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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기 떡, 오메기 술
김 선 구
제주도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인으로부터 오메기 떡 맛에 대하여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다. 실체가 궁금하던 차 제주에 살고 있는 동생으로부터 오메기 떡 한 상자를 보내어 왔다. 상자를 개봉하고 보니 모양이 내가 아는 오메기 떡은 아니었다. 하나 먹어보니 맛은 달콤하여 입맛에 착 달라붙었다. 맛으로는 칭찬 받을 만 했다. 떡을 하나 골라 두 쪽으로 쪼개보니 가운데에 팥고물을 그득하게 넣어 달게 만들었다. 떡 맛은 팥고물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떡의 재료를 살펴보니 찹쌀이었다. 그래도 오메기 떡의 무늬를 내기 위하여 좁쌀을 살짝 섞은 흔적이 보였다. 떡의 모양은 여러 가지였다. 한입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자그만 하게 만들었는데, 팥고물을 떡 가운데 넣은 것, 팥고물로 떡을 포장하듯 겉에 붙인 것, 녹차로 떡을 물들여 색깔을 준 것 등, 팥고물을 여러 가지 색깔로 형형색색 장식하여 여러 모양으로 떡을 만들었다.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도록 맛과 모형을 변경시킨 상술이 여러 곳에서 묻어났다.
원래 오메기 떡은 찰조로 만들었다. 떡의 크기도 빵 정도 크고, 모양은 가운데가 빈 도너츠처럼 둥그스름했다. 근본이 없는 장사 떡에 ‘오메기’라는 전통적인 고유의 이름표를 달아 놓은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부아가 났다. 제주도 고유의 오메기 떡이 있는데 번지수에 없는 떡이 침범하여 마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듯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제 오메기 떡의 본래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족보를 알 수 없는 떡이 주인 노릇을 할 것이 자명하다
사실 오메기 떡은 떡 자체가 최종 생산품이 아니다. 제사용으로 만든 음식도 아니고, 보관해 두면서 이웃 간에 나누어 먹는 음식도 아니다. 오메기 술을 만들기 위하여 만든 중간제품일 뿐이다. 그러므로 오메기 술 만드는 날 식구들 간에 하나씩 나누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재수가 좋으면 이웃집에 놀러 갔다가 한 개 얻어먹고 오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떡의 모양이나 맛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제주 농가에서는 추수가 끝나면 햇 좁쌀을 이용하여 오메기 술을 담갔다. 좁쌀을 빻아 반죽한 다음 한 덩이 떼어내어 큼직하게 떡을 만들고 끓는 물에 넣어서 삶아 익혔다. 잘 익혀지게 하기 위하여 떡 가운데 부분은 크게 구멍을 내었다. 익힌 다음 곧 건져낸 떡은 젓가락질은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찰져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했다. 그 때 입속에 달라붙는 감칠맛이 오메기 떡의 진미이다.
오메기 떡은 식으면 바로 굳어져 버린다. 그러므로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뜨거울 때 손으로 주무르며 으깨었다. 준비된 누룩가루를 첨가하여 잘 섞이도록 오래 주물렀다. 이것을 항아리에 넣어 적당하게 물을 추가하여 휘저은 다음 햇볕이 잘 드는 작은 방 아늑한 곳에 놓아두면 오메기 술이 되었다.
오매기 술을 만들기 위하여 어머니는 초여름부터 누룩을 준비하였다. 맥주보리를 수확해서 탈곡한 쌀을 싸라기처럼 굵게 빻은 다음 촉촉할 정도로 물을 첨가해서 맷돌모양으로 정형하였다. 둥글게 만들어진 큰 보리떡을 보릿짚 더미 속에 묻어두면 발효되어 누룩이 되었다. 이 누룩은 유용하게 여러 용도로 쓰였다. 먹다 남은 밥이 변질되려면 누룩을 섞어 발효시켰다. ‘쉰다리‘라고 불리는 음식이 되었다. 끓이면 시큼 달콤한 맛이 별미였다. 또 오메기 떡하고 섞어두면 발효되어 오메기 술이 되었다.
