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폭스
노병철
십여 년 전인가.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 이야기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고가인 이 주사를 엄마 노릇을 한다고 돈을 빌려서라도 맞췄는데 어느 방송에서 별 효과 없다고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것이었다. 딸만 있는 나로서도 걱정이 되어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공짜로 어찌 주사 한 방 맞을 수 있을까 싶어 친한 척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맞지 말라는 것이다. 효과 유무를 떠나 부작용이 제법 있다는 것이다. 집에 가서 이야기했더니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계속 쳐다본다. 아들만 있는 집은 이런 걱정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
당시 자궁 경부암 백신은 1회 접종 비용이 20만 원 정도로 매우 비쌌다. 이걸 세 번에 걸쳐 맞아야 하니 딸 둘이면 120만 원이다. 장난이 아니었다. 성인들은 50만 원 불렀는데 성 경험자는 효과 없다는 말이 언제부터인지 쑥 들어가 버렸다. 돈벌이에 눈이 뒤집혔나 했다. 그러다가 짜증 나게 생리대 하나도 지원해주지 않는 나라에서 중학교까지 여학생에겐 나라에서 무료 접종을 해준단다. 이미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딸들은 대상이 아니었다.
자궁경부 인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은 단순한 종기로 그냥 감기와 같다. 대부분 저절로 생겼다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런데 운이 나쁘면 자궁경부암이라 진단되어 자궁을 들어내 버린다.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가만히 두면 결국 저절로 사라지는 가벼운 염증이지만 혹시나 하는 것이 사람 잡는다. 일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인터넷 뉴스 때문에 맞지 않았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돈이 없어 안 맞은 건 아니다.
지금은 애들도 이미 시집갈 나이도 훨씬 넘어 버렸고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 이야기는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그리고 남의 집 여식 애들 자궁 걱정까지 할 오지랖은 넓은 짓을 할 시간도 없이 세월이 흘러버렸다. 요즘은 어떤지 궁금하긴 하다. 예방 주사약이 옛날보다 상당히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만 얼핏 지나가는 말도 들었을 뿐이다.
“엠폭스가 자꾸 늘어나네.”
“에폭시? 뭔 옥상 방수할 일 있나?”
무식한 내 답변에 고개를 흔든다. 사람이 모를 수도 있지, 그 말 한마디에 이렇게 무안을 주고 지랄이다. 엠폭스가 ‘에폭시’로 잘못 들릴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원숭이 두창’을 엠폭스라고 한단다. 올해부터 이름을 바꿔서 부르라고 국제기구에서 연락이 왔단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원숭이 두창을 엠폭스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 엠폭스 환자가 자꾸 늘어난다는 것이다. 늘어나거나 말거나 별 관심 가지고 있지 않았다가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라는 문구에 눈이 꼽혔다. 대부분 환자가 모르는 인간과 성관계를 한 뒤 걸렸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 어떻게 성관계가 가능한지 궁금해서 기사를 샅샅이 읽었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더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성병 걸린 바람난 여자가 동네 여러 남자에게 성병을 퍼트리듯이 누군가가 엠폭스를 퍼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천연두 백신 맞으면 괜찮아.”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포털뉴스에서 보았단다. 백신을 맞으란 이야기인가? 그냥 모르는 사람과 성관계하지 말라는 것이 더 확실하지 싶은데 말이 좀 이상하다. 꼭 백신 맞고 성관계하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첫댓글 거짓말은 앞뒤가 안 맞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놓으셨네요!
거 국민 지도자로 자처하는 자들도 좀 까주세요!
그래야 속이라도 시원하제~^^
거 코로나 백신 만든다고 tv에 나와서 떠들 던 자가 있었는데 백신 만들기는 만들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요ㆍ정신나간 지도자를 돌려차기로 한방 먹여주시죠ㆍ
너무 재미있습니다. 술술술 읽혀집니다. 유쾌통쾌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