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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단11:10-19
2024년8월11일(주일) 오전11시 예배 설교 기동찬목사
10.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11.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13.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4.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15.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8.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오늘 주어진 다니엘 11장의 배경은 단10:1절과 단10:14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10:1.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큰 전쟁에 관한 것인데...
단10:14절에서 ‘이 예언은 오랜 후에 일이라.’고 합니다.
단10:14.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단11: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
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단 11:2-4 바사(페르시아)의 역사와 그리스(헬라제국)의 등장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페르시아)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그리스) 왕국을 칠 것이며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2절)라고 함은,
여기 세 왕 중에 첫 번 째 왕이, 고레스(키루스)입니다.
고레스의 어머니는 만다네(메대의 아스티아게스 왕의 딸)이고, 아버지는 바사(페르시아)의 캄비세스1세입니다.
하루는 메대의 아스티아게스 왕이 꿈을 꾸는데, 공주 만다네가 소변을 보는데, 온 아시아가 다 잠깁니다. 술사들의 해석을 들어 보니, 공주 만다네 아들이 세계를 다스리게 된다고..
이 해석을 들은 메대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만다네 공주를 남쪽 바사(페르시아)의 캄비세스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메대에서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시집보낸 1년 후에 다시 꿈을 꾸는데, 이번에는 공주 만다네의 아랫배에서 포도 넝쿨이 뻗어나가는데, 온 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갑니다. 해석은 한결 같은 것입니다.
매대의 아스티아게스 왕은 사람을 보내어 메대의 엑바타나의 가장 좋은 조산원에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전갈을 보내어 공주 만다네가 메대의 수도 엑바타나(성경의 악메다)로 와서 아기를 낳게 됩니다.
메대의 왕 아스티아게스는 신하 하르파고스를 시켜서 아기를 낳는 순간, 잘 받아 숨이 끊어지게 하고, 사생아라고 얘기하고 땅에 묻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하르파고스가 산파를 시켜서 목욕을 시키는 것처럼 해서 빼내가지고 떨리는 손으로 죽이기 위하여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왕 아스티아게스가 하는 일이 옳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후에 만다네 공주가 이 일을 알게 되면 자기의 목이 달아날 것을 생각하고 두려워 그 아기를 자기 집 하인에게 넘겨주면서 ‘네가 반드시 아이를 죽여서 땅에 묻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하인의 아내가 아기를 낳다가 사산을 합니다. 하인은 아내 모르게 죽은 아이와 공주의 아이를 바꾸어서 땅에 묻고는 만다네 공주의 아들을 자기 아이인 양 기르게 되었고 세월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면서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하인의 아들인 주제에 골목대장 정도가 아니라 언제나 임금 놀이를 하는데 대신들의 아들들을 다 신하로 삼고 왕노릇할 뿐만 아니라, 군기가 엄하여 불충한 아이들을 엄하게 벌을 주고 있다는 소문이 왕궁에 들리게 됩니다.
아스티아게스 왕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 생각하고 신하를 불러 그 아이를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아스티아게스 왕이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서 기절할 뻔했는데, 이유는 아이의 얼굴이 만다네 공주의 얼굴과 너무나 꼭 닮았다는 것입니다. 아스티아게스 왕이 정신을 차리고 하르파고스 신하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이실직고하라고 호통쳤습니다. 숨길 수 없는 줄 알고 하르파고스가 사실대로 토로하자 왕이 그날로 그 아이를 왕궁으로 불러서 궁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아스티아게스 왕이 하르파고스 신하를 만찬에 초대하여서 만찬석에 들어서니까 이상하게 하르파고스의 식탁에는 검은 보자기가 덮여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검은 보자기를 걷어내자 거기는 하르파고스의 아들을 바비큐로 만든 요리가 그 아들의 머리와 함께 차려져 있었다.
아스티아게스 왕이, 왕의 명령을 어긴 것을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처벌한 것입니다. 하르파고스는 얼굴을 감싸쥐고 만찬장에서 물러나왔습니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 누웠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만다네 공주는 엑바타나로 올라와 왕궁에서 자라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 씩씩하게 자랐습니다.