추수가 끝나고 겨울준비도 다되어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 질 무렵 술 익은 냄새가 방 밖으로 스며 나온다. 글을 읽던 아버지에게도 그 냄새가 전해진다. 속이 출출해지면 “얘야, 작은 방에 가서 술 한 사발만 떠와라”하고 우리를 재촉 했다. 형제들 중 한사람이 얼른 작은 방으로 달려가서 항아리뚜껑을 열어젖혔다. 거기에 잘 익은 술 냄새가 향기로웠다. 걸쭉한 농주를 조금 떠서 한 모금 시식해 보니 맛이 좋았다. ‘한모금만 더’, ‘한모금만 더’ 하다보면 상당량 술을 축내버렸다. 그런 다음 비로소 아버지에게 한 사발 떠다드렸다.
오랜만에 보는 이웃집 아저씨나 외지에서 방문한 손님에게 술 한 사발 대접하는 것이 시골 농가의 인심이었다. 집에 온 손님에게 술 한 사발 대접하려고 술독을 열어본 어머니가 몰라보게 술이 줄어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를 향하여 “집에 있으면서 술만 축 낸다”고 볼멘 소리를 해댔다. 모든 누명은 아버지가 썼다. 어머니는 어린 우리들이 술 맛을 알고 먹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추석명절에 형제들이 모였다. 어린 시절의 얘기들을 하다가 아버지 몰래 먼저 술을 시식했던 잘못들을 이실직고하며 웃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소비한 술의 양을 짐작했을 터인데 한마디 변명도 없이 모든 잘못을 감내하셨다. 누가 술을 훔쳐 먹었는지 닦달을 했을 만도 한데 말이 없으셨다.
이제 가을색이 완연하다. 추수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스산한 가을바람에 조 잎사귀들이 부딪히는 소리가가 들리는 듯하다. 그 소리너머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며 이제야 이실직고하는 우리 형제들을 쳐다보는 것 같다. 실한 조 이삭이 고개를 숙이듯 지난날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에 더 깊이 고개가 숙여진다.
부모님과 함께 조를 심고 재배했던 농토는 개발바람이 불어 택지로 변했고, 주변에 조 농사하던 모습도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외국 농산물에 밀려 국내의 조 생산량도 크게 줄어들었다 한다. 그래도 근본 없는 오메기 떡이 옛 전통을 대신해 주고 있으니 다행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우리 힘으로 조를 재배하고 수확하여 오메기 떡과 오메기 술을 빚져서 부모님 제사상에 올려 볼 생각을 해보고 있다. (2016. 10. 02)
첫댓글 그렇게 가짜가 진짜되고 진짜가 망각되는 일이 어찌 오메기 떡과 술 뿐이겠습니까.
언제 그 진짜 오메기 술 한 번 먹어봐야겠습니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필방에 오면 고향냅새가 납니다. 어찌 이렇게 농촌 출신이 많은지요. 그 시절에는 직업중 농업이 대다수이었기도 했지만
오매기술 아직 맛은 못 봤지만 농주를 빚던 어머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농주를 담아먹는걸 법으로 금했기에 몰래 담거다 세무소 직원에게 들키기도 했지요. 조, 수수, 밀, 기장 흔하게 볼 수있었던 옛 곡식들이 들녁에서 눈에 띄이질 않습니다. 어려웠지만 지금은 행복했던 날로 기억됨은 풍요로운 것만이 행복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합니다.
"오메기 떡. 오메기 술" 을 잘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나다. 최상순드림
오메기 떡과 오메기 술에 관한 귀한정보 감사합니다.
제주도 여행중 좁쌀술을 먹어보았는데 도수가 높고 맞이 특이하여 기억이 납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것이 전통술과 다른지 긍금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전통적인 오메기떡과 오메기술에 대하여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메기술은 맛보지 못했지만 글을 통하여 주향이 전해오는 듯 합니다. 언제 한번 꼭 맛보고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주도 여행 다녀오면서 공항에 들고다녔던 오메기떡. 냉동실에 뒀다가 녹여서 먹기도 했었는데 회장님의 글을보니 또 생각이 나서 웃어봅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