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groaned, 탄식하시고/역자 주) 불쌍히 여기사
(요 11:33/킹제임스 흠정역)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녀가 우는 것과 또 그녀와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영으로 신음하시며(groaned, 탄식하시고/역자 주) 괴로워하시고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with groanings)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탄식의 기도'는 아마도 많이 생소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경험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사회문제나 각 직장의 문제, 가정 또는 학교에서 경험하는 불의한 일들에 분노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과 현재 경험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매치시켜야 하는지 의아하기도 합니다. 불의한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분노의 진짜 대상은 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악한 영이 어떤 사람을 통해 역사할 때, 악한 영의 쓰임을 받는 그 당사자는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영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사람뿐 아니라 어떤 현상, 국내 정세,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원수의 전략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때에 따라 필요한 경우 책망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에게 화를 내고 그 사람에게 쓴 뿌리를 품게 하는 것이 바로 원수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이용당해서도 안 됩니다.)
여기 정말 눈이 의심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Be angry, and do not sin" (NKJV)
‘분을 내어도’ 부분은 영어로 '화를 내어라(Be angry)'입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화를 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내야 할까요? 바로 인간사의 모든 고통을 야기한 사탄 마귀에게 화를 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되고 분을 품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구절입니다. 마땅히 발산해야 할 분노를 안에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탄마귀에게 화를 내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사탄마귀가 저를 괴롭힌다고 느껴질 때 그의 종말에 대해 알려줍니다. “이 더러운 영아, 니가 나를 괴롭혀도 나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한다. 너는 영원한 불못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운명이야!” 하고 저주합니다. 아주 서슬 퍼렇게 저주를 합니다. 그렇다고 원수랑 긴 시간 교제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짧지만 강력한 저주를 합니다. 그의 결말을 말해 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기도할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그때 하는 것이 바로 탄식(신음)인데 이에 관한 설교나 책이 많이 없기 때문에 잘 알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워맥 목사님의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사역 초창기 교회를 목회하실 때, 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시는데 끙끙 앓듯이 신음하면서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당시 성령께서 탄식하는 것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성령의 인도를 따라 계속 탄식과 신음 가운데 자신을 맡겼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지나자 뭔가 일이 해결되었다는 사인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해결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것을 말씀드리자면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북한의 10개 도시를 공부하고 축복 기도하라고 분명하게 지시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 1교시가 오전 8시에 시작했고 집은 학교에서 5분 거리였기 때문에 6시에 일어나면 충분한데 주님은 새벽 5시면 저를 깨워 주셨고 매일 북한의 10개 도시 중 하나에 대해 찾아보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당시에는 북한 관련 자료가 희귀한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도시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었고 성령님은 그 도시를 향한 아버지의 원래 계획을 저에게 알려 주시고 그 계획을 선포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10개의 도시에 대한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이유 없이 눈물이 주룩 주룩 흐르기도 했고 북한 사람들은 굶어 죽는데 뚱뚱하기만 한 미국인 학우들이 꼴도 보기 싫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저의 육신적인 반응이었고요)
당시 저는 이것이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중보하시는 거란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주님께 그 고통을 가져가 달라고 기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성경 말씀대로라면 저는 집에 돌아와서 성령님과 함께 탄식하며 신음해야 했습니다. 뭐라고 기도할지 몰르더라도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탄식하며 신음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저는 바이블 칼리지 학생 신분이었는데 북한의 미래를 놓고 기도한다고 했을 때 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 수나 있었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성령님과 신음하며 탄식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일이 아닌 나보다 더 큰 어떤 것, 그러니까 나라와 민족 그리고 내 조국의 교회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분노하고 화가 나는 것은 성령께서 '나와 함께 중보하자'는 초대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면 그냥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 가만히 계셔도 좋습니다. 내가 이 시기에, 이 사안에 대해 내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부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렐루야!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성령님께서 나를 통해 기도하시도록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