만다네 공주는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자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을 큐노(하르파고스 신하의 아내 이름=암 이리)의 아들이라고 하여 키루스(고레스)라고 지었습니다.
고레스는 훌륭한 인품과 덕망을 갖추고 건강하고 용감하게 자라났습니다. 한편 아스티아게스 왕에게 복수하기로 마음 먹은 하르파고스는 이따금씩 고레스에게 선물을 보내곤 했습니다. 일개 신하로서 개인적인 힘으로는 아스티아게스 왕에게 복수할 길이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나중에 외손자 고레스가 메대와 바사를 다 통합하게 됩니다.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 왕을 평생토록 고레스 자기 곁에서 살게 합니다. 아스티아게스 왕의 딸 만다네 공주의 아들, 바사의 캄비세스 왕의 아들이 고레스 왕입니다. 사람이 한 어린 생명을 죽이고 싶어도 그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성장한 만다네 아들이 고레스입니다.
①고레스(Cyrus; B.C.559-530) ② 캄비세스2세(CambysesⅡ; B.C.530-522) ③ 다리오 히스타스페스 B.C.522-485) 그리고 네 번째 왕은 막강한 군대를 거느렸던 ④ 에스더의 남편 크세르크세스(Xerxes B.C.486-465), 아하수에로 왕을 가리킵니다.
“그 후의 넷째”(2절)는 크세르크세스(Xerxes B.C.486-465),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왕인데, 이 분이 그리스를 공격합니다. 공격하기 전에 왕은 잔치를 베푸는데 180일을 베풉니다.
에1:1.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2.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3.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에1장).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1:4). 잔치를 열게 된 이유는 군인들이 한꺼번에 잔치할 수 없으니 180일 간 교대로 보초도 서고 근무도 하면서 잔치한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3년(B.C.483년 - B.C.480)동안 그리스와 전쟁했는데,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당시 페르시아를 도와서 전쟁에 나간 주변 민족(국가)이 40민족이나 되었습니다.
이 내용이 성경에 예언 되어 있는데,
단11:2.“...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2절)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 그대로, “모든 사람을 충동하여”(2절) 당시, 40개의 국가의 청년을 용병으로 불러 들여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단8:5...한 숫염소가 서쪽에서부터 와서...
6....분노한 힘으로 그것에게로 달려가더니
7.내가 본즉 그것이 숫양에게로 가까이 나아가서는 더욱 성내어 그 숫양을 쳐서 그 두 뿔을 꺾으나 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8.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단8장에서 숫양은 ‘페르시아’이고 숫 염소는 ‘그리스’인데, 숫염소 그리스가 분노하여 둘이 싸우는데 숫양이 엎어졌는데 분노함으로 또 짓밟았다고 했습니다(7절). 서로 간에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바사와 그리스’ 사이에 감정이 좋지 않은 것 까지 다 예언해 놓은 것을 봅니다.
단8:7...숫양에게는 그것을 대적할 힘이 없으므로 그것이 숫양을 땅에 엎드러뜨리고 짓밟았으나 숫양을 그 손에서 벗어나게 할 자가 없었더라
8.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바사 제국이 그리스(헬라제국) 알렉산더에게 패했는데, 알렉산더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왕입니다. 하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 인하여, 안티고누스가 나라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도 잠시 4명의 장군에 의해서 그는 제거되고 그리스(헬라제국)은 네 개의 나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미 가르쳐 주시길,
단11: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단11: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
“자기 마음대로 행”(3절)하는 이는 마게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336-323)입니다. 그는 큰 권세로 인하여 점령당한 주변국가에서 자신을 신처럼 추앙함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극히 교만하여 진 후 갑작스런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힘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로 사용해야 합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아래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격려하고 도와 주는 일에 사용해야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알렉산더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언된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그리스는 네 나라로 분열되었습니다.
1. 셀레우코스(셀류커스) 건국 B.C.312 B.C.312-281(31년통치)
2. 카산드로스(카산더) 건국 B.C.305 B.C.305-297(8년통치)
3. 프톨레마이우스(프톨레미) 건국 B.C.305 B.C. 305-282(23년통치)
4. 리시마코스 건국 B.C.288 B.C.288-281(7년통치)
셀류커스와 프톨레미는 왕조의 뿌리를 잘 내리고 후계자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카산드로스와 리시마코스는 일찍 죽고 그 나라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셀류커스는 카산더와 리시마코스 두 나라를 먹음으로 덩치를 키웠습다.
