈페이지에서 '자전거 휴대승차' 예약을 해야지만 실을 수 있다. 접이식 자전거는 연중 가능하다.
대중교통으로 용궁사로 갈 경우 공항철도 영종역 1번 출구로 나와서 204번 버스를 타고 용궁사 입구에서 하차한다. 을왕리해수욕장은 인천공항1터미널역에서 111번 버스를 탄다.
씨사이드파크의 얼어붙은 바다. 희미하게 바다 건너 인천의 빌딩숲과 인천대교가 보인다. 미래의 빙하기 어느 시간에 뚝 떨어진 듯 독특한 분위기다.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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