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시몬(10.28), 유다 타대오 (Jude Thaddaeus)(10.28)
시몬(10.28)
성인명 시몬 (Simon)
축일 10월 2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사이먼
예수님에 의해 열두 제자의 한 명으로 뽑힌 성 시몬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열혈당원’으로 소개될 뿐 그의 출신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다(마태 10,4; 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열혈당원은 로마 제국과 그 동조자들에게 무력으로라도 대항해서 유다의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믿고 행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 제국에 협조했던 성 마태오(Matthaeus, 9월 21일)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에 대항했던 성 시몬까지도 제자로 맞아들여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시는 당신의 뜻을 보여주셨다. 교회 전승 또한 그의 신원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거나 예수님의 첫 기적이 이루어진 카나의 혼인 잔치의 주인공 신랑이었다거나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 천사에게 전해 들은 목자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전승들도 있다.
서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 시몬은 이집트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성 유다 타대오(Judas Thaddaeus)와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활동했고, 페르시아(Pers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성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고, 성 유다 타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시몬을 표현할 때 보통 큰 톱이나 십자가가 주로 등장한다. 동방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카이사레아(Caesarea)의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1월 2일)는 성 시몬이 에데사(Edessa)에서 평화로이 선종했고, 그의 무덤과 그에게 봉헌된 성당이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코카서스산맥 서쪽의 니코피우스(Nicopius)에 있다고 한다.
서방교회는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는 전승에 따라 8세기 이후 그들의 축일을 10월 28일 같은 날에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8일 목록에서 가나안 사람으로 불리는 성 시몬이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파했고, 성 유다 타대오와 함께 페르시아로 가서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가나안 사람 또는 열혈당원이라는 별명은 얻은 성 시몬과 타대오라고도 불리는 성 유다 사도의 축일을 함께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교회는 성 시몬의 축일을 5월 10일에 기념한다.♣
유다 타대오 (Jude Thaddaeus)(10.28)
성인명 유다 타대오 (Jude Thaddaeus)
축일 10월 28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경
같은이름 다대오, 다두, 유다스, 주다스, 주드, 타대우스, 타데오, 타데우스
예수님에 의해 열두 사도로 뽑힌 제자 중에는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둘 있다. 루카 복음 6장 16절에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 나온다. 마르코 복음과 마태오 복음의 열두 사도 명단에는 유다 대신 ‘타대오’(마르 3,18; 마태 10,3)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는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 한 사람이 유다식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동시에 갖는 일이 흔했다. 따라서 유다(Judas)의 그리스식 이름이 타대우스(Thaddaeus, 또는 타데우스, 타대오)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도 성 유다는 자연스럽게 ‘유다 타대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따르면 사도 성 유다는 신약성경에 있는 유다 서간의 저자와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부르심을 받은 이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 주시는 이들에게 인사합니다.”(유다 1,1) 이에 따르면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친척 형제 중 한 명이 된다(마르 6,3; 마태 13,55). 그는 또한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성서학자들은 가톨릭 서간 중 하나인 유다서 1장 1절에 나오는 유다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에 속한 유다이지만 유다 서간의 저자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사도 성 유다의 이름을 빌려 익명의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려 쓴 ‘가명 서간’으로 보고 있다.
초기 문헌인 “시몬과 유다의 수난기”에 따르면, 성 유다 타대오는 성 시몬(Simon)과 함께 시리아와 소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페르시아(Persia)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이교도의 사제와 예언자들과 논쟁하다가 그들의 신상을 무너뜨려 처형되었는데, 성 유다 타대오는 창에 찔리거나 도끼로 참수형을 당했고 성 시몬은 십자가형이나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유다 타대오를 표현할 때 보통 창(미늘창) 또는 도끼, 그 외에 고문 도구였던 곤봉이 많이 등장한다. 그 외에도 성 유다 타대오는 성령 강림 때 다른 사도들과 함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마에 불꽃 모양의 성령을 표시하거나(사도 1,13) ‘에데사의 성화’로 알려진 예수님 이콘인 ‘만딜리온’(Mandylion, 천 위에 기적적으로 새겨진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이는 예수님 시대 에데사 왕국 아브가르(Abgar) 왕의 치유 기적과 관련 있는데, 예수님에 의해 파견되어 왕을 치유한 일흔두 제자(루카 10,1-12) 중 하나인 타대오와 성 유다 타대오를 혼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오류가 발견되었을 무렵 성 유다 타대오의 가슴에 만딜리온을 그리는 유행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서방교회에서는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가 함께 순교했다는 전승에 따라 8세기 이후 10월 28일을 두 사도의 축일로 함께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는 유다와 타대오를 다른 사람으로 간주해서 예수님의 형제인 유다는 6월 19일에, 타대오는 8월 21일에 기념해 왔다. 성 유다 타대오에 대한 공경은 아마도 동명이인인 유다 이스카리옷 때문에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 18세기에 비로소 그에 대한 공경이 활력을 찾았는데, 그동안 성 유다 타대오에게 봉헌된 성당이나 세례명으로 선택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전구를 청하면 꼭 이루어진다는 말이 퍼졌다. 그래서 신자들은 특별히 가장 곤란한 일을 겪을 때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경우에도 성 유다 타대오에게 전구를 청하면 꼭 도와주신다며 ‘절망에 빠진 이들의 수호자’로 공경하게 되었다. 그의 유해는 후대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의 부속 제대인 성 요셉 제대 아래 안장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8일 목록에서 가나안 사람 성 시몬과 타대오라고 불리는 성 유다 사도의 축일을 함께 기념한다고 하면서 성 유다 타대오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성 시몬과 함께 페르시아에 들어가 수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가나안 사람 또는 열혈당원이라는 별명은 얻은 성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타대오라고도 불리는 성 유다 사도의 축일을 함께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성 유다 타대오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2-23)라고 말씀하셨다는 일화를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