처음에는 4개에서, 두 개의 나라로, 셀류커스는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북방 시리아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고, 프톨레미는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남방 이집트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프톨레미가 남방 왕이 되고, 셀레우코스(셀류커스)가 북방 왕이 되었습니다.
단11:5.남방의 왕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남방 왕 프톨레미의 부하가 옛날 그리스 시절에 셀레우코스였다. 알렉산더 밑에 있을 때는 한 팀이었습니다. 셀류커스는 프톨레미의 오른팔이었습니다. 하지만 셀류커스가 나중에 독립하는데, 새로운 왕조로 탄생합니다.
단11:5.남방의 왕(프톨레미는)들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북방 왕 셀류커스)가 심히 클 것이요
예언이 역사 속에서 정확하게 성취되된 장면입니다. 프톨레미의 부하였던 셀류커스가 영토를 더 크게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단11:5-15까지 예언된 나라는 남방 왕과 북방 왕 사이에 “큰 전쟁”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언하신 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계속해서 북방 왕과 남방 왕은 어떻게 하면 공격할 수 있을까, 틈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후에, 북방 왕은 전쟁 준비를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고, 그의 아들 셀레우코스3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이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뒤로 안티오커스 3세가 즉위했고, 동생이 형을 죽이고 왕좌에 올랐습니다.
단11:10.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안티오코스3세/ 제4차 시리아 전쟁
B.C. 219년, 제국을 안정시킨 안티오커스 3세는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 시리아 남부로 진격했고 이리하여 제4차 시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을 하는 동안 그는 셀레우키아 피레우스, 티레, 프톨레마이스와 같은 동부 지중해의 주요 항구들에 대한 통제권을 얻었으며, B.C. 218년에는 코일레-시리아(레바논), 팔레스타인, 페니키아를 손에 넣었다.
북방의 군대가 남방의 군대를 공격하니, 남방 왕이 한 대 얻어 맞습니다. 그러니 또 복수를 해야겠지요,
단11:11.남방 왕(프톨레미4세)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안티오커스3세)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북방 왕) 무리는 그(남방 왕)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북방 왕이 “큰 무리”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지만 예언에 의하면,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가, ‘남방 왕’이 이길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안티오코스 3세/ 3.2 제4차 시리아 전쟁
이집트는...단기 결전으로는 셀레우코스 제국군을 이길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지구전을 계획했고, 능변가를 특사로 보내 이집트가 곧 항복할 것처럼 속이며, 타결될 듯 타결되지 않는 협상을 진행시켜 안티오코스 3세의 이집트로의 진군을 지체시켰다. 그동안...군을 재소집하고, 용병도 최대한 긁어모아 B.C. 217년 팔레스타인 수복에 나섰다.
셀레우코스군은 약 70,000명, 프톨레마이오스군은 약 80,000명... 코끼리도 투입되었는데, 셀레우코스 제국의 인도 코끼리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아프리카 코끼리에 승리를 거두었다.
이집트군은 대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안티오코스 3세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적진으로 너무 깊이 진군했고 그 사이, 제정신을 차린 이집트군이 셀레우코스군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셀레우코스군의 패색이 짙어졌고, 괴멸되었다.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자 안티오코스 3세는 자신이 패배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셀레우코스군은 라피아의 참패를 뒤로 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했습니다.
남방 왕 프톨레미 4세가 승리에 취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을 돌면서 개선행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팔레스타인 땅에 누가 살고 있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남방 왕 프톨레미 4세가 예루살렘에 들러서 예물을 드리고 지성소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지성소가 어떤 곳인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가는 곳이다.
여기를 남방 왕 프톨레미 4세가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막습니다. 순교하면서...
전쟁에 승리해서 기분 좋게 들어가려했는데,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프톨레미 4세가 유대인에 대한 반감 가짐.
알렉산드리아에 돌아가서 유대인들이 코끼리들에게 밟히도록 쇼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끼리들이 유대인들을 밟지 않고 피해 다녔습니다.
