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월악산 신선폭의 사이비 도사와 팔봉
그레이트 트랑고로 해외 원정등반을 다녀온 후 윤대훈은 자유인, 즉 프리랜서가 되었는데 아무때나 일어나고, 산에 가고, 암장가고...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족속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가 하늘로 영영 가신 분들이 몇 분 계시다.
내가 알기로는 고운(孤雲) 최치원선생과 홍의장군 곽재우장군이 그런 분들이다.
이슬먹고 개울물 퍼마시다 하늘로 신선되어 가신 분들.
우린 그런 분들을 '우화등선' 했다고 표현한다.
대훈과의 인연은 대부분의 산악인들의 만남처럼 우연이었다.
2001년이던가 당시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에서 처음으로 인공등반대회를 인공외벽에서 열었고, 당시 그 학교를 막 졸업한 나는 대회 운영위에서 내미는 제안을 몇 번 거절하다가 결국 수락을 하고 말았다.
행사사회의 경험이 전혀 없는 내게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오직 하나 술자리에서 야부리를 잘 푼다는 거시었다.
목소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고민하다가 술자리의 야부리, 음담패설 컨셉을 애드립으로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당시 대훈이는 사람과산 기자 신분으로 대회 취재를 나왔는데 나의 그 재치있고 순발력있는 입담. 걸쭉한 음담패설에 그만 뻑이 가는 바람에 나의 골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흘러 종로 장비점 골목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대훈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대훈이는 술을 물처럼 마셨다. 아니 보약처럼 마신 듯 했다.
나도 술이 약한 편은 아니지만 대훈이의 술빨에 밀려 비실대다가 필름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 되어 어떻게 헤어져 집에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뒤 나는 빙벽등반을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서 정승권등산학교 빙벽반에 입학을 했다.
그전까지는 산악회 후배들과 겨울이 되면 빙벽을 계속 해왔지만 도무지 실력이 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 녀석들도 빙벽등반의 테크닉을 모르기는 마찬가지 였는데, 나보다 젊고 힘이 좋으니 그나마 버틴 것이었다.
나는 그 녀석들 몰래 등산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래서 빙벽실력을 키워서 녀석들 놀래키기도 하고 선등도 깔끔하게 설 요량이었다.
1993년 정승권 암벽반 교육 신청을 해서 지금은 없어진 우이산장앞에서 이론 교육을 받고 곰바위로 이동해서 하루짜리 암벽교육을 받은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실로 감개무량했다.
당시 빙벽반은 나처럼 빙벽을 하다가 실력이 늘지 않거나 정체된 사람들, 혹은 빙벽을 아예 해보지 않은 초보자들도 많았는데, 교육생 중에 등반실력이 군계일학격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빼어난 등반실력으로 졸업하자마자 강사로 위촉되어 지금껏 활동하고 있는데 바로 제니아빠 김지성이다.
암튼 그런 이유로 나의 최종학력은 '정승권등산학교'가 되어버렸다.
그 때가 2002년 인가 2003년인가 헷갈리네...
당시 판대아이스파크에 물을 뿌려 얼음을 얼린 첫 해였는데 100미터 빙폭을 승권형이 초등을 하기도 했었다.
상황이 그러하니 빙벽반 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를 않아 매주 서울 근교의 빙폭을 일주일 도리로 찾아가 교육을 했다.
첫 주는 수락산 금류폭 은류폭에서 프렌치 테크닉을 교육 받았고, 그 뒤 명성산 바름폭, 철원의 매월대 짧은 빙폭, 양주 가래비 산학폭 그리고 월악산 신선폭에서 마지막 교육을 했다.
당시 월악산 닷돈재 휴게소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구보를 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당시 젊은 교육생 하나는 개울가에서 웃통을 벗고 목욕을 하는 젊은 치기를 보이기도 했다.
이름이 양준원인가로 기억되는데...
암튼 아침식사를 마치고 신선폭으로 이동을 해서 빙벽반 마지막 교육을 받았다.
빙벽등반 교육을 받다가 잠시 시간이 나서 폭포옆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선폭 바로 옆에는 동굴이 있었고 그 동굴에는 도를 닦는 도인이 한 명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우연히 그 도사와 인사를 하고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도사도 계속되는 공부가 무료했는지 아니면 우리가 빙벽하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구경을 나온 것이다.
그 때 난 도사의 외모를 보고 날라리 도사, 즉 엉터리 사이비인줄 알았었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다시말해 내공이 심후한 무림의 절정고수인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눈지 30여분이 지나자 그 도사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기 시작했다.
피켈들고 얼음찍는 하찮은 속세의 나부랭이인 줄 알았는데 한 칼한다는 식의 적잖이 놀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시었다.
당시만 해도 나도 오랜 술자리에서의 음담패설과 오래동안 섭렵한 무협지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꺼리가 풍부한 야부리꾼이었다.
그 동안 읽은 무협지가 몇 권이던가.
소설 '영웅문'만 해도 세 번은 읽었고, 그 중 가장 재미있는 3부 "의천도룡기"는 다 섯 번 이상은 읽은 듯 했다.
