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당(前衛黨)과 아방가르드에 대하여
(맨 앞에서 길을 여는 사람들)
수필가 정임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입니다. 이 문장 하나로 인간 사회를 지배하던 “예언자적 카리스마”가 무너지고 그 빈자리를 “혁명가적 카리스마”가 채우게 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체제 변혁(레짐 체인지) 의 하나였던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에는 체제를 해부하고 대중을 조직하여 역사의 방향을 틀어쥔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있었는데, 바로 'Vanguard Party(전위당)'입니다. 블라디미르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이 정립한 이 개념(주석 참조)은 오늘날까지도 정치 조직론과 사회 변혁 운동사에서 논쟁적이면서도 가장 매혹적인 주제로 남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술적 맥락에서 접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는 정치적 맥락에서 쓰는 방가르드(Vanguard)와 사실 언어만 다를 뿐 정확히 같은 뜻을 가진 동의어입니다. 프랑스어로 '앞'을 뜻하는 'avant'와 '경비·부대'를 뜻하는 'garde'가 결합된 이 말은 원래 군대에서 적진을 향해 가장 앞에서 길을 열어가는 '전위(前衛)' 부대를 뜻하는 군사 용어였습니다. 이 용어는 시간이 흐르며 전혀 다른, 그러나 본질은 통하는 영역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정치·사회적 격변의 시기에는 기존의 낡은 체제를 타파하고 혁명을 이끄는 정예 조직인 '방가르드(전위당)'로 진화했고, 문화예술의 영역에서는 과거의 전통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로 시대의 지평을 넓히는 '아방가르드(전위예술)'로 꽃을 피웠습니다. 결국 정치를 바꾸려던 이들도, 예술을 꽃피우려던 이들도 모두 시대의 가장 최전선에서 '방가르드'를 자처했던 셈입니다.
레닌은 그의 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은 임금 인상이나 노동환경 개선 같은 실리적 요구에 머무르기 쉽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틀을 깨는 근본적 의식에 이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예리하게 분석한 사상적 무기로 무장하고, 대중을 올바른 혁명의 길로 인도할 '정치적 총참모부'로서 방가르드가 필수적이라는 "전위당론"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전위당 조직이 작동하는 핵심 원리는 '민주집중주의'입니다. 당원 간의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되(=민주), 일단 결정된 노선에 대해서는 전 당원이 일사불란하게 복종하고 집행한다(=집중)는 사상입니다. 이는 탄압이 일상적이었던 제정 러시아의 폭압적 정치 지형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술이었으며, 동시에 작은 조직이 거대한 국가 권력과 맞서 싸우기 위한 고도의 효율성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위당론은 그 혁명적 성과만큼이나 뼈아픈 역사적 교훈을 남겼습니다. 소수 정예의 혁명가가 대중을 이끈다는 발상은 '대중 위에 군림하는 관료주의'로 변질되었고, 혁명을 위해 도입된 규율과 집중은 당이 국가를 독점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생명 위에 군림하면서 모든 인간들이 궁극으로 추구해야 하는 생명 존중 정신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전위당이 만들어낸 사상이라는 카리스마는 급진적 사회변혁을 극대화한 엔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와 민주적 정당성이 유린될 때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거울처럼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해 낸 말이 회월 박영희가 남긴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고 잃은 것은 예술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정치가 만들어낸 방가르드와 문학예술이 만들어낸 아방가르드, 이 두 단어는 뿌리가 같은 말이지만 그 지향하는 방향은 이처럼 그 끝이 달랐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이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누가복음 16장 15절)
이 가르침은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허울 좋은 이름에 미혹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세상의 권력이나 이념의 지도자들(전위부대)은 사람의 눈을 속이려는 것일 뿐, 그 본질은 모든 생명은 덧없는 것이니 서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그저 한 개의 생명일 뿐이고 인간의 이름은 “우티스(Outis)!” 곧 “아무것도 아니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잊지 말고 "너희가 대접 받고자 하는 그대로 이웃을 대접" 하며선 서로 사랑하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인용함은 인류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이기 때문이고,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가 “종교는 아편”이라 단정하고 우리 의식에서 종교적 가르침을 몰아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인간 세상을 완벽하게 성찰한 복된 소식이기에 '복음'이라는 이름이 지워진 것입니다. 인간 영혼의 암흑에 비치는 위대한 성찰이자 각성이기에 그 문장을 상고하고 의지하여 생명의 길을 밝히라는 작가로서의 각성과, 그것이 모든 인류가 추구해야 할 바른 길임을 전하려는 내 간절한 마음표현의 방식일 뿐입니다.
[주석] 전위당과 그 집행 조직의 관계
전위당이 사상을 창출하고 국가를 지배하는 최고 정치 정당(소련 공산당, 중국공산당, 조선로동당 등)이라면, 홍위병(중국)이나 붉은 청년 근위대(소련), 노농적위군(북한) 등은 그 전위당의 명령과 사상적 영향력 아래 실제 물리력을 행사하며 투쟁을 벌인 행동대 및 민병대 성격의 조직. 이들 집행조직은 전위당이 자신들의 권력과 혁명을 유지·보위하기 위해 만들어낸 '손과 발'로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음. 이들의 용도는 권력을 잡기 위한 책략으로 쓰는 것일 뿐이며,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