코끼리들이 채찍에 맞으면서도 유대인들을 밟지 않았던 것,
이 모습을 본 왕이 신기하게 생각, 하나님이 저들을 지켜 주시는가,
유대인들을 일단 풀어줌. 그러나 유대인들에 대한 감정까지 풀린 것은 아님.
3년 후에 유대인 4만 명을 잡아서 분풀이를 합니다.
단11: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북방 왕과 전쟁에 승리해서...마음이 교만해 진 왕이 “수만명을 엎드려뜨릴 것”(12절)이라고 했는데, 유대인 4만 여명을 학살한 사건을 두고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그 세력은 더 하지 못할 것이요”(12절)라고 한다.
북방 왕(셀류커스)이 남방 왕(프톨레미)에게 패하고 후퇴합니다. B.C.205년에는 인도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그 때 안티오커스 2세는 그리스인들에게 대왕의 호칭을 얻었습니다. 땅도 넓히고 이제, 이집트를 치려고 합니다.
단11:13.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많은 무기를 가지고 온다는 말입니다. 북방 왕이 남방 왕을 공격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때 남방 왕, 이집트의 프톨레미 4세는 죽고, 프톨레미 5세가 왕이 됨. 문제는 왕의 나이가 6세. 그래서 총리가 섭정. 그러다가 쫓겨나게 됨. 이 틈을 타고 북방 왕(셀류커스)이 쳐들어옵니다.
단11:14.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프톨레미5세)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북방 왕과 남방 왕이 싸우는 가운데, 유대인들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남방왕 프톨레미 왕조와 북방 왕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 끼여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남방 왕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B.C.198년 북방 왕 안티오코스 3세가 남방 왕에게 승리합니다. 100년 이상 유다에게 포악하게 한 남방 왕이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단11:14.“...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14절)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되어지는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동시에 북방 왕의 그늘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더 고생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품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북방 왕 안티오커서 3세가 죽고, 안티오커스 4세가 왕이 되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입니다.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서는 (셀류커스 왕국 8대왕 에피파네스 B.C.215-164)자신의 영토에 있는 모든 민족을 헬라화 하길 원했고, 그래서 다른 민족은 헬라 문화를 수용하게 함. 다른 민족은 쉽게 되었는데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이 안 됨,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유다를 헬라화 하기 위해 세운 목표,
1. 예루살렘 성전의 상번제 폐지
2. 성전 앞에 우상의 제단을 세우고 돼지를 제물로 받침
3. 안식일과 할레 금지
4. 하나님 대신 제우스 숭배 강요
5. 반대하면 안식일에 들어가서 가차 없이 죽임.
단11: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고대의 무기로는 돌로 쌓은 성을 어떻게 할 수 없음.
성에서 문을 잠그면 그 성을 넘어가기 위해 그 옆에서 토성을 쌓았습니다.
남방 이집트의 영토 B.C.201 가자 Gasa성이 함락, B.C.198 시돈성이 함락.
남방 이집트의 스코파스 장군도 북방 군대를 당해내지 못함.
단11:15. 이에 북방 왕(안티오코스3세)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가자 성과 시돈성) 남방 군대는 그를(북방 왕)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남방 왕) 택한 군대라도(남방의 유능한 장군 스파코스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방 왕과 북방 왕의 큰 전쟁을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을 통해서 미리 다 봤습니다.
오늘 단11:2-15절까지의 해석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
남방 왕과 북방 왕이 전쟁하는 중에, 후에는 로마군의 등장하고 개입하게 됩니다.
단11:16절 부터는 로마가 등장. 로마가 등장한 후로는 예수님이 등장.
15절까지는 헬라제국의 역사였고, 4개의 나라에서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나라 사이에 로마가 개입하게 됩니다.
16절부터, 로마가 등장합니다.
단11:16.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6절 이 후 부터는 B.C.64년 이 후에 역사적인 시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단11:16.“영화로운 땅에 설것이요”라고 했는데, 이는 로마가 유대인의 땅에 설 것을 말합니다.
로마제국의 유대사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과 그 주변을 기원전 B.C.63년경에 정복했습니다. 로마인들은 군림하던 유대의 하스몬 왕조를 폐위시켰고 로마 원로원은 기원전 B.C.40년에 헤로데 대왕을 ‘유대인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유대인은 로마의 속국이 됩니다.
