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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셀 나무를 심은 아브라함
창세기 21:22-34 95 321 415 438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씀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3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가나안의 경계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삼상20:1)입니다. 북쪽은 ‘단’이고 남쪽은 ‘브엘세바’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가나안을 완전하게 차지하기 전에는 브엘세바에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블레셋 사람의 땅’(32,34)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 땅에 살았고 거랄 왕 아비멜렉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22)
아브라함이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33) 지금은 블레셋 사람의 땅이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 주신 가나안의 지경이 될 것을 바라보고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19장까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갈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까지 옮겨 와서 정착하기까지 어떻게 지내며 살았는가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랄 왕 아비멜렉의 만남의 이야기가 20장에 있고, 21:22-34에는 불가침조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아브람의 가족은 나그네일 뿐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나안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역시 가나안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창12:6) 그러나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7) 그래서 아브람은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고 벧엘과 아이로 옮겨 점점 남방으로 옮겨 다니다가,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아내를 누이라 속이므로 애굽 왕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기는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아브람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므로 아내 사래는 무사히 아브람에게 돌아왔습니다.(12:20)
다음으로 아브람과 조카 롯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아브람은 롯과 나누어졌습니다. 아브람에게는 롯에게 배신당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인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13:12)
그러나 멸망 당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의 구원을 위해 아브람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천사를 보내어 롯과 두 딸을 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창19:29)
다음으로는 여종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씨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10년을 기다려도 아내 사래는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팔십 육세에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창16:16)
아브람이 여종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과 참고 기다리지 못하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 범한 큰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가정적인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로 많은 갈등과 불신과 어려운 일을 25년 동안을 당한 아브람이 구십구 세가 되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네가 크게 번성하게 하며,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비롯한 모든 남자에게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이름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으로개명해 주셨고, 사래도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사라’로 부르라고 하셨습니다.(창17:5,10,15)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이 지나서, 아브라함이 백 세가 되는 해에 사라가 이삭을 낳았습니다.(창21:7) 그러나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13세)이 사라가 낳은 이삭을 놀리므로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언약의 자손과 언약이 아닌 자손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정은 매우 불행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라는 말씀은 믿음과 불신이 함께 하는 가정에는 평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창21:11) ‘매우 근심’이란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 때문에 하는 근심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근심이 매우 심각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의 근심은 두 아들 중에 누가 언약 맺은 아들이냐는 근심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12) 이삭으로 인하여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더 이상 이스마엘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에게 메워 주고 그 아들을 데리고 가라’고 하며 쫓아 냈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이스마엘을 데리고 그 집을 나와 바란 광야에 거주하였습니다.(창21:21)
부정하게 낳은 이스마엘을 내 쫓으므로 아브라함의 가정은 언약맺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이곳 저곳으로 헤매며 여러 가지 시련과 어려움으로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뜻을 따르는 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근심하며 불행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부정한 것을 내쫓고 정리 할 때 참된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갈데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가나안에서 25년 동안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 순종했지만 아브람은 가나안에 온전한 정착도 못하고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도 어렵고 낙담하는 일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신앙적인 회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브람도 하나님께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창15:2)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의 25년 동안의 삶은 오늘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신앙생활하는 우리의 모습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여러 가지 방해되는 일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위태로운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불평할 때는 하늘의 뭇별을 보이시기까지 하시며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갈을 통해서 낳은 이스마엘을 그 집에서 쫓아내므로 비로소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와 그리고 아들 이삭과 함께 언약 맺은 온전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마엘을 쫓아낸 후에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정착할 곳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랄로 옮겼습니다. 그랄은 가나안의 최 남쪽 지역이며, 지중해 해안에 가까운 여러 성읍의 도시 국가로서 ‘왕의 아버지’란 ‘아비멜렉’이 그랄 지방의 블레셋 족속의 강력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두려워서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로인해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삼고자 데려갔습니다.(20: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므로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주며 아내를 누이라고 했느냐고 하며 책망을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22) 그래서 양과 소와 종들을 주고 땅도 거주하라고 했습니다. (20:14,15) 아브라함은 거랄 왕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아비멜렉의 아내와 여종이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랄 왕 아비멜렉은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20:15)고 말하므로 비로소 아브라함은 거주할 수 있는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인 아비멜렉은 상호 불가침과 화친 동맹을 맺자고 했습니다.(23) 그래서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상호 우호 조약체결을 위한 계약 당사자에게 예물을 주고 확증하고 계약을 하는 풍습대로 하여 언약을 맺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물의 소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일곱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증거를 삼고 서도 맹세하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조약의 완전함과 불변성을 상징합니다.(30) 이렇게 예물을 주고 계약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계약을 하므로 그 땅을 정상적으로 아브라함의 소유가 된 것을 확증한 것이므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브엘세바’란 ‘일곱 우물’이란 뜻으로 더 이상 우물을 빼앗기거나 빼앗는 일이 없도록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을 의미하여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온지 25년 만에 안심하고 거주할 곳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거랄 왕 아비멜렉도 아브라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군대 장관 비골은 브엘세바를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습니다.(32)
이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33)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지켜주신 은혜를 감사해서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때에 에셀 나무를 심은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건조한 사막에는 아카시아 나무와 같은 싯딤 나무와 로뎀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가 단단하고 좋아서 조각목으로 하나님께서 법궤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에셀 나무는 상록수로서 크기가 9m 이상 자라고 뿌리가 30m 이상 깊이 내려서 지하에 흐르는 수분을 빨아 올려 사막에서 생명력이 가장 왕성하고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가지를 넓게 펴져 소나무 잎처럼 뽀쪽한 잎이 무성하여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어주므로 그늘은 매우 시원하다고 합니다.
사울 왕이 왕궁을 짓기 전에 에셀 나무 아래에서 신하들과 군인들에게 군사 작전 회의를 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삼상22:6) 그래서 아브라함이 거랄 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에셀 나무를 심은 것은 지금까지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땅이지만 그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영원한 영원한 안식을 믿고 바라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땅은 악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땅이지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에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믿고 바라보는 에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에셀 나무는 나그네들에 쉬어갈 수 있는 지상교회를 의미합니다.
이땅의 교회는 나그네들과 같은 사람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그늘이 있는 에셀 나무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이 있는 내세의 천국입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한 에셀 나무를 심고 영원한 안식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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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샬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