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기의 두뇌 발달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 유전자의 결합에 의해 좌우된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즈는 ’아기의 두뇌 발달이 생후 3세 이전에 결정된다’며 기존의 생각들에 일침을 놓았다. 부모의 유전자는 체온 조절 및 호흡, 심장 박동 등과 같은 두뇌의 기본적인 신경 회로에만 영향을 미칠 뿐, 나머지의 많은 신경 회로는 생후 몇 년 동안의 경험과 두뇌 자극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최근 조기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게다가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아기가 글을 깨치고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모습은 많은 부모들에게 조기 교육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0세부터 6세까지 뇌 성장의 90%가 이루어지고, 특히 0~2세 사이에 50~60% 가 완성된다는 사실은 두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의사를 울음으로 표시할 뿐인 아기의 머리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뇌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 뇌의 구조적인 특징들
인간의 뇌는 크게 구피질과 신피질로 나뉜다. 구피질(피질하 부분)은 혈액순환이나 호흡, 소화, 배설 등의 본능적 욕구나 감정과 같은 정서적인 활동을 담당하는 부위로, 보통 유전적으로 타고난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된다. 각종 반사동을 관장하기 때문에 신생아가 건강하려면 출생 후 구피질이 제대로 발달해야 한다. 구피질은 일반적으로 생후 3~4개월 혹은 1년 정도면 완성된다.
신피질(대뇌피질)은 언어, 수리, 기억 및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과 같은 고도의 정신적인 능력을 관장한다. 인간의 뇌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흔히 ’두뇌’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크기와 중량이 늘어나면서 각 세포의 역할을 지시하고 연결 회로의 체계를 세우거나 좀더 복잡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며, 수많은 뇌세포가 유기적으로 신경 고리를 형성하는 동안 ’지능’이 발달한다. 좌뇌와 우뇌, 2개의 반구로 이루어져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구피질보다 천천히 발달하여 8세 무렵에야 거의 완성된다. 신생아는 구피질에 비해 신피질이 약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아기가 자라는 동안 수상돌기와 축색 다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에 따라 뇌의 부피와 무게도 증가한다. 출생 당시 약 340g 정도이던 신생아의 두뇌는 급속하게 성장하여 돌이 되면 출생시의 2배 이상인 1,100g이 되고, 5세가 되면 성인 두뇌의 90%에 이르는 1,450g에 이르게 된다.
두뇌가 커지는 동안 기억력과 사고력이 보다 정교해지고 언어 능력이 향상되는데, 그 이유는 세포 자체의 증가뿐만 아니라 세포간의 교류를 담당하는 연결 고리(시냅스)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 시냅스의 발달이 우수한 두뇌를 만든다
사람의 두뇌는 주름투성이다. 대뇌를 펼쳐보면 대략 신문지 한 장 정도의 넓이가 나오고, 그 두께는 평균 3mm 내외가 된다. 뇌의 신경 회로가 복잡하고 정교하게 잘 짜일수록 뇌 표면의 주름은 많아진다. 그리고 주름이 많을수록 머리가 좋아진다. 실제로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적인 과학자의 두뇌는 일반 사람들에 비해 뇌 표면의 주름이 훨씬 많고 복잡했다고 한다.
뇌의 신경 회로망 발달에 관여하는 것이 바로 시냅스다. 불가사리처럼 생긴 뇌세포는 중앙에 핵이 있고, 자극을 받으면 세포에서 수상돌기가 생겨난다. 자극이 계속되면 뇌세포에서 수상돌기가 뻗어나와 긴 신경 섬유인 축색이 자라기 시작한다. 수상돌기가 자극을 받아들이는 ’안테나’라면 축색은 그 자극을 전달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수상돌기를 통해 받아들인 자극은 축색을 따라 다른 뇌세포에서 뻗어나온 또 다른 수상돌기와 연결된다. 시냅스는 바로 이때 만들어진다. 시냅스가 많이 만들어질수록 신경 회로망은 더욱 촘촘해지고, 신경 회로망이 촘촘해지면 그만큼 두뇌가 발달한다.
한편, 시냅스는 보통 생후 2개월 무렵 운동 피질에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가 되면 아기는 모로 반사나 바빈스키 반사와 같은 기본적인 반사 행동을 멈추고 의도적으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생후 3개월이 되면 시각 피질의 시냅스 형성이 절정에 올라 물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고, 8~9개월에는 경험한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논리적인 사고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추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생후 6~12개월 이후부터다. 이때 전두엽 피질의 시냅스는 성인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진행되며, 발달은 10세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글/ 조재현 기자
취재에 도움주신 분들/ 김용재(이대 목동병원 신경내과 교수), 강준기(강남성모병원 신경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