16절...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누가멸망? 영화로운 땅 이스라엘이....
다니엘이 예언하고,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 A.D.70년 8월 4일 예루살렘은 멸망.
단11: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17절 이후부터 로마제국에 관한 예언.
로마가 탄생했을 때, 로마에는 황제가 없었다. 한 사람이 권력을 차지한다는 것은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로마는 삼두정치체제를 갖추었습니다. 3사람의 집정관에 의해서 합의정치를 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세 사람 중에 크라수스가 B.C.53년에 사망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남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서로 견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B.C.49년 1월 12일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결판을 내기 위하여 로마로 들어가기 위하여 루비콘 강을 건넙니다.
로마의 장군들이 이 강을 건널 때는 로마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무장해제를 하고 들어갑니다. 무장한 채로 로마에 들어간다는 것은 반역으로 여겼습니다.
루비콘 강에서 율리우스 카이샤랴가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용모가 고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피리를 불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 중에 나팔을 든 나팔 수가 있었습니다. 피리를 불던 사람이 갑자기 나팔수의 나팔을 가지고 진격의 나팔을 불며 강을 건너며 뛰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자 군사들이 강을 건너라는 신호인 줄 알고 그대로 강을 건넜다는 것입니다
율리우스 가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폼페이우스를 이깁니다.
폼페이우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지고 이집트로 도망갔습니다. 율리우스 가이사르는 그를 남방 이집트까지 따라 갑니다 이 때 남방 이집트는 프톨레미 3세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15살이었습니다.
처음에 폼페이우스를 받았다. 그런데 판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먼저 폼페이를 죽여 가이사랴에게 받칩니다. 카이사랴가 도착해 보니, 폼페이우스가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 장면을 보고 카이사랴는 눈물을 흘립니다.
지금은 적이었지만 한 때는 동료였고 조력자였고,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폼페이우스, 그리고 자신의 사위이기도 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랴는 이집트가 폼페이우스를 죽인 것을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 그래서 내친 김에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공격해서 점령해 버립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만듭니다. 이집트 운명이 여기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당시 이집트 상황은 프톨레미 12세. 그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능이 있었던 클레오 파트라에게 이집트를 물려 주려고 했습니다. 클레오 파트라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하고, 10개 국어를 구사하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딸입니다.
프톨레미 12세는 딸 클레오파트라와 이복동생 프톨레미 13세와 결혼을 시킵니다. 클레오 파트라는 18살 이복동생은 11살 이었습니다.
프톨레미 13세가 처음에는 누나 말을 잘 들었는데, 후에는 나도 왕인데 왜 누나가 다 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누나랑 권력 싸움을 하고, 후에는 클레오파트라를 귀양을 보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랴가 이집트에 내려 왔을 때는 프톨레미13세가 단독으로 왕을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 때 클레오파트라가 기회를 포착하게 되는데, 클레오 파트라가 율리우스 카이사랴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클레오 파트라가 신하들을 변장 시켜서, 상인으로 만든 다음, 양탄자에 자기를 둘둘 말아서 율리우스 카이사랴에게 선물로 갔다 주라고 합니다.
어느날 이집트 상인들이 율리우스 카이사랴에게 선물을 가져 왔다고 하면서, 양탄자를 보여 줍니다.
카이사랴는 의심하는 눈빛으로 무슨 선물이냐,
신하들이 돌돌 말린 양탄자를 율리우스 카이사랴 앞에서 쫙 펼쳐 보입니다.
그 때,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계의 여인 ‘클레오 파트라’가 반라의 몸으로 율리우스 가이사랴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22세의 클레오 파트라를 보는 순간, 53세의 카이사랴가 마음에 들어 반합니다. 이렇게 둘은 만나고. 둘 사이에서 ‘카이사리온’을 낳게 됩니다. 훗 날, 이 아들은 프톨레미 15세가 됩니다.
