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두 개를 다시 얻고
변수남
다섯 가지 복에는 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이 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흔히 알고 있는 오복설에 치아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음식의 공급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치아가 체내로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한다. 오복설에 치아가 있느냐 없느냐를 차치하고서라도 치아가 생명을 이어나가는데 지도리임에는 분명하다.
일전에 나는 치아와 관련된 고전 수필 <낙치설(落齒說)>을 읽었다. 하나는 척화파로 널리 알려진 김상헌의 증손자인 김창흡(金昌翕)이 지었고, 나머지 하나는 김이안(金履安)의 작품이다. 영의정을 지낸 아버지 김수항과 달리 김창흡은 평생 야인으로 살았는데, 그의 나이 66세 되던 해에 앞니를 잃었다. 빠진 앞니가 입속에서 함께 저작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낯선 이물감으로 인해 입 밖으로 뱉어진 자신의 앞니를 본다면 기분이 정말 묘할 것이다. 이때의 심정을 김창흡도 눈물이 왈칵 날 뻔했다고 적고 있었다. 김이안은 34세 되던 해에 왼쪽 어금니가 빠져나온 경험을 했는데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지 젓가락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작년 요맘때였다. 왼쪽 위 마지막 어금니가 음식을 씹으면 자꾸 들리는 느낌이었다. 본래 내 이가 그리 튼튼하지 못한 데다가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왼쪽 위에 있는 마지막 어금니와 그 옆 이를 연결해서 씌워두었다. 왼쪽 위 마지막 어금니와 잇몸 사이에 손톱을 살짝 넣었다. 그랬더니 손톱이 잇몸과 어금니의 틈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평소 찾던 치과로 당장 달려갔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할 수 없이 좀 멀긴 했지만 다른 치과 병원을 찾아가야만 했다.
사진을 찍고 베드에 앉으라고 하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왼쪽 위의 맨 가에 있는 이와 다음 것을 빼야 한다고 했다. 무슨 청천벽력도 이런 날벼락이 있나. 김이안처럼 밥을 먹고 있었다면 나 또한 젓가락을 집어 던져 버릴 만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다른 치료 방법은 없습니까?” 의사 선생님은 단호했다.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왼쪽 위에 나란히 있는 어금니 두 개를 잃고 말았다. 어금니 두 개를 잃고 나자 나에게 제일 걱정되는 것은 먹는 문제였다. 그러나, 김창흡은 그렇지 않았다.
김창흡에게 있어서 낙치가 주는 가장 큰 불편함은 책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가 빠지면 음식을 씹을 수 없는 점이 가장 불편할 텐데 이상하게도 김창흡은 독서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근기인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책을 보는 것과 낙치와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의 글을 읽어가면서 내 생각도 점차 바뀌어 갔다. 당시의 독서는 소리를 내서 해야 하는 활동이었고 이가 없으면 음독(音讀)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앞니를 잃은 후 독서의 어려움을 김창흡은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지금은 한번 입을 벌려 소리를 내면 마치 깨진 종소리 같다. 빠르고 느림이 마디를 이루지 못하고 맑고 탁한 소리가 고르지 못하다. 칠음(七音)의 높낮이도 분간할 수 없으며, 팔풍(八風)도 분간할 수 없다. 처음에는 낭랑한 소리를 내고자 했으나 끝내는 애애하고 말을 더듬게 된다. 이것이 한탄스러워 책 읽는 일을 그만두었더니, 덕성은 더 게을러져 갔다. 이로써 근본을 잃지 않으려 했던 마음은 유지될 수가 없었으니, 이것이 가히 슬픔 중에 가장 큰 것이 되었다.”
뱁새가 어찌 붕새의 뜻을 알겠는가만 나는 이빨 두 개를 강제로 잃은 후 오로지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될까만 걱정했는데 김창흡의 <낙치설>을 읽고 사고가 전환되었다. 이가 없으면 발음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되고, 이것이 독서 의지를 떨어뜨리고, 마침내는 치아보다 더 소중한 정신이 타락할 수 있다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낙치설>이 이 사실을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임플란트도 하루 아침에 끝나지 않고 치아를 잃은 이후 1년간의 긴 싸움을 계속 시켰다. 치아 두 개를 잃은 후 치과 베드에 누워있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작게는 이 닦기를 게을리 한 것부터 시작해서 이빨의 집인 입 관리를 잘못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까지 줄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우선 내 이익만 챙기려 했던 나쁜 습성들이 치과 베드에 눕기만 하면 흩날리는 눈발처럼 내 얼굴을 차갑게 때려왔다.