그걸 써먹기만 해도 하루밤은 꼴딱 세우며 이야기할 수 있는데 까짓 1시간이야 숨도 안쉬고 할 수 있었다.
암튼 그 도사와 대화를 하면서 그 도사의 입장을 생각해서 대화 주제를 도교쪽으로 하는게 맞겠다 싶어 고운 최치원선생의 이야기를 꺼냈고, 금강산에 천부경(일시무시일 '一時無時一'로 시작하는...)을 새겨놓았는데 그게 세상에 출현하게된 계기 등을 이야기했더니, 그 도사의 동공은 점점 커지지 시작했다.
- 도사
"음, 대단한 내공이시오.
우리 도교에서는 내공을 기준으로 하는 단계가 있는데, 최치원선생을 예수와 똑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오. 7階(계)에 해당하지요."
- 나
"그럼 역사상 누가 가장 높은 품계에 올랐었지요?"
- 도사
"음, 구봉선생이라고 계시는데 그 분이 최고이지요. 그 분은 최고단계인 9계에 위치해 있지요.
저의 스승님도 그 구봉선생의 진전을 이어받은 분이라 할 수 있소."
나도 처음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내 산악회 후배 팔봉이는 알아도....
그래서 화제를 돌려 도사의 내공을 파악해 볼 겸 중국 무림사조격인 전진교의 왕중양을 아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어찌 그 분을 아느냐며 도사의 눈이 대문짝만하게 커지며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섯명의 천하고수가 있어 천하를 놓고 싸우다가 가장 무공이 강한 사람이 왕중양인데, 그 결과로 구음진경을 보관하게 되고, 그 때 생긴 이름이 동사서독 남제북개 중신통 어쩌구...
하는 썰을 침을 튀기며 숨도 안쉬고 10분간 풀어댔더니 나를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허, 대화를 나눠볼 수록 느끼는건데 어디서 그런 지식과 내공을 닦으셨소. 대단하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왕중양이 조선사람이라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하는 것이 아닌가.
난 도사와는 반대로 속으로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다.
내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내공이 깊은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왕중양이 조선사람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고, 소설 영웅문 즉 무협지에 나오는 캐릭터일 뿐인데 말이다.
참고로 소설 영웅문은 홍콩의 신문 명보의 주필겸 발행인 김용(金鏞)선생이 쓴 역작으로 세계적으로도 엄청나게 팔린 초베스트셀러이다.
그래서 김용을 달리 신필(神筆)이라고도 부르며 따르는 추종자 광팬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의 문학을 '김학'이라고 해서 분석하고 논문도 쓴다고 하니 참...
중국에서 만든 무협영화들 '동사서독' '의천도룡기'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소호강호' '천룡팔부'
'동방불패' 등등은 전부 다 김용이 만든 무협지의 내용들이고 그 책의 일부분을 옮긴 것들이다.
어쨌든 그 도사에게 얼마나 더 공부를 하느냐 물었더니 그해 겨울이 지나면 하산을 할 계획이란다.
그래서 뭐 할거냐고 물었더니,
신정부(당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었음)에서 불러주면 각료로서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여의치 않으면 세상에 내려가 제자를 한 명 키워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단다.
그러면서 나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어보는 것이 아닌가!
허걱,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 도사가 혹시 나를 제자로 찍은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혹시 팔봉이란 사람을 아시오?"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무슨 팔봉이?
나와 함께 산을 다니는 그 팔봉이?
"어허, 산악인 중 내 후배이면서 나이 차도 많아서 사위로 삼으려고 하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 이름이 팔봉이라오 혹시?..."
했더니 더욱 놀란다.
주말마다 한무더기씩 몰려와서 팔봉이 이름을 불러대는데, 이름도 특이하고 귀에 못이 박혀서 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더란다.
그래서 팔봉이 동생이 구봉이라고 했더니, 더 더욱 놀란다.
실제로 그랬다
법없이도 살만큼 순박한 팔봉에게는 동생이 한 명있는데 이름이 구봉이었다.
그런데 그 도사의 개파조사격이자 예수님보다 품계가 높은 구봉선생과 이름이 같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To be continued ...
첫댓글 ㅎ 글 오랜만에 보는군 ~^^
도사가 썰인지 사실을 썰처럼 풀은건지 재미있습니다.
글이 참 감칠 맛이 나네요.
추억하는 일들이란게 흘러가는 꿈의 조각들인 듯 합니다..
판대아이스파크는 2002년 12월부터 얼린 것 같은데요.
정빙등 동문이셨군요.
좋은 표현입니다
'추억하는 일들이라는게 흘러가는 꿈의 조각들이다'
맞습니다
판대는 02년에 얼리기 시작했고 승권형이 100미폭 초등을 했죠.
93년 정등 암벽반 교육을 받았고, 10년 뒤에 빙벽반에 들어간 겁니다.
당시 암벽반 교육은 하루짜리 교육이었어요. 곰바위에서 진행했었죠.
반갑습니다 동문님
역시 일상의 인연을 잘 쓰셨네~~~잘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