율리우스 가이사랴는 폼페이우스를 제거 하고 로마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이런 저런 일들로 즉시로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많이 체류 했습니다. 로마 최고 권력자가 된 가이사랴가 로마를 비우고, 딴 살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율리우스 가이사랴의 계획은 이집트를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클레오 파트라를 보는 순간, 그녀에게 약속, 내가 이집트는 건드리지 않을게, 당신 마음대로 다 가져, 하고 클레오 파트라에게 아낌 없이 다 퍼 준 것입니다.
한편, 로마는 최고의 권력자가 자리에 없으니 그곳은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니 율리우스 가이사랴는 본국 로마로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랴를 대적할 인물이 없어진 것입니다. 종신 독재자가 된 것입니다. 황제는 아니지만 황제와 같은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원로원은 로마에 황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율리우스 가이사랴가 원로원 회의장으로 들어 갈 때, 60여명 달려들어 율리우스 카이사랴에게 23번을 찔러 죽입니다. 가이사가 로마 황제의 고유 명사가 된 것입니다.
막12: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예수님이 가이사라고 한 것은 로마 황제를 말한 것인데, 이 가이사는 율리우스 카이사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로마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 봤습니다.
단11:17.그가(율리우스 가이사르) 결심하고(루비콘 강을 건너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도망친 폼페이우스를 잡으려고 온 힘을 다하여 이집트에)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절세 미인 클레오파트라를 가이사르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클레오 파트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통해 이집트와 로마까지 얻으려고 했지만 카이사르는 죽음 후 클레오 파트라와 아들 카이사리온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못하게 되리라).
18.그 후에(이집트의 주권을 인정해 준 후에) 그가(가이사르)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해안 지역에 있는 폼페이우스의 잔당과 두 아들을 숙청하고 로마의 종신 독재관이 되었으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아들 같은 브루투스 장군에게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미리 암시)
19.그가(카이사르)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로마)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원로원들에게 23번이나 칼에 찔려 암살당하는데 신복 브루투스에게까지 깔에 찔렸다. 브루투스 너마저)
이렇게 긴 역사가 성경에는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리우스 가이사랴가 죽은 후에 그의 유언장이 공개 되었습니다.
1. 재산의 4분의 3은 옥타비아누스에게 남긴다.(조카이자 양자)
2. 제1상속인 옥타비아누스가 상속을 사양할 경우, 상속권은 브루투스에게 돌아간다.
3. 옥타비아누스가 상속할 경우, 유언집행 책임자로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를 지명한다.
4. 수도에 사는 로마 시민에게는 일인당 300세스테르티우스씩을 주고, 테베레강 서안에 있는 카이사르 소유 정원도 시민들에게 기증한다. 이 일을 실행할 책임자는 제1 상속인으로 한다.
여기에 자신의 친 아들 ‘카이사리온’이 빠져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실망하여 아들 ‘카이사리온’을 데리고 급히 로마에서 이집트로 떠나갑니다.
17절 마지막에 ...그에게 무익하리라.
는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클레오 파트라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따라 로마까지 왔지만 다시 빈손으로 이집트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 유언장 때문에 서운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는데, 안토니우스입니다.
가이사르의 모든 군대를 지휘한 장군은 안토니우스입니다. 그런데 18세 옥타비아누스에게 다 넘길 판입니다. 권력의 구도가 두 사람으로 인해서 나누어짐.
상속자는 율리우스 가이라샤의 조카 18세, 옥타비아누스와 39세 장수 율리우스의 오른 팔 안토니우스였습니다.
이제 이 둘은 서로가 경계의 대상.
율리우스 가이사르가 죽은 후 3년 만에 클레오 파트라는 경륜 있는 안토니우스에게 손을 내 민다. 당시 안토니우스는 42세, 클레오 파트라는 28세.
안토니우스는 클레오 파트라를 보자 말자 자기 여인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함께 11년을 살면서 3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클레오 파트라가 처음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안토니우스에게 접근을 했지만, 11년 동안 애도 낳고 같이 살다 보니, 진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B.C.31년 9월 2일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스가 그리스의 악티움이라는 바다에서 운명을 가르는 전투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옥타비아누스 가 승리합니다.