김이안은 김창흡보다 젊은 나이에 어금니를 잃었는데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자신의 낙치를 합리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빠진 어금니를 다시 구할 수 없으니 애석할 만하다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다시 뒤집기도 했다. 그 속에는 이를 잃은 작가의 허탈감도 들어있었다. 그래서일까? 김이안은 이 허탈감 혹은 서운함을 더 큰 정신적 가치로 보상받고자 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한 허탈감 또는, 서운함의 정신적 극복 방법을 들여다보면 안쓰럽기도 했다. 이 허탈감이나 서운함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대안은 현대 의학이 제시한 임플란트 치료법인데 당시 유학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것은 다음 생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치아를 잃어버린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알쭌히 현대 의술, 더 나아가 치과 의사 덕분이기에, 김이안도 지금 세상에 태어났다면 임플란트 수술을 받고 이를 잃었다는 허탈감에서 훌훌 벗어나 머나먼 창공으로 날개를 털고 날았을 것이다.
어제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임플란트 수술 받은 곳이 아프지는 않은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상이 없다고 말하자 사용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하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현대 의술의 힘을 받아서 잃어버린 이빨 두 개를 얻고 이상 유무의 연락까지 받았다. 현대 의학의 도움으로 다시 얻은 치아 두 개가 내게는 그 어떤 금덩어리보다도 소중하다. 그런데, 선인들은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기에 끝내 이빨을 잃어버린 물리적 상실감에서는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상실감 속에서도 선인들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 속에 선의 씨앗을 기르려 했다. 그에 비해 나는 두 개의 어금니를 모두 얻었다. 이러고도 선인들처럼 착한 마음 하나 길러내지 못한다면 <낙치설>을 읽은 보람은 끝내 그 어디에도 없게 될 것이다. 매우 두렵지 아니한가?
김이안은 어금니를 잃고 난 후 “이왕 잃어버린 어금니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말을 함부로 해서 입을 잃어버리거나, 보는 것을 함부로 해서 눈을 잃어버리거나, 듣는 것을 함부로 해서 귀를 잃어버리거나, 가는 것을 함부로 해서 발을 잃어버리는 우까지 범해서는 안 된다.”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물리적 상실감을 극복하고 높은 정신적 경지로 발돋음했다. 지금 나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은 김창흡이나 김이안과 같은 높은 정신적 경지이다.
조선 시대야 치아를 잃으면 다시 얻기 어려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임플란트 수술로 잇몸에 채워 넣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입, 눈, 귀, 발을 함부로 놀려서 정어(正語), 정견(正見), 정문(正聞), 정행(正行)의 길을 잃어버린다면 여기에는 대체가 불가하다. 이렇게 된다면 치아를 잃어버린 것보다 훨씬 심각한 정신의 질병을 앓게 된다. 물론 간신히 얻은 새 치아도 조심하고 아껴서 사용해야겠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리면 갈음이 불가한 입이나 눈이나 귀나 발의 올바른 생활을 위해서는 더욱더 삼가고 아끼며 조심히 사용하려는 정신적 경지가 요구된다.
첫댓글 우리 회원 중 인공 이빨이 젤 많은 게 내가 아닐까 싶어요.
이미 세 개가 임플란트고 다음 주 두 개 더 박으러 가요. 그런데 엊그제 본을 뜨러 갔는데
아래 앞니가 흔들린다고 했더니 거기도 최소 두 개의 임플란트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ㅜㅜ
개동 선생님 다녀가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건강도 잘 챙기시고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저도 임플란트 해야하는디ㆍ엄두가 안 나네요ㆍ잘 읽었어요ㆍ
신이비 작가님 반갑습니다^^
갑진년 새 해는 더욱 좋은 작품 쓰시길 기원드립니다^^
선인들의 상실감을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현대인들은 치아든 연골이든 인공물로 채워 넣을 수 있으니 정신과의 관계성을 생각지 않는 측면이 있어요.
새로운 정보도 습득하며 잘 읽었습니다.
현광 회장님의
귀한 말씀은 저에게 늘 힘이 되었습니다
새 해는 더욱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일 잘 이루어지길 기원드립니다^^
우리 몸이 정말 정교하기 때문에 어디 한 군데라도 이상이 생기면 정말 힘들지요.
치아 관리는 정말 중요한 듯합니다.
치아가 안 좋으면 음식물 섭취가 힘들지요.
현대 의술로 치아 두 개를 얻었으니 관리 잘 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기 바랍니다.
장 작가님의 귀한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새 해는 더욱 건강하시고
좋은 글도 많이 쓰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치아 없으면 글을 못읽었군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빛나네요.
생각해보면 물려받을 것도 많은 조상님들입니다.
윤슬 선생님^^
오셔서 일독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새 해는 더욱 건필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