안토니우스는 퇴거를 했고, 클레오파트라도 몸을 숨겼습니다. 이 전쟁 통에, 서로에 대한 소식을 모른 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해서 죽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그래서 안토니우스도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친구가 급히 와서 클레오 파트라가 죽은 것이 아니라 지방에 숨어 있다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안토니우스는 마지막으로 클레오 파트라를 보고 싶어 했고, 부상 당한 안토니우스를 급히 클레오 파트라에게 데리고 갑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 파트라를 보고 그녀의 품에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둠,
안토니우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전해 졌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 파트라도 죽겠다 싶어 서둘러 그녀를 찾았습니다.
클레오 파트라는 로마에 끌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챙피를 당하느니 그냥 안토니우스 뒤를 따르겠다고 함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합니다. 그녀를 모셨던 두 하녀도 같이 클레오 파트라의 뒤를 따릅니다. 이집트는 멸망했고,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이집트를 정복한 옥타비아누스는 로마로 돌아가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종신 독재관이 됩니다.
로마의 반란과 모든 전쟁을 끝내고(B.C.27-A.D.180), 로마에 평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것을 세계사에서는 ‘팍스로마나’라고 합니다.
옥타비아누스가 모든 내전을 종식 시키고 (B.C.27-A.D.180) 거의 200년 가까이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평화의 시대, (작은 싸움들은 있었지만) 로마를 위협하는 그런 전쟁은 없었습니다.
로마 원로원은 팍스로마시대를 가져다 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티누스’ 라는 이름을 수여 하는데, ‘존엄한 자’라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 이고, 신약성경에는 ‘아구스도’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로마 황제이다.
눅2: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유는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서,
단11:20.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압제자”(20절) 세금징수원이다.
아우구스티누스 명령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고향으로 가서 호적 신고를 하게 된 것이다.
이 명령이 없었다면,,,,요셉과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호적하러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예언에 기여하는 인물이 “가이사 아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언의 말씀에 이 사람이 등장한다.
단11: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카이사르의 뒤를 이은 옥타비아누스가) 압제자(세금징수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이스라엘 땅)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황제가 되기까지 많은 전쟁을 하였으나 황제가 된 후로는 전쟁이 없이 평화로웠지만 세금을 걷기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된다).그는 77세의 나이로 독살 당하여 죽게 됨.
단11:21.또 그의 왕위를 이을 자는 한 비천한 사람이라 나라의 영광을 그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나 그가 평안한 때를 타서 속임수로 그 나라를 얻을 것이며
22.넘치는 물 같은 군대가 그에게 넘침으로 말미암아 패할 것이요 동맹한 왕도 그렇게 될 것이며
로마의 두 번째 황제는 티베리우스 황제
눅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디베료 황제가 된 역사적인 스토리,,,
B.C.39년 옥타비아누스는 리비아라고 하는 여인에게 반함.
리비아와 결혼하기 위해 이혼하라고,,,,
리비아는 3살 짜리 아이가 있고, 지금 둘째 아이 임신 중인 여자,
옥타비아누스 자신도 유부남이었고, 리비아도 마찬가지,,,
옥타비아누스는 결혼하기 위해서 리비아에게 이혼하라고 하며, 자신도 그리하겠다고 했다.
리비아의 큰 아들이 디베료입니다.
티베리우스가 9살 때 아버지가 죽습니다.
엄마 리비아와 함게 살게 됨.
옥타비우스가 말년까지 마땅한 후계자가 없었다.
그러자 리비아가 자신이 아들 티베리우스를 왕으로 지명해 달라고 한다.
티베리우스는 자신의 친 아들이 아니기에 왕으로 지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리비아는 엄청난 권력욕이 있는 여자 였기 때문에
남편의 뒤를 이어 아들을 왕좌에 올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역사는 아무리 탁월한 존재가 등장할 지라도 그 배후에서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힘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놓으신 성경의 예언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생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하는 신앙고백이 정확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인정하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여 주시고 계신다.
하나님을 보여 주시고, 세상을 보여 주시고, 우리의 미래를 보여 주십니다.
부모가 자녀의 앞날을 생각하며 기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앞날을 위하여 말씀을 통해서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가 됩시다. 유한한 세상 나라에만 소망을 가지지 말고, 무한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땅도 보고, 하늘도 바라보는 균형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내는 승리자가 되길 소망합니다.